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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마법 작가다-55화 (55/187)

◈ 제 55화

55화 일상으로의 초대

“미스터 최?”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비밀 서고 앞에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선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술원 서고에 있는 모든 책과 문서들은 영국의 국보라 할 수 있는 보물입니다. 서고 안에서만 열람이 가능하니 조심히 다루어 주십시오. 참고로 보안을 위해 어떠한 종류의 전자 기기 역시 소지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남자의 말에 선우는 소지하고 있던 전자 기기와 휴대폰을 보관함에 넣었다.

“노트와 펜 종류는 괜찮겠죠?”

서류 가방을 확인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그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두꺼운 문이 나타났다.

-띡…… 띡띡 띡!

ID 카드를 시작으로 홍채 인식과 보안 번호를 입력하자 마침내 서고의 문이 열렸다.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선우는 서고 안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하얀 장갑을 낀 선우가 두꺼운 책을 꺼내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서책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백 년 된 책이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다니, 놀랍군.”

아마도 학술원 측에서 책이 상하지 않게 최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 덕분일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

김포공항 입국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저기다. 저기 최규용 대표다.”

“이태리 작가는? 이태리 작가만 안 보이는데?!!”

“세 명이 다야.”

“대표님! 최규용 대표님!!!”

한국에 도착한 규용은 입국장을 찾은 몇몇 기자들 때문에 기자회견을 갖게 되었다.

보름 전과 비교하면 선우에 대한 관심이 많이 사그라졌긴 했지만 아직까지 관심이 남아있었다.

“자아~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무튼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안일보의 신재완 기자입니다. 아드님은 현재 영국에 머물고 계시는 겁니까?”

“공적인 자리의 공적인 질문이니 작가님이라는 표현을 써주셨으면 좋겠네요.”

“아! 실례했습니다. 질문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이태리 작가님은 현재 영국에 머물고 계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작품 때문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두 가지 다입니다.”

“좀 더 자세히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일단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태리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아직 어린 학생입니다. 여러분들의 깊은 관심은 분명 감사할 일이지만 이번 대필 논란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은 것 역시 사실입니다.”

“……!”

“……!!”

-웅성웅성!!

“……그랬겠지.”

“하긴 너무 심했어.”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규용의 말이 이어졌다.

“생방송을 통해 이태리 작가에 대한 대필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태리 작가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은 여전히 활동 중에 있더군요.”

규용의 말처럼 그들은 생방송 역시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며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끊임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다.

진실을 말해주고 진실을 증명해줘도 믿지 않는 사람들.

이미 몇 번의 내용증명을 통해 비방을 멈추라고 권유했지만 당최 들어먹질 않았다.

“그럼 <이진요>에 법적인 조치를 취하실 생각인가요?”

“네. 로펌을 통해 저희가 취할 수 있는 민형사상의 모든 법적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렇군요. 참, 이태리 작가님은 그럼 언제쯤 귀국하실 예정입니까?”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영국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대표님. 최규용 대표님~~”

“네, 저쪽에 빨간 넥타이 매신 기자님. 네! 질문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동국일보의 양세찬 기자입니다. 지금 분위기가 조금 무거운 것 같아서요. 분위기도 바꿔볼 겸, 이태리 작가를 응원하는 독자들이 보내주신 몇 가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현재 이태리 작가님에게 애인이 있습니까?”

“제가 작가 본인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버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여자 친구 정도는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하하~”

“호호호호~~”

규용의 재치 넘치는 대답에 실제 분위기가 좋아졌다.

“작가님이 좋아하는 여성상이 어떻게 됩니까?”

“……예쁘면 다 좋아합니다.”

“아이고! 대표님 여성상 말고요~ 아드님의 여성상을 말씀해 주십시오.”

“험험~ 눈치채셨나요?”

“네~~”

“후후후~ 저도 잘 모릅니다. 그건 패스하겠습니다.”

“집필하고 계신 소설마다 대박이 나고 있는데, 인세 수입은 대략 얼마나 되나요?”

“그것 역시 개인적인 질문이네요. 역시 패스하겠습니다. 나중에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십시오.”

규용은 기자들의 질문에 여유를 잃지 않으며 재미나게 답했다.

“이태리 작가님이 생방송 중에 집필하신 4편의 소설이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당연히 알고 있죠. 이미 계약서도 썼고 말입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일단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질문 드리겠습니다. 대표님은…….”

다음 날 오전,

선우는 HSBK 그룹 투자 전문가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요구했다.

“마음이요?”

“네. 1995년에 설립된 IT 기업으로 아마 작년에 한국 최초로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시작했을 겁니다.”

‘마음은 데이버가 등장하기 전까지 승승장구했지.’

선우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MC소프트라는 회사도 있습니다.”

“MC소프트?”

“네, 게임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곳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도 함께 진행해 주십시오.”

MC소프트는 조택진 대표가 1997년 3월에 설립한 게임 회사로 사업 초창기에는 꽤나 힘이 들었지만 1998년 11월 래니지 개발과 함께 PC방의 전국적인 확대로 인해 그야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는 기업이다.

“……성삼 전자는 저도 알고 있지만 마음과 MC 소프트는 처음 들어보는 회사군요.”

“방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둘 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기업입니다.”

“네, 신생 기업이군요.”

선우를 바라보는 왓슨의 표정이 묘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현재 한국은 IMF 상황입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말씀하신 세 기업 중에 성삼 전자를 제외하면 둘 다 신생 기업들입니다. 위험이 클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현재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두 기업의 가치는 매우 큽니다. 위기는 곧 극복될 겁니다. 그래서 지금이 바로 기회입니다.”

“……두 기업의 가치가 매우 크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작가님의 말씀은 불확실성이 가미된 예측입니다. 혹시 믿을 수 있는 정보나 다른 데이터가 있습니까?”

왓슨의 말에 선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불쾌하군요.”

“네?”

“우리 계약에 따르면…….”

선우의 말에 왓슨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투자에 관한 조언은 인정하지만 선우에게 기타 정보나 그에 따른 데이터를 요구한 것은 계약서에 위배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실수한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

사실 왓슨의 지적은 매우 타당했다.

한국의 신생 기업에 거액의 투자라니, 이것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우가 과거로 회귀해 두 기업의 미래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왓슨 씨의 조언을 십분 이해합니다. 또한 무엇을 걱정하고 계신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 믿고 제 지시에 따라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선우의 겸손한 말투에 왓슨은 절로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악수를 끝으로 왓슨과 헤어진 선우는 그 즉시 호텔로 돌아왔다.

-0082768997***

휴대폰을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

0082로 시작되는, 한국이었다.

선우는 즉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니?

“네, 엄마. 전화하셨었어요?”

-그래. 엄마야. 바빴어?

“무음으로 해놔서 전화를 못 받았어요. 한국엔 잘 도착하셨죠?”

-응. 우린 잘 도착했다.

“혜진이는요?”

-시차 적응한다고 집에 오자마자 뻗었어. 지금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

“그렇군요. 후후후~”

잠시 동안 부모와 자식 간의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수연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선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선우야.

“네.”

-영국에 계속 있을 거니?

“네. 당분간은요.”

-…….

대답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수연은 선우의 결정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있진 않을 거예요. 자주 연락드릴게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그래, 알았다.

“네, 엄마. 감사해요.”

-그동안 고생했다. 마음 잘 추스르고 좋은 글도 많이 써. 아들~

“네. 알겠어요. 엄마. 그래요. 네. 네.”

-밥은 꼭…….

“그럼요. 삼시 세끼 잘 챙겨먹을게요. 네. 엄마. 저도 사랑해요.”

수연과의 통화 후,

선우는 간단하게 옷을 갈아입고 호텔에서 나갔다.

런던 시내를 조금 거닌 것 같은데, 어느새 레스터 스퀘어에 있는 차이나타운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유럽 안에서도 꽤 유명한 차이나타운이었기에 선우는 곧장 발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하늘 위로 붉게 펼쳐진 홍등과 함께 여러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대로변의 화려함과는 그 격이 달랐지만 뭔가가 굉장히 이색적이었다.

“호오, 저건 꽤 멋진데?”

선우는 주변의 경치를 살펴보며 이따금씩 미소를 지었다.

그런 선우의 곁으로 몇 명의 여성들이 지나갔다.

모자를 깊게 눌러썼지만 여자들은 선우를 향해 힐끔힐끔 시선을 보냈다.

만약 그녀들이 모자에 반쯤 가려진 얼굴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봤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번호를 건넸을지도 모르겠다. 몇몇은 황홀경에 빠졌을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얼마 후,

선우는 푸근한 인상의 중년 아주머니가 주인으로 있는 노점상에서 탕면을 한 그릇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중국의 탕면은 우리의 라면과 비슷하며 중국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 중의 하나였다.

“와우~ 맛있네요.”

“호호호~ 그래요. 그럼 꼬치도 하나 먹어봐요. 이것도 맛있어요.”

“네, 그럼 하나만 주세요.”

“자~ 여기요.”

아주머니는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이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호호호~ 요즘 매일이 좋죠.”

“왜요?”

“그게 말이죠~~”

아주머니는 탁자 밑에서 태리 포터 소설을 ‘떡’하고 꺼내 보이더니 요즘 들어 이 책 덕분에 영국을 찾는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 덕에 자신의 수입 역시 크게 증가해 이렇게 웃는 날이 많아졌다고 기뻐했다.

“책은 읽어 보셨어요?”

“그럼요~”

“어때요? 책은 재밌나요?”

“아이고~ 손님. 손님은 아직 안 읽어 보셨나 보네. 이게 말이죠.”

아주머니는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다.

자신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그녀 역시 태리 포터의 골수팬이라고 했다.

선우는 아주머니의 칭찬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얼마 후,

탕면과 꼬치를 다 먹은 뒤에 선우는 아주머니에게 음식 값을 내밀면서 그보다 더 큰 선물을 주었다.

“아주머니, 그 책. 제게 잠시만 줘보시겠어요?”

“……?”

아주머니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선우에게 책을 건넸다.

선우는 펜을 꺼내 책 표지에 그의 사인을 넣어 아주머니에게 전해주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태리 포터의 작가, Terry Lee.

사인을 확인하고 당황해하는 아주머니를 향해 선우는 얼굴을 가렸던 모자를 벗어 본래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어머머!!!”

태리 포터의 골수팬답게 선우의 얼굴은 알아본 모양이다.

노점상에서 나온 선우는 런던 시내 곳곳을 걸으면서 오랜만에 가지는 자유 시간을 만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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