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59화 (59/187)

◈ 제 59화

59화 톰 제라즈

“여기 아까 왔던 곳이잖아.”

“으, 응?”

설연은 짐짓 모른 척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럼 두 번째인가?”

“죽을래? 이번이 세 번째 거든.”

“헤헤헤~ 그랬나?”

“그래. 너 정…….”

“이제 끝이야.”

“엉? 진짜?”

끝이라는 말에 갑자기 힘이 나는지 선우는 한결 밝아진 얼굴이다.

“응. 나~ 이 옷으로 결정했어.”

설연의 음성을 들었는지, 눈치 빠르게 매장 직원이 다가왔다.

“그 옷이 마음에 드시나요?”

“네. 아주 마음에 들어요.”

“우리 손님~ 운이 아주 좋으시네요.”

“네?”

“그 아이. 딱 10분 전에 저희 매장에 입고된 신상이랍니다. 아주 운이 좋으셨어요.”

“어머~”

“그러니까요. 호호호~”

“어머머, 이게 정말 살바토레 라이몬디가 디자인한 옷이라고요?”

“네에~ 이 옷으로 말씀드리자면 그 살바토레 라이몬디가 한 땀 한 땀…….”

“아~~ 아!!”

두 사람은 마치 오래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친구처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우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할게요. 얼마죠?”

“네, 손님. 가격은 38,000불입니다.”

“38,000불이요?”

“네, 아까 설명드린 것처럼 이 옷은 살바토레 라이몬디가 디자인한 한정판 원피스예요. 저희 매장에 딱 한 벌뿐입니다. 다른 곳에선 구할 수도 없어요. 손님.”

“이제 보니 별로네요.”

“엥?”

설연은 너무 비싼 가격에 선우의 반응을 보지도 않고 총총걸음으로 매장을 나섰다.

“왜? 아까 맘에 든다고 했잖아.”

“다시 보니까 별로인 듯. 선우야. 아까 본 버버리 매장으로 가자. 거기 옷이 예쁜 것 같았거든. 빨리 와.”

선우는 버버리 매장으로 서둘러 이동하고 있는 설연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훗~~’

옷 한 벌에 38,000불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 가격이었지만 사실 선우가 가진 재력을 보면 문제되는 가격이 아니다.

“저기요.”

“네, 손님.”

“아까 그 옷, 계산해 주세요. 그리고 저쪽에 있는 가브리엘 호보백도 하나 주시고요.”

가브리엘 호보백은 어머니 수연이 부탁한 것이다.

선우가 지갑에서 신용 카드를 내밀자 매장 여직원이 깜짝 놀랐다.

‘어머? 이거 아멕스 블랙 카드잖아!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물을 보긴 처음이네.’

여직원은 선우가 블랙 카드를 소유한 사람인 줄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한 부자로 보기에 옷차림이 단출했기 때문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예쁘게 포장해서 드릴게요.”

“그러세요.”

여직원이 포장을 하는 사이,

매장 안으로 매끈하게 뻗은 두 다리와 볼륨을 드러낸 한 여인이 들어왔다.

큰 선글라스를 착용한 덕에 얼굴을 반이나 가렸지만 그녀가 엄청난 미녀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

“이 매장에 살바토레 라이몬디의 한정판 원피스가 들어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네.”

직원의 말에 여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마치 매장 전체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바로 결제할게요. 어서 주세요.”

하지만 매장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 손님. 죄송하지만 방금 전에 팔렸네요.”

“뭐라고요?”

방금 전에 팔렸다는 말에 그녀는 기가 차는 듯했다.

“방금 전에 팔렸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죄송합니다. 손님.”

“좀 전에 분명 들어왔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구해주세요.”

손님의 요구에 직원은 꽤 난처한 표정을 보였다.

“아시다시피 한정판은 예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죄송합니다. 손님.”

한정판은 그 이름 그대로 한정판이다.

개수는 정해져 있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다수인 관계로……. 게다가 구매를 원하는 이들 모두가 나름 한가락씩 하는 인물들이었기에 예약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복불복(福不福), 운이 좋으면 구할 수 있고 운이 없다면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니콜, 무슨 일이야?”

이때, 그녀의 등 뒤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순간에 불과했지만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톰!”

“톰 제라즈와 니콜 랜드먼이잖아.”

-웅성웅성!

“톰, 잠시만.”

마침 니콜 랜드먼의 눈에 무언가를 예쁘게 포장하고 있는 다른 직원의 모습이 들어왔다.

“매니저 님.”

“네, 니콜 랜드먼 씨.”

“방금 전에 팔렸다고 했는데. 혹시 저분인가요?”

매니저는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군요. 저분이군요.”

니콜 랜드먼의 시선이 선우를 향했다.

명탐정 스타일의 검은색 뿔테 안경에 모자를 눌러 쓴 선우의 모습은 언뜻 보면 상당히 수상쩍었다.

‘뭐지? 혹시 저 사람도 유명인인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정판 드레스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녀의 인사에 선우 역시 인사를 받았다.

직원과 그녀가 나누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름 들리지 않게 소곤거리는 목소리였지만 마법사 그것도 베리우스 연공법을 수련해 감각마저 무척이나 뛰어난 선우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저 아시죠?”

“네.”

톰 제라즈와 니콜 랜드먼 부부를 모른다면 바보일 것이다.

“죄송하지만 그건 제가 꼭 사고 싶은 드레스였어요. 제가 50,000불 드릴게요. 양보해 주시면 안 될까요?”

“……?!”

만약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할리우드 스타의 부탁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죄송해요. 거절하겠습니다.”

“10만 불 드리죠.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매력적인 중저음을 소유한 톰이 두 사람의 대화에 참여했다.

“……!!”

이것 참 곤란하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톰은 선우가 좋아했던 배우였고 그리고 지금 저들의 태도는 상당히 정중하기까지 했다.

싸가지가 없었다면 할리우드 배우이건 뭐건 간에 단호하게 거절했을 텐데 말이다.

“니콜 랜드먼?”

익숙한 음성에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두 눈을 크게 뜬 설연이 보였다.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는 선우를 찾아 그녀가 다시 매장을 찾은 것이다.

“톰 제라즈?! 꺄악~~~!! 어, 어떻게? 저 두 분의 팬이에요!”

“……험?!!”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한때 10만 불(?)까지 올라갔던 한정판 드레스의 가격은 설연의 적극적인 양보로 인해 그냥 원래 가격을 지불하는 것으로 니콜 랜드먼의 손에 들어갔다.

선우와 설연은 그 덕에 톰 제라즈 부부와 식사를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톰 제라즈와 니콜 랜드먼.’

선우의 기억에 따르면 두 사람은 몇 년 후에 결별하게 된다.

그 후 톰은 몇몇 여배우와 염문을 뿌리다가 케이티 오마즈라는 여배우를 만나 재혼을 하게 되는데 종내는 그녀와도 헤어진 것으로 기억났다.

네 사람은 식사를 하는 도중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톰 제라즈와 니콜 랜드먼은 선우가 가지고 있는 방대한 지식과 식견에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선우를 바라보는 니콜 랜드먼의 눈에서 강한 흥미가 느껴졌다.

“그런데 선우 동생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어느 순간부터 톰이 선우를 향해 동생이라고 칭한 것이다.

톰과 같은 할리우드 스타는 항상 주위의 눈을 의식해야 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따를 텐데, 그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 초월한 듯했다.

“부모님이 재벌인가?”

“아니요.”

“그럼 귀족이나 왕족?”

“둘 다 아니에요. 우리 선우는 작가예요.”

“작가? 어떤 작가?”

설연의 대답에 톰 제라즈의 눈빛에도 강력한 호기심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작가가 블랙 카드를 소유했다는 말이야? 대체 무슨 소설을 썼는데?”

톰의 질문에 설연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후후후~ 그건 말이죠.”

잠시 후,

톰과 니콜의 입에서 각각의 경탄성이 흘러 나왔다.

“헐~”

“대박!!”

두 사람은 방금 들은 이야기가 믿어지지가 않는 듯, 뚫어져라 선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름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들 부부의 이러한 관심은 선우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선우 동생, 그게 정말이야?”

“뭐…… 네.”

선우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큭! 그만 좀 보세요. 톰.”

선우는 넋 놓고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톰 제라즈를 향해 그만 멋쩍게 웃어 버리고 말았다.

“아아~ 미안. 내가 실수했네.”

“정말 대단해요. 선우 씨가 바로 이태리 작가였군요.”

“네, 니콜.”

“아이들이 좋아할 거예요. 이따 사인 좀 해주세요.”

“그래! 나도 사인 좀 받아야겠는걸.”

“그건 저도 마찬가지죠. 저희에게도 두 분이 사인해주셔야 해요.”

-씨익!

-씨~~~익!

네 사람은 한층 더 가까워진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잔을 채웠다.

“불사조의 기사단은 나도 봤어. 아주 재밌던데? 주인공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설연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었어.”

“고마워요. 톰.”

“혹시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할 생각이 있어?”

“네?”

느닷없는 제의에 설연이 깜짝 놀랐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 그게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야.”

“그럼요.”

“불사조의 기사단에서 보여준 연기도 무척이나 좋았지만 사실 설연이면 꽤 예쁘잖아. 동양과 서양 간에 미에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그것도 기준 이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남자는 미녀 배우를 좋아해. 아!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고~ 우리 니콜이 훨씬 예쁘니까 말이야.”

“워, 워~ 워~~ 다 인정할 수 있지만 마지막 말은 인정하지 못하겠는데요.”

“어딜! 우리 니콜이 더 예쁘지!”

“우리 설연이 더 예쁘거든요.”

“아냐, 우리 니콜이…….”

“우리 설연이……!!”

사실 두 사람의 미모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동서양의 차이, 서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이참, 이제 그만해요.”

“그래. 선우야. 그만해. 부끄럽다고.”

“애들도 아니고,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야?”

두 여인은 각자의 파트너를 구박했지만 두 사람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오케이, 그럼 둘 다 엄청나게 예쁜 걸로. 콜?”

“콜~!!”

톰은 동네 오빠와 같은 편안한 미소를 보이며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내 에이전시 번호야. 한번 연락해봐.”

“고, 고마워요.”

<태리 포터> 시리즈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벤트성 출연이지 본격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톰 제라즈의 에이전시라면 얘기가 달랐다.

“고마워요. 톰.”

“저도 고마워요. 톰.”

선우 역시 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톰은 두 사람의 인사에 겸연쩍었는지 손사래를 쳤다.

“힘든 것도 아닌데, 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네 사람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톰~ 톰은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액션이 나오는 건가요? 그리고 절대 대역 배우를 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사실이에요?”

“맞아. 사실이야. 그리고 난 절대 CG를 쓰지 않아.”

“왜요?”

“CG를 쓰는 것과 실제 액션 연기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거든. 액션 영화가 마치 애니메이션이 되는 느낌이랄까? 기술이 더 발달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직은 CG를 인정하기 싫어.”

“힘들지 않아요?”

“후후후~ 당연히 힘들지. 나 역시 인간인지라 몸놀림이 예전과 다르니까…… 그래서 늘 노력하고 있어.”

“음!!”

살짝 너스레를 떨었지만 선우는 톰 제라즈의 눈빛에서 그의 진실됨과 함께 끊임없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 니콜이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우리 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저도 좋아요.”

서로의 니즈를 충족한 네 사람은 모두들 행복한 미소를 보이며 사진을 찍었다.

“이번엔 저랑 둘이 찍어요.”

“오케이~~”

니콜과 설연, 설연과 톰, 선우와 니콜, 선우와 톰…….

이렇게 각각의 사람들은 서로의 파트너를 바꿔가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고 사인을 교환했다.

이것 참, 한정판 원피스 한 벌로 인해 좋은 인연과 함께 과분한 선물을 받은 것 같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선우는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