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2화
92화 차뱅(Bang)과의 만남
-도쿄 의대 병원.
“으으으, 제발 저 좀 고쳐주세요.”
“저도요…….”
“……으아!”
응급실은 지금 설사와의 전쟁 중이다.
-뿌지직!!!
사방에서 똥을 싸대는 바람에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어우, X발. 이게 대체 무슨 냄새야?”
응급 환자가 발생했다는 콜에 식사 중에 달려온 야마다 선생이다.
그는 코를 찌르는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선생님?”
“차트는? 보고부터 해봐.”
“네, 일단 식중독으로 판단되지만 일부 환자는 급성 장염 증상도 보입니다.”
“치료제는?”
“이미 투약했습니다.”
이미 치료제를 투약했다는 레지던트의 대답에 야마다 교수가 반문했다.
“근데 왜 저래?”
“그, 그게 저도…….”
그랬다.
혐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여전히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만 하루가 지나는 동안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여전히 고통을 느꼈다. 게다다 수시로 느껴지는 배설감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 상태가 되어서도 여전했다.
“빌어먹을! 대체 단체로 뭘 처먹었기에 이렇게 난리가 난 거야?”
“그러게요.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시위대 사람들만 이래요.”
“젠장!!”
이들 때문에 비상이 걸려 잠도 자지 못한 의사와 간호사의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선생님. 제발 살려 주세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창자가 튀어나오는 것 같아요. 제발 살려 주세요.”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이여!! 이 고통만 없어진다면 무슨 일이든 할게요.”
시위대의 얼굴은 하루 만에 이미 퀭해져 있었다.
기자들은 혐한 시위대의 이러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도했고 이 또한 연일 화제가 되고 있었다.
-시위대 놈들, 천벌을 받은 것.
⤷똥구멍이 완전 *됐다고 합니다.
-시위대가 가져온 오물에서 바이러스 발견.
⤷아가들아,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라.
⤷그러게 똥물 들고 설칠 때부터 알아봤다.
⤷쌤통~
⤷아이고~ 꼬시다. ㅎㅎㅎ
-사흘이 지나자 일부 환자들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합니다.
뉴스를 통해 시위대의 상태를 확인한 선우가 미소를 지었다.
“효과가 좋은데~~”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아마 이번 주 안에 대부분 완치(?)될 것이다.
한편 혐한 시위대 참가자 중의 한 명이던 요미우리는 펄펄 들끓던 장의 움직임이 진정되면서 복통이 사라짐을 느꼈다.
단지 배설감이 약해지는 것이었지만 마치 다시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다시 혐한 시위대에 참가하면 사람이 아니므니다.”
요미우리는 두 손을 불끈 쥐며 자신의 굳센 의지를 피력했다.
그가 겪은 고통의 크기가 그만큼 컸음이다.
이와 같은 시각,
한국 축구 대표 팀은 도쿄 하네다 공항에 모였다.
선수들의 표정은 굉장히 밝았다.
월드컵을 앞두고 영원한 숙적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게 짜릿한 역전승, 그것도 2:5의 대승을 기록한 것이다.
혐한 시위대 사건으로 인해 마지막에 기분이 조금(?) 잡치긴 했으나 뭐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선우야, 티켓 받았어?”
차세리 선수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네, 형.”
“좌석 번호가 몇 번이야?”
“23번 A요.”
“정말~ 내가 B인데?”
“어? 그럼 형이랑 같이 앉겠네요.”
“우와~~ 그르네.”
차세리는 선우와 같이 앉게 되었다는 것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선우야, 형은 네가 부럽다.”
“뭐가요?”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 완전 제대로 멋짐이 폭발했잖아.”
“네?”
“신문 봐라! 네 얼굴이 도배를 했어. 이것 봐 봐!”
“…….”
스포츠 신문은 물론이고 사대 일간지 역시 선우의 얼굴이 1면을 장식했다.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노벨상을 수상한 지적 능력은 물론이고 그 말도 안 되는 드리블 실력까지…… 와!! 진짜 부럽다. 넌 정말 사기캐야.”
“……그래도 체력은 형을 이길 수 없어요.”
“그른가? 헤헤헤헤~”
“그럼요. 형은 로봇이잖아요. 흐흐흐~”
“아니야. 선우야. 형은 인간이라니까!”
“눼~ 눼~~~”
“이 녀석이~~~!!”
차세리와의 대화는 늘 유쾌하다.
아마도 그가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는 한국식 선배 문화보다 유럽식의 자유분방한 사고를 지녔고 단단한 몸으로 인해 로봇이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잠시 후,
대현항공 521편이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고 두 사람은 간단한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한민국 인천까지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선우야.”
“네, 형.”
“실은 형에게 고민이 하나 있는데…….”
“고민이요?”
“응.”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보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도와 드릴게요.”
선우의 말에 한순간 차세리의 표정이 밝게 바뀌었다.
“포지션 문제야.”
“포지션이요?”
“응.”
선우는 차세리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는 동시에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2002년 월드컵 이후…… 그래. 차세리 선수는 포지션을 변경했어. 그리고 성공했지. 뭐였더라? 공격수는 아니었는데…….’
가만히 기억을 떠올린 선우는 그가 풀백이라는 포지션으로 변경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풀백이 어떨까요?”
“풀백?”
“네.”
풀백이라는 구체적인 포지션이 나오자 차세리의 표정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풀백이라면…….”
“네, 수비 전술에서 좌우 측면을 책임지는 포지션이죠.”
선우의 설명이 이어졌다.
“본업은 수비수지만 공격력을 겸비해야 하고 뛰어난 체력 역시 지녀야 해요. 압박이 중시되고 선수에게 다양한 롤을 요구하는 현대 축구에서 꽤나 중요한 포지션이죠.”
“공격력을 겸비해야 한다?”
“네, 공격력이 겸비된 풀백은 실력이 뛰어난 공격수만큼의 몸값을 받을 수 있어요. 현제 유럽에서도 가장 인재가 적은 포지션이고 특히 왼발을 사용할 수 있는 왼쪽 풀백은 굉장한 희소가치를 지녔죠.”
“……!!”
선우의 설명에 차세리는 뭔가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래. 선우야. 고맙다.”
차세리는 흥미로운 눈빛을 보이며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선우 역시 차세리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창밖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포지션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차세리는 분명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에 성공했었다.
원 역사보다 일찍 씨앗을 뿌려줬으니 그 열매 역시 더욱 풍성할 것이다.
-인천공항 입국장, 기자회견장.
수천 명의 시민들이 공항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피켓과 현수막까지 준비해 축구 대표 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최선우의 이름과 사진이 90% 이상이었다.
“꺄아아.”
“선우 오빠다~~”
“어디, 어디?!!”
“헉! 난 오빠를 볼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이년아, 뽕부터 빼고 말해.”
“희동구 감독님이다.”
“이제 나오나 봐. 저기 성환 오빠~ 기연 오빠~~ 세리 오빠도 있네.”
“선우 오빠는 어딨지?”
“앗. 저기 있다.”
“최선우 선수의 모습이 보입니다.”
“꺄아아악~”
주위에서 쏟아지는 시선들.
공항에 몰려온 팬들은 선수단을 향해 박수와 갈채를 보냈고 여학생들은 선우에게 꺅꺅거리는 함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그것은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삽시간에 수백 명에 이르는 소녀들이 몰려들었다.
“모두 물러서요.”
“물러서세요. 다칩니다.”
“어이, 거기! 학생들. 뒤로 물러서요. 다쳐요.”
공항 경비대가 고함을 치며 재빨리 바리케이드를 친 덕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했다.
소녀 팬들이 선우에게 품은 열정은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었다.
선우의 실물을 본 일부 팬들은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역시 급이 다르네.”
“어마무시하다.”
“선우야, 부럽다.”
일부 선수들은 선우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장난스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곧 기자회견이 열렸다.
발언권을 얻은 사십 대 초반쯤 되는 기자가 입을 열었다.
“전 A신문사의 K기자입니다. 먼저 한일전에서 대승을 기록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본선에서 상대할 폴란드와 포르투갈은 강팀입니다. 이에 대해…….”
“네, 그에 대한 대비는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4-4-2 포메이션은 계속 유지하실 생각입니까?”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상대에 따라 전술은 변화될 겁니다.”
기자들의 질문과 희동구 감독의 답변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기자가 최선우 선수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희동구 감독님.”
“네.”
“최선우 선수가 늘 후반에만 출전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건 최선우 선수의 체력 안배 때문입니다.”
“체력 안배요?”
“네.”
얼핏 이해하기 어렵다는 기자의 표정에 희동구 감독의 설명이 이어졌다.
“최선우 선수는 매우 부지런한 선수입니다. 프리롤(free-role) 역할로 진형에 상관없이 경기장 전체를 움직이죠. 혹시 기자님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압도적인 피지컬을 바탕으로 경기장을 뛰어다는 선수들의 평균 이동 거리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평균 12km입니다. 전반과 후반을 모두 합쳐서요. 그런데 후반전에만 뛰는 최선우의 선수의 경기당 이동 거리는 평균 18km에 이릅니다.”
“아……!!”
“대답이 되었겠죠?”
“네, 감사합니다.”
희동구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에 매번 적절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번엔 최선우 선수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선우에게 마이크가 전달되었다.
“항간에 월드컵 이후 유럽 리그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사실 무근입니다.”
“앞으로 축구를 계속할 계획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축구는 계속하겠지만 월드컵 이후, 선수 생활을 이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이번 월드컵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건가요?”
“네.”
“왜죠? 엄청난 실력을 가지셨잖아요?”
“제 본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기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 누가 감히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에게, 그것도 매년 히트작을 내고 있는 천재 작가에게 축구를 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이번엔 좀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혐한 시위대의 시위를 목격하셨지요?”
“네. 선수단 전원이 현장에 있었습니다.”
선수들은 각자의 시선에서 그들이 목격한 혐한 시위대의 시위를 비교적 담담한 어조로 답변했다.
“……모든 일본인이 혐한이 아니지만 이번 시위를 보면서 실망했습니다.”
“독일과는 너무나도 다른 행태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도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두 시간이나 이어진 기자회견이 마침내 끝났다.
옆에 있던 차세리가 넌지시 물었다.
“선우야,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 거야?”
“지금까지 기다리셨는데~ 당연히 사인이라도 해드려야죠. 형은요? 피곤하지 않아요?”
“왜 이래? 나 로봇이야.”
“아~!!”
잠시 후,
수백 명의 팬들이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세리야.”
“아버지?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어떻게 오긴, 차 타고 왔지.”
차세리 선수의 아버지, 차범군이 등장했다.
그는 차세리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보인 후, 대뜸 선우를 빤히 보았다.
“자네가 최선우 선수군.”
“네에? 아! 네, 그렇습니다.”
선우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숙여 인사했다.
차범군.
한국이 낳은 최고의 축구 선수.
독일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몰라도 차뱅의 나라라고 하면 알아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선우가 존경해마지 않던 선수였다.
“……사인 좀 해주세요.”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빛을 읽었는가?
선우의 말에 차범군 선수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세리야, 이 친구 이거 실물이 훨씬 더 멋진 선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