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83화 (83/187)

◈ 제 83화

83화 오늘부터 1일이다

-어이, 최선우. 뭐 해? 형이랑 놀러 가자!

구름 한 점 없던 날,

오전과 오후는 건너뛰고 해가 진 다음에야 놀러가자고 꼬시는 사람의 목소리다.

“동혁아. 형님 지금 바쁘다.”

-왜~~ 또 뭐 하는데!! 얌마. 여자애들이 지금 난리야. 너 보고 싶다고.

“여자애들, 누구?”

-스타 데이트.

“아!”

동혁은 다 알면서 왜 물어보냐는 식의 약간 짜증 섞인 대답을 했다.

-걔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너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어찌나 내게 부탁을 하던지!

동혁의 말에 선우가 대답했다.

“친구야. 두 가지 이유에서 곤란할 것 같다.”

-두 가지 이유? 그게 뭔데?

“첫째는 지금 책을 쓰고 있거든.”

-책? 이번엔 또 무슨 책인데?

“권좌의 게임.”

-헉?!! 진짜? 진짜 그거 쓰는 거야?

“응.”

권좌의 게임은 과거 선우가 그의 집필 능력을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검증했을 때, 첫선을 보인 소설이다. 본격적으로 권좌의 게임을 집필 중에 있다는 말에 동혁의 음성이 변했다. 사실 그가 제일 관심이 있게 지켜보고 있던 책이기 때문이었다.

-쓰, 쓸 게 많아?

“휴…… 밤을 새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 그럼 고생 좀 해야겠네. 그건 그렇고 두 번째 이유는 뭐야?

“설연이가 지금 내 옆에 있다는 점?”

-서, 설연이가 왜?

그 순간,

수화기에서 설연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심부름 왔다. 안동혁, 넌 죽…….”

-달칵!

“어휴! 내가 이래서 안심을 못 한다니까!!”

주먹을 볼끈 쥐며 투덜대고 있는 설연의 모습에 선우는 친구의 명복을 조용히 빌어 주었다.

각설하고 설연이 집으로 돌아간 후,

선우는 다시 한 번 집중해 소설을 집필해 나가기 시작했다.

……지크프리드를 제외한 사람들의 눈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상대에 비해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해서 전투에서 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종류의 전투든 지형과 지물, 날씨와 같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때론 내부의 분열을 통해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승리를 쟁취할 수도 있다. 우리는 적에 비해 어떤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최대한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

“대장 말이 맞아.”

많은 경험을 가진 맥스의 말이 지크프리드의 발언에 힘을 실어 주었다.

“적은 훈련을 받은 기사였고 우리가 밀린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즉, 그렇게 죽상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남지 않았는가?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그러니 모두들 어깨를 펴.”

-툭!

“그, 그것은?”

“그래. 타울렛의 기사에게 얻은 검술서다. 이것을 익힌다면 다들 한 단계 이상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크프리드의 말에 모두들 한결 밝아진 얼굴이다.

“왕국은 혼란에 빠졌고 귀족은 저 붉은 대지의 몬스터와 같다. 하렛, 오크샤.”

“네, 대장.”

“너희들은 영주의 도시를 오가며 저들의 동태를 파악해라.”

“알았어, 대장.”

“겨울이 오기 전, 우리는 놈을 친다. 저들의 강점과 약점을 이미 파악했고 우리의 실력을 알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부족한 것을 채우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지크프리드의 말에 그들은 뭔가 크게 깨달은 표정이었다.

“호호호! 마침내 복수의 시간이 눈앞으로 다가온 건가?”

귀족에게 가족을 잃은 로한나는 잔뜩 고무되었다.

“그래. 좋아. 해 보자고!”

“날 때부터 귀족이 어딨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필립 역시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후후~ 나 역시! 힘에서 밀리면 필립이 아니지.”

“자자! 일단 대장이 준 검술을 익히며 근처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수련부터 하자고!”

“그래~”

지크프리드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관목 숲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두 개의 달이 조용히 지켜보았다.

(하략)

-이태리 작가의 신작 판타지 소설, 권좌의 게임 중에서…….

한편 선우의 스타 데이트 출연 후,

방송 출연 제의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늘 그를 기다리는 팬들로 북적였고 경찰차의 단골 순찰 지역이 되었다. 덕분에 애꿎은 경비 아저씨들만 고생을 하셨다.

“얘들아, 여기까지만이야. 더 이상은 못 들어간다.”

“아잉~ 아저씨!!”

“아파트 주민이 아니면 안 돼.”

“오빠는 몇 동에 살아요? 그것만이라도 알려주세요.”

“미안하지만 알려줄 수 없다. 아저씨 잘린다.”

의외로 편리한 점도 있다.

방송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한결 편해진 것이다.

선우의 변장 모음이란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무자비하게 유포되었는데, 이게 하나의 패션 아이콘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빠, 전화 왔어.”

“누군데?”

“대현 자동차라고 하던데?”

“대현 자동차?”

“응.”

선우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태리 작가님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네, 저희는 대현 자동차…….

“선우야, 전화 왔다. 니케라는데?”

“아들~ 전화~~”

“오빠! 성삼 전자, 전화~~”

광고 제의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며칠 후,

평상복 차림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선우가 캐리어 가방 하나를 손에 쥐고 방을 나선다.

“아들~~”

“네, 엄마.”

“촬영 끝나고 바로 오는 거지?”

“아니요. 미국에 잠깐 들렀다 와야 할 것 같아요.”

“미국?”

“네.”

“작품 때문에?”

“네~~ 차기작 출판과 관련해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거든요.”

“그렇구나. 그럼 오래 걸리니?”

“최소 한 달에서 최대 두 달 정도 예상하고 있어요.”

“어머~ 그렇게나 오래?”

“기왕 간 김에 여행도 좀 하려고요.”

“그래. 알았다. 대신 몸조심해야 해~”

“넵~ 어마마마. 소자! 명심하겠습니다.”

“오빠~~ 내 선물 잊지 마.”

“알았다. 쏴랑하는 동생님아.”

한바탕 인사를 끝낸 후,

두 시간 정도 지나자 선우를 태운 자동차가 공항에 도착했다.

“선우야~”

익숙한 음성에 고개를 돌리자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를 이용해 얼굴을 철통같이 가린 한 여인이 다가왔다. 바로 설연이다.

그가 수많은 광고 중에서 이 광고를 선택한 이유는 설연 때문이었다.

“어~ 왔어?”

“응.”

“일찍 나왔네?”

“혜진이에게 전화했더니 네가 벌써 나갔다고 해서 나도 서둘러 나왔지.”

“아~ 그랬구나.”

선우의 시크한 대답에 설연은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

“쳇~ 못됐어.”

“뭐가?”

“일찍 올 거면 미리 얘기를 했어야지~~”

설연은 선우의 허리를 살짝 꼬집으며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어이~ 여배우께서 왜 이러십니까? 여기 공항이에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뭐가 어때서요? 전 좋기만 한데요?”

“…….”

설연은 늘 이렇게 한결같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S급 배우, S급 스타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우 바라기일 뿐이다.

“우리 차나 한잔하러 갈까?”

“그래~”

아직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곧 한적한 곳으로 이동해 차를 마셨다.

그러는 사이 감독을 비롯한 촬영 스텝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자~ 다들 모이셨네요. 그럼 다 같이 이동합시다.”

이동하자는 감독의 말에 모두 입국장으로 들어갔다.

대한민국 출발, 그리스 아테네 도착, 그곳에서 CF 배경이 될 산토리니로 이동.

총 이동 시간만 따져도 거의 만 하루의 여정이다.

“어머~ 저기 봐.”

“설연이다. 설연!!”

“우와~~ 진짜 예쁘다. 저게 사람이야?”

변장을 했지만 촬영 팀의 등장에 눈치 빠른 몇몇이 설연을 알아본 모양이다.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 기럭지가 장난이 아닌데?”

“설마 애인?”

“에이~ 애인이면 저렇게 대놓고 가겠냐? 촬영 가는 거겠지!”

“하긴 아까 보니 스텝들이 있는 것 같더라~”

“암튼 진짜 예쁘다.”

“그러게.”

사람들의 감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설연과 그의 일행들은 이미 출국장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잠시 후,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비행기가 안정 궤도에 오르자 안전벨트 등이 꺼졌고 사람들은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답답하지 않아? 벗지 그래?”

“그럴까?”

선우와 설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헉!!”

두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스튜어디스의 입에서 짧은 경악성이 터져 나왔지만 직업적 특성 덕인지 그녀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표정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일등석에 탑승한 승객들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웅성웅성!

“저, 저 사람! 그 사람 맞지?”

“맞아. 노벨상 수상자.”

“설연이네?”

“호오~~ 실물이 훨씬 더 예쁘네.”

그러나 이 자리는 일등석, 여기에 탑승한 이들은 나름의 사회적 지위(?)가 있는지 선우와 설연의 모습을 보고도 짐짓 태연한 척했다. 하지만 이들의 태연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설연이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얼굴이 붉게 변한 미모의 여인이 선우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태리 작가님이시죠? 팬이에요.”

선우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냉큼 빈자리에 앉았다.

“정말 팬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여기, 제 아기에게 사인 좀 해줄 수 있으세요?”

“아기요?”

선우는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기는 없다.

“여기, 이쪽에 해주세요.”

여인이 아기라 칭하며 내민 것은 헤르메스 로고가 박힌 백(bag)이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애기들 중에서 가장 예뻐하는 아이예요. 요기에 해주시면 돼요.”

“…….”

선우는 여자들의 마인드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요구한 대로 헤르메스 백에 네임 펜을 이용해 사인했다.

“자, 여기요.”

“네~ 감사해요. 참 그런데…….”

백을 건네받은 여인이 다시 말을 건네 왔다.

“혹시 만나는 여자 있어요?”

“네?”

“저 정도면 어때요?”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는 동시에 선우의 두 눈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선우는 그녀가 지금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하긴 이렇게 대놓고 호감을 표하는데, 모르면 바보다.

“송원 건설이라고 아시죠? 아버지가 대표 이사예요.”

그녀가 상체를 들이밀며 물을 때, 설연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런데요?”

“……?!!”

깜짝 놀란 여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건설 회사 대표가 그쪽 아버지라는 게, 무슨 뜻이죠?”

어느새 나타난 설연이 얼음장과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한데, 거긴 제 자리거든요. 좀 비켜주지 않을래요?”

내 자리에서 나오라는 설연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저년이, 한낱 연예인 주제에……!!’

당장이라도 싸대기를 날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태리 작가가 있는 자리였다.

가슴에 참을 ‘인’ 자를 새긴 그녀는 선우를 향해 눈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명함이에요. 꼭 한번 연락주세요.”

<송원 건설 마케팅 팀장 김혜원>이라 쓰인 명함이 선우의 손에 잡혔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 연락을 못 드릴 것 같네요.”

“……왜죠?”

“제 여자 친구가 싫어할 것 같아서요.”

“여자 친구요?”

김혜원의 반문에 선우는 설연의 얼굴을 바라보며 답했다.

“네.”

“음, 으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우의 미소를 목격하는 순간 거절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괜스레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아니에요.”

그녀는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선우는 창밖을 바라보며 무심한 척, 시크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1일이다.”

* * *

3박 4일 일정의 촬영이 단 하루 만에 끝났다.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과 연기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더 이상의 촬영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스텝진의 판단이었다.

“피곤해~”

“쇼핑 다녀와. 난 좀 더 쉴래.”

“네, 저도 잠이 부족해서요.”

맛있는 음식 No!

그림 같은 풍경도 No!

쇼핑 역시 No! No! No!

두 사람은 이틀 동안 호텔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어?”

“……응.”

“그럼?”

“몰라.”

선우의 난처한(?) 질문에 설연의 양 볼이 순간 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설연은 꽤나 부끄러운 듯 침대에서 일어서려 했으나 선우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난 좋았어.”

“정말?”

“응.”

선우는 설연의 허리를 다시 한 번 끌어안으며 그녀의 입에 키스를 하였다.

“날 좋아해?”

설연이 묻자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아주 오래 전부터 좋아했어.”

“선우야. 사랑해.”

두 사람은 서로를 품에 안았고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

설연은 아쉬운 마음과 설레는 마음을 뒤로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고 선우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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