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58화 (58/187)

◈ 제 58화

58화 설연과의 데이트

선우는 오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태리 포터와 삼족오 기사단>의 영화 개봉에 맞춰 주요 출연진 전원이 할리우드에 왔기 때문이다.

극장 정문에는 팬 사인회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지 이미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앗. 저기 있다.”

“꺄아아악~ 태리다, 태리 포터가 왔어.”

“조르미온느가 보여.”

“여기 봐요, 태리~~”

팬들 중의 누군가가 극장 정문으로 들어오는 고급 승용차를 발견하고는 소리쳤고, 그것은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그 뒤를 이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고급 승용차들이 모습을 나타냈고 수십 명의 경비원들이 달려와 바리게이트를 쳤다.

“모두 물러서요.”

“거기! 뒤로 물러나요. 잘못하면 다칠지도 모르니까.”

경비들이 고함을 지르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선우는 조용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곧 발걸음을 뒷문으로 옮겼다.

“어서 와. 선우.”

극장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금발의 여인이 반가운 얼굴로 달려왔다.

수앤 캐슬린 롤링이다.

“반가워, 수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

-웅성웅성!!

수앤과 함께 등장한 동양인의 모습에 배우들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다.

“저 남자는 누구지?”

“방금 수앤 작가님의 얼굴 봤어?”

“응, 굉장히 반가워하던데?”

이때, 익숙한 음성이 선우의 이름을 불렀다.

“선우야~”

“으허허헉~”

선우가 피할 틈도 없이 설연이 달려오더니 순식간에 그를 끌어안았다.

“뭐야? 설연의 애인인가?”

“그런 것 같은데?”

한편 수앤은 선우에게 박스 오피스 관련 자료들을 꺼내어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것 봐, 선우.”

“그게 뭔데?”

“오프닝 스코어! 이 숫자 봤어? 지금 장난 아니야. 평점도 무지 높게 받았다고~”

“훗~ 그것 봐. 수앤. 내가 3편보다 더 성공할 거라고 했지?”

“호호호~ 그러게 말이야. 참! 내 정신 좀 봐. 여러분, 잠시만요.”

수앤이 배우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미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여러분들에게 저와 함께 <태리 포터>를 만든 이태리 작가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수앤은 선우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이태리 작가님은 라가치 상을 비롯해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녀는 마치 선우의 대변인이 된 양, 쉴 새 없이 선우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태리 작가?!”

“저 남자가 이태리 작가라고?”

“……대박!”

“히야~ 비주얼이 장난 아닌데?”

“저 독보적인 분위기는 대체 어떻게 할 거야?”

“호호호~ 난 인터넷 검색해서 이미 알고 있었지.”

저 멋진 동양인이 수앤과 함께 <태리 포터> 시리즈를 만든 이태리 작가라는 사실에 배우들의 눈빛이 변했다. 특히 선우를 바라보는 여배우들이 눈빛에는 묘한 빛마저 흐르기도 하였는데 설연의 철벽 방어(?) 덕인지 아직까지 대놓고 들이대는 여배우는 없었다.

“알았어.”

“정말이지? 호호호~”

“그래. 알았으니까 이제 내 팔 좀 놔라.”

“그건 안 돼!”

“왜?”

“쟤들 눈빛 안 보여?”

“……!”

“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붙어있으니까 쟤들이 지금 눈치만 보고 있는 거라고.”

“……쩝!”

그녀의 달달한 표정 공격에 선우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다음 날,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곳은 LA 다저스 경기장 앞이다.

미국이라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태리 포터와 삼족오 기사단>이 역대급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었기에 설연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무장을 하고 나왔다.

선우 역시 모자에 코난 안경까지 착용했다.

“대한민국~~”

“이찬호 선수, 파이팅~~~!!”

LA는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더욱이 이찬호 선수의 영입으로 표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오늘 경기 역시 표가 매진되었다고 했는데, 전화 한 통에 단번에 해결되었다.

역시 블랙 카드의 위력은 다르다.

8회가 진행되는 동안, 치열한 타격전보다는 긴장감 넘치는 투수전이 이어졌다.

선발투수로 출전한 이찬호 선수는 지금까지 안타 2개, 볼넷 1개를 기록하며 무실점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거 오늘 잘하면 이찬호 선수가 완봉하겠는데?”

“완봉이 뭐야?”

“야구에서, 한 투수가 한 경기를 끝까지 던지는 동안 상대 팀에게 전혀 득점을 주지 않고 게임에서 이기면 완봉했다고 해. 물론 게임에서 이겨야 하지만 말이야.”

“아~ 그렇구나.”

선우의 말을 금세 이해했는지 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야. 넌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거야.”

“웬 뜬금없는 소리?”

“나처럼 예쁜 여자와 야구장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잖아. 쇼핑이 아니고 말이야. 호호호~~”

“그렇군. 그러고 보니 설연이 너도 나라를 구한 것 같아.”

“왜? 널 만나서?”

“아니! 너 얼굴이 장군감이잖아. 진짜 나라를 구했을 것 같아서.”

“우이쒸! 너 죽을래?”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경기를 즐겼다.

경기는 이제 9회 초에 접어들었다.

현재 점수는 0:0.

홈팀인 LA 다저스가 공격을 시작한다.

웨스턴 클레멘스.

최대 98마일의 빠른 공과 명품 슬라이더를 구사하는 193cm의 우완투수.

그는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선발투수다.

-부웅!

“스트라이크!”

96마일의 강속구가 홈플레이트 외곽을 슬쩍 걸쳐 들어왔다.

9회에도 96마일이라니, 아무래도 그의 컨디션 역시 여간 좋은 것이 아닌 듯싶다.

“선우야. 이번에 LA가 점수를 못 내면 어떻게 돼?”

“LA가 점수를 내는 것과 상관없이 경기는 일단 9회 말까지 진행돼. 그리고 9회 말에 상대팀이 점수를 내면 그걸로 끝이야.”

“상대팀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

“그럼 연장전이지.”

“아! 연장전. 히잉~ 이번에 제발 점수를 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찬호 선수가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던지지.”

설연의 반응에 선우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걱정 마. LA가 꼭 이길 거야.”

“정말?”

“그럼~~ 너랑 나랑 이렇게 응원하고 있잖아.”

“헤헤헤~~”

어느새 두 명의 타자가 바뀌었고 마크 피아자가 타석에 나타났다.

“설연아. 우리 그런 의미에서 기도해 볼까?”

“기도?”

“응. 이찬호 선수의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 말이야. 두 눈 꼭 감고! 어때?”

“좋아~~”

선우의 제의에 설연은 기꺼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하느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우는 조용히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클레멘스.’

-우우우웅!!

다음 순간,

선우의 저주 마법이 클레멘스를 덮쳐 그의 모든 신체적 능력을 하향시켰다.

그리고 마크 피아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따악!!

“우와아~~”

88마일의 밋밋한 직구가 들어오자 마크 피아자는 주저 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의 솔로 홈런이 터지며 경기는 LA 다저스가 1: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9회 말.

다저스의 마지막 수비다.

첫 타자는 중견수 플라이로 가볍게 잡았다.

하지만 누적된 투구 수로 인해 이찬호 선수의 구속 역시 많이 떨어져 있었다.

“볼.”

“……볼!”

“볼. 포볼!!”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오자 투수 코치가 이찬호 선수에게 다가갔다.

“찬호~ 괜찮아?”

“네, 코치님. 괜찮습니다.”

“무리하지 않아도 돼, 지금까지 잘 던졌어.”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더 던질 수 있습니다.”

“그래?”

투수 코치는 잠시 뭔가를 고민하는 것 같다.

그를 계속 던지게 할 것인가? 아니면 교체할 것인가!

적절한 교체 시기였지만 메이저리그 데뷔 이래 첫 완봉승을 눈앞에 둔 그를 무작정 내릴 순 없었다.

“어머, 교체할 건가? 이찬호 선수가 계속 던졌으면 좋겠는데…….”

‘흠! 이번엔 이찬호 선수를 좀 도와줄까?’

때마침 투수 코치가 이찬호 선수에게 공을 넘겼다.

“좋아, 대신 안타 하나 맞으면 바로 교체시킬 거야.”

“감사합니다. 코치님.”

-와아아!!

공이 다시 이찬호 선수에게 넘어가자 관중석에 모인 팬들이 그를 향해 환호성과 함께 큰 박수를 보냈다.

선우는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는 사이, 다시 한 번 수인을 잡았다.

‘큐어!’

-우우우웅!

회복력을 품은 빛이 이찬호 선수를 향해 날아갔다.

작렬하듯 내리쬐고 있는 태양 덕에 어느 누구도 큐어 마법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찬호~”

“이찬호~ 이찬호. 플레이 플레이 이찬호!!”

사람들의 응원 소리와 함께 이찬호 선수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순간이지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뻐근하게 느껴졌던 어깨 근육이 시원해지며 온몸에 힘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설마 응원의 힘인가?”

이찬호 선수는 그를 응원하고 있는 관중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선우는 설연을 향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찬호 선수, 오늘 완봉승 각이다.”

“정말?”

“응.”

여담이지만 이날 경기 후,

MVP 선수로 뽑힌 이찬호 선수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팬들의 응원 소리에 힘이 다시 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의 완봉승은 절 응원해주신 관중 여러분들의 힘입니다. 오늘의 승리를 여러분들께 바칩니다.

각설하고 선우의 호언처럼 이찬호 선수의 공이 바람을 가르며 스트라이크 존을 관통했다.

-팡!!!

“스트라이크!”

무브먼트가 살아있는 강속구!

다음 순간 151km라는 구속이 전광판에 찍히자 관중들 역시 흥분했다.

마치 경기 초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홀리 X!”

“오 마이 갓~~!”

-광!

-광!!!

“스트라이크 아웃!”

큐어 마법 덕에 구속을 회복한 이찬호 선수는 결국 9회를 막아내며 완봉승을 거두게 되었다.

“와~~ 이겼어.”

“거 봐~ 내가 뭐라고 그랬어!”

설연의 환호에 선우는 느긋이 입을 열었다.

역시 승리의 짜릿함은 최고다.

한편 경기장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다음 데이트 코스로 쇼핑센터를 찾았다.

“휴우…….”

선우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이놈의 쇼핑은 도무지 끝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선우야, 이건 어때?”

“예뻐.”

“선우야. 이건?”

“어울려.”

“선우야~ 선우야~~”

왜 여자들은 옷을 한 번에 사지 못할까?

같은 매장을 왜 몇 번씩이나 들러야 할까?

그 유명한 심리학자 프로이트도 죽을 때까지 여자의 마음에 대해선 자신도 정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 착잡한 심정으로 복도를 따라 걸어가고 있는 와중에 몇몇 커플과 눈이 마주쳤다.

‘살아남으세요. 파이팅.’

‘언제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흑! 건승하십시오.’

‘저기요.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어요.’

그것은 마치 오래된 전우를 만난 것과 같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기분이었다.

‘나……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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