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6화
76화 대학에 미련 없다
“이거 보여?”
“헉!!”
녹음기를 보여 주자 그의 얼굴에 낭패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가 그렇게 당황하는 사이 선우의 저주 마법이 그를 덮쳤고 행여 소리가 새어나갈까, 침묵 마법이 연달아 이어졌다.
‘……사일런스(Silence).’
순간 창자가 꼬이는 통증에 주 교수가 몸을 수그렸고 선우는 묘한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대 총장실]
한식집을 나온 선우는 그 즉시 한국대 총장실 찾아가 독대를 요청했다.
그가 만약 일개 학생이었다면 턱도 없는 얘기겠지만 <태리 포터>의 작가라는 명성으로 인해 독대는 의외로 쉽게 이루어졌다. 마침 진주오 총장도 자리에 있었고 말이다.
“오! 선우 군.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총장님.”
“날 보자고 했다고요? 그래. 무슨 일입니까?”
-스윽!
선우는 진 총장에게 녹음기를 내밀었다.
“이게 뭐죠?”
“일단 들어보고 말씀 나누시죠.”
“…….”
진 총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학교의 명예와도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우 군의 성적은 정정될 겁니다.”
“……그것뿐입니까?”
“주영호 교수는 잠깐 쉬는 걸로 하죠.”
“잠깐 쉰다고요?”
“네.”
범죄를 제의한 자를 해임하거나 파면하지 않고 잠시 쉬게 한다고?
지금 안식년을 보내자는 말인가?
“주 교수가 공저자로 올려달라는 제의를 하긴 했지만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선우는 진 총장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 가닥 남은 정마저 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됐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죠.”
“선우 군. 선우 군!”
시원섭섭한 감정이 교차했지만 막상 결정을 내리자 아주 홀가분했다.
선우는 그 길로 교학과에 들려 자퇴(自退) 신청서를 작성했다.
“야! 야! 빅뉴스.”
“최선우 자퇴했대.”
“최선우? 이태리 작가?”
“응.”
“왜?”
“그건 모르지. 조금 전에 교학과에 자퇴서 내고 갔대.”
선우가 자퇴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은 한동안 국문과 전체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날 저녁 부모님께 자퇴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다.
“선우야, 꼭 자퇴를 해야겠니? 휴학하면 안 돼?”
자초지종을 들은 규용은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수연은 한국대라는 학벌에 미련이 있는 모양이다.
“조금 쉬었다가 너 마음이 괜찮아지면 그때 다시 가면 되지 않을까?”
“죄송해요. 엄마.”
선우의 단호한 모습에 수연은 아들의 결정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 * *
‘좋아. 이제부터 시작해볼까?’
학교에 미련은 없지만 저 재수 없는 교수 새끼는 그냥 놔둘 수 없다.
선우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고급 호텔이 즐비한 강남구의 고급 호텔.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아랍인의 모습으로 변한 선우는 호텔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마치 호텔에 투숙하고 있는 손님처럼 말이다.
-띵!
23층에 도착한 선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심장을 중심으로 마나가 움직이자 어디선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사삭!
바퀴벌레를 본 선우가 반색을 했다.
그 벌레는 주영호 교수의 연구실에 살고 있던 바퀴벌레였기 때문이다.
‘잘 있었니?’
‘…….’
패밀리어 마법을 걸어놓은 덕에 바퀴벌레의 눈을 통해 선우는 주 교수의 위치를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동안 수고했다.’
선우가 패밀리어 마법을 해제하자 바퀴벌레는 금세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도 본능이 이끄는 곳으로 움직였으리라.
선우는 2304호 앞으로 다가가 수인을 맺었다.
곧 미세한 전류가 그의 손에 흐르기 시작하자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선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오빠~!”
“소라야!!”
벌거벗은 남녀는 뭔가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선우가 방에 들어왔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
다음 순간,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흑마법이 선우의 손에서 펼쳐지자 두 사람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꿈틀!
그리고 두 사람은 환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국대가 발칵 뒤집어졌다.
누군가가 학교 인트라넷에 올린 하나의 영상 때문이다.
5분 남짓한 영상이지만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게 대체……!!”
인트라넷 담당자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영상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최 교수, 자네 혹시 들었나?”
“네, 뭘요?”
안 그래도 분위기가 이상해서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아직 모르나 보군.”
최민용 교수는 영문을 몰라 그 큰 눈만 껌벅거렸다.
“며칠 전, 학교 인트라넷에 영상 한 편이 올라왔어.”
“영상?”
“그래. 근데 그 영상이 말이야…….”
동료 교수의 말에 그는 너무나 놀라 들고 있던 커피를 떨어뜨릴 뻔했다.
“주영호 교수가요?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그럼 주 교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뭘 어떻게 돼? 완전 병신 된 거지.”
이렇게 한국대가 술렁이고 있을 무렵,
스웨덴에서 날아온 한 가지 소식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바로 이태리 작가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이다.
원칙적으로 노벨 문학상은 후보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후보자들의 이름이 공개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시아 작가로는 유일하게 이태리 작가의 이름이 올라간 것이다.
그것도 수상이 유력하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말이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이태리 작가가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영국 도박사들은 이태리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높게…….
-후보에 오른 것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이와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언론이 들끓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만약 이태리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이는 한국인 최초 수상인 동시에 키플링이 가지고 있는 세계 최연소 노벨 문학상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세계 최연소 노벨 문학상은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한 영국의 러디어드 키플링(1865~1936)이 42세의 나이에 수상하였다.
각설하고 최초와 최연소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였다.
-이야! 진심 대박.
-이러다 진짜 노벨 문학상 받는 거 아니에요?
-오빠 멋져요.
↳이년아! 내 오빠거든.
↳얘들아. 내 남편이야.
↳위의 분, 닥치세요.
-오현국 선생님이 먼저 받으셔야 하는데…….
↳그 할배 얘긴 하지 맙시다.
↳의혹이 많은 분입니다.
-IMF 졸업에 이어 좋은 소식을 기대해 봅니다.
↳동감이요.
↳21세기 대문호. 이태리 작가를 응원합니다.
↳이태리 작가, 파이팅~
-최선우! 미리 축하할게.(SY)
↳최선우가 누구죠?
↳이태리 작가 본명이잖아요.
↳아!!!
이태리 작가의 기사에 엄청난 숫자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이태리 작가의 수상을 응원하고 기원하는 글이다.
한편 선우의 소식을 접한 한국대 진주오 총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런 경우를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주 교수를 자르고 선우 군을 붙잡아야 했어.”
선우가 자퇴한 일과 주영호 교수의 섹스 비디오 사건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이번엔 그에 더해 아주 똥물을 뒤집어쓰게 생겼다.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해진 그는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각,
오현국 선생이 화를 참지 못해 탁자를 내리쳤다.
그동안 자택에서 칩거하며 절치부심(切齒腐心)한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쾅!
“그 버릇없는 애송이가, 노벨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고, 고정하십시오. 선생님.”
“아직 후보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어디 노벨 문학상이 쉬운 상입니까? 100% 떨어집니다. 그러니 진정하십시오.”
“윤 작가 말이 맞습니다. 선생님.”
제자들의 만류에도 오현국 선생의 심사는 꽤나 복잡했다.
이때, 한 통의 전화가 그에게 걸려왔다.
한국대 주영호 교수, 아니 이제는 교수가 아니게 된 자의 전화였다.
두 사람의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으드드득!!
오현국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준 그 애송이가 한국 최초이자 세계 최연소로 노벨상을 받는다는 생각만 해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굳어진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윤 작가.”
“네, 선생님.”
“편지를 써야겠네.”
“편지요?”
“그래.”
오현국 선생은 펜을 들었다.
-친애하는 노벨 문학상 심사 위원님들께.
저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위원님들께 이번 노벨 문학상 후보…….
그는 이태리 작가의 대필 의혹(이미 인터넷 생중계로 이태리 작가의 필력이 검증되었지만 검증되기 이전에 한국 언론에서 제기되었던 각종 기사를 스크랩하여 편지에 동봉했다.)에 대해 말하는 한편 이태리 작가의 아버지가 초록별 출판사의 사장이라는 사실을 무슨 대단한 사실인 것처럼 썼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편지가 우편을 통해 스웨덴 한림원 측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선우의 귀에도 이 같은 소식이 전달되었다.
“칩거(蟄居)하며 자중(自重)하는 모습을 보여 가만히 놔뒀더니. 쯧쯧쯧!”
매섭게 변한 눈빛과 함께 선우는 수화기를 들었다.
“Hello. It is Sunwoo-Choi writer. As a regular member of Royal Academy of Sciences, I’m Baron of the United Kingdom.”
(안녕하세요. 최선우 작가입니다. 영국 왕립 학술원의 정회원이자 대영제국의 남작이죠.)
그가 전화를 건 곳은 영국 대사관이었다.
* * *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국장님.”
“그래. 케이(K). 여전히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군.”
“뭐, 직업병이죠.”
M16의 도로시 국장은 케이에게 차를 따르며 말했다.
“우선 앉지. 차부터 한잔하게나.”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태리 작가의 글 솜씨가 대단하다고 들었지만 여왕 폐하까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니 의외네요.”
케이의 말에 도로시 국장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이태리 작가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야. 엄청난 부자지.”
“부자요? 작가가요?”
“자네 이라는 투자회사의 이름을 들어봤나?”
“정보부에 근무하는 사람치고 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더욱이 영국계 자본인데~”
“거기 대주주야.”
“네?”
“이태리 작가가 의 대주주라고!”
도로시 국장의 말에 케이는 화들짝 놀랐다.
“그가 의 주인이라고요?”
“그래.”
‘어쩌면 그가 베일에 숨겨져 있는 의 오너(owner)일 수도 있지만 말이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기에 도로시 국장은 뒷말을 숨겼다.
“우리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어. 아주 똑똑해. 의 주식 3%를 영국 왕실에 헌납했더군.”
국장은 케이에게 [Top Secret]이라 적힌 서류철을 건넸고 잠시 후, 내용을 확인한 케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알겠나?”
“네. 국장님.”
“좋아. 그럼 이제 자네가 해야 할 일도 알겠지?”
“물론이죠.”
만약 선우가 단순한 한국인이었다면 M16에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그런데 상황이 참으로 재미있었다.
선우가 대영제국의 작위를 받은 귀족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고로 그는 한국인이지만 동시에 영국인이기도 했다.
“케이. 우리 대영제국의 남작께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지셨네. 어서 스웨덴으로 날아가 해결하게.”
“알겠습니다. 제대로 해결하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