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4화
74화 대학 생활
선우가 학교에 나오는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남학생들의 눈이 호강하는 날이다.
그 이유는 국문과 건물 주변으로 나름 한미모 한다는 학생들이 죄다 몰려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날씨마저 따뜻해진 탓에 눈이 풀린(?) 남학생들의 모습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는 괴담(?)마저 돌기도 했다.
-꿀꺽!
“아휴, 저질.”
“저것들이…….”
“쳇! 꼴에 남자라고 보는 눈은 있네.”
여학생들은 그들의 몸매를 슬쩍슬쩍 흘겨보고 있는 남자들을 향해 단 1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녀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백마 탄 작가님을 찾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학교에 오셨나?”
“전공 수업이 있는 날이니까 당연히 왔겠지.”
“호호호~ 이번엔 꼭 전화번호 따야지.”
친구의 말에 다른 여학생의 눈꼬리가 확하고 올라갔다.
“얘들아. 김칫국 마시지 마라. 내 남편이다.”
“호호호. 지랄이 아주 풍년이네요.”
이와 같은 시각,
선우는 교내 도서관 뒤편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곳은 수풀이 우거져 있고 외져 학생들의 인적이 드문 곳이다.
선우는 그의 동선(動線)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새롭게 이 공간을 찾았다.
“와우! 대박!”
“왜?”
-소곤소곤!
“진짜?”
“그래. X발! 흐흐흐흐. 규태야. 가자. 오늘 형이 3차까지 쏜다. 가자.”
“와우~ 콜.”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남학생 두 명이 희희낙락하며 지나갔다.
선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벤치에 앉았다.
마침 한 줄기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선우는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자판기에서 구입한 탄산음료를 꺼냈다.
-달칵!
목 줄기를 넘어가는 탄산의 알싸한 느낌을 음미하고 있을 무렵 여학생 한 명이 허둥지둥하며 나타났다.
선우는 말없이 그녀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뭘 하려는 거지?’
변장을 한 덕에 여학생은 선우를 몰라봤지만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그녀는 선우에게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꽤나 당황해하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얼굴이 낯이 익다.
‘윤가인?!’
윤가인, 한국대 출신 여배우로 뛰어난 외모에 연기력까지 겸비해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는 배우다. 친구와 함께 우연히 출연한 한 편의 드라마로 그녀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데, 한때 금수저 논란이 있었지만 스타가 되기 전 어려웠던 집안 사정이 밝혀지면서 논란에서 벗어났다. 과거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사정으로 인해 휴학도 했다고 들었다.
“저…… 저기……요…….”
“네?”
“죄송합니다만 혹시 이 근처에서 봉투를 못 보셨나요?”
“봉투요?”
“네. 하얀색 봉투요.”
뭔가 절박함이 가득한 표정이다.
문득 아까 지나간 남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상황이 그려졌다.
혹시 윤가인이 이 근처에서 봉투를 잊어버렸고 그 남학생이 봉투를 주운 게 아닐까?
“혹시 돈이 들어 있었나요?”
“……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이다.
‘쩝.’
이걸 어쩌나?
돈 봉투를 주운 학생들은 이미 교문을 벗어났을 것이다.
-학비를 벌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한번은 돈 봉투를 잃어버려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해야 했죠.
과거 토크쇼에 나와 그녀가 휴학을 하게 되었던 일화에 대해 얘기한 것이 생각났다.
“저쪽은 찾아 보셨나요?”
“아, 아니요.”
“그럼 같이 찾아보죠. 전 저쪽을 살펴볼게요.”
“……네? 네…… 가, 감사합니다.”
선우는 그녀의 대답이 나오기 전에 벤치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윤가인은 선우의 행동에 허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선우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봉투가 있을 리 없지.’
선우는 주변을 살피는 척하며 누군가에게 은밀히 문자를 넣었다.
‘얼마면 될까? 한 1,000만 원 정도면 되겠지?’
[민국은행 봉투에 1,000만 원 넣어서 도서관 뒤로 와주세요.]
그녀가 잃어버린 돈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지 몰랐지만 애당초 상관없는 일이다.
그저 인연이 닿았을 뿐이고 그로 인해 도움을 줄 뿐이다.
한편 윤가인의 표정에는 조바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도착했습니다. 작가님.]
문자가 왔다.
[네. 확인했습니다. 제게 가까이 오지 마시고 지금 서 계신 곳 나무 밑에 봉투를 놓고 가세요.]
[나무 밑이요?]
[네. 봉투를 거기에 놓고 나뭇잎으로 덮어주세요. 그리고 가시면 됩니다.]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나타났지만 그대로 따랐다.
[네. 알겠습니다.]
남자는 선우가 지정한 곳에 돈 봉투를 슬그머니 덮어 놓고 사라졌다.
사실 선우가 가지고 있는 재력이라면 그녀를 도와줄 방법이 많이 있다. 제일 간편한 방법은 그냥 돈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일 수 있다. 예의 없는 행동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학생이지 돈을 갈구하는 거지가 아니었다.
“여기요.”
선우는 큰 소리로 윤가인을 불렀다.
“봉투 찾았어요.”
선우가 하얀 봉투를 흔들어 보이자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선우를 바라보았다.
“제가 수업에 늦어서요. 여기에 두고 갈게요.”
“저, 저기요.”
선우는 벤치 위에 봉투를 올려놓은 다음 그녀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저기요. 잠시만요.”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선우를 불렀지만 선우는 이미 한참 멀어진 상황이다.
잠시 후,
봉투를 확인한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선우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 * *
국문과 전체가 강촌으로 MT를 떠났다.
평소라면 1학년 신입생을 제외하고 많은 학생들이 불참했겠지만 이번 MT는 단 한 명의 불참자도 없다.
선우가 참석한다는 소식 때문이다.
“선우다.”
“선우가 왔다.”
선우의 모습을 확인한 학생들이 쪼르르 달려갔다.
“꺄아아아~ 너무 멋져!”
“저 가슴에 안기고 싶다.”
“나도, 나도~~”
잡기만 한다면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백마 탄 작가님의 등장에 여학생들은, 심지어 애인이 있는 학생들조차 저마다의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강촌으로 향했다.
“……휘유!”
이 같은 모습에 2학년 영섭이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그 흔한 질투심조차 생기지 않았다.
이건 뭐 비교조차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한편 여학생들은 선우의 간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선우야 뭐해?”
“응?”
“일찍 나오느라 아침 안 먹었지? 여기~ 내가 도시락 싸왔는데, 한번 먹어볼래?”
“…….”
-수군수군!
“어머, 용미. 저 계집애 좀 봐.”
“그러게. 감히 선우를 독차지하려고 하다니. 아우! 재수 없어.”
주위에서 쏟아지는 시선들.
선수를 뺏긴 여학생들은 용미를 향해 강한 적대감을 보였는데, 재밌는 사실은 곧이어 대다수의 여학생들이 용미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선우에게 달라붙었다는 점이다.
“신난다. 재미난다. 더 게임 오브 데스.”
“눈치 게임, 일!”
“이, 삼. 사…….”
“3, 6, 9, 369. 아~~싸! 369!”
다양한 게임이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가운데 남학생, 특히 복학생 선배들을 중심으로 은밀한 모의가 이루어졌다.
‘야! 복학생들 전부 이리 와 봐.’
‘모태 솔로에서 탈출하려면 선우부터 재워야 해.’
이들의 목적은 조금이라도 빨리 선우를 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선우가 술에 취해 잠이 들어야 자신들이 마음에 드는 여학생들에게 접근해 작업을 걸 수 있을 것 아닌가!
“선우야.”
“네, 선배님.”
“형 잔 한번 받아라.”
“네.”
“반갑다. 선우야, 여기 내 잔도 한잔 받아.”
“여기도 있어.”
3, 4학년 복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선우를 상대했다.
소주와 맥주 가끔은 소맥을 섞은 폭탄주 수십 잔이 선우를 덮쳤다.
‘이 새끼, 대체…… 뭐야?’
‘적어도 소맥 30잔은 먹었을 텐데, 이게 가능해?’
‘최선우. 네가 정녕 인간이냐?’
선우는 취기가 오른다 싶으면 화장실을 한 번씩 다녀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인을 잡고 알코올을 날려버렸다.
그러니 저들이 이길 수가 없었다.
‘젠장! 술로도 이길 수 없다니!’
‘죄송해요. 선배, 저부터 쓰러져요.’
선우에게 술을 권했던 대다수가 먼저 꼬꾸라졌다.
“오빠~ 저랑 한잔해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신입생 동기가 술잔을 건넸다.
“우리 동기잖아. 왜 오빠라고 해?”
“아~~ 제가 7살에 학교를 들어가서요. 앞으로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배시시 웃으며 은근슬쩍 자신이 동생임을 강조한다.
이때, 3학년 신소라가 대화에 참여했다.
“이봐! 거기 신입생. 너 현역이지?”
“……네.”
“동기면 똑같은 동기지 동기에게 오빠가 뭐니! 너 하나 땜에 족보 꼬일 일 있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선우랑 친구해. 알겠니?”
“……네. 언니.”
신소라의 오라에 신입생 이다혜는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선우야.”
“네, 선배님.”
“내 잔도 한잔 받아~”
“네.”
신소라는 일반적인 선배와 다르다.
다른 선배들은 선우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서인지 후배임에도 불구하고 늘 어려워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선우를 늘 평범한(?) 후배로 대해주었다.
그런 편안함 덕에 선우는 그녀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 생활은 그가 기대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과거 일반적인 대학생이었을 당시의 위치와 지금의 위치를 비교해보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계에서 온갖 호사를 누려본 경험으로 선우는 우쭐거리지 않았다.
“흐음! 소라 선배나 보러 가볼까?”
수업이 없는 날이지만 마침 한국대 주변에 볼일이 있어서 나왔다가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났다.
선우가 과 사무실 문 밖에 도착했을 무렵,
익숙한 여인들의 작디작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이것은 마법적인 역량이 아닌,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 향상된 그의 신체적 능력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다.
“자! 받아.”
“이게 뭐야?”
“뭐긴~ 어제 수고비지.”
“호호호~ 그래. 땡큐.”
‘수고비?’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선우는 수고비라는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춰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근데 소라야, 정말로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
“당연하지. 넌 아직 모르겠니?”
신소라의 자신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선우는 존재 자체가 특별해. 너무나 특별해서 모든 사람들이 걔를 특별하게 대할 수밖에 없어. 날고 긴다는 교수님들조차 어쩔 줄 모르잖아.”
“그건 그렇지.”
“만약 선우가 여자애들에게 사귀자고 해봐, 당장 가랑이부터 벌리고 달려들걸.”
“어머머~ 얘!! 가랑이부터 벌린다니~~ 호호호! 그건 좀 심했다.”
“뭐가 심해? 좋다고 달려들 거야. 분명해.”
두 사람의 대화에 선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긴 선우라면 공인된 로또지.”
“그래. 그러니까 지금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접근해야 해. 선배로서의 적당한 관심은 괜찮지만 절대로 걔를 특별하게 대하면 안 되는 거야.”
“알았어. 난 그냥 네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잖아.”
“그래. 넌 지금처럼만 하면 돼.”
두 여자의 말이 계속 이어졌고 선우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경청했다.
신소라는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혹은 반반한 여학생이 나타나면 어떻게든 해코지를 했다. 일부러 그녀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소문을 냈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라며 불러내 술에 취하게 만들기도 했다.
더 이상 들어보지 않아도 비디오였다.
선우는 혀를 쯧쯧 찼다.
‘저런 개X로 X년을 봤나.’
역시 세상은 넓고 나쁜 년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