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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마법 작가다-17화 (17/187)

◈ 제 17화

17화 주먹왕 최선우

며칠 후,

선우는 송파구에 위치한 잠실월드에 갔다.

개장 시간에 맞춰 일찍부터 움직였지만 휴일인 덕분에 입구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휘유~ 사람 좀 봐. 엄청 많네.”

“많으면 어때서~ 너와 함께 있으니까 난 좋기만 한데? 호호호~”

모자에 깊게 눌러쓴 선우의 뒤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 왔어?”

“응~ 왔어.”

모자에 마스크까지 착용한 설연이 선우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아역으로 데뷔한 그녀는 이미 큰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기에 모자와 마스크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근데 날 어떻게 찾았어?”

“왜 이러셔~ 나 한설연이야. 한설연이라고!”

“……큭!”

평소보다 모자를 깊게 눌러썼는데, 암튼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각설하고 설연의 뒤로 그녀의 두 언니가 자유이용권을 흔들며 다가왔다.

“선우야, 오랜만이다.”

설희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누나. 밥 먹자고 했지 잠실월드에 가자고는 안 했잖아요?’

‘……호호호, 여기도 밥을 팔거든~~’

‘와아, 대박! 이래서 엄마가 엄마만 빼고 여자 말을 믿지 말라고 하셨구나.’

‘그래서 어쩌라고~~ 호호호호!’

눈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때 누군가의 느닷없는 공격이 발생했다.

“야! 최선우, 네가 연예인이야? 모자는 왜 이렇게 깊게 눌러썼어!”

설주가 선우가 착용하고 있는 모자를 벗긴 것이다.

그 바람에 모자가 벗겨져 선우의 광채 나는 얼굴이 드러났다.

“누나! 지금 뭐하는 거예요?”

“왜~~ 선우야! 네 얼굴을 숨기는 건 범죄야. 그러나저러나 이 피부 좀 봐봐~ 전보다 더 좋아졌네.”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마치 기회를 잡았다는 듯 선우를 아예 꽉 끌어안아 버렸다.

“선우야, 너 무슨 화장품 쓰니, 가르쳐줘~~”

“언니, 지금 뭐하는 거야? 선우는 내 거라고!!”

이에 질세라 설연 역시 선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이고, 숨 막혀 죽겠네~~”

선우는 죽는다 소릴 했지만 내심 이 상황을 즐겼다.

세 자매의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상큼한 향기가 무척이나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선우를 뺏기기 싫었던 설연의 돌발행동에 의해 세 자매 모두가 선우에게 밀착됐기 때문이다.

“어, 어?!!”

앞뒤로 맞닿은 자매들의 풍만한 가슴에 선우의 중심이 꿈틀거렸다.

이제까지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짜릿한 감각이 선우를 놀라게 했다.

‘……헉!’

선우의 얼굴이 순간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 그만!!”

당황한 선우는 자매의 품에서 재빨리 빠져 나와 놀이기구를 향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후다닥!

“선우야, 어딜 가는 거야?”

설연이 그의 뒤를 바짝 쫒자 설희 역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언니, 뭐해? 어서 가자!”

“어, 응? 너, 너 먼저 가. 문자가 와서. 회사에 전화 한 통만 하고 갈게.”

“문자? 급한 전화야?”

“응.”

설주의 대답에 설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전화만 하고 바로 와야 해.”

“그래.”

혼자 남게 된 설주는 그제야 세차게 뛰고 있는 그녀의 심장 박동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내가 미쳤었나?’

순간이었지만 설주는 선우에게서 아찔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여자라면 누구라도 거부할 수 없는 수컷의 강력한 향기였다.

“이야, 저것 좀 봐.”

“뭐야, 저 사람들 배우 아니야?”

“대박! 오늘 여기서 드라마 촬영하나 봐~~”

“세상에······!”

“진짜 멋지다.”

길을 가며 마주치는 여인들마다 몽롱한 표정이다.

선우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오라를 느낀 것이다.

심지어 남자친구가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넋이 빠질 정도로 선우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도 있었다.

“……야, 야!”

잠실월드를 찾은 선미 역시 선우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야! 박선미!!”

“어?”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어? 그, 그게?!”

창현의 얼굴은 이미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한 상태다.

“아는 사람인 듯해서…….”

“아는 사람?”

창현은 선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씨X! 지금 나랑 장난해?”

“……씨X?”

창현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자 선미의 표정 역시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

“씨X이라고 했다. 왜?”

“…….”

선미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 넋을 잃고 쳐다본 것은 인정한다. 미안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씨X이라는 욕설을 들을 정도로 잘못한 일인가?

남자들 역시 예쁜 여자만 보면 시선이 돌아가지 않는가?

“……쪼잔한 새끼!”

“뭐? 쪼잔한 새끼?”

“그래, 이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새끼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애인 관계였던 남녀는 서로를 향해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일으키게 만든 주범(?)은 이미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한 시간 후,

심한 말다툼 끝에 선미와 헤어진 창현은 후회가 막심했다.

‘젠장, 욕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뒤늦은 후회다.

이미 떠나버린 버스를 어떻게 하겠는가?

선미와 크게 싸운 창현의 얼굴에는 상심과 후회가 가득했다.

이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선미와 싸우게 만든 선우의 얼굴이 창현의 눈에 들어왔다.

“……어랏? 저 새끼는?!”

모자를 눌러쓴 덕에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지만 미모의 세 자매와 함께 있는 선우의 모습에 그는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 선미랑 싸우게 된 건 모두 저 새끼 때문이야.’

자기가 한 짓은 생각지 않고 모든 책임을 선우에게 전가한 그는 순간 앙심을 품게 되었다.

‘개자식, 너도 개망신 한번 당해봐라.’

-저벅저벅!!

선우를 향해 다가가는 창현의 발걸음이 사뭇 비장했다.

이와 같은 시각,

설희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주먹왕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우리 이거 한번 해보자.”

“이게 뭔데? 주먹왕?!”

어렸을 적에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펀치력을 테스트하는 오락기다.

펀치 기계 주변에는 구경꾼들이 많았는데, 이것은 오락실이라는 특별한 장소 덕분인 듯했다.

“호호호~ 재밌겠는데!”

재밌겠다는 표정과 함께 설주가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재빨리 꺼냈다.

동전을 기계에 넣자 ‘도로로롱’ 소리와 함께 펀치 기계가 올라왔다.

“내가 먼저 친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설희가 먼저 때렸다.

-광!

‘삐리리’하는 소리와 함께 650점이 찍힌다.

1000점 만점에 650점, 여자치곤 무난한 점수다.

“이번엔 내 차례야.”

두 번째는 설주다.

-광!

그녀의 점수는 무려 780점.

오!! 여자치곤 꽤나 높은 점수가 나왔다.

“와~~ 언니, 대박!”

“큰언니 주먹 완전 센데~~”

“야, 내가 방송 판에서 굴러먹은 지가 몇 년짼데~~ 이 정도는 거저지. 후후후!”

“딸막이도 한번 쳐봐.”

“내가?”

“그래.”

“……좋아~”

설연은 제법 그럴싸한 자세를 잡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100, 200, 300, ……370.

370점에서 멈췄다.

“에게…… 쳇!”

“풋!”

“훗!!”

“큭!!!”

크게 웃으면 삐질라, 두 언니와 선우는 외마디 신음과 함께 실소를 지었다.

“어? 아직 한 번이 남았네.”

세 자매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선우에게 향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저 바라보면~

어디선가 귀에 익은 CF 송과 함께 무언의 압력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좋아. 그럼 한번 쳐볼까?”

선우가 자세를 잡고 주먹을 뻗는 순간,

“야! 너 이 새끼…….”

선우를 향해 시비를 걸려던 창현의 입술이 닫혔다.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선우의 주먹 소리가 귓가에 확연히 들려왔기 때문이다.

곧이어 창현의 두 눈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쾅!!

-삐삐삐삐~~ 099, 399, 899, 999. 999. 999…… 삐삐삐삐!!!!

점수판에는 999라는 숫자가 연달아 깜빡이고 있다.

이것은 곧 1000점이라는 의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샌드백이 터지는 소리도,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점수도 그렇고…….

상황을 보아하니 저 녀석은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는 녀석이 틀림없어 보였다.

“……꿀꺽!”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후회와 함께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선우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기요.”

“네?”

“좀 전에 절 부르시지 않았나요?”

‘드, 들었나? 젠장!!!’

당황한 표정을 숨긴 창현은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선우를 향해 아주 반가운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혹시 도를 아십니까?”

이날 밤 설주의 방,

999, 999, 999!

펀치를 때리던 선우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이날 밤 설희의 방,

선우가 이태리 작가라는 비밀을 자기 혼자만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들었다.

이날 밤 설연의 방,

그녀는 이미 꿈속에서 선우와의 달콤한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선우야~~”

“아잉~ 하지 마~~ 하지~~ 마.”

대체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일까?

궁금하면……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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