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2화
62화 Finding Shakespeare
미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선우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먼저 이번 미국행의 가장 큰 이유였던 구글에 대한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악연(惡緣)의 연속이었던 김진우에게 응당한 대가를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삼족오 기사단의 개봉에 맞춰 미국에 온 설연과 만나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고 톰 제라즈 부부와 인연이 닿아 좋은 관계를 형성하였다.
“후후후~ 매우 유익한 여행이었어.”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다면 바로 마나석의 발견이었다.
이와 같은 시각,
시티 오브 런던의 거물급 투자자 브루스와 세바스찬이 스쿼시 연습장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풀고 있었다.
“요즘 한국 시장은 어때? 이익 좀 보고 있나?”
“뭐~ 조금.”
“왜?”
“태국 시장에 비해 너무 늦게 들어갔어.”
“아이고, 우리 브루스 대표가 타이밍을 못 맞췄군.”
“태국 시장에서 너무 늦게 빠진 덕이지. 자넨 어때? 초창기에 들어갔으니 재미 좀 봤을 것 같은데?”
“후후후~ 아직 부족해. 난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이때, 연습장의 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온 도미닉이다.
“도미닉, 왜 벌써 나와?”
“그러게. 10분도 안 된 것 같은데? 왜, 무슨 일이라도 난 거야?”
이제 막 연습장에 들어가려던 두 사람이 도미닉을 보고 물었다.
“빅뉴스가 있어서.”
“빅뉴스?”
“이것 좀 봐봐!”
“뭔데?”
도미닉이 핸드폰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전문 투자자만이 알 수 있는 몇 개의 소식이 도착해 있었다.
-[구글, 대규모 투자에 성공]
구글이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는 소식에 세바스찬이 인상을 썼다.
“이런!!”
“왜?”
“자네들 내가 IT 기업에 관심 있는 것 알지?”
“응. 잘 알고 있지. 근데 그게 왜?”
“눈여겨보던 IT 기업이 있었는데, 젠장! 어떤 놈이 선수를 쳤네.”
“선수를?”
“그래.”
부르스와 도미닉의 눈빛이 단숨에 뜨거워졌다.
그들 역시 미래의 먹거리라 할 수 있는 IT 기업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탓이다.
“대규모 투자라면 얼마지?”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현재 구글의 기업 가치를 예상했을 때 대규모 투자라면 적어도 2~300만 달러는 받았을 것 같네.”
“2~300백만 달러?”
“응.”
“IT 기업의 미래만 보고 그 정도 금액을 투자했다면!”
“잔챙이는 아니라는 소린데…….”
도미닉의 말대로 구글은 얼마 전에야 서비스를 시작한 신생 IT 기업이었다.
“지금이라도 한 발 걸치면 되지 않을까?”
“이미 투자 제안서를 보냈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했어.”
“……그렇군!”
“어디서 움직였을까?”
“나도 그게 궁금해. 근데 거기까진 알 수가 없더군.”
“……!!”
세바스찬의 눈빛에는 짙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것은 동남아와 한국 시장의 금융 위기에 집중하는 바람에 좋은 먹잇감을 놓쳐버렸음을 자책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선우는 왓슨과 만나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전문적인 투자 회사를 하나 설립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전문적인 투자 회사요?”
“네.”
“그건 왜죠?”
“5%!”
“5%? 아!!!”
“네. 지분 공시에 걸렸습니다.”
일명 ‘5%룰’이라 불리는 지분 공시가 있다.
이것은 개인이나 법인이 상장 회사의 주식 5% 이상을 보유하게 되면 그로부터 5일 이내에 공시를 해야 한다는 법이다. 참고로 5%룰은 대주주들이 외부의 적대적 M&A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왓슨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의도치 않았지만 원화의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바람에 보유 주식 지분이 높아졌습니다. 작가님의 이름을 숨기기 위해선 투자 전문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료됩니다.”
“…….”
잠시 뭔가를 생각한 선우는 왓슨의 제안에 동의했다.
“좋습니다. 그럼 공시 의무가 없고 외부 감사도 받지 않는 유한회사로 만들죠. 어떻습니까?”
“유한회사요?”
“네.”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부자들 외에 알려지지 않은 부자들이 있다.
일명 숨어있는 부자들이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세계 부호 순위 100위 안에 들어갈 정도의 부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들의 정체는 감춰져 있다.
공시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회사를 직접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그 이유 또한 단순하다.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우는 위의 두 가지 이유에서 유한회사를 선택했다.
알려지기 원치 않았고 직접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투자 회사의 사명은 무엇으로 할까요? 혹시 생각해두신 이름이 있습니까?”
“……이요. 이 어떻습니까?”
“펜, 펜이라…….”
펜(Pen)의 사전적 의미는 다양한데, 일반적으로는 만년필, 문체 그리고 작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꼭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그렇죠?”
“네.”
선우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보이며 몇몇 기업의 이름이 적힌 서류를 내밀었다.
“투자 회사 PEN의 이름으로 3,000만 불을 추가로 투자하겠습니다. 여기에 적힌 기업들의 주식을 매입해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다음 날,
선우는 볼펜으로 위장한 완드를 지니고 왕립 학술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법 완드!
이것의 가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선우의 마법력을 크게 강화하는 한편 그의 능력을 확장시켰다.
왕립 학술원 내부 밀폐된 공간에서 선우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두 권의 고서를 바라보며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마다 강력한 사념이 느껴지는 책들이다.
그동안 3서클을 이루지 못해 책을 찾아 놓고서도 그림의 떡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야 램지 경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군.”
선우는 마치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것 같은 눈빛으로 여섯 권의 고서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왕립 학술원 서고에 존재하고 있는 고서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사념이 느껴지는 서책이었다.
선우는 어느 누구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개인 연구실에서 눈빛을 빛냈다.
“……&……#$#……@@……*#%[email protected]@……!!”
마법 완드를 손에 쥐고 룬어를 외운다.
곧 선우를 중심으로 검은 안개가 생성되며 마치 뇌성과도 같은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일종의 밀실이었지만 선우의 눈에는 검은 안개 중심에서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느낌이었다.
“망령은 내 부름에 응답하라.”
-…….
-…….
-…….
“망자의 영혼이여! 내 부름에 응답하라.”
선우가 지금 펼치고 있는 것은 강력한 사념이 남아 있는 매개체를 이용해 죽은 이의 망령을 불러내는 흑마법 계열의 소환 마법이다.
-…….
-…….
“망자의 영혼은 내 부름에 응답하라.”
-…….
-…….
-……누가…….
바로 그때였다.
-……누가…… 나를…… 부르는…… 것인가?
선우의 소환 마법에 뭔가가 반응을 보였다.
-……그대가…… 나를 불렀……는……가?
마음속으로 전달되는 음성.
선우는 희미한 형상을 향해 외쳤다.
“그래, 내가 당신을 불렀다. 당신의 이름은?”
-내 이름은…… 도일 워커…….”
“도일 워커?”
-……그…… 그렇다.
“당신은 누구지? 작가인가?”
-……난…… 서점……상……이다.
“서점상?”
-……그…… 그렇……다.
“쩝!”
애석하게도 선우가 원하는 인물이 아니다.
“알았어. 잘 가!”
-……어……어……어?!!
기다렸던 사람이 아니자 선우는 즉시 축객령을 내렸다.
잠시 후,
다른 책에서 두 번째 망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운 법이다.
“당신의 이름은?”
-내 이름은…….
“쳇 잘못 불러냈군. 미안. 너도 잘 가.”
-아니, 이 녀석이?
두 번째 인물 역시 꽝을 뽑았다.
세바스찬 램지 경과 약속한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선우는 낙담하지 않았다. 운이 좋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성공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학술원이 소유하고 있는 저 방대한 책들 사이에 강력한 사념이 느껴지는 책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계속된 마법에 선우의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마나 역시 바닥을 보이는 것 같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속옷을 챙기지 않았기에 다시 입으면 찝찝할 것 같다.
선우는 마법 완드를 볼펜 크기로 줄인 후, 학술원 서고를 나섰다.
“이제 가시는 겁니까?”
“네. 아저씨.”
학술원 야간 경비원 요셉 아저씨다.
얼굴을 자주 마주치다 보니 서로 간단한 안부를 물을 만큼 친해졌다.
“오늘은 좀 일찍 가시네요?”
“네. 좀 피곤해서요.”
“아이고 몸이 아프면 안 되죠. 컨디션 잘 조절하세요. 누가 뭐라 해도 건강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네, 아저씨 말이 맞아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우는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전했다.
“그래도 여행을 다녀오셔서 그런지 얼굴이 꽤 좋아 보이세요.”
“그렇게 보여요?”
“네.”
“후후. 이건 비밀인데, 사실 제가 지금 연구 중인 프로젝트의 실마리를 찾았거든요.”
“아!! 그렇군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요셉은 진심이 담긴 미소 한 조각을 입가에 달고 인사했다.
“하하하~ 감사해요. 아저씨. 그런데 손에 들고 계신 책은 뭐예요?”
“아…… 이, 이거요?”
경비원 요셉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부끄러움이 떠올랐다.
손녀의 부탁을 받긴 했지만 이런 부탁을 한다는 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도, 동화책인데요. 죄송한데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부탁이요?”
“네. 이걸 좀…….”
-스윽!
그가 내민 것은 영어로 번역된 어린이 동화 <단팥빵>이었다.
“제가 작가님을 안다고 했다니 어제 저녁 제 외손녀가 이 책을 가지고 왔지 뭡니까? 죄송하지만 사인 한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하하~ 물론이죠.”
선우의 시원한 대답에 경비원의 눈에 기쁨이 넘쳤다.
“손녀분. 이름이 뭐예요?”
“앨리스입니다.”
“이름이 참 예쁘네요.”
-친애하는 앨리스에게…….
……요셉 아저씨의 친구 Terry Lee.
호텔로 돌아온 선우는 찬물로 샤워를 한 후,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 그대로 마셨다.
꿀꺽, 꿀꺽.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그 짜릿한 느낌이 너무 좋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하이 선우.
“하이. 톰.”
톰 제라즈다.
-오랜만이야. 선우. 잘 지내지?
“덕분에. 톰, 당신은?”
-나야 촬영 준비로 바쁘지.
“그렇겠군. 준비는 어때?”
-돌아오는 주에 촬영 시작이야.”
“와우~ 그것참 멋진데.”
-그래서 영국에 가야 해. 선우도 알지?
“당연하지. 내가 대본을 썼잖아.”
-후후후. 그렇네.
“영국에는 언제 와?”
-그건 아직 모르겠어. 미국 촬영부터 시작하니까.
톰의 말이 이어졌다.
-정확한 일정이 나오면 문자로 남겨줄게. 암튼 곧 보자고!
톰은 곧 보자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암튼 톰도 참 대단해.”
영국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촬영에 들어간다니 어지간히 신경을 쓴 모양이다.
-달칵!
선우는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 거실과 연결된 창문을 통해 런던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각양각색의 불빛이 화려한 네온사인과 함께 움직이는 모습은 꽤나 이색적이었다.
다음 날,
선우는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 ……내…… 이름을 말하라는 건가?
희미한 형상의 얼굴.
책에서 본 셰익스피어의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다.
“혹시 당신이 셰익스피어입니까?”
-셰익스…… 피어……. 그래. 내…… 이름……. 맞아. 내가 셰익스피어야.
‘빙고~’
셰익스피어가 소환되자 선우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의 기분 좋은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소환된 망령의 존재는 셰익스피어의 영혼이 아닌 그가 남긴 책에 남아 있던 강력한 사념체라는 사실이다.
만약 선우가 7서클 이상의 경지에 오른 대마법사라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단언컨대 현재 선우의 실력으로는 망자의 영혼을 불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선우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사념체면 어때? 내가 데스나이트를 만들 것도 아니고 말이야. 후후후~~’
그렇다.
대화를 나누기엔 사념체로 충분했다.
‘그래서요?’
‘……그렇게…… 된 것이지. 난 그를 통해…….’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책에 남……겨 놨어.’
연구실에 들어간 지 벌써 사흘이 지나고 있었다.
선우는 72시간 동안 잠도 자지 않은 채, 셰익스피어와의 대화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났다.
선우가 소환했던 셰익스피어의 사념체는 일주일이 되자 소멸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짧은 만남이었지만 선우는 크나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와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경험이자 가르침이었다.
“좋아. 완성했어.”
세바스찬 램지 경과 약속한 논문은 물론 그의 차기작 <셰익스피어 코드>의 플롯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참고로 그의 차기작 <셰익스피어 코드>는 무려 2,000페이지에 이르는 장편 추리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