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4화
64화 KBC(Korea Broadcasting Center)
KBC 방송국,
교양국을 담당하고 있는 강민석 국장이 송영주 PD를 호출했다.
“송 PD, 혹시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태리 작가 말일세.”
“아!! 네. 이번에 셰익스피어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음! 자네도 알고 있었군.”
“학계에서 큰 관심을 보여서요.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렇게 들었습니다.”
“큰 관심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네.”
“네?”
“논문이야 학술적인 성격이 강하니 대중적이지 못하겠지만 이태리 작가가 이번에 발표한 추리 소설이 지금 영국과 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고 하네.”
“공전의 히트요?”
“그래, 이건 뭐 거의 <태리 포터>급이라고 하더라고.”
“에이~ 국장님도……. 설마 추리 소설이 그 정도겠어요?”
“사실이네.”
강민석 국장의 말이 이어졌다.
“할리우드에서도 벌써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하더군. 진짜 난놈은 난놈이야.”
“……!!”
강민석 국장은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우리 프로그램에 이태리 작가가 출연한다면 대박일 텐데, 안 그런가?”
“……네, 대박이 확실하겠죠.”
“그렇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국장님.”
송영주 PD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가 한번 접촉해 볼까?”
“접촉이요?”
“그래. 자네가 우리 교양국의 에이스 아닌가? 내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테니 이태리 작가를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떨까?”
“지금 영국에 가라는 말씀이세요?”
“응.”
“…….”
선우가 문학계에 남긴 업적은 대단하다고 평할 수준이 아니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만약 그의 출연이 성사된다면 시청률은 대박이 확실했다.
“M 본부랑 S 방송국에서도 팀을 꾸리고 있다는 소식이야. 우리가 질 순 없지. 안 그런가?”
“물론입니다. 국장님.”
“좋아! 자네도 이번 기회에 대박 한번 터트리게. 승진도 해야지.”
승진이라는 말에 송영주 PD는 이를 악물며 그의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맡겨주십시오. 국장님.”
송영주 PD의 강렬한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강민석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팍팍 밀어줄 테니 송 PD가 일 한번 내봐. 알겠지?”
“네. 국장님.”
* * *
“……KBC 방송국?”
모르는 번호로 계속 연락이 와서 받질 않았는데 이런 문자가 날아왔다.
[작가님. 송영주 PD입니다. 통화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연락이 안 돼서요. 꼭 통화 부탁드립니다.]
[이태리 작가님. 저는…….]
그는 KBC 방송국의 송영주 PD라고 밝히며 현재 영국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영국까지 왔다는 말에 그 정성이 갸륵해서 선우는 그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최선우입니다.”
-작가님!!
반가워하는 음성과 언뜻 만세 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다.
“촬영 팀이 함께 왔다고요?”
-네. 작가님.
출연 제의를 예상했지만 촬영 팀이 함께 왔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프로그램 이름이 뭐죠?”
-휴먼스토리입니다. 저희 프로그램 이름은 들어보셨죠?
“네.”
-어쩌고저쩌고, 쏼라쏼라~~
휴먼스토리,
그것도 7부작이라니, 단순한 인터뷰를 예상했던 그에게 이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기에는 좀…….”
-아닙니다. 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가 무조건 맞추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지금 영국에 있습니다.”
-네, 저희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지요. 모든 걸 감안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작가님의 스케줄에 맞춰 촬영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쉬고 싶은 날이면 그냥 쉬셔도 됩니다.
“……!!”
기세를 탔다고 생각한 송 PD가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IMF로 인해 현재 많은 국민들이 슬픔과 시름에 잠겨 있습니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작가님의 자랑스러운 업적과 활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선물해 주고 싶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끈질기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간곡한 부탁에 선우는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조건이요?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절 미화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작가님.
‘미화할 필요가 뭐가 있어.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만 해도 대박일 텐데~~ 후후후.’
“약속하시는 겁니까?”
-네, 약속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 내일 한번 뵙죠. 참…….”
이때,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선우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지인 찬스를 썼습니다.
“지인 찬스요?”
-네, 사실 아버님이신 최규용 대표님께서 제 대학 선배님 되십니다. 세 번이나 찾아가서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해 드렸더니 작가님의 번호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아! 아버지 후배분이셨군요.”
의문이 해소된 선우는 송 PD에게 약속 장소와 시간을 말해주고 통화를 끝냈다.
한편 선우와 통화를 끝낸 송영주 PD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KBC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국장님?
-오! 그래, 송 PD. 어떻게 됐나?
-꿀꺽!
-후후후! 성공했습니다.
-오케이~~!!
KBC 방송국 <휴먼스토리> 팀의 영국 체류가 시작되었다.
선장에 송영주 PD, 부선장에 조희선 AD, 1급 항해사 유재준, 김시형, 임성경 FD가 여섯 명의 VJ들을 선원으로 삼아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선우가 취침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8시간에서 최대 20시간에 이르기까지 밀착 촬영을 감행했다.
그리고 얼마 후,
선우의 이야기가 KBC 방송국의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되었다.
-세계 문학계를 뒤흔들고 있는 한국의 천재 작가
귀에 익은 선율과 함께 브라운관을 통해 선우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가 초등학생일 때 쓴 어린이 동화 <단팥빵>을 비롯해 그의 첫 장편소설 <아빠를 부탁해>가 방송을 통해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어쩜!!”
“천재였네. 천재였어.”
“대~~박!!”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전체 7부작 중, 이제 1부가 방송되었을 뿐인데,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17.8%.”
“……20%.”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3, 31%!!!!”
1화의 시청률이 무려 31%를 찍었다.
예능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다.
이것은 한국 방송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띠리리리, 띠리, 띠리, 띠리……!
다음 날,
휴먼스토리의 BGM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어 집중하기 시작했다.
2부의 시작은 선우의 영국 생활과 함께 몇몇 유명 작가들이 나와 선우에 대해 논하는 장면이었다.
-그가 대문호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수앤 캐슬린 롤링)
-그는 의심할 수 없는 천재입니다.(고바야시 하루키)
-그의 글을 떠올리면 아직도 전율이 흐르고 있습니다.(스태판 킹)
-놀랍습니다. 그의 글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습니다.(애드가 발렌시아)
휴먼스토리 3부에서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던 그가 왜 한국을 떠나 영국에 머물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필 논란과 함께 그에게 진실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저, 저런…… 쯧쯧쯧!”
“아이쿠! 이건 생사람을 잡았군.”
“한편으론 이해되지만 그래도 저러면 안 되지.”
“완전 막무가내네.”
“어이가 없다.”
방송이 끝난 직후,
방송국 게시판에는 선우를 모함한 이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경찰은 대체 뭐한 거야? 무죄추정의 원칙은 엿 바꿔 먹었나?
-백 명의 도둑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모르나?!!
-오현국 선생도 관련이 있는 것 아니야?
⤷그건 아닌 듯.
⤷아니라고 함. 기사 링크~
-나라도 한국을 떴겠다.
⤷난 이민!
⤷동감(1)
⤷동감(2)
-이진요 놈들, 죄다 감방에 보내라.
-어버이 연합은 뭐야? 엄마 부대도 이상하다.
⤷쓰레기 같은 놈들!
⤷관련자 전원, 철저하게 수사해라.
방송국 게시판에 비난의 댓글이 폭주하자 제작진은 위와 관련된 사항이 현재 재판 중에 있음을 알렸다.
-위 사항은 현재 재판 중에 있음을 밝힙니다.
⤷역시 주먹은 가깝고 법은 느리다.
⤷우리 사촌형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인데, 재판 결과가 나오기 까지 무려 3년 걸렸어요.
다음 날,
사람들이 TV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휴먼스토리 4부가 곧 시작하기 때문이다.
-따라라라, 따라, 따라. 따라…….
“여보, 음악 나온다! 이제 곧 시작해.”
“네. 바로 갈게요.”
휴먼스토리 4부에서는 예고한 것처럼 위기의 순간에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선우의 모습이 방송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구, 국장님. 시청률이…….”
“오오! 나, 나도 봤네.”
-31%…… 39%…… 41%…… 43%…… 46.7%.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잠시 흐르던 정적을 깼다.
“휘이익! 최고다!”
“끝내준다! 우리 팀! 만세!!”
이곳저곳에서 환호성이 새어 나왔다.
한편 휴먼스토리의 시청률 돌풍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서 오게. 송 PD.”
강민석 국장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시청률 확인했나?”
“네. 국장님.”
“하하하! 잘했어. 내 속이 다 시원하더군.”
강민석 국장은 그에게 법인 카드를 내밀었다.
“사장님이 주신 걸세. 이걸로 팀원들과 함께 회식하게. 그리고 이번에 자네 CP로 승진하게 될 거야. 그동안 수고했어.”
“가, 감사합니다. 국장님.”
다음 날,
휴먼스토리 5부가 시작되었다.
“후우…… 후우!!”
런던 교외에 위치한 셔우드 공원 그리고 한 남자의 거친 숨소리.
한 걸음 한 걸음 내달릴 때마다 남자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다.
마치 한편의 스포츠 웨어 광고를 보는 것 같다.
“어머, 저것 봐.”
“꺄아아~!!”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며 화면을 가득 채우자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난리 났다.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남자의 몸은 짐승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위 장면을 촬영할 당시 현장에 있던 여성 VJ들은 얼굴 포함 귓불까지 빨개졌다.
“……미친!!”
“대박 잘생겼다.”
“젠장!!! 저 외모에 저 근육! 레알이냐?”
10대 소녀 안희경은 아이돌 그룹 APM 공식 팬클럽의 회장이다.
그녀는 잠시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우연히 엄마와 동생이 보고 있는 TV에 눈을 돌렸을 뿐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터트리고 말았다.
“꺄아악, 오빠!!!”
-대박 쩐다……!!!
-내가 <휴먼스토리>를 온종일 반복해서 볼 줄이야.
⤷저도요.
⤷2빠~
-오빠~ 날 가져요. 제발~~~~
⤷지랄, 선우 오빤 내 거다.
⤷위에 분, 선우 오빤 제 거예요.
⤷착각도 풍년일세.
-저 분위기 어쩔 거야?
-내가 사랑했던 오빠들 모두가 오징어였어…….
⤷공감.
⤷동의…….
방송의 여파는 대단했다.
한국의 문호(文豪) 이태리 작가. 본명 최선우.
그의 존재는 누군가에게는 오빠로, 동생으로, 한국이 낳은 천재로, IMF를 이겨내는 희망으로 그리고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참고로 그가 출연한 휴먼스토리 마지막 편은 63.3%라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역사적인 대미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