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화
16화 비루먹은 강아지
“문학사!”
규용의 갑작스런 문학사 언급에 진우는 내심 깜짝 놀랐다.
“……무, 문학사? 문학사가 왜?”
“아직도 숨기는 건가?”
“내가 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오리발이다.
만약 그가 배우였다면 올해 연기 대상은 그의 몫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규용은 한층 더 차가워진 눈빛으로 진우를 노려보았다.
“네가 문학사의 대주주라는 사실!”
“헙!”
규용의 말에 진우의 두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줄까? 네가 문학사의 실질적인 주인이라는 사실을 왜 숨긴 거지?”
‘씨X! 어떻게 알았지?’
“어디 설명할 수 있으면 좀 해보지그래?”
규용은 진우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그, 그건······”
진우의 두 눈이 재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일단 어떻게든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규용아. 오해야.”
“오해?”
“그래, 오해야, 오해.”
“뭐가 오해라는 말이지?”
“……문학사라는 고기를 놓치기 싫었어. 그래. 그게 싫었어. 그래서 내가 샀어.”
“샀다고?”
“그래. 초록별과 합병이 무산된 직후, 내가 문학사의 주식을 매입했어. 그래. 그렇게 된 거야. 너도 알다시피 너무 좋은 기회였잖아?”
“아하! 그래서 네가 문학사의 주인이 되셨다?”
“그래. 그게 팩트야. 문학사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었고 난 그걸 놓치지 않았을 뿐이야. 그리고 조만간 네게 얘기해 주려고 했어.”
순간적으로 토해냈지만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 적절한 변명이라 생각했는지 당황했던 그의 얼굴에 일순 화색이 돌았다.
“좋아. 그럼 이건 뭐지?”
-툭!
규용이 내민 자료는 문학사 주식 보유 현황 차트다.
“이, 이게 어떻게?!!”
진우의 표정이 볼만하다.
그의 얼굴색이 당혹감에 의해 급격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규용이 내민 차트는 진우가 초록별 출판사와 전략적 합병이 논의되기 이전부터 문학사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규용의 말에 진우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렸다.
“왜?!! 내게 또 할 말이라도 있어? 이번엔 무슨 거짓말을 하려고?”
“……!!”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 할 말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어보자, 대체 왜 그랬냐? 초록별이 그렇게 갖고 싶었나? 친구를 배신할 만큼?!!”
본심을 들킨 진우의 대답이 가관이다.
“……그냥.”
“뭐?”
“그냥 갖고 싶었다고!”
“그냥…… 갖고…… 싶었다고?”
“그래, 별것도 아닌 놈이 잘난 척하는 게 보기 싫었다. 배알이 꼴렸다고, 이제 됐냐?”
“……!!”
어이가 없었다.
이런 놈을 친구라고 사귀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쓰레기 같은 새끼!”
“뭐?! 쓰레기?”
규용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오자 오히려 방방 뜨는 진우다.
“이 새끼가 쥐꼬리만큼 성공했다고 뵈는 게 없나?!! 너 이 새끼. 죽고 싶냐?!”
진우의 얼굴색이 분노로 인해 시시각각 벌겋게 변화한다.
뭔가 당장이라도 사달이 일어날 것 같은 흉흉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순간,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해결사가 등장했다.
“저기, 저기에 매형이 있네.”
“매형은 무슨 놈의 매형! 저 새낀 오늘 죽었어.”
진우의 얼굴을 확인한 몇몇 남녀가 마치 달려오듯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다짜고짜 진우의 양팔을 꺾어 버렸다.
“아악! 뭐, 뭐야?”
뜻밖의 상황에 진우는 고통을 호소한다.
동시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규용 역시 당황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너희들 누구야?!”
“똑바로 잡아.”
남녀의 얼굴을 확인한 진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여보? 처, 처남?”
“그 더러운 입으로 날 부르지 마.”
시퍼런 서슬이 느껴지는 음성에 진우의 목소리가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여보, 왜 그래? 처남!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이 손부터 놓고 얘기해!”
“……김진우! 너, 딴살림 차렸더라, 그것도 세 집씩이나!!”
순간 진우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냐고?”
“여, 여보, 누구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몰라도 오해야. 일단 이 손부터 놓고 내 얘기를…….”
이때,
한 떼의 여자들이 시상식장에 난입했다.
“진우 오빠!”
“오빠!”
“진우 씨!!”
“……헉?!!”
참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빙고~!
선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빠, 돌싱이라며!!”
“흑흑흑.”
“……개자식!”
그녀들의 등장에 진우는 두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씨X, X됐다.’
-웅성웅성!
“뭐야? 설마 바람피우다 조강지처에게 걸린 거야?”
“큭큭큭!”
“참! 지랄도 풍년이다. 저기 저 사람, 문학사의 실질적인 대표라고 하던데?”
“……어휴, 더러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이 싸움 구경이라고 얘기하는데, 여기에 살짝 양념을 얹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은 막장 구경이다.
“야, 이 개 같은 놈아.”
“이 새끼는 좀 맞아야 해.”
“악!”
머리가 뜯기고 손바닥이 날아와 그의 따귀를 갈겼다.
-짜악!!
이건 뭐, 이상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보다 재밌고 흥미롭다.
수상식에 모인 기자들 역시 같은 생각인가 보다.
그들 역시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감상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이봐, 박 기자.”
“네, 선배님.”
“그런데 말이야. 저기, 저 여자 얼굴이 낯이 익지 않아?”
“누구요?”
“저기 저 남자 멱살을 잡고 있는 여자 말이야.”
순간 여자의 정체가 생각난 기자다.
“대, 대양 항공 조 상무 아니야?”
“그러게요. 선배님. 조윤선 상무가 맞는 것 같아요.”
기자들 중의 누군가가 조윤선 상무의 얼굴을 알아본 모양이다.
그녀는 대양 항공 오너가의 딸이었다.
-찰칵! 찰칵!!!!
기자들은 마치 특종을 잡은 마냥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김진우는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멱살을 잡힌 그 모습 그대로 끌려 나갔다.
“저 꼬라지 좀 봐라.”
“큭큭큭! 비루먹은 강아지 같네.”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난리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음 날과 또 다음 날 그리고 그 다음에도 말이다.
* * *
-네. 그렇게 해주세요.
“알았어.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할게.”
-감사해요. 누나.
“감사는 뭘, 대신 우리 밥 한번 먹자.”
-밥이요?
“그래, 그동안 격조했잖아. 얼굴 잊어버리겠다. 이참에 설주 언니랑 딸막이까지 모두 함께 보는 게 어때?”
-좋아요.
“오케이. 너 분명하게 약속했다!”
-네.
설희는 선우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오빠. 저예요. 잘 지내셨어요?”
그녀가 전화를 한 상대는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회계 법인의 임원이다.
“오빠~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음~ 공적인 일에 사적인 부탁이 살짝 가미된 부탁이라고나 할까요? 일단 제 의뢰인이 아직 미성년자라서요. 호호호~”
선우는 한설희가 가지고 있는 인맥을 이용해 그가 가지고 있는 계획을 차곡차곡 진행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