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7화
47화 여론 몰이
김진우의 사주를 받은 조성일보에서 첫 신호탄을 쏘았다.
그 뒤를 이어 한국대 교수이자 문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지고 있는 주영호 교수 역시 이태리 작가에 대한 대필 의혹을 제기했다.
-<이태리 작가, 대필 의혹>
-<무엇이 진실인가?>
-<만들어진 천재>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문학계의 저명한 인사들이 연이어 성명을 발표했다.
모두 이태리 작가의 대필 의혹을 얘기하는 내용이었다.
출판사와 자택은 물론 백합 예술 고등학교에까지 기자들이 몰려왔다.
* * *
“최규용 대표님. 현재 이태리 작가에 대한 대필 의혹이 일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라고요?”
“모 평론가의 말에 의하면 최규용 대표님의 주도적인 계획 아래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을 요청합니다.”
“……?!!”
기자의 무례한 질문에 규용의 얼굴색이 변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히지만 대필 작가는 없습니다. 이태리 작가의 글은 모두 본인이 쓴 글이 맞습니다.”
“이태리 작가 본인이 썼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증거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규용은 굳은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반문했다.
“그럼 기자분은 이태리 작가 본인이 쓰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아, 아니요.”
여간해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기자의 얼굴이 변하는 것을 보니 꽤나 당황한 것 같았다.
“미리 결론을 정해놓은 것 같은 여러분들의 행태에 전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 같군요.”
규용은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갔다.
“대표님. 최규용 대표님!!”
“대표님, 이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
-<최규용 대표의 부정. 그러나……. -Y기자>
-<확실히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다. -K기자>
-<대필 의혹이 있다면 정정당당히 실력으로 검증받아라. -Y교수>
시간이 갈수록 이태리 작가 대필 사건에 대한 언론의 의혹이 커져갔다.
이때, 그의 대필을 의심하는 문학계 원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본적으로 작가들의 글을 살펴보면 그들 자신만의 개성이 문체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태리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 각 작품마다 다른 개성이 보입니다. 작품 주기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요. 그렇기에 대필 의혹이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 문학계가 크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문단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오현국 선생이 조성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이태리 작가의 대필 의혹에 대해 ‘가능성이 크다’고 시사했기 때문이었다.
규용이 태양 로펌을 찾았다
뭔가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조성일보와 연락을 취해봤는데,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지 말라며 강하게 반발하더군요.”
“……그럼 방법이 없는 겁니까?”
“단지 의혹만을 제기했기 때문에 이게 법률적으로 걸기에 참 애매합니다.”
담당 변호사는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진행하겠지만 지루한 소송전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겨도 그쪽은 벌금형으로 끝날 확률이 크고요.”
“상관없습니다. 이번 일은 저는 물론 제 아들의 명예가 걸린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소송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규용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했다
변호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태양 로펌을 나오는 규용의 표정이 조금은 편해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표정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구겨지고 말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태리 작가에게 진실을 요구한다.”
“대필 의혹에 대해 진실을 말해라.”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단팥빵>을 절판하라.”
아파트 경비원들 역시 난데없이 등장한 시위대로 인해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당신들 대체 누굽니까?”
“저희는 <이진요>입니다.”
“이진요? 그게 뭡니까?”
“이태리 작가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입니다.”
“뭐……라고요?”
젊은 청년의 말에 규용은 어이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진요>를 중심으로 그의 오른쪽에는 태극기를 손에 쥔 중장년 남성들이 대필 의혹을 해소하라며 구호를 외쳐댔고 왼쪽에는 아줌마 부대가 <단팥빵>을 절판하라며 막무가내로 소리를 질러댔다. <대한민국 엄마 부대>와 <대한민국 어버이 연합>의 합동 시위였다.
그리고 이러한 재미난 사건을 기자들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광!!
뉴스를 보는 선우의 얼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과 규용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찾아가 한바탕 저주를 뿌려주고 싶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시각,
김진우는 기분이 매우 좋은 듯 이빨까지 내보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하하하~ 두 분 수고하셨습니다. 좀 전에 연락받았는데, 아주 잘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대표님.”
“저희야 뭐 열심히 소리치는 게 일이죠. 호호호~”
주옥선 엄마 부대 대표와 추선엽 어버이 연합 회장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김진우의 비위를 맞췄다.
“그런데 <이진요>는 뭡니까?”
“저희도 잘 모르겠는데, 자발적으로 나선 이들이더라고요.”
“그래요?”
“네~ 하늘이 도운 건가요?”
“뭐 손발이 맞은 셈이죠! 호호호~”
“하하하하~~ 그렇군요.”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받으세요. 두 분께 드리는 보너스입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진우는 탁자 밑에서 박카스 박스를 꺼내 두 사람에게 건넸다.
“……헉!!”
“이, 이건……?!!!”
“단체를 운영하다 보면 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약속한 금액과는 별도로, 아!! 보너스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러니 편하게 쓰세요.”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대표님!”
두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
현금 1,000만 원에 아주 간이라도 빼어 줄 기세다.
“자~ 지금부터 두 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두 분께서는 계속해서 압박을 가해 주시고 실력을 검증받으라는 의견을 피력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김진우의 말에 주옥선과 추선엽은 강한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잘 알겠습니다. 대표님.”
“걱정 마십시오. 대표님.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후후후~ 좋습니다. 좋아요.”
두 사람이 돌아간 후,
김진우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선생님.”
오현국 선생의 전화에 김진우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아! 그렇군요. 안 그래도 그 젊은 친구들이 누군가 궁금했었습니다. 네. 네. 물론이죠.”
* * *
엄마 부대와 어버이 연합의 활약(?) 덕인가?
언론에서는 연일 두 단체의 시위와 함께 이태리 작가의 대필 의혹에 대해 떠들었다.
-이태리 작가는 진실을 밝혀라.
⤷대국민 사기극의 전모를 밝혀라.
⤷대필 작가 이태리
-이태리 작가는 공개적인 검증을 받아라.
⤷거짓말쟁이는 물러가라.
⤷ㅋㅋㅋ
-우리는 이태리 작가에게 진실을 요구한다.
⤷나가 죽어라.
⤷쪽팔리다.
두 단체와 함께 <이진요> 회원들 역시 자극적인 문구가 적혀 있는 피켓을 들고 국회 의사당 앞에 나와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저게 진짜야?”
“하긴 의심이 가긴 해.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글을 써?”
“동화책이면 몰라도, 장편소설은 좀 그렇지?”
여론의 동향이 심상치 않자 태양 로펌에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신공격을 한 사람들을 상대로 고소, 고발 조치를 진행하는 동시에 수앤 캐슬린 롤링을 필두로 한 몇몇 작가와 우호적인 평론가들을 논쟁에 끌어들인 것이다.
이태리 작가 대필 의혹은 곧 두 진영의 첨예한 대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김진우의 거대한 자금력과 오현국 선생의 영향력으로 무장한 이들의 공격은 꽤나 거칠었다.
더욱이 수앤은 이태리 작가와 이해관계에 있는 외국인이다.
불행하게도 그녀의 주장은 큰 이슈가 되지 않았고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갔다.
“그게 다 사기래.”
“출판사 대표인 아빠랑 짜고 친 고스톱이래.”
가짜 뉴스 덕에 이태리 작가의 작품을 부정하는 여론이 급증했다.
아니,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난리를 통해 이태리 작가의 작품 판매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필 논란이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오빠.”
“응. 혜진아.”
“음…… 그게…… 음…….”
우물쭈물하는 게 뭔가 할 말이 있나 보다.
“왜? 무슨 일 있어?”
“……그, 그게…….”
“뭔데 그래? 오빠에게 말해 봐.”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선우는 내색치 않고 물었다.
“뉴스에서 봤는데, 오빠가 쓴 글이 오빠가 쓴 글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아이고, 우리 혜진이 그것 때문에 그랬구나.”
“응.”
선우는 당당한 눈빛으로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혜진아.”
“응.”
“혜진인 오빠 믿지?”
“그럼~ 우리 오빤데, 당연히 믿지.”
“그럼 됐어.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오빠가 쓴 게 맞아.”
“정말?”
혜진의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그래. 조만간 밝혀질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알겠지?”
“응. 알았어. 오빠.”
혜진은 한층 더 밝아진 표정으로 선우의 방에서 나갔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것, 판을 좀 더 키워볼까? 후후후~~”
선우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곧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기자회견이요. 바로 준비해 주세요.”
* * *
-철컥.
자동차의 문을 닫으며 선우가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옆 좌석에 있던 설희가 넌지시 말했다.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네. 누나.”
“꼭 해야겠니? 아직 여론이 좋지 않은데…….”
“대필 작가가 없다고 해도 도무지 믿질 않잖아요. 이미 많이 참았어요.”
“그건 그렇지만…….”
“누나가 뭘 걱정하는지,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저는 물론이고 저희 가족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저들의 행태가 너무 심해요.”
“…….”
선우의 말에 설희는 더 이상 설득을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알았어.”
얼마 후,
두 사람을 태운 자동차가 기자회견장에 도착했다.
언론사와 방송국들이 밀집해 있는 여의도의 호텔이다.
회견장에 들어가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이었지만 선우의 요청으로 <이진요>, <어버이 연합>, <엄마 부대>의 대표들 역시 모여 있었다.
이들의 질문은 대체로 비슷했다.
1.대필 의혹이 있다. 해명할 수 있는가?
-대필 작가는 없다. 모든 작품은 내가 썼다.
2.각 작품마다 문체의 변화가 뚜렷하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글은 지금도 진화하는 중이다.
3.<태리 포터> 시리즈는 수앤 작가의 성명을 통해 어느 정도 의구심이 풀렸지만 다른 작품은 그렇지가 않다. 혹시 본인이 썼다는 증거가 있는가?
-증거는 없다. 하지만 원한다면 여러분들이 요구한 것처럼 검증을 받겠다.
4.검증을 받겠다고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검증을 받겠다는 것인가?
-무사는 검으로 말한다.
선우의 대답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사는 검으로 말한다니요, 지금 그 말씀은?”
“네. 여러분들이 원했던 것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글을 쓰겠다는 말입니다.”
선우는 기자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
“대신 저도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다시는 이런 논란이 일어나지 않게 생방송으로 진행하길 원합니다.”
“생방송이요?!!”
“네.”
-웅성웅성!
“생방송이라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더 이상 쓸데없는 논란에 에너지를 소모하기 싫어서 말입니다.”
선우는 <엄마 부대>, <어버이 연합> 그리고 <이진요>를 한 번씩 쳐다보며 냉소적인 답변을 이어갔다.
“꼴에 작가라고 거드름을 피우며 절 비난하는 분들과 제 필력에 대해 의심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밝힙니다. 자신 있으면 방송에 나오세요. 쫄리면 뒤지시든가!”
“헐~!!”
“쫄리면 뒤지라니!! 대~~박!!”
선우의 노골적인 도발에 기자들은 맛있는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찰칵, 찰칵!!
사방에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 와중에 몇몇 사람들의 안색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중에는 오현국 선생의 지시를 받고 이 자리에 참석한 금정호 작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작가님. 방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금정호 작가님.”
“허어, 참으로 오만하군요.”
“오만하다니요? 전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을 뿐인데요.”
금정호 작가는 선우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열불이 나 크게 외쳤다.
“흥! 자신의 실력에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여기 모인 사람들 앞에서 지금 당장 소설을 한 편 써 보시죠.”
“지금이요?”
“그래요, 왜!! 자신이 없습니까?”
금정호 작가의 도발에 잠시 뭔가를 생각한 선우는 방긋 웃어 보였다.
“누가 자신이 없다고 했습니까?”
“호오~ 좋소. 그럼 어디 한번 써보시오.”
“그러죠.”
선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주제도 없이 쓰면 재미가 없으니까, 작가님께서 인간이 가진 감정 중의 하나를 골라 주시죠.”
‘저, 저 새끼가 진짜!!’
금정호 작가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슬픔. 슬픔을 주제로 써보시오.”
“슬픔이라~ 뭐, 좋은 주제네요.”
선우는 좌중을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지금 시간이 꽤 늦었네요. 긴 글을 쓰면 다들 집에 가시지 못할 것 같으니, 저는 지금부터 딱 여섯 단어를 사용해 슬픔에 대한 글을 써보겠습니다.”
선우는 이렇게 말한 후, 펜을 들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적히지 않은 하얀 보드 판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For sale: Baby Cap, never worn.”
(아기 모자를 팝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허억!”
선우의 글을 본 순간,
금정호 작가의 눈이 터질 듯 커졌다.
동시에 기자들 사이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 이런 맙소사!”
“대단해!”
“짧지만 강렬한 글이야.”
“……슬프기도 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금정호 작가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본 소설에 나오는 6단어 소설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글을 차용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