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32화 (32/187)

◈ 제 32화

32화 청순의 대명사

“……도, 동공 축소?”

선우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 현진이가 토해 놓은 토사물을 보면 조그만 핏덩이들이 보여요. 이건 독…….”

선우는 보건 교사가 놓친 것들을 얘기하다 하마터면 독극물에 중독되었다고 말할 뻔했다. 이건 가도 너무 앞서간 것이다.

다행히도 보건 교사는 선우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다.

대신 핏덩이를 확인하고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그녀 역시 뭔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녀는 허겁지겁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거기, 119죠? 네, 여긴 백합 예술 고등학교 체육관 강당입니다.”

그녀는 현 상황에 대해 침착하게 설명했다.

“……혹시 모르니 아트로핀 주사기를 가지고 오라고 하세요. 선생님.”

선우는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아트로핀 주사기를 가지고 오라고 말했다.

“……뭐?”

“아, 트, 로, 핀.”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 네. 혹시 모르니 아트로핀 주사기를 챙겨주세요.”

-아트로핀 주사기요?

“네. 아트로핀 주사기요.”

잠시 후,

119 구급차가 도착했다.

“요구르트를 먹었다고 했죠?”

“네.”

“아무래도 살충제가 들어간 요구르트를 먹은 것 같습니다.”

“사, 살충제요?”

구급대원의 말에 그녀는 어리둥절해졌다.

“네, 얼마 전부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가정집 대문 앞에 살충제를 넣은 우유나 요구르트 같은 것을 넣는 일이 발생했거든요.”

“……!!”

구급대원은 현진의 상태를 확인한 후 즉시 아트로핀 주사를 놓았고 주사를 맞은 그녀의 안색은 대번 편안해졌다.

“위급한 상황은 넘겼으니 이제 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참,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

“선생님이 아트로핀 주사기를 챙기라고 하셨다면서요.”

“아! 그, 그건…….”

“정말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구급대원의 칭찬에 보건 교사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급히 숙였다.

“혹시 모르니까, 같이 가시죠.”

“네, 알겠습니다.”

보건 교사는 구급대원의 요청에 구급차에 오르며 선우를 향해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고마워. 선우야.’

‘뭘요~’

선우는 119차에 탐승하는 보건 교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갑작스런 사태에 방송 역시 중단된 상황이다.

그러나 큰 사달이 없이 해결되자 촬영을 재개하기로 했다.

“10분만 쉬고 다시 촬영을 시작하겠습니다.”

FD의 말에 선우는 화장실을 다녀오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우연히 들려온 누군가의 이름이 선우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설연, 진짜 예쁘다. 차세대 충무로 스타라는 말이 진짜였어.”

“그러게, 나도 실물은 오늘 처음 봤는데 정말 예쁘더라. 이대로만 크면 대박이겠어.”

“참! 그런데 요즘 왜 브라운관에서 보기가 힘든 거지?”

“너 그거 몰라?”

“뭐?”

“A양!”

“A양??!”

“그래, 얼마 전에 찌라시에 나온 소문 있잖아.”

‘찌라시?’

설연은 이제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이다.

그런데 찌라시에 설연의 이름이 나왔다고?

왠지 좋지 않은 기분에 선우는 저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 그 A양이 설연이야?”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기사가 금방 내려갔거든. 근데 엔터 쪽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런 소문을 들었는데 말이야.”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너 얼마 전에 MBS에서 시작한 로코 드라마 알지?”

“요조숙녀들?”

“그래, 요조숙녀들! 원래 거기 주인공 중의 한 명이 설연이었대. 근데 누가 막았다고 하더라고.”

“누가?”

“……강하나.”

“강하나? 요조숙녀들 주인공?”

“응. 그래. 강하나가 막았다고 하더라고! 감독에게 증권가 찌라시를 들먹이면서 말이야. 만약 설연이 출연하면 자긴 출연하지 않겠다고 아주 대놓고 선언을 했대.”

“대박!”

선우는 강하나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기이한 얼굴이 되었다.

‘한번 알아봐야겠군.’

그리고 잠시 후,

골든별 녹화가 재개되었다.

“자! 이제 최후의 도전자만 남게 되었네요.”

카메라는 검은색 뿔테 안경과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는 남학생을 클로즈업했다.

“제756회 골든별을 울려라. 마지막 문제는 현재 백합 예술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신 최원범 선생님께서 내주시도록 하겠습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최원범 교장 선생님이 문제지를 펼쳤다.

“제756회 도전 골든별, 마지막 문제입니다. 이 글은 원래 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에서 유래한 말로 독립 운동가이신 김구 선생님이 평생을 지켜온 철학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상에는 총 세 글자의 한문이 나타났다.

“이 글의 음과 뜻을 적어주세요.”

愼.

其.

獨.

“…….”

긴장의 순간이다.

그러나 선우는 처음과 똑같은 자세로 단 한 점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메모라이즈 마법을 통해 그의 기억 창고 안에 저장된 옥편이 ‘촤르륵’하며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선우는 천천히 펜을 들어 보드에 답을 적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숨 죽여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슥삭슥삭!

“정답은 신기독(愼其獨), 홀로 있을 때도 삼가다.”

선우는 보드를 들어 올리는 동시에 입을 열어 답을 말했다.

순간 강당 내부에는 깊은 정적이 찾아왔고 학생들의 시선은 사회자에게로 향했다.

“신! 기! 독! 홀로 있을 때도 삼가다!”

사회자의 입가에 언뜻 미소가 번지는 것 같다.

“정답입니다. 재경 고등학교 최선우 학생이 마침내 골든별을 울렸습니다.”

사회자의 정답이라는 말과 동시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면서 아이들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이날 살충제가 들어간 요구르트가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요구르트에 살충제를 넣은…….>

-<참으로 흉악한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오후 2시 골든별…….>

-<보건 교사의 재빠른 판단과 대처로 인해…….>

그리고 한 주 후,

도전 골든별 백합 예술 고등학교 편이 방송되었다.

이미 예고편에서부터 동혁과 설연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설연 짱!

-백합 예술고 애들은 좋겠다.

-도전 골든별에 나온 남자는 누구예요?

⤷서울 백합 예술 고등학교 1학년 최선우

⤷불꽃남자 정대만이냐?

-안동혁은 없네.

⤷공연이 있어서 학교에 못 왔다고 함.

-예술고라 두발이 자유인 듯, 암튼 분위기 작살이다.

-최선우 짱이다.

-연예인 데뷔각!!

이날 평균 7%대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도전 골든별의 시청률은 무려 두 배 가까이 뛰는 기염을 토하였고 이날의 영상은 이태리 작가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 * *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이다.

주위는 어둠에 휩싸였고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나 새벽으로 접어드는 시점이다.

강북에 위치한 허름한 흥신소에 한 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주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듯 벙거지 모자에 선글라스 그리고 마스크까지 한 상태였다.

“어서 오세요.”

직원으로 보이는 여인이 남자에게 인사했다.

“소장님 계시나요?”

“예? 소장님이라면 저기에…….”

“고마워요.”

선우는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곳 흥신소의 소장은 여러 가지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내다.

‘……상당히 젊으시네.’

회귀 전, 그를 처음 봤을 땐 대략 60대였지만 지금은 4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선우가 그를 찾은 것은 그가 믿을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고객에 대한 비밀을 엄수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서요. 간단한 일입니다.”

“손님의 모습을 보니 말씀처럼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일단 좀 앉으시죠.”

“……네.”

역시 눈썰미가 상당하다.

선우가 의자에 앉자 장광석 소장이 말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알고 있습니다.”

선우는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스윽!

“착수금입니다.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좋습니다. 누구에 대해 조사해 드릴까요?”

“강하나 씨에 대해 조사해 주십시오.”

“여배우 강하나입니까?”

“네.”

장광석 소장의 물음에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중점적으로 알아봐 주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얼마 전 증권가 찌라시에 설연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습니다. 소문의 출처가 어딘지, 누가 그 소문을 퍼트렸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이건 따로 사례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목적을 이룬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유히 사라졌다.

선우가 사라진 후,

장광석 소장은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타타탁, 타탁!

“강하나라……. 사생활이 지저분하단 소리는 들었는데, 어디 한번 알아볼까? 일단 경찰청 서버부터 시작해서 사직동 팀까지 쫙 훑어보자.”

장광석, 그는 국가 비밀 기관에서 특수 임무를 담당했던 인물로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해커라고 불린 사나이였다.

* * *

“……이런 여자가 청순의 대명사라니, 쯧쯧쯧!”

선우는 인큐버스를 통해 이미 그녀의 행동거지를 알고 있었지만 장광석 소장이 구해온 자료를 통해 뭔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간단한 응징(?)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설연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은 물론, 말에서 떨어지게 만든 것 역시 그녀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우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이런 여자는 연예계에서 영원히 퇴출시켜야 했다.

며칠 후,

-영등포역.

여느 때처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역사(驛舍)의 풍경이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사람들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노숙자들이다.

각자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주를 나누고 있었다.

“어이, 조 씨, 와서 술 한잔 받아.”

한 노숙자가 50대로 보이는 동료 노숙자에게 소주를 권한다.

“이게 웬 거야?”

“후후후~ 병 팔아서 사왔지!”

조 씨라 불린 사내는 어느새 바닥에 앉아 술을 받아 들었다.

“조 씨, 강소주는 몸에 안 좋아. 여기 안주도 드셔!”

어느새 다가온 또 다른 노숙자다.

그는 누군가가 먹다 버린 것 같은 새우깡 봉지를 펼치며 다가왔다.

“고마워. 자네도 한잔해.”

“흐흐흐~~ 땡큐.”

여기 저기 땟국이 묻은 종이컵에는 어느새 술이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즈음 역사 앞에 마련된 TV에서 드라마 예고편이 방송되었다.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사극이다.

“오~ 강하나네. 저년 진짜 예쁘지 않아?”

“흐흐흐~ 그러게, 딱 내 스타일이야. 청순한 얼굴에 베이글한 몸매~~”

“아이고~ 참말로 예쁘다.”

남자들이 모이면 으레 등장할 수 있는 음담패설(淫談悖說)이 이어졌다.

그러나 조 씨라 불리는 남자는 그저 묵묵히 술잔만 들고 있었다.

‘아빠. 나 우리 반에서 일등 했어요.’

‘여보~ 이번 겨울에 어머님 댁에 보일러 하나 새로 놔드려야겠어요.’

‘생일 축하합니다. 하하하하~~’

‘……!!’

왜일까?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이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성공한 인생이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했으며 마음씨 좋은 부인을 얻어 슬하에 딸 하나를 낳았다.

나중엔 그 기업의 임원이 되어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그런데 그의 삶에 암흑이 찾아왔다.

그것은 불륜이라는 이름의 독이 들어간 사과였다.

되돌릴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에 그렇게 눈이 돌아갔는지 그는 되돌리지 않았다.

결국 단란했던 그의 가정은 파탄이 났고 경쟁자에게 밀려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의 삶은 그때부터 추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노숙자라는 밑바닥까지 말이다.

조 씨는 복잡한 심사(心思)가 가득한 눈빛으로 TV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정장을 빼 입은 사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혹시 조정민 사장님 되십니까?”

“……누, 누구십니까?”

사내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품에서 명함을 꺼내 보이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조 사장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는 분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평범한 명함이다.

그러나 명함의 뒷면에는 <강하나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

순간 조 씨의 두 눈이 터질 듯 커졌다.

“생각 있으면 따라오십시오.”

남자가 노숙자 조 씨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걸음을 옮기자 조 씨는 뭔가에 홀린 듯 서둘러 남자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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