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3화
43화 공개 기자회견
“이것 참 곤란하게 되었군요.”
창문 밖을 바라보던 수앤이 고개를 흔들었다.
“왜요?”
“창밖을 한번 보세요.”
“어머머! 저 사람들은 대관절 누구죠?”
“대부분 기자들이죠. 저기 CMN과 BBT 카메라맨도 보이네요.”
수앤은 선우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수연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그러고는 역시 눈은 마주치지 않고 슬쩍 웃었다.
“아시죠?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해요. 후후후~”
그것은 이미 엄청난 유명세를 겪어본 경험자의 표정이었다.
“휘유, 저보단 우리 선우가 조금 걱정이네요.”
“제가 아는 선우라면 즐기고도 남을 거예요.”
“……네.”
한눈에 봐도 기자로 보이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다.
창문이 열릴 때마다 그들이 누르는 카메라 셔터에 쉴 새 없이 플래시가 번쩍거렸다.
수연이 고개를 돌려 설희에게 물었다.
“설희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죄송해요. 아줌마. 지금 저희 쪽에서 상황을 알아보고 있으니 일단 조금만 지켜봐 주세요.”
“그래. 알았다.”
사태의 추이를 알아보고 있다는 말에 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기자들의 취재 열기는 쉬이 가라않지 않았다.
IMF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탄생한 천재 작가의 스토리다.
이 같은 소식은 이세리, 이찬호 선수의 승전보와 함께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선우야. 모두가 내 불찰이야.”
“아니에요. 누나. 괜찮아요.”
“……아니야. 누나가 정말 미안해.”
“아니라니까요. 영원한 비밀이 세상 어디에 있나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결국 밝혀질 일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미안해하지 마세요.”
선우는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바지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건넸다.
“이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맛 사탕인데, 누나 드릴게요. 드시고 기운 차리세요.”
“막대사탕? 이걸 왜?”
“여자는 단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더라고요.”
“누가 그래?”
“누나네 집, 딸막이가요.”
“풉!”
그때였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어디시라고요?”
전화를 받은 수연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네. 네. 알겠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수연은 당황했다는 표정이 역력한 채로 서둘러 전화기를 선우에게 넘겼다.
“아, 아들. 저, 전화 받아봐.”
“어딘데요?”
“처, 청와대.”
수연의 말에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표정 역시 굳어졌다.
-최선우 군!
TV에서 들어보았던 음성이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다.
“네. 대통령 님!”
-선우 군의 업적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대한민국의 영광입니다.
대통령은 선우가 어리다고 해서 쉽게 얘기하지 않았다.
-우리 한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IMF라는 국가적 위기 사태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줘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허허허~
선우의 대답에 대통령은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토해냈다.
-선우 군, 앞으로도 좋은 글, 우리 국민들이 행복해할 수 있는 글들을 써주세요. 선우 군의 활약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대통령과의 통화 덕분에 좌중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침묵은 깬 것은 여동생 혜진이었다.
“오빠, 진짜 대통령이랑 통화한 거야?”
“응.”
“와~~ 우리 오빠 진짜 대박이다.”
혜진의 모습에 선우는 절로 웃음이 났다.
그것도 아주 기분 좋은 웃음이다.
선우는 곧이어 뭔가를 결심했다는 듯 설희 누나를 향해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그냥 기자회견이나 한번 하죠.”
“기자회견?”
“뭐가 어쨌든 간에 국민들이 절 응원해 주시는 거잖아요. 어차피 알려진 것 더 이상 숨겨봐야 뭐 하겠어요.”
“그건 그렇지만…….”
설희 누나가 잠시 멍해 있는 사이 선우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창문을 열어 재꼈다.
“저기다. 창문이 열렸다.”
“최선우 작가, 아니! 이태리 작가다.”
“작가님, 이태리 작가님!!”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덕에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쳤다.
“……현재 고등학생이 맞습니까?”
“몇 살부터 책을 쓰신 겁니까?”
“그동안 왜 정체를 숨기셨나요?”
“초록별 출판사의 최규용 대표가 아버님이 맞습니까?”
기자들은 이미 사실로 알고 있는 것도 물었다. 그리고 개중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도 다수 있었다.
“입양되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인세가 얼마나 됩니까?”
“…….”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태양 로펌의 한설희 변호사입니다. 잠시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
“……!!”
선우는 설희 누나 덕에 한결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말을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태리 작가입니다. 이번 주말에 여러분들을 모시고 기자회견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어떠신가요?”
선우의 깜짝 발표에 모두들 큰 관심을 보였다.
“이번 주말에 공개 기자회견을 갖겠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웅성웅성!!
선우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러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제가 지금 며칠째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거든요. 물론 학교에도 가지 못했고요. 혹시 제가 기자회견을 취소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겠죠?”
선우의 말에 기자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취소라니요~ 그건 안 됩니다.”
“아닙니다. MBS는 지금 바로 물러가겠습니다.”
“SBM도 물러갑니다.”
해외 언론사에서 취재 나온 기자들 역시 물러가겠다고 외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정확한 장소와 시간은 태양 로펌을 통해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물론입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작가님을 믿습니다.”
선우의 깔끔한 일처리에 기자들은 모두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며칠 후,
주말이 되자 기자들은 서울 시내에 위치한 호텔로 대거 이동하기 시작했다.
약속대로 이태리 작가의 기자회견이 열렸기 때문이다.
선우는 앞머리를 길게 내린 상태에서 검은색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회견장에 나타났다. 덕분에 그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아우라를 어느 정도 숨길 수 있었다.
“그럼 정말로 초등학생 때 <단팥빵>을 집필하신 거군요.”
“네. 출판사에 투고 형식으로 보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 맨 아시아 문학상을 받은 <아빠를 부탁해>는 언제 쓰신 겁니까?”
“중학생일 때 썼습니다.”
“가장 최근에 집필한 작품은 무엇입니까?”
“단편소설인 <지평선이 보일 무렵>과 <태리 포터> 시리즈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태리 포터> 시리즈는 현재에도 계속 집필 중에 있습니다.”
“혹시 여자 친구가 있습니까?”
“……없는 사람도 있습니까?”
“하하하~~”
기자들은 때때로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지는 가운데 종종 민감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선우는 웬만해선 대답을 피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사생활이나 가족에 관련된 질문이 나올 경우에는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갔다. 간혹 순데이 서울과 같은 잡지사에서 섹시하다느니, 상체를 탈의한 그의 화보를 찍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지만 그런 건 가뿐히 무시하기도 했다.
“작가님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모든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한중일보에서 나온 기자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네, 기자님.”
“한중일보의 배연정 기자입니다. 저는 조금 민감한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네~ 질문하십시오.”
“일각에서는 작가님의 필력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대필 작가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혹시 이와 같은 의혹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 나이가 문제겠죠.”
선우는 미소를 지은 얼굴로 좌중을 한 번 살펴본 후,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모차르트는 7살에 작곡을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요. 전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 시대 사람들이 모차르트가 그렇게 어린 나이에 명곡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믿었을까요? 오늘날처럼 통신과 교통이 발달된 시대도 아닌데요. 심지어 인터넷도 없었잖아요.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모차르트가 그의 주옥같은 명작들을 계속해서 발표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모두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
선우의 답변에 기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대단한 자신감이야.’
‘당당하군. 정말로 천재라는 건가?’
‘기사 제목을 뭐라고 할까? 문학계에 탄생한 모차르트? 호오! 좋은데~~’
선우의 마지막 대답이 이어졌다.
“전 앞으로도 계속해서 글을 쓸 겁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자연히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짝짝!
-짝짜짜자짝짝짝!
선우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자들의 박수 세례가 터져 나왔다.
* * *
오랜만에 찾은 학교.
그러나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언론을 통해 선우의 정체가 밝혀진 탓일 것이다.
-웅성웅성!!!
“저기, 최선우다.”
“선우가 왜?”
꼭 이렇게 뒷북을 치는 애들이 있다.
“야!! 넌 TV도 안 봤냐? 쟤가 <태리 포터>를 썼잖아!”
“뭐? 태리…… 포터? 선우가? 진짜? 진심? 정말? 레알?”
“그래, 이 새꺄!!”
“……대박!”
아이들의 대화 소리가 너무 커 반대쪽에 있던 아이들까지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선우야. 너가 정말 이태리 작가야?”
“선우야~ 너가 태리 포터를 썼어?”
“선우야!! 선우야~~~!!”
친구들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선우는 가벼운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혹시 거짓말 아니야?”
“우리 형은 국문과에 다니는데, 뻥이라고 하던데?”
“선우야~ 제발 대답 좀 해줘.”
친구들의 연이은 질문에 보다 못한 동혁이 끼어들었다.
“야, 이 자식들아! 너희들은 뉴스도 안 봤냐? 선우가 이태리 작가 맞아.”
“진짜?”
“동혁아, 그게 정말이야?”
“그래. 인마. 난 선우가 글 쓰는 걸 직접 보기도 했어.”
동혁은 예능 프로를 통해 익힌 특유의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때 말이지. 선우가…….”
예전에 도서관에서 목격한 광경에 양념으로 300% 뻥을 더해 선우를 완전 초천재로 만들어 버렸다.
뻥이 얼마나 과장됐는지 선우의 얼굴마저 붉어지고 있었다.
“우와~ 대박!!”
“진짜 짱이다.”
“선우야~~ 선우야~”
아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선우에게 책을 내밀며 사인을 요청했다.
“선우야, 여기 이 책에 사인 좀 해줄래?”
“최선우! 우리 엄마도 네 팬이래. 나도 사인 좀 해주라.”
“선우야, 나도~~”
“나도~ 나도~~!!”
선우는 한동안 친구들의 사인 공세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담당 과목 선생이 들어오자 교실은 그제야 조용해졌다. 첫 수업은 공교롭게도 문예 창작 시간이었다.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그래. 모두 잘 있었지?”
“네~”
“어. 그래.”
수업 시간은 매우 어색하게 진행되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학생들과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은 채 그저 교과서만 주구장창 읽어댔기 때문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앞으로도 기록하게 될 <태리 포터>의 저자가 저렇게 버젓이 앉아 있는데, 누가 누굴 가르쳐야 한다는 말인가?
혹 노년의 스승이라면 젊은 제자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쁨을 나눌 수도 있겠지만 교단에 서 있는 저 선생은 얼마 전에야 문단에 이름을 올린 젊은 작가일 뿐이다. 그는 수업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뭐!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선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함부로 나서지도 않았다.
-딩동댕~~~동!
수업이 끝났다는 종과 함께 선생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교실은 또다시 떠들썩해졌다.
“선우야, 태리 포터는…….”
“……그래서 볼드데빌은 어떻게 돼?”
“아! 제발~~ 제발 가르쳐 주라.”
친구들의 관심은 한참 인기몰이 중에 있는 <태리 포터>에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