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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마법 작가다-25화 (25/187)

◈ 제 25화

25화 유노브라더스

“지금 우린 <태리 포터>의 공동 작가를 만나러 가는 거야.”

“<태리 포터>의 공동 작가라면, 설마 태리 리?”

“응.”

“그에 관해선 알려진 것이 전혀 없어서 몰랐는데, 설마 한국 사람이었어?”

“그래. 그 설마가 사실이야.”

롬바르디의 대답에 글렌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만약 수앤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한국에 올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 있는 태리 리와 만나보세요.

영화 판권 계약에 관한 전권을 그에게 위임했습니다.

“나 역시 이번 계약 건이 아니었다면 그의 정체에 대해 몰랐을 거야.”

“그랬구나, 난 단순히 판권 재계약 문제 때문에 한국에 오는 줄 알았어.”

“재계약 건도 있지. 하지만 이번 방문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태리 포터>야.”

“알겠어. 글렌.”

-부우웅.

두 사람을 태운 택시가 남부 순환도로를 따라 시원하게 달렸다.

뒷좌석에 앉은 롬바르디가 창밖을 내다보며 탄성을 지어낸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꽤 발달한 도시잖아?”

한국을 어디 동남아에 위치한 나라 정도로 생각한 롬바르디가 적잖이 놀란 기색이다.

“이것 봐, 롬바르디! 한국은 1988년에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야!”

“올림픽? 헐~~!!”

“그래. 저력이 있는 나라지. 영화 시장도 꽤 짭짤하고 말이야.”

“인구가 얼만데?”

“인구는 중국에 비교할 수 없고 일본에도 못 미쳐. 그치만 영화 수익의 50%를…….”

글렌과 롬바르디가 한국 영화 산업의 수익 구조와 그에 따른 배분율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두 사람을 태운 택시가 어느덧 약속한 장소에 다다르고 있었다.

얼마 후,

호텔에 도착한 글렌과 롬바르디가 19층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미국 유노에서 왔습니다.”

“네, 들어오십시오.”

유노에서 왔다는 말에 선우는 문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네.”

선우는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는 동시에 거실로 인도했다.

-두리번두리번.

“……?”

“작가님은 아직인가요?”

거실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글렌이 선우를 향해 물었다.

“네?”

“태리 리 작가님 말입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아…….”

아마도 그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선우가 태리 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긴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수앤이 말하지 않았나 보네요.”

“네?”

글렌은 ‘저 친구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Terry Lee입니다.”

조용한 미소와 함께 선우가 다시 한 번 인사를 건넸다.

“……!”

“……!!!”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수앤 작가와 함께 <태리 포터>를 썼다는 말입니까?”

롬바르디가 확인하듯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오 마이 갓!”

이렇게 앳되어 보이는 청년 혹은 소년이 <태리 포터>를 쓴 작가였다니!!

선우를 만난 두 사람은 놀라움을 넘어 당혹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당신이 정말 Terry Lee라고요?”

“네. 롬바르디 씨,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상대방의 거듭된 확인에 선우의 음성이 냉랭해지자 롬바르디는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제가 실례한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저 역시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당황해하며 사과하자 선우는 그제야 굳어진 표정을 풀어 보이며 의자에 앉길 권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시죠.”

“네.”

-조르르륵!

“드시죠.”

“네? 아…… 네.”

롬바르디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러자 글렌이 나섰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전 글렌 매덕스입니다. 여기 이 친구는 롬바르디 포먼입니다.”

“반갑습니다. 필명은 태리 리, 본명은 최선우입니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글렌이 악수를 청하자 선우 역시 손을 뻗었다.

“수앤에게 어느 정도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태리 포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요?”

서론은 빼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 시리즈의 판권을 전부 사고 싶습니다.”

“판권 전부요?”

“네.”

“하하하, 아직 완결이 나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요?”

“몇 년이 걸리더라도 저희는 충분히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글렌은 서류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온 계약 관련 서류들을 꺼내 놓았다.

영문으로 빽빽하게 적힌 A4 용지 크기의 서류들이다.

“변호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읽을 수 있습니다.”

선우는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서류를 검토했다.

약 30분 후,

선우의 입이 열렸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서류를 살펴봐야겠지만 조건이 나쁘지 않네요.”

“저희는 이 업계에서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네. 유노브라더스가 최고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제 마음에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이요? 그게 뭡니까?”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은 제 성격에 맞지 않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귀사에 세 가지를 요구하고 싶습니다.”

“……말씀해 보시죠.”

상대방의 반응에 선우는 당당하게 그의 요구 사항을 말했다.

“제 요구 사항은…….”

1.주인공과 주연급 조연에 영국인 배우를 쓴다.(수앤의 요구 사항)

2.캐스팅 오디션에 작가가 주도적으로 참여한다.(수앤과 선우의 요구 사항)

“영국 배우로 영화를 채우라는 말입니까?”

롬바르디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오디션에 작가가 참여하는 것은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을 비롯해 주연급 조연들 역시 모두 영국인으로 채우라니요, 그건 말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무리한 요구입니다.”

선우의 요구에 글렌 역시 난색을 표했다.

“왜 이게 무리한 요구입니까? 두 분께서도 책을 읽어보셔서 알겠지만 시리즈에 참여할 배우들은 주조연만 최소 수십 명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4-5명입니다.”

“테리 포터를 비롯한 주연 3인방이 모두 영국인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게 왜 문제입니까?”

“네?”

“그게 왜 문제냐고요? 제가 누굴 꽂았습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닙니다.”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두 사람이었다.

“무조건 영국인이라고 해서 뽑지 않겠습니다. 유노 측의 캐스팅 책임자 역시 오디션 심사 위원으로 참여할 것이고 저나 수앤 역시 일방적인 주장만 고집하지 않을 겁니다. 심사 위원 모두가 인정할 수 있도록 회의를 통해 만장일치로 결정하겠습니다. 캐스팅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말씀하시고 설득하시면 됩니다.”

“……음!!”

선우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갑은 판권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쩝! 빈틈이 없군.’

글렌은 내심 혀를 차며 롬바르디와 시선을 교환했다.

롬바르디 역시 아쉬워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이내 뒤로하고 선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까 세 가지 요구 사항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마지막 요구 사항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선우는 세 번째 요구 사항을 말했다.

3.영화 <태리 포터> 시리즈의 제작비 50%를 원작자가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

“제작비의 50%라고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글렌이 깜짝 놀라 말했다.

“아무리 원작자라고 해도, 제작사와는 포지션이 다른 겁니다. 이번 작품은 유노브라더스의 100% 투자로 이루어질 예정이오니 투자 계획은 재고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만 재고의 여지는 없습니다.”

선우의 단호한 대답에 글렌과 롬바르디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대신 판권료를 높여 드리겠습니다.”

롬바르디가 판권을 미끼로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필요 없습니다.”

“이백만 달러, 어떠십니까?”

“필요 없습니다.”

“……오백만 달러!”

“필요 없다니까요! 천만 달러를 준다 해도 싫습니다.”

“……!”

“……!!”

이건 뭐,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선우는 그야말로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지금 나랑 장난해? 이건 전 세계를 마법 열풍에 휩싸이게 만든 영화야.’

선우의 기억에 따르면 영화 <헨리 포터>는 세계 영화 흥행 순위 26위를 기록하며 1편의 수익으로 정확히 9억 7,475만 달러(한화 1조 1,185억 원)을 벌어들였다.

1편의 영화 수익만 1조가 넘은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순수한 영화의 수익금이다.

영화를 통해 파생될 이익을 제외한 돈이었다.

한순간 깊은 정적이 흘렀다.

‘……지금쯤 전화 올 때가 됐는데.’

선우의 부름에 응답이라도 하듯, 마침 선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때르르릉!

동혁이다.

‘짜식, 알맞게 전화하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선우는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는 동시에 동혁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오스본 씨.”

-오스본 씨라니? 대체 뭔 소리야?

“그래요.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야! 최선우. 선우야?

“그래요. 한번 봐야죠.”

-야! 인마, 뭔 개소리야. 너 미쳤냐?

-야! 야! 선우야. 최선……우…….

“좋습니다. 아! 지금은 먼저 온 손님이 있으니까 나중에 다시 통화하도록 하죠.”

-뚝!

동혁에게 걸려온 전화를 끊으며 고개를 돌리자 당혹감에 물든 글렌과 데이비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꽤나 심각한 표정이었다.

‘방금 오스본이라고 했지?’

‘응.’

‘설마 파라마운틴의 그 오스본인가?’

성격이 급한 롬바르디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파라마운틴입니까?”

“…….”

선우는 롬바르디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의뭉스럽게 미소를 보였을 뿐이다.

“오늘 중으로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은데, 오늘은 이만 여기서 끝내시죠.”

“어이쿠, 작가님, 이거 왜 이러십니까?”

선우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롬바르디가 짐짓 큰일이라도 났다는 듯 허리를 숙여가며 선우를 잡았다.

이렇게 헤어진다면 선우가 경쟁사와 만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못 들었으면 모르겠지만 들은 이상, 롬바르디의 눈에는 최악의 결과가 보였다.

“왜요? 계약이라도 하실 건가요?”

“……알겠습니다.”

글렌과 롬바르디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태리 포터>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쟁사에 판권을 넘긴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1번과 2번 사항은 100% 수용하겠습니다. 대신 3번의 투자 비용에 대해서는 약간의 조정이 필요합니다.”

“……어느 선까지 가능합니까?”

글렌이 눈알을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20…….”

글렌의 입에서 20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순간 선우의 입가에 썩소가 그려지자 글렌은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30%, 30%가 마지노선입니다.”

글렌의 눈동자 속에 숨겨진 그 씁쓰름한 마음이 구구절절하게 느껴진다.

그 역시 필사적임을 알 수 있었다.

선우는 내심 만세를 외쳤다.

“……좋습니다. 계약합시다.”

* * *

계약이 끝난 후,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선우의 나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글렌. 자네도 봤나?”

“……봤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음악이나 미술에서는 신동이 태어날 수 있지만…….”

“그러게, 14살 아이가 이런 글을 썼다니,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거야. 협상 능력은 또 어떻고?”

“내 말이 그 말이야.”

두 사람은 선우가 시야에서 사라지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소설을 쓰는 데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지만 <태리 포터>의 방대한 세계관과 스토리가 어떻게 14살 소년의 손끝에서 나올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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