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6화
86화 비공식 한국 제일의 부자?
선우는 할리우드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자 뉴욕으로 이동했다.
“마침내 오셨군요.”
“오랜만이에요. 왓슨.”
두 사람은 반갑게 서로를 마주했다.
“잘 지냈죠? 신수가 좋아 보이네요.”
“신수가 좋아 보인다고요? 말도 마세요. 누구 때문에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해 죽겠어요.”
왓슨의 대답에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선우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후후후~ 그건 좀 미안해요.”
“쳇~ 됐어요. 보스가 시키면 아랫사람은 일을 하는 게 당연하죠.”
왓슨은 투정 부리듯 입술을 내밀었지만 사실 내심으로는 이번 프로젝트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사무실을 마련했습니다.”
“네~ 어서 가죠.”
왓슨의 안내를 따라 들어간 사무실 내부는 매우 단정하면서도 꽤나 고풍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보스의 취향을 몰라서 일단 제 취향대로 꾸며봤습니다만…….”
“좋아요. 제 맘에도 꼭 드네요.”
“하하하~ 다행이네요.”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참. 그 일은 성과가 좀 있나요?”
“네. 먼저 의료진들의 영입 현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왓슨은 한 뭉텅이의 서류를 꺼내 들었고 거기에는 조셉 크루저, 도미닉 사이언스, 로버트 풀만 등 저명한 의학자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의학 역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모든 의학 분야가 발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 되는 분야만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감기약, 소화제, 변비약, 발모제, 발기부전 치료제 등과 같은 다수의 사람들이 찾는 약은 계속해서 신약들이 개발되고 있다. 암과 관련된 치료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이 걸리는, 난치병이나 불치병의 경우는 다르다.
이것에 대한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바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의 논리는 단순하다.
찾는 사람이 있어야 판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장사꾼의 입장에선 찾는 사람이 많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최소 수백억에서 수천억 혹은 조 단위의 막대한 자금이 투자돼야 하는데, 극소수의 사람들이 걸리는 병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거액을 투자하는 기업이 없는 것이다.
난치병, 불치병 연구는 이익이 발생할 수 없는 사업이다.
인류애와 같은 사명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은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국가는 외면하고 침묵한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다.
아무튼 선우의 100% 투자로 만들어질 펜 의학 연구소에서는 앞으로 베세트 병, 중증근무력증, 경피증과 같은 난치병과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저희와 함께하기로 한 분들입니다.”
“……총 7명이군요.”
“네.”
“다른 분들은?”
“융 박사님은 가족들이 한국으로 이주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희의 제안을 거절하셨고 크로츠만 박사님은 현재 근무하고 계신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하이데커 박사님은요?”
“아직까지 답변이 없습니다. 한국식 속담으로 말해 간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선우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들과의 연계는 어떻게 됐습니까?”
“시카고 의과 대학과 세인트 조셉 의과 대학은 물론 일본의 동경 의대, 한국의 세브란스 의과 대학 등 현재 전 세계 50여 개의 의과 대학에서 우리의 제안에 환영의 의사를 밝히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왓슨이 한 뭉치의 서류더미를 내밀었다.
“여기 1차적으로 50여 개 의과 대학과 MOU를 맺은 협약서입니다.”
“좋습니다.”
선우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질문을 이어갔다.
“평택에 조성하고 있는 의학 연구소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8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속도라면 이번 겨울이 오기 전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착착 진행되고 있네요.”
“YDJ 정부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후후후~”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IMF의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해외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물론 지자체인 평택시에서도 의학 연구소 설립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유하고 계신 계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잔고 얘긴가요? 이달 중순에 인세가 나옵니다. 그리고 <권좌의 게임>의 드라마화가 결정되어 이번 주 안에 톰이 결재를 해줄 겁니다. 그러니…….”
“아니요. 보스!! 잔고 얘기가 아닙니다.”
“그럼?”
“후후후~ 해피 PC방 사업이 말입니다.”
“해피 PC방이요? 왜요,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네. 문제가 생겼습니다.”
왓슨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PC방 사업이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네?”
“보스의 그 말도 안 되는 사업이 성공하고 있다고요.”
과거 해피 PC방 사업을 시작하며 그에 관련된 포부를 밝혔을 때, 왓슨은 이 자식이 미쳤냐는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더욱이 해피 PC방 사업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결정을 두고 열띤 대립까지 펼쳤었다.
왓슨은 시기상조라며 반대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지만 선우 역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손해가 보일지라도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얼마의 수익이 발생했다는 겁니까?”
“이번 달 순수익이 한화로 10억입니다.”
“10억이요?”
“네.”
“……!”
수천억을 투자해서 한 달에 10억의 순수익을 얻었다면 사실 이것은 저조한 성적이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마이너스였던 수익을 생각하면 괄목할 만한 성적이 아닐 수 없었다.
“수익이 크진 않지만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대한민국의 빠른 경제 회복에 의해…….”
“……?!!”
왓슨의 설명에 따르면 IMF를 졸업한 대한민국 정부의 빠른 경제 회복력에 건물 시세(땅값 포함)가 엄청나게 뛰고 있다고 한다.
“2조요?”
“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연내에 2조를 넘을 것 같습니다.”
“……!!”
IMF 시절 헐값으로 사들인 건물들이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하자 크게 오르기 시작했는데, 해피 PC방이 가지고 있는 매력 덕분에 건물의 가치가 급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해피 PC방 건물에는 PC방을 비롯해 고급스런 휴식 룸을 표방하는 해피 만화방과 해피 카페, 해피 편의점 등이 함께 입점해 있다. 해피 PC방에 한번 와본 사람들이 오직 해피 PC방만을 찾자 이제는 건물 자체가 하나의 상권을 형성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시설은 깨끗하고 인테리어는 고급이며 가격까지 저렴하니 사람들이 해피 PC방으로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해피 PC방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다양한 체인점으로 인해 하나의 유통망이 완성되어 버렸다.
“좋군요.”
돈을 벌 목적으로 시작한 사업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빨리 이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말에 선우 역시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수익금은 어떻게 할까요?”
“해피 쪽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해피 쪽으로 전액 투자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왓슨은 재투자를 말하는 선우를 바라보며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재계에서 초청장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초청장이요?”
“네, 모두들 해피 PC방의 주인이 누군지 궁금한 모양입니다.”
“해피 PC방의 주인이 궁금하다? 후후후~ 사실은 그 뒤에 있는 펜 투자회사가 궁금한 거겠죠.”
“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해피 PC방이 영국계 투자회사 의 소유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 들어온 정보 중에 투자회사 에 대해 이렇게 쓴 글이 있다.
-영국계 투자회사 .
-천문학적인 자본을 바탕으로 몇 년 사이에 크게 성장한 투자회사.
-영국 왕실의 자산을 운용하는 회사라는 소문이 있다.
-해피 PC방은 과 MC 소프트가 합작해 만들었는데 각각의 지분은 8:2라고 한다.
-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참! 얼마 전에 신검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1급 현역이 나왔습니다.”
“그럼 군대에 가셔야 하는 겁니까?”
“때가 되면 가야겠죠. 하지만…….”
“……?”
왓슨은 선우의 입가에 나타난 묘한 미소를 보며 의구심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묻진 않았다. 한국인에게 병역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항이라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설하고 선우는 한 달 가까이 뉴욕에 머물며 왓슨과 만남을 가졌다.
의 내실을 다질 만한 소수의 인재를 영입하였고 앞으로의 사업 계획과 투자 방향에 대해서도 긴밀한 협의를 나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왓슨과 헤어진 선우는 옐로스톤을 찾았다.
옐로스톤 공원은 와이오밍주와 몬태나주에 걸쳐 위치하고 있는 미국 최대이자 최고 높이의 국립공원이며 우리나라 충청남도 전체와 비슷한 크기로 그 방대함을 자랑한다.
선우의 눈앞에 거목들이 좌우로 빽빽하게 늘어선 숲지대가 보였다. 일반 사람들이야 감히 들어설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선우는 주변을 한번 살펴 인적이 없음을 확인한 후, 마법을 펼쳤다.
“플라잉(Flying).”
-휘잉~
마법을 이용해 한참을 이동하고 나서야 선우의 몸놀림이 멈춰졌다.
‘……자연지기가 충만하군.’
판타지 세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양이지만 옐로스톤은 과연 그 명성만큼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순수한 마나를 품고 있었다.
선우는 적당한 공터에 가지고 온 배낭을 내려놓고 서서히 몸을 풀었다.
-툭, 툭툭!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몸을 움직인 것에 불과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베르하젤 체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마나가 부족해 익힐 수 없었는데, 3서클에 오른 이상 익힐 수 있게 되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자네라면 충분히 익혀 볼 만한 체술이 있긴 한데…….”
“그런 체술이 있다고? 이름이 뭔데?”
“베르하젤 체술.”
“베르……하……젤 체술?”
의아한 빛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선우의 말에 친우가 답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온 체술에 자신의 심득을 섞었다는 것이다.
선우의 친우(親友)인 노기사(老騎士) 지크프리드 폰 베르하젤은 트윈헤드오거와의 격전 중에 마나 홀이 찢어지는 중상을 입고 은퇴한 기사다.
“……!”
선우의 얼굴에 순간 묘한 긴장감과 기대가 어리기 시작하자 지크프리드 폰 베르하젤은 자신을 주시하던 선우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큼성큼 공터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특별한 설명도 없이 몸을 움직이는 법을 눈앞에서 펼쳐 보였다.
“이게 뭔가?”
“자네에게 전수해줄 체술이야. 형태와 그 흐름을 다시 보여 주겠네. 당장 익힐 생각은 하지 말고 일단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게. 무엇보다 각 동작에서의 호흡이 끊어지지 않도록 유기적인 연결에 집중해야 해.”
선우는 과거 깊고 맑은 눈빛으로 자신에게 체술을 가르쳐줬던 친우를 떠올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선우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익! 휘이익!!!
태극권, 영춘권 아니면 실전 무술인가?!
처음에는 아주 느렸지만 다음에는 빠른 속도감을 선보였고 마지막에는 폭풍처럼 거세게 움직였다. 엄청난 빠르기와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호흡은 한 점의 흔들림이 없다.
-우우우웅!!
수인을 잡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나가 맹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체술이 마나와 공명한 것이다.
“후우…… 후우…….”
손과 발의 형태와 호흡이 완벽하게 일치하자 선우는 베르하젤 체술이 어떠한 원리로, 또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체술 훈련이 끝내자 선우는 곧바로 호흡을 가다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숲에 어둠이 찾아오기 전까지 그는 수련을 거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