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46화 (46/187)

◈ 제 46화

46화 야누스의 얼굴

“저건 아니지…….”

선우는 황당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이 자리에 모인 작가들이 저 짓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문학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오현국 선생의 추악한 행동에 선우는 탄식을 금하지 못했다.

-광!!

참다못한 선우는 탁자를 크게 한 번 내리쳤다.

“음?”

“……!!”

“……?!!”

사람들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이 나타났다.

어이 없어하는 A 작가, 당황스럽다는 B 작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C 작가도 있다. 물론 안쓰러운 표정으로 박소은 작가를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게 지금 무슨 추태십니까?”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듯 선우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오현국 선생을 향해 소리쳤다.

“그만하십시오. 선생님.”

선우의 고성이 이어지자 오현국 선생은 슬그머니 손을 거뒀고 박소은 작가는 그대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감출 수 없는 수치심과 모멸감이 충만했다.

“……무례하군.”

“무례하다고요?”

“그래.”

오현국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탁자 위에 놓인 물수건을 이용해 그의 손을 깨끗하게 닦았다.

“우리는 창조자야. 글을 통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지.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는 거야. 글 안에선 내가 신이고 부처고 알라야. 그런데 글을 쓴다는 창작자가 저렇게 비위가 약해서 어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나?”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십니까?”

“변명이라니, 이건 모든 천재들이 가진 예술적인 힘이요. 창작의 원천이야.”

“창작의 원천?”

선우는 사나운 맹수가 되어 크게 외쳤다.

“당신의 비틀린 성적 욕구 따위가 창작의 원천이라고? 추잡한 늙은이가 어디서 궤변이야!!”

“뭐 추잡한 늙은이? 어린놈이 가진 재주가 뛰어나 칭찬 좀 해주었더니, 이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을 봤나.”

“닥쳐!”

-우우웅!

선우의 전신에서 일어난 사나운 기세에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선우는 누가 만류할 새도 없이 그대로 상을 뒤엎어버렸고 그 덕에 모임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X발, X나 어이없네. 그리고 당신들도 문제야. 이따위 변태 늙은이를 선생님이라고 떠받치고 다녔다니, 참 나.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 다들 부끄러운 줄 아세요.”

선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출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멈춰!”

선우의 등 뒤로 오현국 선생의 고성이 들렸다.

그는 치가 떨린다는 얼굴이었다.

“지금 당장,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사죄해. 그렇지 않으면…….”

“……지랄!”

선우는 그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Fuck you. 엿이나 처드셔.”

“저, 저놈이?!!”

선우의 등 뒤로 오현국 선생의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지만 선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 나갔다.

“저 자식, 막아. 내 앞으로 데려와. 오 작가. 조 작가. 지금 뭐 하나!!”

“네? 네. 선생님.”

“저 새끼 데려와. 저 새끼 데려오라고!!”

“네. 네……. 알겠습니다.”

선우가 자리에서 떠난 뒤,

모임은 당연하게도 파(破)했다.

어떤 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못마땅한 얼굴로 또 어떤 이는 부끄러운 표정이다.

다른 이는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잠시 후,

오현국 선생의 충복이라 할 수 있는 금정호 작가가 아직까지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박소은 작가를 불렀다.

“박 작가.”

“네. 선생님.”

“아까 많이 놀랐지?”

“……네.”

“괜찮아. 그 맘 다 알아. 근데 깊게 생각하지 마.”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

금정호 작가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말을 이어갔다.

“황수미, 조정선, 김혜선, 이은령…… 자네 선배들 역시 다 겪었어.”

“어, 어…… 떻게 그런 일이…….”

“X랄 같지? 그래도 참아. 선생님은 천재야. 천재들이 가지고 있는 괴벽(怪癖)이라 생각해. 선생님이 한창이셨을 때는 더한 일을 겪은 작가들도 있었어. 왜, 안 믿겨져? 좀 더 자세히 말해 줄까? 어떤 여자 작가는 말이야……. 그런 적도 있었어. 근데 봐봐- 아무 일도 없잖아. 오히려 다들 쉬쉬하고 있다고. 저기 봐! 선생님은 문단의 거목으로 여전히 활동하고 계시고 걔는 선생님 덕분에 지방이지만 교수 타이틀 달아서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자네도 이 바닥에 들어왔으니, 선생님의 영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잖아?”

“……그래서요?”

“그래서요는 뭐가 또 그래서요야! 다 자넬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새겨 들어. 그냥 미친개에게 한번 물렸다고 생각해.”

그녀는 금정호 작가의 협박성 짙은 말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태리 작가, 그 건방진 새끼는 이제 끝이야. 두고 봐. 박 작가. 자네도 명심해. 작가질 계속하고 싶으면 오늘 일 그냥 묻어. 내 말 잘 알겠지?”

금정호 작가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당당한 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갔고, 박소은 작가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 *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

마침 집으로 귀가하고 있는 규용과 마주쳤다.

“선우야.”

“……아버지.”

규용은 반가운 표정을 보이며 물었다.

“오늘 모임은 어땠어, 좋았지?”

“…….”

모임이 어땠냐는 질문에 선우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 모습에 규용은 순간 불안해졌다.

“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그게…….”

선우는 오늘 그가 보았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뭐?!!”

선우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규용은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저도 죄송해요. 너무 화가 나서 소리 지르고 욕도 했어요.”

“잘했어. 아들.”

-꽈악!

규용은 선우를 꼭 안아주었다.

“그런 걸 봤는데, 그깟 욕이 대수야? X발놈! 이런 개X같은 새X!! 이것 봐. 아빠도 하잖아. 그러니까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그런 걸로 절대 미안해하지 마.”

오현국 선생이 가진 영향력을 생각할 때, 아들에 대한 걱정이 단 1도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규용은 아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오히려 그런 범죄를 보고도 보지 못한 척한 어른들의 잘못이야. 우리들의 잘못이야. 오히려 아빠가 미안해.”

“…….”

‘쳇~ 우리 아빠지만 정말 멋진데~ 아부지. 존경해요.’

부자는 멋진 미소를 서로 공유하며 당당하게 집으로 올라갔다.

이날 밤,

선우는 조용히 펜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 겪은 상황을 토대로 하나의 글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때는 1965년, 이것은 음악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한 천재 작곡가의 이야기다.

주인공 N은 우연히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독한 분노에 휩싸여 성당을 찾는다. 모두의 존경을 받고 있는 주임신부가 그의 생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우발적인 방화를 저지르게 된다.

불타오르는 예배당을 바라보며 묘한 광기와 희열에 사로잡힌 N은 마치 뭔가에 홀린 듯 미친 듯이 악보를 그리기 시작한다.

광기와 야성 그리고 쾌락과 욕망에 휩싸인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 환호하지만 N은 그 후 이와 같은 걸작을 작곡하지 못한다.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 또다시 우발적인 방화를 저지르는 N.

그는 점차 자신의 광기를 억제할 수 없게 되고 또 다른 걸작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없이 저지르게 된다. 그는 최고의 작곡가라는 명성과 함께 악광(樂狂:음악에 미친 작곡가)라는 칭호까지 얻는다. 하지만 연이는 살인 사건에 형사들의 수사망 역시 좁혀 들고 있다.

선우는 <광기의 작곡가>를 통해 독자들에게 두 가지를 묻는다.

천재들의 광기를 우리는 어떤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가?

예술가들의 광기에서 비롯된 범죄를 예술가라는 이유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처벌해야 할 것인가?

과거 우리는 천재라는 이유로 예술가의 광기를 이해해주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선우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 할지라도 인간이라면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덕이 없다면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오현국 선생의 자택에 몇몇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장님.”

“어이쿠, 주 교수님.”

“국장님도 연락받으셨습니까?”

“네, 어제 저녁에 연락받았습니다.”

“그러셨군요.”

두 사람은 함께 오현국 선생의 자택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오, 어서들 오십시오.”

오현국 선생은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선생님~ 물 좀 한잔 주십시오. 급하게 달려왔더니 목이 좀 마르네요.”

“아! 그래요. 내가 그러고 보니 멀리서 온 손님들에게 차 한 잔도 내놓지 못했네요.”

오현국 선생이 미안해하는 얼굴로 말하자 두 사람이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이때, 또 다른 손님이 나타났다.

“여기, 물과 차 그리고 커피입니다.”

“오, 김 대표도 왔는가?”

“네, 선생님.”

오현국 선생이 반색하며 새로운 손님을 소개한다.

“이참에 서로 인사들 나누지. 이쪽은 한국대 주영호 교수시고 이쪽은 조성일보 남창기 국장님일세.”

“안녕하십니까, 주 교수님. 남 국장님. 전 문학사 대표 김진우라고 합니다.”

“김진우 대표님?”

“문학사요?!”

두 사람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출판계가 좁다 보니 그들 역시 김진우의 불륜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자자~ 분위기가 왜들 이럽니까? 혹시 내가 실수라도 했나요?”

서먹한 분위기를 감지했음인가?

오현국 선생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반문했다.

“아,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실수라니요. 괘념치 마십시오.”

“다들 문학계에 계시니까, 여기 김 대표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겁니다. 그래요. 저도 압니다.”

오현국 선생의 말투가 매우 부드럽고 유연하게 변했다.

“그런데 말이죠. 사실 소문이 과장된 바가 없지 않아요.”

그는 마치 손자의 잘못을 변호해 주는 할아버지 같았다.

“영웅(英雄)은 호색(好色)이라! 여자가 꽃이라면 남자는 벌입니다. 향기로운 꽃을 보면 다가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 건장한 남자라면 한 번쯤은 실수로라도 꽃을 탐할 수 있는 겁니다. 김 대표가 인간적으로 실수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 역시 인간이라는 이유로 실수를 하지 않나요?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본인이 인정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겠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옳습니다. 과연~ 선생님의 고견은 언제나 들어도 탁월하십니다.”

“하하하~ 역시 우리 주 교수님과 남 국장님은 말이 통해서 좋아요.”

오현국 선생은 두 사람의 반응에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고 이야기는 본론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혹시 최선우라는 작가를 아시나요?”

“최선우 작가요?”

“그게 누굽니까?”

“아! 필명을 쓰는 친구니까, 이태리 작가라고 하면 알겠군요.”

“이태리 작가라면 알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봤습니다.”

두 사람의 반응에 오현국 선생이 매서운 눈빛을 보였다.

그날의 수모를 떠올리기만 해도 여전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주 이가 갈릴 지경이다.

“오늘 제가 두 분을 모신 이유가 바로 그 친구 때문입니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두 분께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약관도 되지 않은 학생이 이런 글을 썼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단팥빵>을 비롯해 이태리 작가가 집필했다고 알려진 <아빠를 부탁해>, <태리 포터> 시리즈, <지평선이 보일 무렵>이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분야에서는 신동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사례들도 적잖이 있고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글은 다르지 않습니까? 천재 작가라 불렸던 이상도 무려 스무 살이 넘어서야 작품이라 말할 수 있는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초등학생 때부터 이런 글을 썼다고요? 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게 가당키나 합니까?”

“음…….”

“……!!”

김진우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태리 작가의 아버지가 초록별 출판사의 최규용 대표입니다. 아시다시피 초록별 출판사는 이태리 작가가 쓴 모든 작품을 출간해서 소위 대박이 난 상황이고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말은?”

“왠지 구린내가 나는 것 같아서요. 대필 작가의 구린내가 말이죠.”

“대필 작가요?”

“지금 대필 작가라고 하셨습니까?”

“네.”

“……대필…… 작가라…….”

의혹이 의심을 넘어 확신되는 순간이었다.

“증거가 있나요?”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 분명하고도 공정한 이의 제기와 함께 이태리 작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검증이요?”

“네, 그렇습니다.”

“작가의 필력을 어떻게 검증을 하겠다는 말씀인가요?”

“실력을 만천하에 공개해야죠. 그런 놈은 아주 개망신을 줘야 합니다.”

“실력을 공개한다?”

“어떻게요?”

“그 사기꾼 녀석을 대중 앞에 끌어내야죠. 그러기 위해서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

*<광기의 화가>는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의 줄거리를 차용했음을 밝힙니다.

탐미주의 혹은 유미주의 계열의 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