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0화
50화 영국행
찬사, 찬사, 찬사…….
선우에 대한 놀라운 찬사가 연일 이어졌다.
-저작권 보호와 정식 출판을 위해 삭제합니다.
선우는 먼저 방송국 게시판에 올라간 그의 글을 모조리 삭제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다운받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책이 아닌 그저 A4 용지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소장하고 싶은 사람들은 돈을 내더라도 기꺼이 그의 책을 구입할 것이다.
두 번째로 선우는 대규모 민사 소송을 준비했다.
방송국, 언론사, 각종 단체와 도를 넘어서까지 그를 비난한 개인이 소송의 대상이었다.
“최선우. 성질 많이 죽었다. 이곳이 판타지 세계였으면 죄다 저주 각인데…… 쩝!”
만약 선우의 능력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그의 몸을 해부해보고 싶어 하는 과학자들, 아마 전 세계에 수천 명은 족히 될 이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선우는 실험실에 끌려가 해부당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흑마법사는 영화 속에 나오는 슈퍼맨이나 히어로가 아니다.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면 누구라도 그를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마법사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을 경우 현대 과학의 힘으로 무장한 이들(국가, 정부, 군대, 조직)이라면 얼마든지 그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선우는 그러한 점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혹시 대마법사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는 고작 2서클의 흑마법사였다.
며칠 후,
선우는 규용과 함께 태양 로펌의 대표 변호사를 만나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상의했다. 현재 증거 자료를 모으고 있는데 앞으로 한 달 후 소송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참고로 아직 미성년자인 선우를 대신해 규용이 법정대리인으로 소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가족회의가 열렸다.
“아버지, 어머니. 부탁이 있어요.”
“부탁?”
“네.”
“무슨 부탁?”
“저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질 때까지 한동안 여행을 다녀오는 게 어떨까 해서요.”
“여행?”
“네.”
“여행이라~~ 난 좋은데, 당신은 어때?”
선우의 제안에 규용이 찬성의 뜻을 밝히자 수연 역시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아이고, 못 가서 문제지. 가는 게 무슨 문제겠어요? 저도 찬성!”
“엄마. 나도 찬성~~”
여동생 혜진 역시 찬성에 표를 던졌다.
“좋아. 만장일치네. 그럼 어디로 갈까? 동남아? 유럽? 아니면 미국?”
“영국이요.”
“영국?”
“네. 영국에 꼭 가고 싶어요.”
곧바로 선우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여행도 여행이지만 영국에서 글을 써보고 싶어서요.”
“……혹시 <태리 포터> 때문이니?”
“네. <태리 포터>의 배경이 영국이잖아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많이 봤지만 사실 한 번도 가보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
선우의 대답을 듣는 순간 규용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선우는 영국에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영국으로 가면 안 될까요?”
“어? 어…… 왜 안 돼? 가자. 영국으로 가자.”
규용은 저도 모르게 말까지 더듬었다.
사실 이건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영국을 배경으로 저렇게 멋진 작품을 쓰고 있는데, 정작 작가 본인이 영국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니!! 해외 토픽감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감사해요. 아버지.”
“뭐가 감사해. 이번 기회에 가서 글도 마음껏 쓰고 머리도 식히자고.”
“네~~”
이렇게 해서 선우와 그의 가족은 영국행 비행기 표를 구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선우가 영국에 가자고 한 가장 큰 이유는 <태리 포터> 시리즈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이 그의 영국 계좌에 조용히 잠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수요일이 되었다.
“자! 그럼 이제 출발할까?”
“네~~”
“가즈아~~!!”
김포 공항으로 향하는 순환도로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어느새 빨갛게 익은 단풍이 낙엽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규용은 출발 때부터 핸드폰 전원을 껐다.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소송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사과 전화와 함께 합의를 종용하는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규용은 저들의 대화에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의심>을 읽고 어찌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괜찮다고 말했던 것뿐이지. 정말 괜찮았던 적은 없었어.
주인공 지민의 독백은 한동안 그의 가슴 한구석에 큰 바위를 얹은 것처럼 남아 있었다.
-김포 공항 출국장.
공항에 도착한 규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디서 정보를 입수했는지 수십 명의 기자들이 출국장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 많이들 모였네. 여보. 얘들아. 저 사람들 신경 쓰지 마.”
규용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최규용 대표다.”
“어디? 어디?”
“저기 봐.”
최규용 대표의 얼굴을 확인한 기자들이 선우와 그의 가족을 향해 달려왔다.
“저기 이태리 작가도 있다.”
“작가님. 이태리 작가님!!”
-우르르르!!
“작가님, 이태리 작가님. 영국에는 무슨 일로 가시는 겁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혹시 이번 대필 작가 의혹 사태로 인한 출국입니까?”
“이태리 작가님, 질문 하나만 드릴게요. 대규모 민사 소송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찰칵찰칵!!
“작가님, 이쪽 한 번만 봐주세요.”
“어머, 저기 이태리 작가다.”
“꺄악!”
“겁나 잘생겼다.”
기자들의 요란함에 공항을 찾은 시민들 역시 몰려들었다.
“우와~ 저 우월한 기럭지 좀 봐라.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멋지지 않니? 안 그래?”
“맞아. 존잘~!”
“꺄아아~ 오빠~~”
“오빠~ 사인해 주세요!”
선우를 알아본 일부 여학생들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자 이 같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항공사 직원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여기 출국 수속 게이트…….”
잠시 후,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공항 경비대가 출동했다.
-삑삑!!
“모두 물러서 주세요.”
“출국하시는 분들이 아니면 이쪽 선까지 나와 주십시오.”
경비대의 제지에 사람들이 물러나자 어수선했던 장내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작가님. 작가님!”
“그럼 언제 귀국하십니까? 그것만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선우와 그의 가족을 태운 대현항공이 마침내 창공을 향해 비상했다.
런던 히스로 공항까지 비행시간은 대략 13시간 정도다,
긴 비행 시간 동안 선우는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IMF 시대,
만약 수앤과 만나지 못했다면 선우는 그가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전부 부동산에 투자했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 지하철 7호선이 들어설 온수~신풍, 신풍~청담, 청담~건대입구 구간에 투자한다면 최소 2~3년 안에 평균 세 자릿수의 투자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묘하게 바뀌었다.
수앤과의 만남으로 야기된 <태리 포터> 시리즈의 흥행은 그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현재 국가부도 사태로 인해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본은 어떠한 형태의 투자라도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선우는 그의 영국 계좌에 잠자고 있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부동산이 아닌 기업들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선우는 주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회귀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다.
주식에 관심이 없던 선우조차 이름을 알고 있는 기업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마음, 데이버, MC 소프트. 미국의 야호, 애플스 그리고 얼굴책…….”
이들은 앞으로 엄청난 성공이 예약된 기업들이다.
부동산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했다.
선우는 장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세웠다.
그중의 하나는 그가 얻은 수익금의 일부를 반드시 사회에 환원한다는 점이다.
그의 성공은 엄밀히 말해 그의 온전한 능력이 아닌, 과거로의 회귀와 흑마법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합쳐져 나온 결과물이었다.
선우는 이와 같은 점을 아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승객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립니다. 대현항공 747편은 이제 10분 후면 런던 히스로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지금부터 전자 기기의 사용을 중단하여 주시고 승무원들의 안내에 따라 안전벨트를 착용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내에 있는 스피커를 통해 곧 런던에 착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선우~~”
“수앤.”
금발 머리의 수앤이 에메랄드 색 눈빛을 발산하며 선우와 그의 가족을 맞이한다.
“하이~ 수앤.”
“하이~~ 오랜만이에요.”
“안녕하세요. 수앤 작가님.”
“네, 안녕하세요. 꼬마 숙녀님.”
수앤은 선우의 가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와아~ 거대한 시계탑이다. 오빠, 저것 좀 봐.”
“런던 브릿지네.”
“오오~~ 멋지다.”
런던 시내를 따라 번화가에 들어서자마자 혜진과 수연이 탄성을 지어냈다.
“호호호~ 저 시계탑은 런던의 자랑이에요. 멋지죠?”
“네. 너무 예뻐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여왕님이 살고 계신 궁전도 있어요. 한번 가볼래요?”
“정말이요? 네~~ 가고 싶어요.”
“호호호~ 그럼 좋아요.”
버킹엄 궁전에 도착한 가족들은 운이 좋았는지 근위병들의 교대식을 구경할 수 있었다. 혜진은 근위병들의 옷차림이 신기했는지 연신 셔터를 누르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선우, 그런데 영국엔 갑자기 무슨 일이야?”
“후후후~ 이유는 무슨, 그냥 수앤이 보고 싶어서 왔지.”
“뭐?!!”
“카프리섬의 푸른 동굴과 같은 수앤의 눈동자가 내 발걸음을 인도했다고나 할까?”
“헐~~ 이런 카사노바 같은 글쟁이를 봤나!!”
“티 났어?”
“응. 많이.”
“헷~”
“호호호호~~”
선우의 능글능글(?)한 태도에 수앤이 웃음을 토해냈다.
“그러지 말고. 정말 무슨 일이야?”
“뭐! 겸사겸사해서 왔어. 다음 시리즈 구상도 하고 사업 계획도 있어서~”
“사업 계획?”
“응.”
“좋은 거면 혼자 하지 말고 나도 끼워줘야 해~”
“당연하지~”
수앤 역시 선우에 의해 <태리 포터> 시리즈에 투자하였고 그로 인해 커다란 수익을 얻게 되었다. 그런 선우가 사업 계획이 있다고 하자 그녀 역시 구미가 당기는 눈빛을 보였다.
이때,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수앤의 눈이 커졌다.
“참! 그건 어떻게 됐어?”
“뭐?”
“대필 작가 논란. 잘 끝난 거지?”
“응. 아주 코를 납작하게 해줬지. 이제 더 이상의 논란은 없을 거야.”
“오! 그것참 잘됐네. 축하해~”
“흐흐. 축하해줘서 고마워.”
며칠 후,
선우는 수앤과 함께 ‘독수리와 아이(The Eagle and Child)’를 찾았다.
이곳은 1650년에 오픈한 카페로 당대의 유명한 문학자들이 이곳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를 향해 잉클링스(모호하고 완성되지 않은 암시와 아이디어를 찾는 사람들)라 부르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한 유서 깊은 곳이다.
“어때?”
“호오. 좋은데~ 마음에 들어.”
오래된 역사처럼 꽤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선우의 마음에 꼭 들었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와봐야 하는 곳이지.”
“동감이야.”
수앤의 말에 선우 역시 100%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들어가자.”
“그래.”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카페에는 손님들이 꽤 들어차 있었다.
“어머~ 수앤!”
“어머머~ 로라 사장님.”
블랙 계통의 투피스 정장을 입은 중년 여인이 수앤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네. 잘 지내고 있어요. 로라는요?”
“나야 뭐~ 늘 같은 일상이지. 옆에 계신 분은 누구?”
“아주 귀한 손님이에요.”
“아주 귀한 손님?”
“네. 그러니까 이 집에서 가장 맛있는 밀크 티~~ 부탁할게요.”
“호호호~ 우리 수앤에게 아주 귀한 손님이라니, 그 정체가 매우 궁금하네요.”
로라의 시선이 선우를 정면으로 향하자 곧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독수리와 아이의 로라예요.”
“반갑습니다. 최선우라고 합니다.”
선우의 정중한 인사에 그녀의 눈에 이채(異彩)가 나타났다.
“고귀한 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지네요. 아주 귀한 손님이라더니, 수앤의 말이 맞았네요. 좋아요. 우리 집에서 최고로 맛있는 밀크 티를 가져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선우 역시 그녀에게서 쉽게 볼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다.
잠시 후,
로라가 자랑하는 수제 밀크 티가 나왔다.
“흐음~~”
홍차 특유의 맛에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조화를 이룬.
과연 그녀가 자랑할 만한 맛이었다.
“어때요, 맛있죠?”
“네~ 완전!”
선우가 엄지를 척하고 내보이자 수앤의 입가에 만족했다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것도 먹어봐요.”
“마카롱이네요.”
“네. 맛이 끝내줘요.”
“오호~~”
그때였다.
두 사람 곁으로 낯선 이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