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9화
79화 <도깨비의 신부>
선우는 <도깨비의 신부>의 드라마 제작을 위해 T&B 엔터를 찾았다.
그동안 다수의 제작사에서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소설의 판권을 원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선우가 제안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차에 T&B의 김일환 대표가 설연과 동혁을 등에 업고 연락을 해왔다.
“그러니까 여주인공 역에 설연을 쓰겠다고요?”
“그래. 네가 허락만 하면!”
김일환 대표의 눈빛이 단숨에 뜨거워졌다.
그 역시 이번 드라마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일모레면 5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솔직히 눈물도 흘렸다.
만들기만 한다면 시청률은 보장된 작품이었다.
“원고료로 회당 1억을 생각하고 있어. 주제가는 동혁이가 부를 거고 말이야.”
“……!!”
회당 1억이라니!
역시 T&B를 이끄는 수장답게 배포가 크다.
현재 가장 잘나가는 드라마 작가의 원고료가 회당 5천만 원 정도인데 그는 가뿐히 그 두 배인 1억을 배팅한 것이다. 하지만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가 쓴 드라마였다. 모르긴 해도 광고 효과 엄청날 것이 분명했다.
‘역시 사업 수완이 뛰어나다니까.’
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캐스팅은 모두 확정된 건가요?”
“아니, 일단 설연만 주인공으로 생각해 본 거야. 작가님께서 승낙을 해주셔야 뭐라도 해보지.”
“원작 그대로 갈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닌데. 일단 원작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 조금 손볼 생각이야.”
“각색을 말씀하시는 거죠?”
“응.”
“작가는요?”
“생각해 놓은 사람이 하나 있긴 한데…….”
“누군데요?”
“최은숙 작가라고 얼마 전에 입봉했는데, 실력이 꽤 좋아.”
‘최은숙 작가님이라고?!!’
최은숙의 이름이 나오자 선우의 눈이 순간적으로 두 배 정도는 커졌다.
그녀는 선우가 기억하는 원 역사에서 <숙녀의 품격>, <베를린의 연인>, <비밀의 정원> 등 수많은 히트 드라마를 쓴 작가였기 때문이다.
‘2004년에 방영한 드라마 <베를린의 연인>으로 일약 히트 작가가 되었지.’
소설 <도깨비의 신부> 역시 최은숙 작가의 드라마에서 얻은 플롯에 선우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각색하는 작가가 신인이라 마음에 안 들어?”
김일환 대표는 아무런 말이 없는 선우를 보며 반응이 미지근하다고 오해했다.
“혹시 생각해 놓은 작가가 있어? 그럼 말만 해. 최은숙 작가는 다음에 하면 돼.”
“아, 아니에요. 최은숙 작가님으로 가요. 그분이 좋을 것 같네요.”
“정말?”
“네, 우리 김 대표님 안목이야 자타가 공인하잖아요.”
선우의 칭찬에 김일환 대표가 함박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그건 그렇지. 역시 선우가 뭘 좀 아는구나. 좋아. 그럼 바로 미팅 잡는다.”
“네, 그렇게 하세요.”
김일환 대표는 밖으로 나가려다 뭔가 중요한 것을 빠뜨린 사람처럼 급하게 돌아왔다.
“아, 참! 선우야!!”
“네, 대표님.”
“부탁이 하나 있었는데, 까먹고 그냥 갈 뻔했다.”
“부탁이요? 그게 뭔데요?”
“사인 좀 해줘~”
“사인이요?”
“응.”
그는 가방에서 선우가 쓴 소설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떡 본 김에 제사도 지낸다고~ 사진도 몇 장 찍자. 이 자식들이 내가 너랑 친하다고 했는데, 당최 믿질 않아. 부탁 좀 할게.”
“그분들이 누군데요?”
“사모임 친구들.”
“혹시 최대주주?”
“어, 어떻게 알았어?”
“모임 이름이 재밌어서 기억에 남았어요. 최대주주라는 말이 술을 최대로 마시자는 뜻이라면서요?”
“…….”
남자들끼리 모이면 나이가 있어도 애들처럼 논다.
그로부터 며칠 후,
선우는 방송국을 찾았다.
<도깨비의 신부>의 첫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선우야.”
방송국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동혁의 음성이 선우의 귓가에 들려왔다.
“응?”
그런데 동혁은 혼자가 아니었다.
인기 절정의 걸 그룹 멤버들이 동혁의 곁에 서있었다.
“선우야, 인사해. 여기는 노노걸스의 송아, 여기는 식스나인의 민정 그리고 여기는 블루벨벳의 가인이야.”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송아를 비롯해 탐스러운 머리에 윤기가 흐르는 민정과 마치 눈처럼 하얀 피부에 귀여운 외모를 지닌 가인이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오빠.”
‘이, 이 사람…… 대체 뭐지?’
“꺄악~~ 오빠. 저 오빠 팬이에요.”
‘호오! 예상은 했지만 이건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멋있잖아?’
외출 모드로 변신했지만 그렇다고 선우가 가지고 있는 오라를 감출 순 없었다.
“노벨상 수상하신 것 축하드려요.”
“저도요. 오빠.”
“그리고 너무 반가워서 그런데요. 여기에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앙~~ 저도요.”
“전 사진이요. 저랑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오빠~~”
눈앞에 있는 남자는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태리 작가다. 게다가 직접 본 그는 아주 매력적인 수컷이었다.
동혁의 소개를 통해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나 한번 나누자던 처음의 취지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지 오래고 선우를 쟁취하기 위한 여인들의 보이지 않는 기 싸움만 남았다.
‘……이거 왠지 좀 위험한데.’
선우의 본모습(?)을 알고 있던 동혁은 여자들의 이런 반응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도 이럴진대, 자칫 선우의 온전한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블루벨벳의 가인이잖아?”
“앗! 송아와 민정도 있어. 그런데 저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
서로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주변의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수 안동혁이네. 그런데 다른 하나는 누구지?”
“그러게, 신인 배운가? 분위기 쩌는데~~”
“어…… 헉!!! 최, 최선우다.”
“최선우? 그게 누군데?”
“이태리 작가!”
“이태리 작가? 노벨상?!!”
“그래. 이태리 작가의 본명이 최선우잖아.”
누군가 선우를 알아본 모양이다.
곧이어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이 선우를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선우는 이런 반응에 이미 면역이 되어 있었다. 오히려 다른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어느 순간부터 그의 곁에 껌 딱지처럼 달라붙은 여인들이었다.
‘얘들아! 내가 찍었다. 넘보지 마라.’
‘언니, 포기하시죠. 언니 실제 나이가 26이잖아요. 선우 오빠는 이제 20살이라고요.’
‘두 분 다 그만하세요. 외모로 보나 나이로 보나 선우 오빠의 짝은 저랍니다.’
그녀들은 마치 경쟁하듯 선우 옆에 달라붙어 있었는데, 저 멀리 암사자의 기운을 풀풀 풍기며 다가오고 있는 설연의 존재를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 *
-그렇게 천 년을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세상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허락을 구해본다.
-그랬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정체를 숨기고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신은 질문을 던진다. 해답은 너희들이 찾아라.
<도깨비의 신부> 티저(teaser)가 공개되자 TV는 물론 주요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다시피 점령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이태리 작가의 소설을 드라마로 만나다.]
[화제의 드라마 도깨비의 신부.]
[도깨비와 저승사자 그 주옥같은 명대사의 열전.]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우가 촬영장을 찾았다.
“밥 차 왔습니다. 다들 식사하세요.”
밥 차가 왔다는 FD의 외침에 촬영장이 순간 활기를 띤다.
“오늘은 누가 쏜 거야?”
“작가님이 쏘셨어요.”
“최은숙 작가님?”
“아뇨, 남자분이던데요?”
“남자?”
“네,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더니 작가라고 하셨어요.”
‘남자 작가?’
FD의 말에 이인학 PD의 표정이 180도로 변했다.
‘서, 설마 이태리 작가님?!!’
이인학 PD는 FD에게 다급히 물었다.
“그분 지금 어디 계셔?”
“네?”
“작가라고 하신 분 말이야. 그분 지금 어딨어?”
“어?!! 좀 전까지 저쪽에 계셨는데…… 지금은 안 보이네요.”
먹이를 찾는 독수리의 눈처럼 이리저리 사방을 살펴보았지만 선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화가 난 이인학 PD가 FD의 정강이를 그대로 찼다.
-퍽!
“악!”
“야! 이 멍청아! 작가님이 오셨으면 바로 내게 모시고 왔어야지.”
“네?”
“아이고! 이런 멍청한 새끼!! 넌 인마, 이태리 작가님도 모르냐?”
“이, 이태리 작가님이요?”
“그래. 이 바보야.”
이인학 PD는 FD를 향해 바보라고 소리친 후, 이태리 작가를 찾기 위해 촬영장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이와 같은 시각,
촬영장 근처 외진 곳에서 두 남자가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야! 인마. 너 제대로 안 할래? 너 땜에 NG가 몇 번이나 났는지 알아?”
“죄송합니다. 반장님.”
“시끄러. 너 같은 새끼 필요 없으니까. 당장 꺼져.”
“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반장님.”
“쓸모없는 새끼. 얼굴만 반반하면 다냐? 내가 너 같은 새끼들 땜에 얼마나 욕을 먹는지 알아?”
-털썩!
보조 출연자 원석은 촬영 반장의 거친 욕설에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반장님.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보조 출연자 원석은 억울했지만 절대 내색지 않았다.
그토록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아니었던가?
입학금을 모으려면 아직 한참이나 부족했다. 지금은 참아야 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NG 역시 뒤에 있던 그가 원석을 밀쳐 난 것이었다.
“후우!”
촬영 반장 오진규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이 새끼야. 조연출이 잘 봤다고 내 앞에서 나대지 마라. 그러다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알겠냐?”
“네. 죄송합니다……. 반장님.”
오진규 반장은 원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잘생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조연출의 눈에 띄어 앞자리로 이동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촬영을 방해했다.
“이번 한 번만 봐준다. 앞으로 두고 볼 거야. 알았어?”
“네, 반장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됐어, 새끼야.”
이때, 밥 먹으라는 소리가 반대쪽에서 들려온다.
“다들 식사하세요.”
“먼저 가. 마저 피우고 갈 테니까.”
“네, 반장님.”
원석은 오진규 반장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이내 걸음을 옮겼다.
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밥 차.
이미 다수의 사람들이 음식을 챙겨가 생각보다 줄이 길지 않았다.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원석 역시 밥 차로 다가왔다.
밥 차 아주머니의 시선이 원석에게 꽂혔다. TV에서 본 적은 없었지만 왠지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잘생긴 청년이었다.
“어머~ 남자 배우?”
“아니에요. 엑스트라입니다.”
“아고~ 엑스트라면 어때? 아주 잘생겼네. 호호호호! 스타 되겠어.”
“정말요?”
“그럼~ 내가 밥 차 경력이 얼만데, 스타가 될 상이야.”
“하하하.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자~ 이거 받아.”
“감사합니다.”
마침 선우는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잠시 밥 차 내부에 앉아 있었는데, 아주머니의 호들갑(?)에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원석이?!”
선우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원석이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선우의 뇌리 속에 문득 과거의 기억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밀려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