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8화
48화 인터넷 생방송
이날 저녁,
선우가 제안한 공개 생방송이 화제가 되었다.
“큭! 지 발등을 지가 찍었군.”
“그러게 말입니다.”
“어린놈이 자기 꾀에 빠진 거야.”
오현국 선생과 그의 일당은 선우의 제안에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곧이어 기자회견장에서 그가 지었다고 알려진 여섯 단어 소설이 흘러나오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짜,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쳇! 누가 모를까 봐?”
“그, 그렇죠. 미리 준비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와!! 저 새끼 진짜 장난 아니네.”
“그러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사기 치는 것 좀 봐.”
“그러니까 지금껏 사기 쳤겠지. 이번에 확실히 실력을 까발려야 해.”
이들은 선우의 실력을 거짓으로 치부했다.
“어떤 방식이 좋을까요?”
“심사위원들이 제시어를 주면 그 제시어에 맞게 글을 쓰는 방식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10~20개 정도의 제시어를 마련해 놓고 뽑는 겁니다.”
“복권 방식인가?”
“네. 또 다른 방법은?”
“사회자나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직접 제시어를 뽑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음~ 둘 다 나쁘지 않은 방법인 것 같군.”
음모의 밤이 깊어졌다.
“저희 측에서 두 분 정도가 방송에 나가는 겁니다.”
“……이태리 작가와 대결이라도 펼치라는 건가?”
“네, 바로 그겁니다. 대신!”
김진우의 비열한 미소가 꽃을 피웠다.
“우리 측 작가에겐 어떤 제시어들이 나올지, 미리 언질을 해주는 겁니다. 확률상 적어도 반은 나오지 않겠습니까?”
“오호! 좋은 생각입니다.”
“하하하~ 이 사람 어린애에게 아주 망신을 줄 모양이군.”
“망신이라니요, 흐흐흐~~ 두 번 다시 고개를 들지 못하게 아주 개망신을 줘야죠.”
“하하하하~~”
-짝짝짝~~~짝!
“좋아, 아주 좋은 방법이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이태리 작가의 생방송 제안은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 가운데 점차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회: 임*한.
출제 위원: 오*국, 조*래, 이*열, 박*리, 진*권.
참여 작가: 이태리 작가, 금정호 작가, 최한열 작가.
사회를 비롯해 출제 위원으로는 문화예술계의 저명한 인사들이 선택되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소설가, 시인, 비평가 등이다.
참고로 방송은 공중파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진행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글이라는 것이 단시간 안에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중파 대신 인터넷으로 대체되었다.
제한 시간은 2박 3일, 장소는 남산에 위치한 매거진 호텔 그랜드볼룸이다.
세 명의 작가들은 2박 3일 동안 그랜드볼룸에서 나갈 수 없고 의식주를 모두 그곳에서 해결해야 한다.
어느 덧,
검증의 시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선우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002로 시작되는 것을 보아하니 미국에서 온 전화다.
선우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선우야.
익숙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응. 설연아.”
-……잘 지내고 있어?
“응. 덕분에~ 넌 어때? 촬영은 거의 끝났지?”
-응…….
“근데 무슨 일이야?”
선우의 질문에 설연은 아무 대답이 없다.
“뉴스 봤구나.”
-……응.
“걱정돼서 전화한 거야?”
-응.
“왜, 너도 나 못 믿는 거야?”
-아니, 당연히 널 믿지.
“그럼 걱정을 왜 해? 내가 아주 그냥~~ 저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텐데!”
-어? 생각해보니 그러네.
“이 바보야.”
-헹~
“한국엔 언제 와?”
-왜에~ 나 보고 싶어?
“……끊는다.”
-아, 안 돼!!
설연을 놀리는 것은 언제나 재밌다.
-내일이 마지막 촬영이야.
“호오~ 그럼 이번 주 안에 오겠네?”
-응.
“내 선물은? 당연히 샀겠지?”
-이 바보야. 지금 선물이 중요하니?
“당근 선물이 중요하지~”
-쳇~ 잘난 척하기는, 알았어. 아무튼 잘해.
설연의 응원에 기분이 좋아진 선우가 너스레를 떨었다.
“걱정하지 마. 주인공은 나야.”
다음 날 오후,
마침내 인터넷을 통한 방송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집이나 PC방에서 실시간으로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임선한입니다.”
임선한은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올림으로써 방송의 시작을 알렸다.
“지금부터 시청자분들의 빠른 이해를 위해 글쓰기 방식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제 손에 들린 이 하얀 공에는 제시어가 숨겨져 있습니다. 여기 이 통에 보면 총 20개의 공이 있는데요. 저쪽에 앉아계신 심사위원분들이 무작위로 다섯 개의 공을 고르실 겁니다. 그럼 여기 계신 다섯 분의 작가님들은 주어진 2박 3일 동안 다섯 개의 주제 중에서 마음에 드시는 주제를 골라 단편 혹은 장편소설을 쓰시면 됩니다. 한 편을 써도 되고 두 편을 써도 됩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만 쓴다면 백 편을 써도 되겠죠. 자~ 그럼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심사위원께서는 제시어를 뽑아 주십시오.”
-둥둥둥둥둥!!
주택 복권 형식의, 무작위로 돌아가는 통 안에서 심사위원들은 각각 하나의 공을 선택했다.
주제어: 이별.
주제어: 윤회(輪廻).
주제어: 동물과 모험.
주제어: 의심.
주제어: 권좌.
다섯 개의 제시어를 모두 확인한 선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과거 그가 읽었고 보았고 경험했던 수많은 소설과 드라마, 영화와 뮤지컬 등의 이야기가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그려지기 시작했다.
선우의 머릿속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각각의 제시어에 적합한 시놉시스가 마치 쳇바퀴 돌듯 합을 이루어냈다.
‘2박 3일. 남은 시간은 72시간. 그렇다면 14시간마다 한 작품씩 공개한다.’
선우는 무언가에 홀린 듯, 빠르게 줄거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엇 하나 고민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선우의 모습을 살펴보던 금정호 작가의 안색이 변했다.
‘응? 저 새끼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설마 나처럼 제시어를 알고 있었나?’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그에게 가르쳐 줬겠는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저 새끼 일단 막 쓰고 보는 걸 거야.’
금정호 작가는 선우의 행동을 비웃는 동시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현국 선생이 준비했던 제시어 중에서 두 개가 뽑혀 나왔기 때문이다.
2박 3일이면 며칠 동안 준비한 것이 있으니 완성도 있는 글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단편으로 두 작품 쓰자.’
무리를 한다면 한 작품은 장편으로 쓸 수 있겠지만 고작 72시간이다.
그는 결코 위험을 택하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김진우의 사주를 받은 최한열 작가 역시 제시어를 확인하며 남몰래 미소를 지어보였다.
“드디어 세기의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화면에 비치고 있는 세 명의 작가는 지금 이 순간부터 2박 3일 동안 이곳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잠을 자거나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지만 2박 3일의 짧은 시간 동안 과연 어떤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지 저도 무척이나 궁금하네요. 채널 고정하십시오. 저는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임선한의 인사를 끝으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경호 인력과 촬영을 위한 방송사 스텝들만 남기고 모두들 현장을 떠났다.
-탁탁…… 타타탁!
적막감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다.
작가들 간에 대화는 없었지만 종종 눈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 새끼야, 뭘 봐? 눈깔 안 치워?’
‘내 맘이다. 이 새끼야.’
‘지랄! 이번 방송의 주인공은 나야. 나도 전국구 스타가 돼야지.’
‘저런 싸가지 없는 새끼를 봤나!’
‘지랄~ 어서 글이나 쓰세요.’
이렇게 말이다.
금정호 작가는 종종 잡아먹을 듯 선우를 노려봤지만 뜻하지 않은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아마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던 탓이다.
각설하고 한 편의 글이 완성되면 작가는 언제라도 방송국 게시판을 통해 자신의 글을 업로드할 수 있다. 그러면 시청자들 역시 자유롭게 작가들의 글을 내려받아 감상할 수 있으며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12시간이 지났을 무렵,
선우는 첫 번째 주제인 ‘이별’을 주제로 만든 옴니버스식의 단편소설 <이별과의 조금은 특별한 만남>을 게시판에 올렸다.
* * *
“오오~ 올라왔다.”
SW일보의 성용원 기자는 이태리 작가의 소설이 방송국 게시판에 올라오자마자 즉시 다운로드를 실행했다.
그는 문화부가 아닌 정치부 소속 기자였지만 평소 이태리 작가의 글을 좋아했기에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올린 <이별과의 조금은 특별한 만남>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이걸 고작 반나절 만에 썼다고?!!”
성 기자는 혀를 내둘렀다.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각,
저명한 문학 평론가 정중권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청년, 중년 그리고 장년의 입장에서 이별에 대처하는 각각의 자세를 옴니버스식으로 풀어냈군. 재밌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Please translate it in English.(영어로 번역해서 올려주세요.)
-C’est la france. Je voudrais aussi parler francais.(여긴 프랑스입니다. 프랑스어로도 부탁해요.)
그리고 이와 같은 관심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각설하고 이태리 작가의 불가사의한 행보가 계속되었다.
-때는 고구려 말,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주인공 천명은 아버지의 방관과 무언의 허락을 통해 그의 생모와 함께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기억을 잃은 도깨비로 태어나게 된다. 천명은 무려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간들의 세계에서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악인에게는 벌을 주고 선인들을 남몰래 도와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에겐 어느 날부터 한 가지 소원이 생겼다. 영원불멸한 도깨비의 생을 끝내고 인간으로 환생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승사자의 도움을 통해 삼신할매를 만난 도깨비는 인간과의 진실한 사랑이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인이 나타났다. 도깨비를 볼 수 있는 여인, 바로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숙 작가님, 죄송합니다.’
선우는 두 번째 제시어인 윤회(輪廻)를 주제로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던 드라마를 참고해 한 편의 아름답고도 슬픈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과거의 뒤틀린 운명과 아픔을 윤회(輪廻) 사상과 접목시켜 현세에서 사랑과 용서로 승화시켜 낸 것이다.
누군가는 선우를 향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당신은 사기꾼, 거짓말쟁이, 표절 작가다’라고 말이다.
그렇다.
선우 역시 그러한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축되지 않았다.
그가 과거로 회귀한 순간, 이미 세상의 인과율(因果律)이 비틀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이태리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 올라왔다.”
“벌써? 굉장히 빠른데?”
“헐~ 이것 봐!”
“왜?”
“용량이 꽤 커! 이거 장편소설인데?”
“……!!”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소설 제목이 뭐야?”
“<도깨비의 신부>야. 윤회(輪廻)를 주제로 썼대.”
두 번째 소설이 공개되고 얼마 후, 사람들의 반응이 폭발했다.
엄청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그 덕에 방송국 게시판이 몇 번이나 다운이 되기도 하였다.
-미친! 나 이거 보고 지렸다.
⤷이걸 15시간 만에 썼다고?
⤷진짜 천재다.
⤷우리나라에 천재 작가가 나왔다.
-이태리 작가님, 의심해서 미안해요.
-이 편지는 영국에서 유래되어…….
-저도 미안해요.
⤷이미 게임 끝난 것 아닌가?
⤷게임 오버.
도깨비 신부와의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던 사람들은 소설 말미에서 도깨비 신부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에서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도깨비 신부, 살려주세요.
⤷바보야, 이미 소설은 끝났어.
-이거 드라마로 만들어주세요.
⤷대박!
⤷격하게 찬성!!
⤷나도 찬성.
⤷드라마로 만들면 여주인공은 꼭 살려주세요.
-다음 소설은 언제 나와요?
-이거 책으로 나오면 꼭 살게요.
-대박! 40만 자 소설.
-이태리 작가 대필 의혹 제기한 사람들 고소 각!!
⤷지금 똥줄들 타겠다.
⤷ㅋㅋㅋ
-지금부터 인터넷 생방송 시청하겠음.
⤷나도
⤷전 이미 보고 있음~
⤷미동도 없는 저 자세, 대박 멋지지 않음?
⤷조금 전에 샌드위치 하나 드셨음.
-궁금한 게 있는데, 가끔씩 보이는 저 손동작은 대체 뭐임?
⤷손 푸시는 것 같음.
⤷손가락에 쥐가 나서.
⤷손가락 운동이겠죠.
-방금 <이별과의 조금은 특별한 만남> 읽었음.
⤷이것도 완전 재밌음.
⤷20대 격한 동감~
⤷40대 동감~
⤷여기 30대도 공감해요. 한참 웃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