◈ 제 93화
93화 월드컵 16강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시작된 월드컵 본선.
총 32개의 팀이 조별 리그를 벌여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한 팀만이 16강에 오르게 된다.
A조 – 프랑스, 세네갈, 우루과이, 덴마크.
B조 – 스페인, 슬로베니아, 남아공, 파라과이.
C조 – 브라질, 터키, 중국, 코스타리카.
D조 – 대한민국,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
E조 – 독일, 사우디, 카메룬, 아일랜드.
F조 – 잉글랜드, 스웨덴,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G조 – 이탈리아, 에콰도르, 크로아티아, 멕시코.
H조 – 일본,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
D조에 속한 한국은 전 세계의 축구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폴란드와 첫 경기를 갖게 되었다. 선우는 희동구 감독의 지시에 따라 프리롤(free-role) 역할로 후반전에 투입될 예정이다.
전반 26분,
대한민국은 최고참 황전홍의 슛이 폴란드의 골문을 흔들며 1: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후반전, 등번호 99번의 최선우가 엄청난 함성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선우야.”
인터셉트에 성공한 박진성이 빠르게 오버래핑을 했다.
선우는 폴란드 수비진의 틈새로 달려들었다.
“패스.”
“굿~!!”
박진성에게 패스를 받은 선우는 곧 폴란드 수비진을 흔들기 시작했다.
수비수 두 명 사이를 돌파하는 순간, 자유롭게 움직이는 유성철 선수가 눈에 들어왔다.
‘실프, 유성철 선수에게 패스할게.’
[꺄르르~ 네. 마스터.]
선우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대로 크로스를 띄우자 실프의 도움으로 인해 축구공은 유성철 선수의 오른발에 정확히 안착했다.
“최선우 선수의 패스! 유성철 선수, 공을 잡습니다. 그대로…… 그대로 슈~~웃!”
“골~~!!”
“골입니다. 골이에요!!”
유성철 선수의 강력한 슈팅에 폴란드 골키퍼는 감히 막을 생각도 못 하고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다.
완벽한 패스에 이은 완벽한 슈팅이었다.
기세가 오른 대한민국 팀의 거센 공격이 이어졌다.
특히 그라운드 전체를 휘젓고 있는 선우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폴란드 감독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경기는 4:0으로 끝이 났다.
-삐익, 삐익. 삐~~~~익!
심판의 종료 휘슬이 터져 나오자 경기장을 가득 매운 6만 6천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음 출전했던 한국이 48년 만에 월드컵에서 승리를 기록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선우야, 첫 경기 축하해.
설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봤어?”
-응.
“경기장에서?”
-아니, 촬영 때문에 TV로 봤어.
“응~ 그랬구나.”
-지금 뭐 해?
“휴식 중~~”
-잠깐 나올 수 있어?
“어딘데?”
-집. 방금 들어왔어.
“집이면 여기서 가깝네. 그래. 집에 있어. 내가 잠깐 갈게.”
선우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애스턴 마틴 뱅퀴시(Aston Martin Vanquish).
이 차는 톰 제라즈가 그에게 선물한 차로 선우를 제외하면 아직 국내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는 최고급 스포츠카다.
“우와~”
“저 차는 대체 뭐야?”
“대~~박! 애스턴 마틴 뱅퀴시다.”
이와 같은 시각,
“누구랑 통화했어? 혹시 선우니?”
“응.”
“꺄악~~ 설연아. 선우에게 오늘 경기 너무 잘 봤다고 전해줘.”
“나도, 나도~”
선우와 통화했다는 말에 두 언니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언제 한번 놀러 안 온대?”
“그래. 얼굴 본 지도 오래됐는데 집에 한번 놀러 오라고 해~~”
“……지금 잠깐 온대.”
“뭐? 지금?”
“이 계집애야, 왜 그걸 이제 얘기해.”
“윽! 화장 지웠는데, 다시 화장해야겠다.”
“……??”
설주와 설희는 번개 같은 빠르기로 화장대에 앉았다.
“설연아~”
“응, 엄마.”
“너도 참 예쁘게 컸지만 우리 선우도 참 멋지게 컸다. 그치? 어렸을 때부터 착하고 예의 바르고 똑똑하고~~ 호호호호! 정말 잘 컸어.”
“뭐…… 흠…… 흠…….”
“얼굴도 잘생겨, 글도 잘 써. 게다가 축구도 잘해. 정말 흠잡을 데가 없다. 흠잡을 데가 없어!!”
그리고 다음 순간,
엄마의 예상치 못한 일격이 날아왔다.
“어이~ 딸막이.”
“응.”
미희는 설연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엄마는 다 알고 있다.”
“콜록…… 콜록…… 뭐…… 뭘?!!”
“호호호~ 사위 사랑은 장모니까, 우리 선우가 좋아하는 양념 통닭이나 주문해놔야겠네.”
미희는 묘한 눈빛을 보이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 * *
2002년 월드컵 경기는 선우의 독무대였다.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한 선우는 미국,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해 득점왕 선두에 나섰고 한국은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3경기에 8골?!”
“이게 말이 돼?”
“진짜 대박이다.”
1990년대 이후 월드컵 득점왕의 평균 골은 6골이다.
더욱이 선우가 기록한 골은 모두 경기 후반에 출전해 얻은 득점이었다.
이쯤 되자 한중일 3국은 물론 전 세계가 선우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3골을 넣었다며?”
“응. 해트트릭.”
“와~ 선우…… 너~~”
“왜?”
“너무 잔인한 것 아냐?”
“축구에 잔인한 게 어딨어?”
“헤헤헤~ 농담이야. 말이 그렇단 거지.”
설연이 조심스레 준비한 텀블러에서 뭔가를 따라준다.
“마셔.”
“이게 뭔데?”
“몸에 좋은 거.”
몸에 좋은 거라는 말에 선우는 음료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홍삼?”
“응.”
“어머니가 주셨어?”
“아니, 내가 직접 달였어.”
“진짜?”
“그럼. 내 남자는 내가 챙겨야지~~”
선우를 바라보고 있는 설연의 눈에서 마치 꿀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역시 설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삼처사첩의 꿈을 접어야 하나?’
그때였다.
호출기가 울리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20분 후, 강당으로 모이세요. 전술 훈련이 있습니다.>
16강전을 대비한 전술 훈련이 있다는 문자다.
“호출이야?”
“응. 희동구 감독님. 전술 훈련이 있다네.”
“히잉~”
설연이 입술을 삐쭉 내밀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고,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꽉 한번 깨물어 주고 싶다.
“설연아.”
“응?”
“너 신데렐라가 잠을 못 자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신데렐라가 잠을 못 자면?”
“응.”
“……신데렐라가 잠을 못 자? 그럼 불면증인가?”
“아니~”
“다크서클?”
“아니, 정답은 모짜렐라~~”
“아! 뭐야~~~!!”
선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이고 있는 설연을 뒤로하고 사라졌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02월드컵 16강전 중계를 맡은 박원익입니다.
오늘은 희동구 감독이 이끌고 있는 우리 월드컵 대표 팀의 경기가 있는 날입니다. 벌써부터 광화문 거리가 들썩이고 있는데요, 낮부터 모여든 시민들이 춤과 노래를 뽐내며 거리를 축제의 장으로 만든 느낌입니다.
-과연 우리 대표 팀이 16강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곧이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16강전에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이탈리아를 만났다.
이탈리아는 부퐁, 토틴, 비에린, 델 피에론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강팀이었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되었고 전반 16분 압도적인 피지컬을 무기로 비에린의 선제골이 터졌다.
“비에린, 슛.”
“아…… 골입니다. 이탈리아가 우리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취골을 넣습니다.”
“괜찮아요. 아직 전반입니다. 우리 선수들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과연 강했다.
하지만 월드컵 사상 첫 16강에 오른 한국 대표 팀의 사기(士氣) 역시 만만치 않았다.
“비에린 슛.”
“김운재 선수의 선방! 봉종국 선수가 바깥으로 차냅니다.”
“아~ 잘했어요. 이건 김운재 선수의 슈퍼 세이브네요.”
“우리 김운재 선수, 참 대단한 골키퍼입니다.”
전반전이 끝나고 1:0으로 뒤진 상황에서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최선우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선우, 출전이다.”
희동구 감독의 말에 그라운드의 폭격기가 날아올랐다.
“와!!”
“선수들 움직임이 달라지는데요?”
선우의 실력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탈리아 코치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실제로 보니 그의 실력이 생생하게 느껴진 것이다.
-뻥!!
공이 폭발하듯 엄청난 소리를 내며 수비수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선우는 대한민국의 공격을 이끄는 동시에 수비가 위태로울 땐 어김없이 내려와 수비수의 역할까지 해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는 마치 그라운드에 현신한 홍길동 같았다.
‘선우가 가진 재능과 실력은 진정 경이적일 정도로 대단하다.’
두 팀의 양상이 달라졌다.
비에린를 상대로 대등한, 아니 그를 뛰어넘는 피지컬.
날카롭게 라인을 파고드는 엄청난 침투력.
오프사이드 트랩까지 효과적으로 붕괴시키는 시야와 무엇보다 저 사기적인 드리블은 상대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이탈리아는 서서히 라인을 내리며 그들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백(Back)!!!”
이탈리아의 수비는 그 명성에 걸맞게 대단했다.
얌브로타, 모네티, 토마수, 코쿤은 마치 한 사람과 같은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선우의 현란한 움직임은 점차 그들에게 악몽을 선사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전,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우의 움직임에 저들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말았다.
그때였다.
초롱이 이영포 선수가 상대 선수와의 경합에 승리하면서 공을 빼앗았다.
“윽!”
“막아!!”
“패스!”
-퉁!
다이렉트 패스로 공이 날아갔고 그곳엔 한 마리의 성난 황소가 달려오고 있었다.
“제길!”
“최선우를 막아.”
선우를 향해 달려드는 세 명의 수비수.
사람들은 선우가 공을 뺏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을 비웃는 일이 벌어졌다.
‘오른쪽, 사이!’
수비수 세 명을 젖히는 환상적인 드리블이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과당!
모네티가 넘어졌다.
“허억!”
“아, 안 돼!!!”
마태우치와 줄리아노 역시 선우의 플립플랩과 백플립플랩에 의해 볼품없이 나가떨어졌다.
-우와와와아아!!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골키퍼를 제외하면 이제 한 명의 수비수밖에 남지 않았다.
“막아, 어서 막아!”
수비수 발다르노가 공간을 좁히겠다고 앞으로 나온 것이 완벽한 실책이었다.
‘등번호 9번 설기연.’
순간 공간을 파고드는 설기연 선수가 보였기 때문이다.
‘실프, 내 공을 설기연 선수 발 앞에 정확히 갖다 줘.’
[꺄르르~ 네~~ 마스터.]
선우는 강하고 빠르게 공을 찼다.
-팡!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
설기연 선수는 마치 자로 잰 듯 자신의 발밑에 도착한 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뻥!!
일말의 고민도 없는 슈팅
-철렁!!!
설기연 선수의 슛이 그물망을 가르며 경기는 이제 1:1 동점이 되었다.
“우오오오오오~~”
“골이다. 동점 골이다~~!!”
동점골이 터지자 모든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골키퍼 부퐁을 비롯해 상대 팀의 수비수들은 허망함과 경악이 섞인 눈으로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골을 넣은 선수가 아닌 바로 골을 패스한 최선우를 향하고 있었다.
“자~ 이제 동점입니다. 한 골 더 넣자고요.”
“그래~ 선우야. 이번엔 형도 좀 넣어보자.”
“선우야, 나도~”
“나도~~”
선수단의 기세가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하자 이를 지켜보던 희동구 감독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