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73화 (73/187)

◈ 제 73화

73화 이태리 작가, 대학에 가다

“혜진아, 여기~”

“오빠~~ 고마워. 호호호~~”

“아들~ 혜진이 것 끝나면 이웃들에게 드릴 책에도 사인 좀 해줘.”

“이웃들이요? 책 선물하시게요?”

“그래. 유명한 아드님 덕에 그동안 이웃분들이 피해를 보셨잖니~ 이번 기회에 점수 좀 따자.”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엄마 말이 맞아요.”

역시 부모는 다르다.

선우가 생각지 못한 것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잠시 후,

수연은 이웃집 초인종을 눌렀다.

“어머~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희 집 때문에 불편하시죠? 죄송합니다.”

“불편이라뇨. 아닙니다. 선우가 우리 이웃이라는 게 오히려 자랑이죠. 게다가 이번 수능에서 만점을 받았다면서요? 하하하! 정말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선우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이에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배가 아프다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할 때나 가능한 것이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면 그저 부러워하며 우러러볼 뿐이다.

선우와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가진 이웃들은 그들의 자녀와 선우를 비교하지 않았다. 선우는 이미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고 있는데 선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링!

“아침부터 무슨 문자야?”

“……학교에서 왔네요.”

“학교?”

“네.”

-오늘 저녁 6시, 신림동 주점 동막골에서 국문과 전체 모임, 대면식이 있습니다. 필히 참석해주세요. 학회장 신소라

“저녁에 대면식이 있다고 문자가 왔네요.”

“대면식?”

“네.”

“오! 그럼 참석해야지. 앞으로 개강 파티를 비롯해서 미팅, 소개팅이 줄줄이 있을 거야.”

규용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특히 미팅은 대학 생활의 꽃이니까, 절대 빠지지 마. 아들.”

“그래~ 엄마도 아빠 말에 동의해. 글 쓰는 것도 좋지만 엄만 우리 아들이 대학 생활을 맘껏 즐겼으면 좋겠어. 한 번뿐인 시간이니까~”

‘……전 두 번짼데요?’

규용과 수연은 너무나 일찍 부와 명예를 거머쥔 아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대학 생활의 낭만을 경험하길 원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선우가 이미 대학 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식사를 마친 선우가 탁자에서 일어나자 혜진이 그의 옷자락을 슬그머니 잡는다.

‘오빠.’

‘응, 왜?’

‘헤헤! 알면서~’

‘아~~!!’

생각해보니 용돈이 떨어질 타이밍이다.

‘잠시만.’

‘어, 알았어.’

선우는 자신의 소설에 만 원짜리 지폐 다섯 장을 넣고 혜진에게 건넸다.

“혜진아. 친구 준다고 했지? 사인했다.”

“오라버니~ 감사하옵니다.”

“오냐~~!”

그날 오후,

선우는 대면식이 열리는 신림동 먹자골목에 도착했다.

“좋을 때다.”

취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개강의 여파인가?

벌써부터 이리저리 몸을 비틀거리는 청춘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누군가는 저들의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고3이라는 긴 터널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기 시작한 청춘들이었다.

옛날 생각에 은근히 미소가 서렸다.

“저긴가?”

동막골이라는 이름의 주점이 선우의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이들의 시끌벅적한 기운이 느껴졌다.

“국문과, 신입생?”

“네.”

“……신입생이 조금 늦었네?”

게슴츠레 눈을 뜨며 마치 ‘너 왜 늦었어?’라고 핀잔을 주는 것 같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흐음~ 사과했으니 일단 받아줄게. 반가워. 난 3학년 신소라야. 신입생들 자리는 저쪽이니까 그쪽으로 가면 돼.”

“네. 선배님.”

3학년 신소라는 하얀 얼굴에 청순해 보이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술을 마셨음인가?

붉게 물든 볼이 주점의 조명을 받아 꽤나 요염한 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한편 선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신소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지?”

앞머리를 내려 얼굴의 삼분지 이를 가리고 뿔테 안경까지 착용했다.

더욱이 주점의 어두운 조명이 의도치 않은 도움을 줬다.

어느 누구도 선우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신입생?”

“응.”

“오오~ 동기야. 반갑다.”

“그래. 나도 반갑다.”

“일단 잔부터 채워.”

“그래.”

탁자 위에 맥주와 소주 그리고 막걸리가 이리저리 오고 간다.

특히 국문과 선배들이 신입생들 사이에서 술잔을 들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야! 근데 너희들 소식 들었냐?”

“무슨 소식?”

“우리 과에 이태리 작가가 들어왔다던데?”

“뭐! 진짜?”

“응. 조교 누나가 그랬어.”

“우와!! 대박이다.”

이태리 작가가 누구냐?

한국이 낳은 최고의 소설가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들 중의 한 사람이다.

주점에 모인 국문과 학생들은 그런 작가가 자신의 동기 혹은 후배가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고~ 우리 교수님들 이제 큰일 났다.”

“왜?”

“이태리 작가가 신입생이라잖아.”

“근데, 그게 왜?”

“바보야. 너라면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작가를 가르칠 수 있겠냐?”

“아! 듣고 보니 그러네.”

“야! 야! 니들 입 조심해. 그러다 교수님 듣는다.”

공교롭게도 주점 입구에서 깐깐한 인상의 한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다음은 신입생들의 소개가 있겠습니다. 거기! 체크 남방.”

“네.”

“너 이름이 뭐니?”

“윤동은입니다.”

“그래. 동은아. 너부터 해.”

“네.”

국문과 학회장의 말에 윤동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00학번 윤동은입니다. 81년생입니다. 집은 서울이고…….”

“조재혁입니다. 재수했습니다. 집은 인천이고…… 한국대 국문과에 입학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병아리들의 파닥파닥거리는 날갯짓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3학년 윤가영이 동기인 신소라에게 조용히 물었다.

“소라야. 이태리 작가님은 오늘 안 와?”

“……잘 모르겠네. 문자는 했는데, 답은 못 받았어.”

“그래? 하긴 바쁘시겠지.”

그때였다.

몇몇 선배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선우라고 합니다. 이번에 한국대 국문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집은 서울이고…….”

“최선우?”

“설마?”

-웅성웅성!!

“아……!!”

“꺄악!”

누군가의 비명성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아무리 변장을 했다고 하지만 저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탄로 나지 않을 수 없다.

선우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신입생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딸꾹질을 토해내기도 했다.

“쟤가 이태리 작가야?”

“응. 최선우가 본명이잖아.”

“대박! 이게 꿈이야 생시야? 머리카락을 내려서 몰라봤어.”

“그러게. 나도 몰라봤어.”

이때, 상석에 앉아있던 주영호 교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허허허, 이것 참 영광이군. 명성이 자자한 작가님께서 몸소 대면식에 나와 주고 말이야.”

진심이 담긴 인사일까? 아님 비꼬는 말일까?

그는 한쪽 입꼬리를 들며 피식거렸다.

“암튼 반갑네.”

선우를 향해 손을 내미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지만 그의 눈빛 깊숙한 곳에는 뭔가 탐탁지 않은 빛이 숨어 있었다.

‘눈빛이 깨끗하지 못해. 속과 겉이 다른 남자군.’

그러고 보니 주영호 교수와는 이미 악연으로 엮여 있었다.

생방송 사건. 선우에게 대필 의혹을 제기한 사람 중에 분명 주영호라는 이름도 있었다.

마법을 펼쳐 개쪽을 선물해 줄까?

선우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두 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운이 좋아 조그만 명성을 얻었지만 훌륭하신 교수님과 선배님들의 도움이 필요한 새내기 신입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일단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2000년 3월 21일.

전 국민을 기쁘게 만든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바로 IMF 체제가 끝났다는 소식이었다.

“긴급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금일 오후 3시를 기해…….”

-대한민국 정부 IMF 부채 조기 상환에 성공!

-대한민국 경제, 본격적인 구조 조정 시작.

-전문 경영인 체제로 변환하는 기업들.

원 역사에서 대한민국은 2001년 8월이 되어야 IMF 체제를 졸업하게 된다.

그러나 선우의 적극적인 개입과 대통령의 노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2000년 03월 IMF 체제를 조기 졸업하게 되었다. 물론 몇몇 공기업과 대기업, 다수의 중견 기업들이 해외 자본에 의해 망하거나 팔리거나 혹은 무차별적으로 쪼개졌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는 분명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복구되고 있었다.

* * *

“안녕! 우리 천재 작가님!”

“안녕! 우리 천재 후배님!!”

뒤쪽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교정을 걸어가던 선우가 고개를 돌렸다.

3학년에 재학 중인 신소라와 윤가영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호호호~ 선우야. 잘 지냈니?”

“네.”

대학 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자신의 변장을 알아본 이들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응. 뭐가?”

“나름 변장을 한다고 했는데…….”

“아~ 그거? 호호호!”

선우의 질문에 윤가영이 승리의 V자를 그리며 답했다.

“그야말로 관찰력의 승리지~”

“관찰력이요?”

“응.”

그녀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치켜뜨며 선우를 바라보았다.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교문 도착. 7시 15분이면 넌 항상 이곳을 지나가지.”

“헐~”

“헤헤~~ 무려 한 달 동안 조사한 결과라고!”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선우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공 수업이 9시지?”

“……네.”

“7시에 학교에 도착했으니 아침은 당연히 못 먹었을 거고~”

신소라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선우야. 우리 이거 같이 먹자.”

“그게 뭔데요?”

“간단한 샌드위치.”

“헐! 직접 만드신 거예요?”

“응. 요리가 취미라서~~”

“…….”

선우가 잠시 머뭇거리자 윤가영이 합세했다.

“그래. 같이 먹자. 누나도 배가 고팠단 말이야.”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선우의 손을 강제로 잡더니 잔디밭으로 이끌었다.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합을 보는 것 같았다.

“앗. 쟤는 국문과의 여신 신소라잖아.”

“윤가영도 있네. 그런데 저 옆에 있는 녀석은 누구지?”

잔디밭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소곤거림이 들려왔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최고 명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학생들이 교정에 머물고 있었던 탓이다.

“꺄아아~ 이태리 작가다.”

“뭐?! 어디? 어디?”

“저기 봐! 이태리 작가잖아.”

잔디밭을 지나던 여학생 중의 누군가가 선우를 알아보고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자 삽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박! TV에서 볼 때보다 더 멋지잖아.”

“사인해 주세요. 오빠~~”

“오빠? 야! 쟤 신입생이야. 니가 선배라고!”

“닥쳐! 잘생겼으면 무조건 오빠야.”

“그, 그런 건가?”

“그래. 이년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