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89화 (89/187)

◈ 제 89화

89화 <학교 이데아>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이슬람 테러 조직 알 카에다가 4대의 비행기를 납치해 동시다발적으로 테러를 일으켰다.

선우는 멍하니 서서 TV만 바라보고 있다.

-세, 세계…… 무역 센터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이것은 영화가 아닙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결국 막지 못했구나.”

선우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선우는 옐로스톤 공원에서 뉴욕으로 돌아올 때, 익명으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펜타곤에 편지를 보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장난으로 치부한 모양이다.

하지만 선우의 편지로 인해 생명을 건진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 세계무역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익명으로 편지를 보낸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편지의 내용을 무시한 채 출근을 했지만, 극히 일부는 찜찜한 마음에 휴가를 냈고 일부는 오전 시간을 피해 출근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큰 줄기는 바꾸지 못했지만 원 역사와는 다르게 수백 명의 죽을 운명이 살아났다.

각설하고 누군가는 선우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다.

1. 당신이 미래를 알고 있으니 사람들에게 911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 되지 않았을까?

선우 역시 이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911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아마 미친놈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이야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테러를 막지 못해 911 테러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언자? 테러범? 선우를 두고 온갖 음모설이 횡행할 것이고 그가 감당치 못할 변수가 생길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당신은 흑마법사이자 정령사다. 엘 카에다 조직을 직접 찾아가 응징할 수 없었나?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지구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마법사지만 지금이라도 어디서 눈 먼 미사일 하나가 날아오면 그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오이마 반 라덴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그를 찾는단 말인가?

“편지요?”

“네.”

“무슨 편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911테러를 예견한 이 편지를 말하는 겁니다. 국장님.”

“전 처음 보는 편지군요.”

“정말이십니까?”

“네. 정말입니다.”

미국 정부는 편지의 존재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편지로 인해 죽음을 피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자 후에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여담이지만 방송에 나와 편지의 존재에 대해 부인했던 CIA 국장은 그로 인해 경질되었다.

한편 CMN을 비롯해 수많은 언론사와 CIA에서 911 테러 사건을 예견한 사람을 찾아 나서느라 여념이 없었다.

방송사에서 5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주겠다고 하자 편지를 보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났지만 이들의 정체가 곧 사기꾼으로 드러나면서, 여담이지만 편지를 보낸 주인공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 * *

“합의를 해달라고? 어림 없……?!”

원석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인은 그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여인의 용모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석의 몸이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대로 굳어버렸다.

“수, 수진이?”

천 년 전 세상을 떠난 첫사랑의 모습과 똑같았다.

원석은 완전히 넋이 나간 모습으로 떠듬떠듬 여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수진아, 수……진아…….”

그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르르.

숨 막히는 긴장감이 시간과 공간을 사로잡고 있을 때, 천기환 감독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컷!”

천기환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만족했다는 듯 외치자 주변 스텝들 역시 원석의 연기에 박수를 보냈다.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호오~ 더 좋아졌는데?’

이전에도 잘했지만 지금은 흠 잡을 곳이 보이지 않는 명품 연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기척을 죽이고 연기를 관람하고 있던 선우는 만족한 미소를 보였다.

“이런! 작가님이 아니십니까?”

천 감독이 선우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언제부터 계셨어요?”

“하하하! 조금 전부터요. 촬영은 어떻습니까? 잘 되고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대본이 워낙 훌륭해서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청률이 1위입니다. 1위!”

“네,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 덕입니다.”

천 감독의 음성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느껴졌고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촬영장 밖에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선우야~”

설연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냥 그대로 선우의 품에 안겼을 것이다.

“헤헷~~ 언제 온 거야?”

“조금 전에.”

“그럼 나 연기하는 것도 본 거야?”

“당연하지. 잘하던데?”

“헤헷~~”

선우는 어정쩡한 자세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원석에게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원석 씨.”

“네!! 안녕하십니까. 작가님.”

선우의 반가운 인사에 원석은 꽤나 당황해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자신이 소위 요즘 뜨고 있는 배우였지만 최선우는 그와 격이 다른 존재다.

더욱이 그 역시 듣는 귀가 있었다.

자신을 드라마 오디션에 꽂아주고 T&B에 연락을 넣어준 사람이 바로 최선우 작가였다는 사실을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잘 지내고 계시죠? 참!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 도깨비 역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네.”

뭐랄까? 원석은 문득 기이한 감흥이 전신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자신을 반겨 주며 립 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닌, 뭔가 진심이 담겨 흐뭇하게 만들어 주는 기분이었다.

‘원석아, 네 꿈을 향해 잘 가고 있는 거지?’

한편 선우는 원석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꽤나 재밌었다.

“제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

“저, 저기…… 그…… 그게…….”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선우의 말에 원석이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김일환 대표님에게 들었습니다. 제게 왜 그런 도움을 주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도움이요?”

선우가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보이자 원석의 설명이 이어졌다.

“네, 전부 다 들었습니다. 이번 드라마 오디션은 물론 T&B와의 계약까지요.”

“…….”

원석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선우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과거에 대한 감사.”

“과거에 대한 감사?”

“현재에 대한 운명.”

“현재에 대한 운명?!”

“미래에 대한 인연.”

“……미래에 대한 인연??!!”

이게 대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린가?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첩첩산중(疊疊山中),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그런 원석의 마음을 이해했을까?

선우의 대답이 이어졌다.

“원석 씨,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저 내가 가진 행운을 인연이 닿은 원석 씨에게 조금 나눠준 거예요. 그리고 저번에 얘기했죠?”

“네?”

“우리 다음에 보면 친구 하자고 했잖아요.”

“……!!”

그 날 저녁,

선우는 가족과 함께 도깨비의 신부를 시청했다.

-수진아, 수……진아…….

화면에 비친 설연의 모습은 그냥 여신 그 자체다.

어렸을 때부터 다져진 연기력에 비교 불가한 미모가 더해지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와~ 우리 설연이 정말 예쁘다.”

“그러게, 이젠 정말 숙녀가 다됐어.”

“쳇~ 엄만 나보다 설연 언니가 더 예쁘지?”

어느새 믹스 커피를 가지고 거실로 나온 혜진이 투덜댄다.

“아이고~ 우리 딸도 엄청 예쁘지~~ 근데 설연인 비교 불가다.”

“흥~~!”

혜진은 입술을 삐쭉였지만 한눈에 봐도 장난이다.

“내가 설연 언니니까 봐준다. 쳇!!”

“아이고~ 우리 따님. 친절도 하시네.”

“뭐~ 친절해야지. 언젠가 우리 가족이 될 언닌데~”

혜진의 말에 수연의 눈빛이 한층 더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그래그래. 가족끼리 질투하고 그럼 안 되는 거야~ 호호호호~”

“맞아, 엄마. 호호호호~~”

“아들아~ 엄만 설연이 같은 며느리라면 언제나 오케이다.”

“오빠. 나도 설연 언니가 새언니가 된다면 두말 않고 찬성이야.”

“크흠~ 아들아, 아빠도 좋다.”

선우는 가족들의 뜬금없는 대화에 어이가 없었다.

이건 뭐, 설연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 집안 잔치라도 열 분위기다.

선우는 당분간 비밀을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험험~ 드라마도 끝났는데, 이제 뉴스나 좀 볼까?”

규용이 채널을 돌리자마자 암울한 뉴스가 들려왔다.

-반장까지 하고 있던 아이가 반 아이들의 악랄한 왕따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습니다. 아이가 뛰어내리는 모습을 목격한 엄마의 피 끓는 울음소리가 온 아파트를 울렸다고 합니다.

“아이고, 저런.”

“어머, 어떡해?!!”

왕따를 당한 학생이 괴롭힘을 침지 못해 자살을 한 것이다.

더욱이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빼앗은 옷을 입고 경찰서에 출두했다는 소식에 혜진이 분노했다.

“저거 미친 거 아냐?”

“저런 나쁜 놈들 같으니.”

-작년 한 해에 무려 50명 이상의 학생이 왕따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 역시 매우 침울했다.

더욱이 목숨을 끊은 아이의 일기장이 공개되면서 그 파장은 더욱 커졌다.

-다음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뉴스는 곧이어 정치 경제 기사로 바뀌었지만 선우의 마음속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방 안으로 돌아온 선우는 조용히 펜을 들었다.

-<학교 이데아>

아침이 오면 눈을 뜨기가 싫어요. 학교에 가기가 무서워요.

난 아직 어린아이예요. 하지만 나도 노력했어요.

너무 많이 울었고 매일매일 기도했어요.

엄마가 물어요. 넌 왜 혼자니?

아빠가 물어요. 넌 왜 그렇게 힘이 없니? 무슨 일 있니?

말해야 하는데, 말해주고 싶은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말하기가 두렵고 무서워요.

내 삶은 이미 망가졌어요.

아이의 처절한 독백.

선우의 손끝에서 강렬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학교 이데아>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세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첫 번째 주인공인 형욱은 그냥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한다.

두 번째 주인공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로이로 그는 형욱의 자살 이후, 새롭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 아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세 번째 주인공은 폭력의 왕 진우다.

그는 패거리를 만들고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다.

선우는 각각의 캐릭터마다 굵직굵직한 행동 묘사와 극단적인 비유를 가미했다. 때론 섬세한 심리 묘사와 함께 행동 설명을 차분하게 풀어놓기도 했는데, 각각의 캐릭터가 외치는 소리가 무척이나 독특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친구를 자살하게 만들어 놓고도 뻔뻔할 정도로 반성치 않는 진우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집단적 따돌림과 그로 인한 자살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왜 그렇게 태연한 것일까?

독자들은 형욱과 로이를 통해 그들이 느꼈던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나락까지 떨어진 절망감을 공감할 수 있다.

놀린다. 때린다. 짓이겨 누른다.

그 다음 모욕한다, 모독한다. 그리고 절망케 한다.

진우는 왕따의 대상이 된 아이에게 더욱 극심한 고독감을 맛보게 했다,

진우에 의해서 주인공들은 점차 자아정체성을 잃어간다,

놀림감이 되어가고 반항심을 잃어버려 결국 홀로 일어설 수 없게 된다.

독자들은 글을 읽는 내내 담담하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진우에 대한 미움과 분노, 선생님에 대한 원망과 절망은 학교라는 것이 이 사회에 존재해야 되는 것인가에 대한 성찰까지 이끌어낸다.

이 책의 결말은 단순하게 진우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끝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함께 다양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게 한다.

선우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방 안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갔다.

그의 모습은 압도적이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했고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의 손은 마지막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멈추지 않았다.

*<학교 이데아>의 가사는 아메리칸 갓 탤런트에 나온 왕따 아이의 노래를 참고했음을 알려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