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44화 (44/187)

◈ 제 44화

44화 오현국 선생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가득한 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자 또다시 친구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조르미온느는 어때? 진짜 예쁘지?”

“첫사랑 혜진은 태리와 이어져?”

“태리 포터는 총 몇 부작이야?”

“……마지막에 태리가 죽는 건 아니겠지?”

선우를 향해 쏟아지는 질문에 이번에도 역시 동혁이 답했다.

“야~ 이제 좀 그만해라. 그렇게 궁금하면 사서 보든가!! 게다가 아직 쓰지도 않은 결말을 왜 얘기해 달래? 재미없게끔. 그게 다 스포일러야.”

“궁금하니까 그렇지.”

“조금만이라도 알려주면 안 돼? 헤헤헤~”

“그러게.”

“미안하지만 안 돼. 나 혼자 쓰는 게 아니거든.”

“아…….”

“그, 그래.”

“그렇구나.”

귀찮음 방지를 위해 기세를 살짝 끌어올렸더니, 아이들의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웅성웅성!!

점심시간이 되자 복도 전체가 시끄러워진 것이다.

옆 반과 옆옆 반은 물론 다른 층에 있는 학생들까지 모두 선우를 찾은 것이다.

그들은 선우가 쓴 책을 저마다 한 권씩 들고 있었는데, 마치 아이돌 가수의 사인회가 열린 듯 복도 끝까지 길게 줄을 선 모양이 꽤 인상적이었다.

“뭐야? 이거 사인회야?”

동혁은 입을 삐쭉 내미는 동시에 장난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워~워~ 우리 선우. 이러다가 금방 부자 되겠다.”

‘지금도 엄청 부자거든!’

선우는 내심을 감추며 반문했다.

“왜 인마, 부럽냐?”

“핏~ 부럽기는~~ 너 인마. 이 형님이 지금 한 달에 얼마나 버는 줄 아냐?”

“그래? 그럼 앞으로는 곡 안 줘도 되겠네.”

“윽!”

앞으로 곡을 안 주겠다는 말에 동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넙죽 숙이며 꼬리를 내렸다.

“아이고, 형님! 왜 그러십니까? 제 맘 아시죠? 모두 장난이었습니다.”

“지랄.”

“…….”

수업이 끝난 후,

선우가 집에 돌아오자 수연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반겼다.

“아들~ 오늘 별일 없었니?”

“무슨 일이요?”

“후후후~ 너 오랜만에 학교에 갔잖아. 뭐 재밌는 일 없었어?”

“뭐~ 조금 시달리긴 했어요.”

수연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유명해지니까 어때? 기분 좋지?”

수연은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지만 선우는 수연의 눈동자 안에 숨겨진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성공한다는 것, 그것은 분명 엄청난 일이며 동시에 무척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반대급부도 분명히 존재했다.

예를 들면 아주 오랜 전부터 교류가 없던 친척과 지인,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사촌의 팔촌이라는 사람들에게서까지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물론 수연은 보기보다 강단이 있었다.

“누구세요?”

-어. 전 수연 누님의 당숙 되시는, 어쩌고저쩌고…….

“죄송하지만 기억이 안 나네요. 끊습니다.”

-돈 좀 빌려줘.

“돈은 은행에 가셔 빌리셔야죠.”

-대박 아이템이 있는데~~

“대박 아이템이요? 축하드립니다. 꼭 성공하세요. 그럼 전 이만.”

그녀는 쓸데없는 전화가 오면 이런 식으로 깔끔하게 처리했다.

“선우야. 사람들이 네게 열광하고 박수와 갈채를 보내도 너무 들뜨면 안 돼, 엄마가 늘 얘기한 것 있지? 사람은 중심을 잡을 줄 알아야 해.”

수연의 말에 선우는 그녀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네. 엄마. 저도 알아요. 교만하지 않고 자만하지 않을게요. 믿어주세요.”

“오냐~ 어이구,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컸대? 호호호~”

선우의 대답이 퍽이나 만족스러운 듯, 수연의 눈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고~ 우리 선우. 도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멋질까?”

“당연히 우리 엄마죠~~”

“홍홍홍~~ 요즘 엄마가 우리 아들 땜에 살맛이 나네. 선우야. 오랜만에 우리 외식이나 할까?”

“좋아요.”

“뭐 먹으러 갈까?”

“외식이면 한우죠. 엄마. 우리 혜진이 데리고 한우 먹으러 가요.”

“콜~~”

“콜!!”

* * *

“최선우?! 그 녀석이 이태리 작가라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여기 관련 기사와 자료입니다.”

“……!!”

김진우의 두 눈이 터질 듯 커졌다.

“대표님도 많이 놀라신 것 같군요. 사실 저 역시 크게 놀랐습니다. 한국도 지금 이것 때문에 난리라고 합니다.”

“……알았으니, 나가 봐.”

“네. 사장님.”

남자가 방에서 나가자 김진우의 인상이 심하게 구겨졌다.

이태리 작가가 규용의 아들이었다니, 그것은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기에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미친! 이게 말이 돼? 이게 말이 되냐고?!!”

-쾅!!!

“X신 새끼들! 지금 다들 속고 있는 거야. 최규용 그 자식의 술수에 다들 속고 있는 거라고!!”

이건 당최 말이 안 됐다.

섬세한 감정 표현, 압도적인 몰입감.

특히 상대의 심리를 완벽하게 공략하는 엄청난 필력에 그 역시 몇 번이나 감탄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그가 바로 규용의 아들이란다.

김진우는 분명 속임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행 비행기 표. 가장 빠른 걸로.”

-네. 사장님.

김진우는 서둘러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발기부전에 대한 치료도 중요했지만 지금은 저들의 사기 행각을 밝혀내는 게 더 중요했다.

“……최규용, 최선우. 조금만 기다려라. 니들 부자가 쓴 거짓의 가면을 벗겨내고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려 주지.”

며칠 후,

김진우는 문학계의 원로이자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오른 적이 있는, 한국이 낳은 위대한 소설가라 불리는 오현국 선생의 자택을 찾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생님.”

“그래. 오랜만이구나. 아버님은 잘 계시지?”

오현국 선생은 자신을 향해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는 김진우를 보면서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정하십니다.”

“그래, 한국 경제의 산증인이자, 기둥이신데 오래오래 건강하셔야지.”

“선생님도 건강하시죠?”

“나야 뭐~ 늘 비슷하지.”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뭘~ 그냥 할 일 없는 늙은이가 심심풀이로 글이나 쓰는 거지.”

“아이고, 선생님, 심심풀이라뇨,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십니까? 선생님이 최고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의례적인 덕담과 함께 아부가 넘치는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럼요~ 다음 작품은 저희 문학사와 무조건 하셔야 합니다.”

“뭐 그건 그렇고~~ 그런데 무슨 일로 자네가 날 찾아왔는가?”

“그게 말입니다…….”

잠시 후,

김진우의 말을 경청하던 오현국 선생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게 정말인가?”

“네, 선생님. 그놈은 아주 교활한 놈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지금 그 녀석의 거짓말에 속고 있는 겁니다.”

“……!!”

확신에 찬 그의 말에 오현국 선생의 미간이 크게 들썩였다.

“사실 나도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네. 그처럼 어린 나이에 그만한 필력이라니, 이게 도통 이해할 수 없어서 말이야.”

그의 말에 의하면 초록별 출판사의 최규용 대표가 대필 작가를 이용해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의 이름으로 동화책을 냈고 그게 대박이 나자 계속해서 그와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증거는 있나?”

“……아직 심증만 갖고 있습니다.”

“심증만?”

심증만 있다는 말에 오현국 선생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 하지만 확실합니다. 지금 사람들을 풀어서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으니 곧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흐음, 자네 말은 충분히 이해했네. 하지만 심증만 가지고 내가 나설 순 없네. 자네도 알지 않는가? 내가 가진 사회적 지위를 말이야.”

‘……쳇!’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김진우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슬그머니 그에게 내밀었다.

‘쩝! 욕심쟁이 늙은이를 움직이려면 이 정도는 줘야겠지.’

-스윽!

“그게 뭔가?”

“제 조그만 성의입니다.”

“성의?”

“네, 선생님이 이번 일에 나서려면 뭔가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조그만 성의니 부담 갖지 마시고 받아주십시오.”

“흐음!”

봉투 안에 들어있는 등기부등본을 살펴본 오현국 선생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선생님 이름으로 문단에 문제만 제기해 주십시오. 증거는 제가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자네 말만 듣고 움직일 순 없지.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네. 일단 이건 자네가 다시 가지고 가게.”

‘……이런 너구리 같은 늙은이.’

그는 오현국 선생의 말에 내심 불만을 가졌지만 아마추어처럼 티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이 타당하다는 듯, 감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선생님.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

* * *

고즈넉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거실.

오현국 선생은 제자를 통해 구한 이태리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다.

-스윽, 스윽!

이따금씩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만 들려올 뿐, 거실은 매우 고요했다.

가정부가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현국 선생은 여전히 책 읽기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식사 준비가 다 됐는데, 왜 안 나오시죠?”

“……그러게요.”

평소 식사 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키는 오현국 선생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한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현국 선생의 눈에 이채가 떠오르고 있었다.

자음과 모음, 단어와 문장이 만나 이룬 문단이 마치 춤을 추듯 그의 시야에서 날아다녔다.

그는 자신이 점심을 건너뛰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만큼 선우의 글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오현국 선생이 책 읽기를 멈추고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문 선생, 이 글을 정말 그 아이가 썼다는 건가?”

“네, 스승님.”

“……이태리 작가의 나이가 몇이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현재 18세라고 들었습니다.”

문정환의 말에 오현국 선생은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녕 고등학생이 이런 글을 썼단 말인가?’

이건 당최 말이 되지 않았다.

뭐랄까? 그가 쓴 글에서는 깊은 연륜과 함께 그에 못지않은 삶의 경험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하! 약관(弱冠)도 되지 않은 아이가 이런 글솜씨라니!’

순간 오현국 선생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묘한 긴장감과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대가 그의 눈빛에 어리기 시작했다.

“문 선생.”

“네, 스승님.”

“그 아이가 썼다는 판타지 소설도 전부 구해주게.”

“알겠습니다. 스승님.”

찻잔에 걸린 오현국 선생의 눈이 강하게 빛나면서 빠르게 번뜩였다.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은 시각,

독한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마신 김진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건물 한 채로는 부족하다는 건가? 욕심 많은 늙은이 같으니.”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이 정도 흘렀다면 뭔가 최소한의 언질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그를 더욱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젠장!!”

눈 아래,

다크서클이 심할 정도로 내려온 것이다.

하루 종일 잠만 자도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몸에 좋다는 각종 보약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다음 날,

초록별 출판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누구시라고요?”

“……!!”

한국 문학계의 거두이자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오현국 선생이 직접 전화를 건 것이다.

“네, 선생님!”

-이번 주말에 말인데…….

돌아오는 토요일 저녁,

오현국 선생이 주최하는 조촐한 모임이 있는데 그곳에 이태리 작가를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직원은 급히 메모지를 펼쳐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를 적었다.

“토요일 저녁, 7시 종로 피맛골. 네. 선생님. 이태리 작가님께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이 같은 소식은 곧바로 규용에게 전달되었고 집으로 돌아온 규용이 선우에게 말했다.

“토요일 저녁이요?”

“그래. 어떠니, 시간 되니?”

“시간은 돼요. 그런데 그런 자리에 제가 나가도 될까요?”

“그럼. 선생님이 직접 초대했잖아.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음~”

규용은 선우가 한국 문학계의 대표적인 거두(巨頭) 오현국 선생의 초대를 받자 은근 희색이 어렸다.

“네. 알겠어요.”

“그래. 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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