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7화
67화 블루 하우스
<대한민국 외환 부채 총액 약 304억 달러>
“……정말 부채가 많군.”
신문 일면에 오른 기사 제목을 보면서 선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외환 위기에 대해 마땅한 대책은 없고 그저 국민들에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노력하자는 식의 지루한 논평에 그냥 짜증이 났다.
선우는 신문지를 그대로 덮어 버렸다.
그가 비록 엄청난 돈을 모았지만 304억 달러라는 엄청난 부채는 그가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부도…….
-** 은행 부도…….
-40대 가장이 생활고를 비관해…….
TV를 틀어도 우울한 소식이 넘쳐났다.
하지만 긍정적인 소식도 있었다.
<금 모으기 운동 열풍>
외환 위기와 함께 전 국민의 자발적인 금 모으기 운동이 뉴스에 나온 것이다.
한편 선우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에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중에는 블루 하우스도 있었다.
회색빛 도로에 억눌린 도시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숨을 쉬는 느낌이다.
족히 180cm는 넘어 보이는 남자들이 부동자세로 서서 주변을 살피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선우를 태운 차량이 청와대에 도착했다.
“선우 군!”
“네, 대통령님.”
한평생을 민주화 운동에 헌납한 윤대중 대통령, 일명 YDJ라 불리는 그가 선우의 손을 잡았다.
“선우 군의 업적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절망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무한한 기쁨과 희망을 선물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또한 이번에 엘리자베니스 여왕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맞지요?”
“네. 대통령님.”
“그것도 축하해요.”
“대통령님. 말씀 낮추세요. 제가 송구합니다.”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당연히 되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선우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허허허~ 그래요. 알았어요.”
YDJ는 마치 옆집 할아버지와 같은 인자한 모습으로 말했지만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어두웠다.
전임 대통령이 최초의 문민정부로 금융실명제,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하나회 척결과 같은 공(功)을 세웠으나 IMF 사태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쩝! 전임 대통령이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느라 힘이 들겠지.’
선우는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가 도와준다면 훨씬 빠르게 IMF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고 그들의 관리 체제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지도자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그건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법칙이었다.
선우는 가방에서 그가 집필한 소설책을 꺼냈다.
“참! 이건 제가 이번에 집필한 소설입니다. 초대해 주셨는데 빈손으로 오기가 뭐해서 책을 선물로 가지고 왔습니다.”
“오~ 그래요. 고마워요.”
“제가 사인해서 드릴게요.”
선우는 자연스럽게 볼펜을 손에 쥐었다.
-스스슥!
사인을 하며 동시에 완드에 각인되어 있는 다섯 개의 마법 중에서 한 가지를 펼쳤다.
“매혹.”
-우우우웅!
속삭임과 같은 음성이 나오는 순간 마나가 유동하며 마법이 펼쳐졌다.
각인 마법의 효과로 수인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갑자기 일렁거린 빛에 YDJ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 이건 영국 왕실에서 작위를 받으며 받은 선물입니다. 조명을 받으면 이렇게 빛이 굴절되기도 하죠.”
“펜 안에 들어있는 건 뭐죠?”
“네. 감람석입니다.”
“오~ 그렇군요!”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호오~ 선우 군은 그렇게 생각하나요?”
“네, 대통령님. 그 이유는…….”
“오! 과연 그렇군요.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어요.”
선우의 대답에 YDJ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물어봐도 전혀 막힘이 없으니 일순 대견하기까지 했다.
‘아직 십 대에 불과한데, 어찌 이렇게 총명할꼬! 참 마음에 드는 아이야.’
매혹 마법의 힘이다.
YDJ는 호감을 넘어 마치 친손자를 바라보듯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선우 군의 생각을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문학에서부터 시작된 대화의 주제는 어느새 IMF라는 현재 대한민국 경제 상황에까지 이어졌다.
‘어린 천재가 이번에도 적절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윤대중 대통령의 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잠시 동안 둘 사이에는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정리한 선우의 입술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IMF 시대 모두가 어렵다고 합니다. 언론과 뉴스에서 늘 그렇게 얘기하고 있죠. 하지만 대통령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듯 부자들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의 소비는 작년과 비교해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다시 말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서민들입니다. 상류층은 그들만의 성벽을 더욱 견고하게 쌓고 있고 그 대신 대한민국의 중산층이 무너져 서민층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제 생각에 대한민국은 지금 극단적인 양극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선우의 대답에 YDJ는 깜짝 놀랐다.
‘놀랍군. 국가 연구소에서 보낸 결과와 거의 일치하지 않는가?!!’
윤대중 대통령은 놀란 마음을 숨기며 아무렇지 않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혹시 좋은 방법이라도 있을까요?”
“……제가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위기를 벗어나면 과거 정부들이 주도했던 친(親)대기업 정책이 아닌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을 살린다?”
“중소기업에 정책 자금을 지원해야겠죠.”
“정책 자금을 지원하려면 그에 따른 세수가 필요한데, 세수는 어떻게 마련하죠? 선우 군이 생각하기에 무슨 좋은 방법이 있나요?”
“물론 IMF를 극복한 후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세수를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기업의 법인세 인상과 그들이 받아왔던 누진세 혜택을 줄이는 겁니다. 또한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국가주도의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정부에서도 과학 기술에 투자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네. 옳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들여다보면 어디서나 말뿐이었습니다.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정작 순위에서 밀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경제 성장의 커다란 벽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YDJ는 진지한 표정으로 선우의 말을 경청하며 때론 진지하게 고심했다.
선우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더욱 강하게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IT 사업이요?”
“네. 대통령님.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세상은 이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 결과 가까운 미래 플랫폼 혁명이 일어날 것이며 엘빈 토플러가 주장한 제3의 물결을 넘어 이제는 제4의 시대로 들어설 것입니다.”
“제4의 시대?”
“네. 모든 기술이 연결되는 융복합의 시대죠.”
“융복합의 시대!!”
“네, 가까운 미래에 분명 올 겁니다.”
확신에 찬 선우의 말에 대통령은 가만히 선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두 눈이 참 맑군. 신념이 가득한 눈이야.’
YDJ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것 참! 가벼운 만남으로 생각했는데, 어려운 숙제가 주어졌군요.”
“…….”
선우는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이다.
“……선우 군.”
“네. 대통령님.”
“오늘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감사하고 고마워요.”
“…….”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 테니 우리 자주 봅시다. 알겠죠?”
“네. 대통령님. 불러주시면 언제라도 달려오겠습니다.”
* * *
선우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정신계 마법의 일종인 매혹 마법을 사용했지만 거리낌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부작용이 없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에 효과 역시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매혹 마법이 가지고 있는 ‘호감’이란 녀석은 때때로 상대에 따라 혹은 환경에 따라 매우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성에 대한 호감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것은 우정, 애정, 믿음 혹은 사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성에 대한 호감은 어떠한가?
믿음과 신뢰를 넘어 굳건한 충성까지 발전되기도 한다.
선우와 YDJ의 관계는 아직 호감 단계에 불과하지만 만약 선우가 주기적으로 매혹 마법을 YDJ에게 펼친다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강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그 효과 역시 강해질 것이다.
윤대중 대통령과의 만남 후,
집으로 돌아온 선우는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다 사라진다.
미국에 하나, 영국에 하나, 분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푸념마저 흘러나왔다.
“음!”
지금까지의 투자는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과거 엄청난 성공을 이룬 기업들에 중점을 뒀었다. 하지만 이제는 뭔가 우리네 이웃들에게,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었다.
“여보세요.”
선우는 왓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현재 운용 가능한 자금이 얼마나 되죠?”
두 사람의 통화는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로부터 보름 후,
푸른 눈의 한 남자가 MC 소프트를 찾았다.
“에서 오셨다고요?”
“네.”
이라면 현재 소프트 주식의 20%를 보유한 영국계 투자회사의 이름이다.
예고치 않은 대주주(?)의 방문에 조택진 대표는 꽤나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투자회사 의 CFO 왓슨이라고 합니다.”
“조택진입니다.”
두 사람은 명함을 교환하며 악수를 나눴다.
“영국에서 한국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투자 건 때문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아이템을 귀사와 함께 진행하고 싶어서 이렇게 대표님을 찾아왔습니다.”
“좋은 아이템이요?”
“네. 우리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그게 뭐죠?”
“PC방 사업입니다.”
“PC방 사업이요?”
“네. 기존 방식의 PC방에 편의점과 휴게실을 결합한 형태죠.”
“……?!”
왓슨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PPT를 통해 조택진 대표에게 그들이 준비해온 자료와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흐음! 이건 마치 프랜차이즈 체인점 같군요.”
한눈에 봐도 마치 카페에 온 것 같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한 가지만 빼고 비슷합니다.”
“한 가지요?”
“네. 저희는 모든 영업점을 본사 직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지, 직영이요? 지금 본사 직영으로 운영하신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
조택진의 표정은 황당하다는 표정, 바로 그것이었다.
“아까 규모가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1차 목표로 1,000개의 영업점을 오픈하는 겁니다.”
“…….”
왓슨의 대답에 조택진 대표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영국계 투자회사 에서 오지 않았다면 조택진 대표는 그를 사기꾼 취급하며 밖으로 내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자금이 필요할 텐데요?”
“자금은 충분합니다.”
왓슨의 당당한 대답에 조택진 대표는 의 자금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