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41화 (41/187)

◈ 제 41화

41화 조연(助演)의 왕

“……여, 여긴 어디지?!”

왕조연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에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주위를 살펴보았다.

낯선 땅, 낯선 환경.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은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오디션장에 있지 않았는가?

그때였다.

핏발이 서 있는 한 쌍의 눈동자.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겨오는 가운데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붉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허억!”

그것을 발견한 순간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뜨여졌다.

사람의 몸에서 통째로 뽑혀진 머리통을 들고 있는 괴물.

그녀의 눈동자에는 경악과 공포가 가득했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녀는 곤두박질치듯 뒤로 넘어졌다

“아악! 오, 오지 마. 오지 마! 누……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아악! 악!!!!”

비명인지 괴성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를 시작으로 그녀는 무대 이곳저곳을 미친 듯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르르르르…….”

괴물은 마치 성대를 쇠로 긁는 것 같은 괴성을 뿜어내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왕조연은 머리가 하얗게 식어 가는 것을 느꼈다.

공포에 이성이 마비되었고 살기 위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쿵! 광!! 쿵쿵쿵!!

급기야 벽에 대고 머리를 짓찧기 시작했다.

활활 타오르는 공포로 인해 반쯤은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호오~ 연기력이 굉장한데?!’

‘저게 왕조연의 연기력이라고? 말도 안 돼!’

왕조연의 연기에 모두가 감탄을 하고 있을 무렵,

오직 선우만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어, 어?!!”

“저거 왜 저러지?”

-주륵, 즈르륵……!!

“헉?!”

“홀리 X!”

“저, 저거 진짜 미친 것 아니야?”

사시나무 떨듯 계속해서 몸을 떨던 그녀가 그 상태에서 결국 오줌을 싼 것이다.

심사 위원들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이, 이봐요. 괜찮아요?”

상대역을 맡은 해리슨이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이미 눈에 초점이 사라진 후였다.

“$%&*#%$$$%*#@.”

“이, 이봐요. 정신 좀 차려요.”

“***&*#%$$**$%*#@.”

“감독님! 이 여자 이상해요.”

“뭐?”

해리슨의 말에 오디션장이 순간 소란해졌다.

왕조연의 연기가 더 이상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웅성웅성!!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마이클 감독이 그녀의 매니저를 급히 호출하는 동시에 구급차를 불렀다.

오디션장 밖에 있던 주륜은 연락을 받자마자 즉시 모습을 나타냈다.

“조연아, 조연아! 너 왜 이러니? 정신 좀 차려봐.”

왕조연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흔들었으나 그녀는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대체 뭐가 그리 무서운 건지, 그녀는 퍼렇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연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실과 구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연기에 잡아 먹혔다고요.”

“네??”

마이클 감독의 대답에 주륜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보이자 크리스 감독이 나섰다.

“오디션 촬영 영상이 있으니 나중에 확인하는 걸로 하고 일단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영상이 있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이때, 밖에서 119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주륜은 서둘러 그녀를 구급차에 싣고 사라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당황스럽네요.”

“저 역시 수많은 오디션을 경험했지만 오늘 같은 일은 처음입니다.”

소란스러운 현장을 보며 수앤이 고개를 흔들자 크리스 감독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메소드 연기를 펼치려다 오히려 잡아먹힌 거죠.”

마이클 감독의 음성에는 안타깝다는 기색이 엿보였다.

“오디션은 이제 끝났나요?”

“아니요. 아직 마지막 참가자가 남았습니다.”

“그게 누구죠?”

“설연, 한국 여배우입니다. 무대가 정리되는 즉시 시작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참, 이 방 전체에 방향제 좀 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작가님.”

스텝들이 무대를 빠르게 정리하는 사이,

크리스 심사 위원은 왕조연이 사라진 뒷자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최종 오디션에서 그녀가 보여준 연기는 정말로 대단했다.

만약 연기에 잡아먹히지 않았다면 태리의 첫사랑 역으로 100%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다른 심사 위원들의 표정을 보니 이미 텄다.

“……쩝!”

맥이 탁하고 풀려 버렸다.

손에 잡힐 뻔했던 수백만 달러의 돈이 물거품이 되어 날아간 것만 같아 매우 씁쓸했다.

잠시 후,

무대 정리가 끝나자 마지막 참가자인 설연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름이 뭐죠?”

“설연입니다.”

“……대본은 숙지했죠?”

“네.”

설연의 말이 이어졌다.

“모두 외웠습니다.”

“……뭐라고요?”

마이클 감독의 미간이 좁혀졌다.

“다 외웠다고요? 그 많은 대사를?”

“네. 그렇습니다.”

“호호호~ 궁금하네요. 정말 다 외운 건지~~”

수앤 역시 호기심이 발동했다는 눈빛이다.

“그럼…… 17번 장면을 해볼 수 있겠어요?”

수앤의 요청에 설연은 17번 장면의 지문을 떠올렸다.

-납치가 된 혜진은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홀로 떨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태리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믿고 있다.

곧 설연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태리.”

딱 한 마디였지만 한순간 무대의 공기가 바뀌는 기분이다.

‘흐음!’

‘……설마 저 아이, 이 짧은 순간에 울고 있는 건가?’

설연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깊숙이 묻었다.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

“……?!!”

이것은 메소드 연기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게 해주는 연기였다.

‘연기가 아닌 그 이상의 뭔가가 느껴지는군.’

‘저건 메소드(method) 연기가 아니야. 하지만 오히려 적당히 힘을 뺀 덕분에 더 현실적이게 보여. 저것 봐! 지금 저 여배우의 마음이 이곳까지 느껴지고 있어. 대단해.’

“23번 장면!”

이번엔 마이클 감독의 요청이다.

“태리. 나…… 사실 조금은 불안해. 하지만 힘낼게. 그러니까 너도 꼭 힘내야 해.”

“그래. 여기까지 온 건…… 모두 네 덕분이야. 그러니까 나도 힘낼게.”

“응!”

설연의 연기가 지속될수록 심사 위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39번 장면, 볼드데빌 등장!”

장면이 바뀔수록 설연의 연기 역시 물 흐르듯 흐르며 점점 더 선명해졌다.

“태리 포터, 이제 그만 사라져라.”

“으악!”

다음 순간,

볼드데빌이 남긴 과거의 잔재에게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태리가 쓰러졌다.

“태리!!!”

설연의 저 짧은 울부짖음이 심사 위원들의 마음을 훔친다.

“태리, 일어나, 제발 일어나!”

심사 위원석에서 바라본 설연의 얼굴에는 어느새 절망감이 서려 있다.

하지만 희망을 품은 눈빛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태리 포터는 이제 죽고 너도 죽을 것이다.”

마치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쏘아보는 볼드데빌의 눈빛.

하지만 설연은 결코 피하지 않았다.

마치 가족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눈빛 같았다.

-덜덜덜덜!!

“이, 이런 오디션은 처음이야.”

심사 위원들의 시선은 이제 짜릿한 쾌감으로 바뀌었다.

오죽하면 심사 위원석에 앉아 있던 수앤 역시 환희에 사로잡혀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던 배우를 찾은 것 같네요.”

마이클 감독은 설연의 연기에 감탄했다는 표정이다.

“태리 작가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마치 무대가 빛으로 꽉 찬 것 같군요.”

마이클 감독의 질문에 선우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태리 포터 오디션 결과>

-태리 포터 첫사랑 혜진 역에 설연.

-링링 역에 왕조연.

태리 포터의 첫사랑 혜진 역에 설연이 낙점되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선우의 제안에 의해 왕조연 역시 캐스팅되었다는 점이다.

“왕조연이요?”

“네.”

“왜죠?”

“비록 연기에 잡아먹히는 추태를 보였지만 현재 중국에서 가장 핫한 여배우가 아닙니까?”

“……그 말씀은?”

“그 배우 상품성이 있잖아요.”

선우의 제안에 크리스 감독이 반색하며 적극적으로 찬성을 표했다.

“저도 작가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중국 시장은 엄청 크죠.”

‘첫사랑 혜진 역은 아니지만 그래도 출연이 성사되었으니 어느 정도 커미션을 요구할 수 있을 거야. 후후후~’

“수앤은 어떻게 생각해?”

“난 선우가 오케이면 오케이야.”

“그럼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이렇게 해서 왕조연의 출연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맡게 될 링링이라는 역할에 대해서 말이다.

링링은 영화 초반부에 나와 태리에게 일종의 작업(?)을 걸다가 설연에게 들켜 얻어 처맞고(딱 3컷만 나온다) 사라지는 역할이다.

이와 같은 사실도 모르고 크리스가 전해준 떡밥을 문 주륜은 그저 왕조연이 <태리 포터>에 캐스팅되었다는 사실만 가지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대륙의 소여신, 태리 포터를 휘어잡다.

-왕조연 링링 역으로 중국을 넘어 할리우드로!

-혜진 VS 링링 라이벌?

-최고의 기대작, <태리 포터 불과 물의 잔>

여담이지만 이 영화가 중국에서 개봉된 이후,

왕조연의 이름은 엄청난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고작 3컷 찍으려고 그렇게 광고했냐?

⤷대륙의 소여신은 개뿔! 대륙의 치욕이다.

⤷동감.

-왕조연, 부끄럽다. 쪽팔리다. 나가 죽어라.

-설연 최고.

-혜진 역의 설연은 진짜 예쁘더라.

⤷오늘부터 난 설연 팬이다.

혹자는 왕조연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연 중의 왕은 왕조연이라고 말이다.

* * *

기자는 늘 특종에 목마르다.

특히 요즘과 같은 암울한 시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스포츠 한성의 최선미 기자는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시켜놓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카페 문이 열리며 30대 후반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무장님. 여기예요.”

“……네.”

“일찍 오셨네요.”

남자의 이름은 조문규, 태양 로펌에 근무하고 있는 사무장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최선미의 바로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료는 무엇으로 하실래요?”

“커피로 하죠.”

“네.”

최선미 기자는 카페 직원을 향해 외쳤다.

“저기요, 여기 커피 한 잔 추가할게요.”

“네. 손님.”

주문을 마친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조문규를 향해 물었다.

“사무장님. 가지고 오신 정보를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거래는 동등해야죠. 약속하신 사례금부터 보여주시죠.”

“그럼요. 거래는 동등해야죠.”

그녀는 품속에서 두툼한 봉투 두 개를 꺼내 보였다.

“이건 계약금이고 이건 잔금입니다.”

“…….”

“이젠 사무장님이 가지고 계신 자료를 볼 수 있을까요?”

잠시 후,

조문규 사무장이 건넨 자료를 확인한 최선미의 표정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베일 속에 숨어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후후후~ 제 생각이 맞는 것 같네요.”

자료를 확인한 최선미 기자는 만족했다는 표정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그럼요. 저도 일어나렵니다.”

카페에서 나온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후후, 대체 그게 뭐라고?!!’

그가 생각할 때 최선미 기자에게 건넨 정보는 별것이 아니었다.

‘아무렴 어때? 삼백만 원 받았으니, 오늘은 소고기 파티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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