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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마법 작가다-56화 (56/187)

◈ 제 56화

56화 3서클의 흑마법사

누군가의 세찬 숨소리가 런던의 어둠을 깨운다.

100미터 단거리 선수인가?

가파른 언덕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남자의 모습은 다분히 인상적이었다.

허벅지가 터질 듯, 수축했지만 남자는 결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헉. 헉. 헉!!”

선우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극한의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극한의 고통 이후에 찾아오는 달콤한 열매가 수련을 멈출 수 없게 하는 이유였다.

그렇게 30분을 더 달린 선우는 공동묘지에 도착했다.

그것도 인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장소다.

“후우…… 후우!”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베리우스 마나 연공법을 시행하자 혈맥을 따라 움직이는 마나에 의해 모든 것이 투명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풀 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들려오는 동물의 싸한 울음소리가 묘지의 음침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다.

마나는 자연을 이루는 근원적인 힘이다.

그리고 근원은 마나의 속성을 차별하지 않는다.

어둠 역시 자연을 이루는 속성.

공동묘지의 풍부한 사기(邪氣) 역시 마나로 변해 선우를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선우는 자신이 지금 각성의 경지에 들었다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마나는 곧 선우의 심장에 흡수되었다.

마침내 세 번째 서클이 그의 심장에 만들어진 것이다.

각성이란 종종 자신의 의지나 의식과 상관없이 때가 되면 나타난다.

임계점이라는 말이 있다.

임계점은 방아쇠의 원리와 같다.

일정 수준 이상 방아쇠를 당겨야 총알이 발사되는 것이다.

총알이 발사되지 않을 만큼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은 결코 발사되지 않는다.

물 역시 마찬가지다.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려놓아도 물은 100도가 되기 전에 끓지 않는다.

즉 100도라는 임계점에 도달해야 비로소 물이 끓는 것이다.

일상생활과도 같았던 선우의 꾸준한 수련이 결국 임계점을 넘겨 3서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1서클이 입문의 단계라고 한다면, 2서클은 이제 막 초보 딱지를 뗀 마법사다.

3서클은 돼야 마법사라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4서클이 되면 마탑에 들어가거나 귀족 작위를 받을 수 있다.

5서클의 마법사는 왕국의 백작 혹은 제국의 자작 작위를 얻을 수 있다.

6서클 혹은 7서클부터는 고위 마법사라 불리며 왕실 마법사가 될 수 있다.

8서클 마법사는 왕국의 공작 또는 제국의 후작 작위를 받을 수 있으며 마탑의 주인이 되거나 스스로 마탑을 세울 수 있다.

9서클 마법사는 현존하지 않고 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흑마법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악(惡)이다.

사실 많은 흑마법사들이 사악한 심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둠의 마나를 다루어서가 아닌, 흑마법에 발을 들여놓는 자들의 절대적 다수가 누군가 혹은 사회 전체에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원한으로 인해 비뚤어진 자들에게 강력한 힘이 결합되었다.

작게는 개인의 원한을 해결하기 위해 사건과 사고를 일으켰고 때로는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음모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곧 흑마법사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오게 했다.

하지만 칼은 어떻게 쓰는냐가 중요한 것이지 칼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선우는 흑마법을 익혔지만 스스로를 단 한 번도 악(惡)하다 여기지 않았다.

과거 이계에서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다.

마법사는 본래 진리를 탐구하는 자요, 그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는 자이기 때문이다.

-번쩍!

3서클의 경지에 발을 들인 선우가 마침내 눈을 떴다.

심장을 중심으로 강력한 파동을 그리는 세 개의 서클에 그의 얼굴이 확 펴졌다.

그 모습은 마치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의 표정과 진배없었다.

“……믿을 수가 없네. 스승님의 수련법 덕분인가?!”

마나에 대한 높은 이해도, 과거 그가 경험했던 경지.

여기에 베리우스 마나 수련법의 효과가 더해진 결과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삼박자가 완벽한 조합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선우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고 몸을 일으켰다.

“이미 수없이 행해왔던 절차이니…… 본격적으로 연습해볼까?”

선우는 3서클 마법의 수인을 익히며 서서히 마나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이제 막 3서클의 경지에 발을 들여 놓은 비기너(Beginner)의 경지였지만 그의 모습은 고위 마법사의 그것과 유사했다.

-우우우웅!!

마치 시각과 청각이 마비된 듯,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듯, 선우는 오로지 수인을 맺고 익히고 마나를 끌어모으는 것에만 집중했다.

우선 현혹(호감을 가지고 있거나 정신력이 낮은 인간을 조종한다.) 마법과 다크 핸드(손에 어둠의 속성을 가미해 상대를 기습한다.) 그리고 핸드 오브 데스(손에 사기(死氣)를 서리게 하며 손에 닿은 이의 생명력을 깎는다.) 마법을 익혔고 여기에 좀비 생성(시체를 이용하여 최하급 언데드인 좀비를 만든다.)과 스켈레톤 생성(뼈를 이용해 하급 언데드인 스켈레톤 병사를 만든다.) 마법을 연습했다.

이외에도 몇 가지 흑마법을 더 익혔지만 후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각설하고 이날부터 선우는 수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침식을 잊을 정도로 수련에 몰두한 끝에 꼬박 열흘 만에 그가 원하는 마법의 수인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다크 핸드!”

-퍼억!

성인 허리둘레 크기인 나무의 중간이 푹 파여 들어갔다.

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선우가 만면에 희열을 떠올리며 서 있었다.

“좋아. 그럼 이번에는…….”

-쓰쓰쓰.

세 개의 고리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좀비 생성, 스켈레톤 생성.”

선우의 말이 끝나는 순간,

공동묘지의 무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력의 부족으로 인해 좀비 한 구와 스켈레톤 한 구가 생성되었는데,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는 좀비의 모습으로 일어섰고 죽은 지 오래돼 뼈만 남은 시체는 스켈레톤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뒤로, 빠른 걸음, 제자리 뛰기, 공격과 방어.

선우는 두 구의 언데드를 이용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3~40분이 지나자 두 구의 언데드는 마나의 고갈로 인해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허물어졌다.

“마법 스태프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선우는 아쉬운 듯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다음 날 오전.

묘지 관리인 토마스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이런 젠장! 내가 그래서 들개들 좀 잡아가라고 얘기했잖아.”

그의 눈에 비친 무덤은 들개들에 의해 파헤쳐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좀 전에 똥개 한 마리가 뼈를 물고 가던데, 그게 여기 뼈였군.”

무덤 주인에게 연락을 취할 생각을 하니, 토마스는 절로 머리가 아파왔다.

그로부터 며칠 후,

몇몇 국내 기업들이 거액을 투자받았다는 소식이 9시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마음, 영국 HSBK 그룹 계열 투자 회사로부터 600만 달러 투자 유치>

-

-<성삼 전자, 3,000만 달러의 해외 자본 유치 성공>

그리고 그 시각 선우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여기가 PJ 모건인가?’

빌딩 전면에 JP라는 영문이 번쩍이고 있다.

세르조이는 낡은 안경을 추켜올렸다.

평생 좋아하는 컴퓨터만 만질 줄 알았지 자신이 투자회사에 오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왠지 주눅이 드는 느낌이다.

선뜻 들어갈 용기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하고 돌아갈 순 없었다. 그의 동료이자 절친인 롤리 역시 지금쯤이면 투자자들을 만나고 있을 것이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노먼 씨와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21층으로 가세요.”

“……!”

모델 뺨치게 생긴 안내원이 올라가라고 말한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는 안내원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허둥지둥 걸음을 옮겼다.

21층에 올라가자 근사한 양복을 빼입은 사람들로 한가득이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세르조이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봐, 롤리. 투자자는 구했어?”

“아니, 투자자를 구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네. 넌 어때?”

“마찬가지야.”

“알트라비스타(altravista)와 야호에서는 뭐래?”

“분명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답이 없어.”

“젠장! 우리가 너무 비싸게 불렀나?”

“…….”

“밥은 먹었어?”

“아니. 너는?”

“……나도 아직.”

한편 공항에 도착한 선우는 택시를 타고 스탠포드 대학으로 이동했다.

“호오~ 여기가 그 유명한 스탠포드인가?”

선우는 대학 안내 책자를 찾아 자신 있게 펼쳤다.

“헐?!!”

그 역시 스탠포드가 세계적인 대학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는데, 지도만 보고 그들을 찾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세르조이 브린과 롤리 페이지.

이들은 구글의 개발자이자 창업자이며 지금 선우가 찾고 있는 사람들이다.

생각나는 건 두 사람이 스탠포드 재학 중에 구글을 만들었다는 사실뿐이었다.

“안녕하세요.”

낯선 동양인 녀석의 인사에 학생들이 당황하는 표정으로 선우를 쳐다본다.

일부는 경계의 눈빛을 보이기도 했지만 곧 선우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 휩쓸려 어느새 호감을 나타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내가 미쳤나? 이 동양인 왜 이렇게 멋있어 보이는 거지?’

“실레지만 여러분들 중에 롤리 페이지 또는 세르조이 브린을 아시는 분이 있나요?”

선우의 질문에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롤리 페이지요? 잘 모르겠는데요.”

“여기 스탠포드 학생인가요?”

“네. 스탠포드에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과죠?”

“음! 그것 역시 잘 모르겠네요.”

이때, 누군가가 무릎을 탁 쳤다.

“아~ 세르조이 브린!! 그 친구 혹시 컴퓨터 잘하는 친구죠?”

“네, 맞아요. 컴퓨터 잘하는 친구.”

빙고~!!

세르조이 브린을 찾은 것 같다.

“그 친구는 학부생이 아니라 대학원생이에요. 저기, 저쪽에 있는 건물 보이시죠?”

남자의 손가락이 푸른색의 네모난 건물을 가리킨다.

“거기가 대학원 기숙사니까 그리로 가보시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이와 같은 시각,

“이봐, 롤리. 오늘도 무소식이야?”

“한 곳에서 연락이 오긴 했어.”

“그래? 거기가 어딘데?”

“야호.”

“와우~ 야호라니, 대단한데!! 야호에서는 뭐래?”

“비싸대.”

“비싸?”

“응.”

“와!! 그건 아니지. 구글 서비스를 통째로 넘겨주겠다는데, 뭐가 비싸? 만약 그게 비싸다고 하는 놈들이 있으면 그놈들이 완전 도둑놈이야!!”

바로 그때,

낯선 동양인 하나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러게요. 저 역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훗날 구글의 두 창업자는 이 날의 만남을 운명적인 만남이었다고 자서전에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한국에서는 이때를 기점으로 선우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사회에 크고 작은 스캔들이 연이어 터졌기 때문이다.

A급 연예인들도 브라운관에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천재 작가의 탄생과 그의 대필 논란 그리고 때 아닌 생방송은 선우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언론에 일절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의 행보로 인해 지금은 이렇게 사그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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