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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마법 작가다-52화 (52/187)

◈ 제 52화

52화 독수리와 아이(2)

수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준 덕에 선우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고 수인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우우웅!!

흑마법이 저들을 덮치자 왠지 이런 멘트가 선우의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띠링! 중독 마법에 의해 저들의 신체적 능력이 하락합니다.]

“하하하, 나 원 참. 영국에 와서 별 거지 깽깽이 같은 새끼를 다 보네.”

“뭐? 거지 깽깽이? 이런 미친 새끼가!”

그와 동시에 조셉의 주먹이 움직였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줄 작심을 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그의 예상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었다.

스피드가 현저히 떨어진 탓이다.

-짜악!

“악!”

궁극에 달한 귀싸대기 스킬이다.

이와 동시에 극통(極痛)을 호소하는 녀석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예상치 못한 친구의 비명에 옆에 있던 녀석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니들은 어떻게 할래?”

선우의 도발에 녀석들 역시 선우를 공격했다.

그러나 중독 마법은 조셉에게만 시전된 것이 아니었다.

-퍼억!

-따~악!

“크윽!”

“아악!!”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타격음과 함께 비명성이 튀어나왔다.

세 놈 모두 각기 얼굴, 복부, 허리 등을 부여잡고 탁자 위로 고꾸라지고 말았는데 가히 번개 같은 주먹질(?)이었다.

-우당탕탕!!

세 사람의 몸은 삽시간에 술과 안주로 뒤범벅됐다.

인간의 신체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라, 선우는 급소를 피해가며 세 녀석을 지긋이 밞아주었다.

“악!”

“아악!!!”

“아, 아파요. 이제 그만 때려요.”

몇 대 맞지도 않았는데, 어지간히 아픈지 애원마저 섞인 목소리다.

“자리가 없다고 해서 대우를 해줬더니 어디서 굴러들어 온 개뼈다귀들이 분수도 모르고 까불어. 모욕? 누가 누굴 모욕해. 동양인 비하에 모욕을 당한 것도 나고! 니들이 날린 주먹에 맞은 것도 나야.”

“……으…… 으…….”

“……그, 그게…….”

변명이라도 해보려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야수와도 같은 선우의 기세에 겁을 먹은 것이다.

‘젠장, 무슨 눈빛이 저렇게 무서운 거야.’

이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수앤이 나서서 선우를 만류한 것이다.

“선우.”

“응?”

“저들도 잘못을 깨달았을 거예요. 그러니 이제 그만 용서해 주세요.”

“…….”

수앤의 만류에 선우는 세 사람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선우의 시선이 닿자 세 사람의 얼굴에 진한 긴장의 기색이 서렸다.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모습, 마치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선우의 표정이 심드렁해졌다.

“꺼져.”

-후다닥!

선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독수리와 아이에서 모습을 감췄고 수앤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고 모든 소란이 잠잠해졌을 무렵, 백발의 노신사가 선우를 향해 다가왔다.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

“셰익스피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습니다.”

수앤은 백발의 노신사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열었다.

“……램지 경?”

“반가워요. 수앤.”

백발의 노신사 역시 수앤이 자신을 알아보자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책 잘 읽고 있습니다. 참고로 전 덤블도어의 팬이랍니다. 수앤.”

“어머머! 램지 경도 참. 호호호호~~”

‘램지? 혹시 세바스찬 램지?’

세바스찬 램지는 영국 정부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은 저명한 문학가로 선우는 도서관에서 그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실물을 보게 되자 감회가 새로웠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램지 작가님.”

“절 아시나요?”

“예전에 작가님이 쓰신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혹시 제 글 중에서 어떤 것을 읽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세바스찬 램지는 낯선 동양인이 자신의 글을 읽었다는 말에 흥미로운 눈빛을 보였다.

“1979년 작인 ‘잃어버린 아이들의 시간’과 1984년 작인 ‘무죄’를 읽었습니다.”

“허허허~”

작품의 이름은 물론 출판 년도까지 거침없이 말하는 모습에 세바스찬 램지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것은 호감이 넘치는 눈빛이었다.

* * *

세 사람은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음~!”

“어때, 맛있지 않아?”

“네. 정말 맛있네요!”

수프를 맛본 수앤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이렇게 맛있는 수프는 처음이에요. 런던에 이렇게 맛있는 레스토랑이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허허허허~”

영국 음식은 맛이 없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세바스찬 램지가 데리고 온 이곳의 수프는 정말이지 끝내줬고 그 덕에 세 사람은 좀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호오~ 그렇군. 베일 속에 가려진 이태리 작가가 바로 자네였어.”

“…….”

어차피 이태리 작가의 정체가 밝혀진 마당이다.

이는 시간문제일 뿐이지 곧 미국과 유럽에도 그의 정체가 알려질 것이 뻔했다.

아니! 이미 알려지고 있었다.

더욱이 상대는 그가 존경했던 작가가 아닌가?

정체를 숨길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리석은 녀석들 같으니…….”

아까 그 녀석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못마땅한지 세바스찬 램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저들의 무례는 내가 대신해서 사과하겠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니야, 자네는 충분히 사과받을 자격이 있네. 영국 문인을 대표해 다시 한 번 사과하지.”

“…….”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건가?

손자뻘인 선우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당당함이 서려 있었고 일종의 품격이 느껴졌다.

선우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고 그의 입가에는 언제부터인지 순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따뜻한 분위기 가운데 자연스럽게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아까…….”

램지의 말에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주장이 사실이란 말인가?”

“100% 확신할 수 없지만 꽤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나?”

“네. 그러죠.”

선우는 세바스찬 램지의 요청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가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먼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세바스찬 램지는 물론 수앤 역시 관심을 표했다.

“호오~ 그렇군. 자네 말이 타당해.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동양적 사상의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네.”

선우의 주장은 이러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타난 그의 철학적 사상은 동양의 오행설에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매우 독특하며 이색적인 가설이었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할 수 있었지만 선우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해 논란의 싹을 제거했다.

“일단 베니스의 역사를 기록한 스토리아 델라 베네치아(Storia della Venezia)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세바스찬 램지는 선우가 알고 있는 방대한 지식과 다양한 식견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베니스에 정착한 조선인, 아까 그 사람을 뭐라고 했지?”

“개성상인입니다.”

“그래. 그러니까 셰익스피어가 개성상인과 만났고 그를 통해 동양의 고전 설화와 오행설(五行說)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

“네.”

“하하하~ 놀랍군, 아주 흥미로운 가설이야. 만약 자네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줄 증거가 발견된다면 아마 영국 문학계가 발칵 뒤집히게 될 걸세.”

“……증거는 존재합니다.”

“뭐? 증거가 있다고?”

“네.”

선우는 세바스찬 램지의 반문을 짧게 일축했다.

“증거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영국 왕립 학술원 비밀 서고.”

“……!!!”

선우의 대답에 세바스찬 램지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셰익스피어.

그 이름이 가진 무게가 어떠한가?

영국 아니 전 세계 문학사에서 셰익스피어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선우의 가설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와 같은 시간,

공개적인 장소에서 선우에게 혼쭐이 난 조셉은 모멸감에 빠져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개자식, 결코 가만두지 않겠어.’

조셉의 뇌리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창밖을 보니 구름 속에 희미한 달이 이따금씩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호오, 이게 누구야?

“…….”

-잘난 작가님이 무슨 일이야? 혹시 약이 필요해?

빈정거리는 기색이 다분한 목소리다.

“혹시…… 사람도 죽여줘?”

-……!

조셉의 질문에 잠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런 얘기는 전화로 곤란한데.

“그럼 일단 만나지.”

-좋아. 장소는…….

남자는 조셉의 설명을 듣자 대충 상황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얼마면 되겠어?”

“불구로 만드는 데 10만 파운드, 드럼통에 채워 바다에 수장시키려면 깔끔하게 30만 파운드, 전부 현금으로!”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조셉은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조셉. 우린 훈련받은 전문가야. 비싸다고 생각되면 돈 몇 푼에 움직이는 양아치들이나 찾아보지그래?”

남자는 협상 따윈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흐음!”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놀랐을 뿐이다.

“콜!”

조셉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고 두 사람은 악수를 교환했다.

“그럼 일하러 가볼까?”

남자는 불빛이 일렁이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조셉 역시 긴장되는 마음을 감추며 그의 뒤를 따랐다.

* * *

“다 왔다.”

“그러게. 내리 5시간을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었더니 엄마도 다리가 아파 죽겠어.”

“……!”

호텔 방에 들어온 혜진이 침대 위로 쓰러지듯 몸을 던지자 수연 역시 누군가를 힐끔 쳐다보며 소파에 앉았다.

모두 규용의 설레발 덕분이다.

어디서 잘못된 정보를 들었는지 이상하게 동선(動線)을 짜는 바람에 하루 종일 걷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원흉인 규용은 이미 바닥에 몸을 눕히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근데 우리 아들 이제 보니 정말 대단하네. 그렇게나 많이 걸었는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잖아. 체력 짱이다!”

“대박 인정~”

“혜진아. 저기 아빠 좀 봐라. 아주 죽기 일보 직전이다.”

“큭!!”

모녀의 농담 섞인 말에도 규용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엄마. 호텔 지하에 스파(spa)가 있는데, 거기 가보실래요?”

“스파?”

“네. 수앤에게 들었는데, 마사지도 완전 잘한대요.”

“마사지를 잘해?”

-스르륵!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들처럼 죽은 듯 퍼져 있던 세 사람이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선우는 88년도 올림픽 단거리 육상 금메달리스트인 존 칼라스가 울고 갈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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