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66화 (66/187)

◈ 제 66화

66화 Home sweet home

“이봐! 자네 들었나?”

“뭘?”

“이번 작위 수여식 말이야.”

“글쎄. 아직까지 듣지는 못했는데…….”

“이런, 자네 역시 대영제국의 귀족이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는군.”

테이블에 앉은 두 명의 중년 사내들이 와인 잔을 들이키며 대화했다.

맞은편의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반대쪽의 친구가 뭔가 대단한 비밀을 털어놓듯이 설명했다.

“이번에 영연방 소속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이 귀족 작위를 받게 되었다네.”

“그것은 들은 것 같군. 그 사람이 대체 누군가?”

“최선우.”

“최선우? 그게 누구야?”

“본명 최선우. 필명 이태리.”

“아! 이태리 작가. 그가 이번에 작위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은 나도 이미 들었네. 이태리 작가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지 않은가?”

“쳇! 이 사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먼.”

“엥?”

“자네 말대로 그의 능력을 보면 작위를 수여할 수 있네. 그런데 문제는 그에게 내려질 작위는 기사(knight)가 아닌 남작(baron)이라네.”

“뭐, 남작(baron)!”

“그래. 남작!”

대답을 들은 남자는 입을 딱 벌렸다.

“단승 귀족인가? 아니면 세습 귀족인가?”

“세습이라니?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습 작위는 2번밖에 수여되지 않았네. 내가 듣기로 단승 남작이라고 들었네.”

“이태리 작가가 영국의 위상을 높였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남작이라니, 왕실에서 아주 적극적이군.”

“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에게 뭔가 다른 배경이라도 있나?”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암튼 귀족 사회에 벌써부터 소문이 파다해.”

“……….”

선우가 귀족, 그것도 남작 작위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에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악감이 떠올라 있었다.

“수앤 캐슬린 롤링은?”

“그녀 역시 남작 작위를 받는다고 들었네.”

“쳇! 그놈의 태리 포터가 대단하긴 대단하구먼. 돈도 엄청나게 많이 벌었다고 들었는데…….”

“그래. 거액의 인세와 영화 판권 거기다 파생 상품 판매로 억만장자가 되었다고 들었네.”

“억만장자? 후아~ 진짜 엄청나군.”

맞은편의 중년 사내가 와인 잔을 단번에 비우며 탄성을 토해냈다.

일부 남성의 얼굴에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일종의 자괴감까지 보였다.

“쳇! 현대판 신데렐라구만~”

“그러게. 작품 하나 잘 써서 완전 초대박이 난 거지.”

“듣자하니 혼자라던데?”

“왜~ 관심 있나?”

“후후후~ 나도 혼자잖아.”

“쳇, 잘해보게. 난 유부남이라 탈락이지만.”

사람들은 소리 죽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이미 두 사람에 대한 소식은 영국 상류층의 화젯거리가 되어 있었다.

며칠 후,

멋들어진 예복을 차려입은 귀족들이 버킹엄 궁전 연회장에 가득 모여들었다.

이들은 오늘 작위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귀족들이다.

“영국이여, 영원하라.”

“영원하라.”

누군가의 건배사에 모두들 잔을 들었다.

오늘 작위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20명으로 이 중에 18명은 기사(knight) 작위를 받을 예정이다. 수앤과 선우, 이 두 사람만 남작 위를 받을 예정이었다.

“최선우는 그대의 여왕 앞으로 나오라.”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선우는 앞으로 나아가 미리 준비된 쿠션 위에 무릎을 꿇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의장 검을 손에 쥔 엘리자베스 여왕의 눈에는 세월의 무게와 그에 걸맞은 위엄과 차분함이 느껴졌다. 비록 그녀의 입술에는 숨길 수 없는 여인의 고집도 보였지만 말이다.

“최선우는 불의에 맞서고 약자의 편에서 의를 행할 것을 신 앞에서 맹세하겠는가?”

“맹세하겠습니다.”

“최선우는 고된 길이라 할지라도 옳은 길을 걸어갈 것을 신 앞에서 맹세하겠는가?”

“맹세하겠습니다.”

“최선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에 따라 사회적 정신적 의무를 지키기를 신 앞에서 맹세하겠는가?”

“맹세하겠습니다.”

“……신에게 권리를 위임받아 그대에게 남작 위를 수여하노라.”

엘리자베스 여왕은 의장 검을 선우의 양어깨에 번갈아 내렸다 들었다.

이렇게 해서 선우는 단승 귀족이지만 종신 귀족으로 대영제국의 남작이 되었다.

* * *

“또 올 거지?”

“당연하지. 이제 영국은 내 두 번째 고향이나 마찬가지야. 자주 올게.”

선우는 히스로 공항까지 배웅 나온 수앤과 가볍게 포옹한 후,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누구지?”

“대박~ 잘생겼다.”

“게다가 퍼스트 클래스야.”

객실을 담당하고 있는 스튜어디스들은 하나같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그럴 것이 일반석에 비해 십여 배나 비싼 1등석에 젊고 아주 잘생긴 남자가 앉아 있었으니 그들의 반응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저…… 피부 좀 봐.”

탐스러운 흑발에 빛이 나는 피부, 한눈에 봐도 고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선우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스튜어디스라는 직업적 특성상 연예인들을 많이 봤지만 맹세코 이런 남자는 처음이었다.

“손님~~”

“더 필요하신 게 있나요?”

“여기~~ 주문하신 피오렌티나입니다.”

변장을 하지 않은 덕에 선우는 아리따운 스튜어디스들의 공세를 온몸으로 만끽해야 했다.

그녀들은 마치 경쟁하듯 선우 앞에 나타났다.

“쳇!”

“뭐야, 저 새낀!!”

“……재수 없네.”

일등석의 몇몇 남자들이 선우를 향해 불만이 담긴 눈빛을 쏘아 보내기도 했지만 대놓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런던에서 출발한 대현항공 747편은 잠시 후 대한민국 서울, 김포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지금부터 안전벨트를 착용하여 주시고 승무원들의 안내에 따라주시기를 바랍니다.

스피커를 통해 곧 김포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얼마 후,

선우는 스튜어디스의 연락처가 적힌 메모지를 주머니 가득 넣고 출입문을 나섰다.

그리고 기분 전환을 위해 비행 내내 벗어 놓았던 코난 안경을 착용하는 동시에 마스크를 했다.

가족은 물론 친구들에게도 귀국에 대해 얘기하지 않아 공항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부우웅.

선우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 시내에 위치한 백화점에서 한편의 기이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오빠, 여기도 들어가 보자.”

“어……. 그, 그래. 혜진아.”

양손에 선물을 가득히 안은 남자가 땀을 삐질 흘리며 여동생을 뒤따르는 광경이었다. 혜진은 단단히 작정했는지 그야말로 물 찬 제비처럼 백화점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녔다.

“응~ 언니. 나야. 혜진이.”

“……!”

“당근 왔지. 내가 문자 보냈잖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도 깜짝 놀랐지 뭐야~ 호호호. 어디긴 어디야? 당근 백화점이지. 그래. 언니도 빨리 와.”

그로부터 정확히 40분 후,

완전무장(?)한 설연이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선우 앞에 나타났다.

“선우야~~”

“오빠~~”

선우는 백화점 문이 닫을 때가지 온종일 두 여인에게 끌려다녀야만 했다.

이날 저녁,

선우가 귀족이 되었다는 말에 가족들은 입을 딱 벌렸다

“세, 세상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가족들을 보며 선우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직 하나가 더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론즈베리 출판사에서 받은 인세를 할리우드에 투자했는데, 그게 대박이 났어요.”

“할리우드에?”

얼마나 놀랐는지 규용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서, 설마?!”

그는 뭔가 짐작했는지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선우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태리 포터 영화에요.”

“……?!!”

선우의 대답에 수연 역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태리 포터> 시리즈가 엄청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걸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꿀꺽!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침묵을 깨는 순간 여동생 혜진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빠! 그럼 이제 백만장자가 된 거야?”

“뭐~ 후후후!”

“대~~박!”

‘동생아, 오빠. 억만장자야.’

혜진은 선우가 백만장자 따위는 발가락에 낀 때로 볼 만큼의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아.”

선우는 가족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는 물론 우리 가족들 모두, 앞으로 돈 쓰는 방법에 대해 배워야 할 것 같아요.”

“돈 쓰는 방법?”

“……네.”

선우는 진심을 담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자가 거액을 얻게 되면 십중팔구(十中八九) 인생을 허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벼락부자가 된 일반인들의 실제 사례를 들여다봐도 그렇다.

로또와 같은 일확천금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어 그들의 인생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지 않았는가?

“……그래. 우리 선우의 말이 맞아.”

규용 역시 연이은 베스트셀러를 출간해 현재 100억대에 이르는 자산가가 되어 있었다.

“돈이라는 것은 다스려야 하는 존재야. 돈에 의해 우리가 끌려다니면 안 돼.”

“당신 말이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규용와 수연의 명쾌한 답에 선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다음날 아침,

백발의 노신사가 규용의 집을 찾았다.

그의 이름은 한성운, 재벌가 집사로 이십 년을 근무했고 몸이 불편해 은퇴한 이후, 재벌가의 교육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돈은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에 따라 단돈 만 원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고 1억에도 불행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가지고 있는 무게에 대해서 깨닫는 것입니다.”

한성운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르네상스 시대를 주도했던 메디치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문학적 부를 소유했었고 그 결과 일국의 왕과 교황에게 돈을 빌려줄 정도였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메디치 가문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과 같은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하였고…….”

한성운은 베테랑답게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교육을 이끌어 갔다.

그의 수업은 돈에 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가치 있게 쓰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주를 이루었지만 간혹 상류사회에서 사용하는 예절과 소양을 배워보는 시간도 있었다.

“오늘은 점심은 식사 예절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선우의 가족은 한성운의 안내에 따라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름조차 생소한, 난생 처음 보는 프랑스 요리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접시 위에 하나의 예술품처럼 올려진 풀코스 요리는 1인당 백만 원을 가뿐히 넘기는 최고급 요리의 향연이었다.

한성운의 교육이 이어질수록 선우와 그의 가족은 돈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한국으로 돌아온 선우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부족한 수업일수 덕에 한 학년을 다시 다녀야 했기 때문에 검정고시를 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선우는 자퇴서를 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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