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8화
68화 진격의 투자회사
선우가 청와대에 다녀온 후,
여권과 야권의 정치 실세들이 그를 초청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후원회를 비롯해 각종 행사에 얼굴을 비춰달라는 요청이다.
선우의 나이가 십 대인 관계로 특정한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해 달라는 직접적인 요구는 아직까지 없었지만 규용을 통해 압력이 들어왔다.
선우가 가지고 있는 인지도를 이용하고 싶은 그들의 요구는 꽤나 노골적이었다.
“아버지, 이번엔 어디에요?”
“**당.”
“거긴 왜요?”
“똑같아. 얼굴 좀 비춰주고 겸사겸사 후원도 해달라는 거지. 얼마 전에는 입당 제의까지 왔다.”
“입당 제의요?”
“그래.”
“……!!”
이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자 선우는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대통령과의 통화는 의외로 쉽게 이루어졌다.
아무래도 매혹 마법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오! 선우 군. 무슨 일입니까?
“대통령님, 실은 부탁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부탁이요?
“네.”
선우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직설적인 그의 말에 대통령의 음성이 조금 굳어진 느낌이다.
-허허, 이것 참…… 다 어른들의 잘못이에요.
그날 이후,
정치인들의 전화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역시 정권 초기라 그런지 대통령의 힘이 강력한 것 같다.
그로부터 며칠 후,
반가운 뉴스가 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다음 소식은 MC 소프트가 영국계 투자회사로부터 1억 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는 소식입니다. 박필용 기자를 불러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박필용 기자?
-네. 박필용입니다.
TV 브라운관에 박필용 기자가 나왔다.
그는 MC 소프트 본사 앞에서 뉴스를 전달하고 있었다.
-저는 지금 MC 소프트 본사 앞에 나와 있습니다. 조금 전 MC 소프트의 발표에 의하면 영국계 투자회사 이 MC 소프트의 합작 프로젝트에 1억 달러를 투자하였고 두 회사는 이를 통해 대대적인 PC방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택진 대표의 발표에 의하면…….
(중략)
대상자는 40대 이상의 가장과 IMF 사태로 인해 직장을 잃은 분들입니다.
민간 기업이 나서서 직장을 잃은 가장들에게 희망을 찾아주겠다는 포부를 밝히자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MC 소프트 본사에서 박필용이었습니다.
“……PC방 사업?”
회사 근처 식당에서 뉴스를 시청하며 밥을 먹던 김준성 대리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과장님. PC방 같은 게, 정말 돈을 벌 수 있을까요?”
“뭐~ 괜찮지 않을까? MC에서 월급을 준다고 하잖아. 영업 이익이 높으면 인센티브도 주고 말이야.”
맞은편의 최 과장이 말을 받았다.
“그래요?”
“그래. 신문에 자세히 나와 있어. 나도 아까 읽어봤는데 독소 조항이 전혀 없더라고!”
“그럼 점주는 손해 볼 게 전혀 없겠네요?”
“그렇지. 조건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이상해.”
“…….”
“저번 달에 명퇴당한 고 부장도 이참에 저거나 했으면 좋겠네.”
“고 부장님이 왜요?”
“지난번에 우연히 만났는데 사정이 안됐더라고……. 쩝.”
“아…… 네에.”
김준성 대리는 얼마 전 명예퇴직한 그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좀이 쑤신다며 아파트 경비라도 나가시겠다는 것을 한사코 말렸는데, 이런 PC방이라면 괜찮을 듯싶었다.
‘아버지에게 한번 말씀드려볼까?’
한편 과 MC 소프트의 발표에 정부는 쌍수를 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MC 소프트의 PC방 사업은 홍보 효과도 그만이었다.
일단 일반적인 PC방과 차원이 달랐다.
전 지점이 MC 소프트의 직영점이고 점장을 포함 모든 직원이 사대 보험을 적용받는, 일명 정규직이었다.
이와 같은 시각,
왓슨은 선우와 만나 세부 사항을 조율했다.
“건물이요?”
“네, 이걸 좀 보세요. 현재 각 지방 법원마다 경매로 나온 건물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감정가에서 50%, 최대 80%까지 인하된 가격이군요. 그렇다면 기존 PC방을 인수해 개조하는 것보다 아예 경매로 나온 건물을 사들이는 것이 좋겠군요. 부족한 금액은 기존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
척하면 삼천리다.
왓슨은 선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유추해 냈고 바로 이러한 점이 그를 부른 이유였다.
선우의 주변에 간단한 조언이나 도움을 줄 사람은 많다.
단순히 이러한 점을 알고 싶어서 영국에 있는 왓슨을 불렀을 리가 만무했다.
“1,000개의 건물이 끝이 아니죠?”
“네, 10,000개, 어쩌면 20,000개가 될 수도 있어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합니다. 작가님의 수입이 엄청나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할 겁니다.”
왓슨은 목이 말랐는지 탁자에 놓인 찻잔을 들이켰다.
“저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금 조달이 가능하단 말씀이십니까?”
“아마도요.”
“……!!”
선우의 대답에 왓슨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왜 이런 사업을 진행하는 겁니까?”
“……왓슨 씨도 이미 느끼셨겠지만 이 사업의 목적은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업의 목적이 돈이 아니라고요?”
“네.”
선우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IMF로 인해 평범했던 가정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졌죠.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잘살고 있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가정은 해체되고 있고 소리 내어 울부짖고 있답니다.”
선우의 진심 어린 말에 왓슨의 얼굴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죽을 때 돈을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천국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요?”
“…….”
“제가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순 없지만 그래도 돈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고 해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싶은 거고요.”
“……작가님은 일반적인 기업인들과 다르군요.”
선우의 진심이 통했는가?
왓슨은 무엇인가 결심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이민자의 자녀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평범한 공무원이었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의 해고 소식에 저희 가족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가난이 곧 저희 가족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절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두 분은 이 못난 자식을 위해 하루에 20시간 이상을 일하셨죠. 전 부모님의 성실함 덕에 보란 듯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부모님은 이미 늙고 병에 걸렸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선우와 마음을 연 왓슨의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번 기회에 MC 소프트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기업을 하나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계속해 보세요.”
“먼저 전국에 산재하게 될 건물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업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디 보자! 1,000개의 건물을 하청을 주는 방식이 아닌 직영으로 관리하려면 대략적으로 판단해도 최소 150명의 관리 직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욱이 직영점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관리인들의 숫자 역시 증가해야 할 것이 분명하니 기업을 설립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왓슨은 잠시 말을 중단한 채 필요한 자료들을 뒤적이더니 이내 다시 의견을 제시했다.
1.PC방 사업부: 직영 PC방의 전반적인 운영
2.기술 지원부: 직영 PC방 기술 지원
3.총무부: 수입, 지출, 회계, 감사 업무
4.인사부: 인턴, 직원, 복지 업무
5.건물 관리부: 건물 관리 및 경호 업무
“경호 업무가 있네요?”
특이한 내용을 발견한 선우가 물었다.
“네, 건물 관리부 산하에 경호 팀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포함시켰습니다.”
“건물을 관리하는 데 굳이 경호팀까지 필요할까요?”
“일종의 관리원, 경비원의 개념이지만 나중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더욱이…….”
왓슨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현재 영국계 투자회사 의 오너(owner)는 선우다.
과 관련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의 오너(owner)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의 투자가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사람들은 에 관심을 보일 것이고 언젠가는 선우의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렇군요.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니까요.”
왓슨의 설명에 선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작가님을 비롯해 작가님의 직계 가족을 위한 별도의 경호팀 역시 꾸려질 겁니다.”
“……제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경호원의 존재를 가족들이 몰랐으면 좋겠네요.”
“물론입니다. 보호 대상이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도록 원거리 경호를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기업은…….”
왓슨의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3년 안에 매출액 기준, 중견 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린다고 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왓슨과 헤어진 선우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가 알고 있는 미래의 일을 이용해 가장 쉽고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도박은 패스! 소설은 지금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속도가 빠르다. 그러니 이것도 패스! 그렇다면?’
적합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이미 재미를 보고 있었고 이에 관련된 미래도 좋았다.
‘영화!’
선우는 이미 할리우드 제작사 및 배우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1998년 <아마겟돈의 발호>이 전 세계 흥행 수익 1위였어. 수입은 약 5억 5천만 불. 그리고 1999년에는 우주전쟁 <보이지 않는 위험>이 개봉했지. 흥행 수익은 약 9억 8천만 불이야. 하지만 이 두 작품은 시기가 너무 가까워. 현재 제작 중에 있을 확률이 크다. 최소 2000년은 돼야 해.’
그의 머릿속에 과거 2000년 이후 할리우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들의 제목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영화 이 있었지. 수입은 약 2억9천만 불.’
한 편이 생각나자 그 뒤로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들의 제목이 연이어 떠올랐다.
‘코미디 영화인 도 흥행했었어. 그렇지. 코미디하면 제임스 캐리를 빼놓을 수 없지.’
제임스 캐리의 , 비록 국내에선 흥행에 실패했지만 해외, 특히 북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선우는 서둘러 메모지에 생각나는 영화의 제목을 기재하기 시작했다.
‘조엘 깁슨의 는 어떻고? 여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설정에 크게 흥행했었어. 그리고 톰 뱅크스의 원맨쇼가 돋보였던 영화 도 빼놓을 수 없지. 음~ 또 뭐가 있었지? 그래!! 맞아. 그게 있었지!!’
-내 이름은 마시모 델리우스, 서부 총 사령관이자 로마의 장군이었으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충복이었으며 태워 죽인 아들의 아버지이자 능욕당한 아내의 남편이었다.
러셀 소우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천공의 검투사>의 명대사가 떠오른 순간 선우는 참지 못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잠시 후,
몇 번의 통화음이 지나자 익숙한 음성이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Hello.
“Hi~ Tom. It’s me.”
-Oh~ My Bro. What’s up?
선우가 전화를 건 상대는 다름 아닌 톰 제라즈였다.
선우를 통해 이미 몇 번의 대박을 경험한 톰 제라즈는 선우의 제안에 쌍수를 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LA에 직접 오겠다고?
“응.”
-좋아. 그럼 내가 공항으로 나갈게.
“정말?”
-당연하지. 네가 대본을 가지고 온다는데, 당연히 내가 나가야지. 하하하~
“오케이~”
통화를 끝낸 선우는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6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영화의 대본 작가는 큰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령 드라마의 경우 작가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위명에 따라 감독은 물론 주연 배우들 역시 작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영화 대본 작가는 이와 달랐다. 제작사와 감독의 니즈에 따라 대본이 수정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우의 경우는 달랐다.
대본가인 동시에 그가 바로 제작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