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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마법 작가다-28화 (28/187)

◈ 제 28화

28화 김진우의 반격

-위잉!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린다.

동혁의 전화다.

“여보세요.”

“선우냐? 어디야?”

“도서관.”

“…….”

그로부터 약 두 시간 후,

마스크에 모자까지 깊게 눌러쓴 동혁이 선우에게 다가왔다.

“선우야~~”

“왔냐?”

“또 책이냐?”

“어. 근데 넌 그게 뭐냐?”

선우의 질문에 동혁은 주위를 살피며 조용히 답했다.

“야~ 이렇게 안 하면 밖에 나가질 못해. 사람들이 가만두질 않아!”

뮤직비디오가 대박이 난 후,

동혁에게 변장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사실 처음에는 스타가 된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 변장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지만 사람들에게 몇 번 크게 시달린 이후 동혁 역시 다른 연예인들처럼 변장을 하게 되었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누군가가 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부담이었다.

“풋~ 지금 스타 됐다고 자랑하는 거냐?”

“……티 나?”

“완전!”

“큭큭큭~~”

동혁은 멋쩍은 웃음을 내며 옆자리에 앉았다.

“근데 이 책들 뭐야? 설마 다 본 거냐?”

“응.”

“헐! 이 새끼, 니가 정말 사람이야?”

동혁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마침내 내 정체에 대해 네가 알게 되었구나. 사실 난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안드로메다 B-63에서 온 외계인…….”

동혁은 선우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지랄!”

“랄프~”

“…….”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썰렁함을 느낀 두 사람이다.

“험험! 기왕 도서관에 왔으니 나도 이참에 책이나 한 권 읽어볼까?”

동혁은 어슬렁거리며 책장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동혁이 다시 모습을 나타냈을 땐 책 한 권이 그의 손에 쥐여 있었다.

“어이! 친구~~”

“그건 무슨 책이야?”

“요놈이 요즘 핫(hot)하다고 하더라고~~ 사실 전부터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포기했었지. 어른들도 이거 보고 질질 짠다고 하던데, 너도 읽어 봤냐?”

“…….”

동혁의 손에는 <아빠를 부탁해>가 들려 있었다.

잠시 후,

동혁은 <아빠를 부탁해>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책장이 한 장씩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진지해지는 그의 모습에 선우는 내심 미소 지었다.

‘이놈아. 그 책의 저자가 바로 이 형님이시다.’

그리고 세 시간 후,

동혁은 마침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다 읽었어?”

“응.”

“어땠어? 재밌어?”

“……응. 좀 감동적이었어.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라.”

동혁은 어느새 붉어진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학생이었고 청년이었어. 그러다 가장이 됐지.”

“호오~~”

“아버지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더라고! 앞으로 우리 아부지께 좀 더 잘해 드려야 할 것 같아.”

“자식, 철들었네.”

“철은 무슨~”

“아아! 됐고~ 정산받으면 아버지 용돈이나 넉넉히 드려라.”

“안 그래도 그러려고 한다. 암튼 책도 읽었겠다.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갈까?”

“네가 사는 거냐?”

“당근이지, 이 형님이 쏴주마. 어서 가자.”

“네가 쏜다고? 호오~ 이제 보니 정산받았구먼.”

“큭, 눈치 하난 귀신같다니까. 암튼 어서 일어나자.”

동혁은 주위의 시선을 약간(?) 의식하면서 선우에게 말했다.

“좋아, 비싼 것 사준다고 약속하면 가주지!”

“그래! 뭐든지 사줄게. 이젠 좀 가자. 엉?!!”

듣자하니 동혁의 음반이 꽤 많이 팔렸다고 한다.

노래가 좋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T&B 엔터의 마케팅도 한몫했다.

“어? 그건 뭐야?”

동혁의 눈에 선우가 쓴 원고지가 들어왔다.

“뭐?”

“그 원고지! 혹시 노래 가사야?”

“아니야.”

“그럼 뭔데? 혹시 소설?”

소설이냐는 질문에 선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응. 그냥 몇 자 써봤어.”

“에이~ 왜 이러셔~~ 대충 봐도 몇 자가 아닌데? 친구여, 솔직히 말해다오. 이거 뭐야?”

동혁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답을 구하자 선우는 다시 한 번 별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단편소설이야.”

“단편소설?”

“응, 그냥 한번 써봤어.”

“워~ 워~~ 워!! 잠깐만~ 우리 최선우 씨, 이제 소설도 쓰신다고요?”

“왜! 난 소설 쓰면 안 되냐?”

“워~ 워~~ 워!! 안 되는 건 아니지요~~ 근데 좀 불공평한 것 같지 않아요?”

“뭐가?”

동혁의 말에 선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가 또 불공평한데?”

“생각해 보세요! 공부도 잘해요. 운동도 잘해요. 작곡도 죽여주게 잘해요. 근데 이제 소설까지 쓴다고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요. 만약 소설까지 잘 쓰면 넌 사람이 아니에요.”

동혁의 말에 선우의 표정이 매우 진지해졌다.

“사실 난 안드로메다 B-63 행성에서…….”

선우의 말에 동혁은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닥쳐!”

“큭큭큭~~”

“그놈의 안드로메다 B-63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 * *

“이런 젠장!!”

-쨍그랑!

고급 양주가 담겨 있던 유리잔이 산산조각 나 바닥에 떨어졌다.

남자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매우 거친 숨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으아아!”

괴성을 토해낸 남자의 정체는 바로 김진우다.

공개석상에서 그렇게 개망신을 당한 그는 아버지의 명령에 아내가 머물고 있는 유럽으로 건너가 아내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끈질긴 노력을 통해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로 인해 초록별 출판사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김진우는 초록별 출판사에 대해 조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IMF라는 국가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초록별 출판사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에 그는 욕설을 토해내고 말았다.

“이런 X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기업이 쓰러져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초록별의 재무구조는 더욱 탄탄해졌다?

만약 그가 초록별 출판사와 문학사를 합병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어쩌면 대외적으로 나설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꼴이 대체 뭔가?

김진우의 마음 깊은 곳에서 최규용 대표와 이태리 작가에 대한 분노가 다시 한 번 솟구치기 시작했다.

“개X끼들!! 다 네놈들 때문이야. 으아아아!”

붉게 충혈된 그의 눈동자에서 끝을 알 수 없는 분노가 발산되었다.

그 모습은 흡사 정신병자를 보는 것 같았다.

-으드득!!

“개자식들! 내가 돌아왔다. 내가 돌아왔다고! 내가 받은 수모와 고통, 모두 갚아주마. 알겠어?”

며칠 후,

신현민 작가는 김진우의 연락을 받고 집을 나섰다.

그에 대한 지저분한 소문에 처음엔 완곡한 표현을 써 그와의 만남을 거절했지만 공(公)은 공이고 사(私)는 사라는 말에 신현민 작가는 김진우와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입니다. 신 작가님.”

“안녕하세요. 김 대표님.”

신 작가는 김진우가 건네는 악수를 받아들였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네.”

자리에 앉은 신현민 작가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이유로 절 보자고 하셨는지요?”

“이것 때문입니다. 한번 읽어보시죠.”

“……?”

김진우가 건넨 서류를 확인한 신현민 작가의 눈빛이 묘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게 사실입니까?”

“물론입니다. 작가님을 모셔오는데, 이 정도는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

진우가 그에게 건넨 서류에는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가령 10,000원짜리 책이 있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신인 작가 경우 책값의 7~8%를 인세로 받고 기성 작가의 경우 책값의 15% 정도를 받는다.

계산하기 쉽게 책값의 10%를 작가들이 받는 평균적인 인세라고 하자.

여기에 유통을 담당하는 총판이 책값의 30%를, 책을 제작하는 데 2~30%가 들어간다. 이것을 모두 따져보면 책을 기획하고 만든 출판사의 이익 역시 통상 책값의 30% 선이다. 그런데 김진우는 출판사의 수익 분을 작가에게 전부 넘기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신현민 작가에게 제시한 인세는 무려 40%에 육박했고 이것은 시장 원리에 완전히 역행하는 인세였다.

‘호오~ 이게 정말이란 말이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진우를 쳐다보던 신현민 작가가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해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여쭤 봐도 될까요?”

“네. 마음껏 물어보십시오.”

“인세로 책값의 40%를 주신다고 했는데, 이러면 대표님께 남는 게 있습니까?”

“하하하! 남는 거요? 아마 십 원 하나 남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손해를 보겠죠.”

“그런데 왜……죠?”

신 작가는 김진우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건 바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김진우의 말에 신 작가는 깜짝 놀랐다.

“지금이 어떤 시기입니까? IMF 아닙니까?”

김진우는 진정성이 담긴 눈빛으로 신현민 작가를 바라보았다.

“우리 대한민국은 현재 매우 어렵고 힘든 시기에 있습니다. 모두가 힘들 때 신 작가님과 같은 분들이 우리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써주십시오. 그게 바로 제가 원하는 겁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 생각보다 굉장히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허허허.”

“아……!!”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대한민국 문학계를 한번 뒤집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작가들이 주인공이 되는 시장을 만들고 싶네요.”

진우의 진실성(?) 있는 대답에 신현민 작가는 감탄했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사실 그는 별로 김진우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의 만남을 통해 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혹시 주변에 좋은 작가님들이 있으면 소개 좀 시켜주십시오.”

“저와 동일한 조건입니까?”

“모두가 같지는 않습니다. 작가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저마다의 필력이 달라서요.”

“……그건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계약에 관한, 특히 인세 부분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진우는 시계를 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아니, 벌써요?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아닙니다. 다음 약속이 있어서요.”

“네. 그렇군요.”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저도 대표님과 함께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두 사람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씨가 흐린 가운데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들어가십시오.”

“네, 대표님도 들어가십시오.”

김진우 대표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신현민 작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40%!’

인세가 무려 40%라고 한다.

이것은 통상 그가 받고 있는 인세의 3배에 육박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느 누가 김진우 대표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요즘과 같은 시기에 말이다.

“출판계에 폭풍이 불어오겠군.”

한편 신현민 작가와 헤어진 후,

승용차에 올라탄 김진우는 백미러를 보며 히죽 웃었다.

“새끼, 꼴에 작가라고 튕기더니 결국 돈에 넘어가는군. 암튼 신현민 작가는 이제 됐고 이번엔 조경환 작가를 만나봐야지.”

계약이 만료된 작가들이 다른 출판사와 계약하는 일은 출판 시장에서 비일비재(非一非再)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신인 작가의 경우에나 그렇지 기성 작가쯤 되면 웬만해선 출판사를 옮기지 않는다. 그동안 같이 일해 왔던 의리도 있고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해 잘 아는 편리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김진우가 제시한 40%의 인세는 그런 의리와 편리함을 기억 속에서 삭제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는 초록별 출판사와 계약되어 있는 조경환 작가를 만나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이날 밤 늦은 시각,

김진우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형 서점의 고위 관계자와 강남의 고급 술집에서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세상은 어두운 가운데, 줄기차게 내리는 빗소리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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