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15화 (15/187)

◈ 제 15화

15화 난 이 합병에 반대요!

규용과 그의 가족이 볼로냐에 다녀온 이후,

초록별 출판사에서는 대주주의 공식적인 요청으로 연일 갑론을박(甲論乙駁)이 펼쳐졌다.

문학사와의 전략적 합병을 통한 출판사의 확장과 현상 유지에 대한 토론이다.

합병에 반대하는 쪽은 사회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을 들며 반대의 뜻을 표명했지만 합병에 찬성하는 쪽은 경기 불황과 같은 얘기는 저쪽 세상의 이야기로 치부하며 합병에 적극 찬성했다.

양측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초록별 출판사는 <단팥빵>과 <아빠를 부탁해>가 날린 연타석 홈런으로 인해 소위 순항에 순항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저도 문학사와의 전략적 합병에 찬성합니다.”

“문학사는 박정래 선생님과 이훈 선생님의 작품을 출간하는 곳입니다. 교과서는 물론 학습지 시장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죠. 초록별과 문학사의 전략적 합병은 정말로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시기가 좋지 않은 만큼 두 회사의 합병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감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곳도 아닌 문학사와의 합병입니다. 그것도 우리 초록별 출판사의 주도로요. 저는 찬성입니다.”

“우리가 잘나가고 있지만 사정은 바뀔 수 있습니다. 출판계 전체가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

양측의 장점과 단점이 너무나 뚜렷해 벌써 며칠째, 치열한 토론만 오가고 있는 중이다.

이때, 대주주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김진우가 입을 열었다.

“저도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시지요.”

발언권을 얻은 그는 좌중을 향해 사탕발림을 시작하였다.

“시기가 좋지 않다. 현재 출판 시장이 과열되어 구조 조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몇몇 대형 출판사들을 제외하고 벌써 이 시장이 죄다 망했어야 하지 않나요?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이번에 우리 초록별 출판사에서 성공시킨 <단팥빵>과 <아빠를 부탁해>를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 출판사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책으로만 승부해야 하는 겁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

“……!!”

“……흐음!”

“……?!!”

진우의 설득이 이어졌다.

“아시다시피 문학사는 50년 전통의 출판사입니다. 역사가 있는 만큼 외형도 크고 함께하는 작가들 역시 많습니다. 위험하다고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가들이 만든 좋은 작품을 출판하면 되니까요. 혹시 자금이 부족한가요? 그렇다면 부족한 자금 일체를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통해 우리 초록별 출판사가 대한민국 도서 출판계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

“……!!”

“……!!”

그의 열변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최 대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진우는 규용에게 그의 의중을 물었다.

“……자네 뜻은 잘 알겠네. 하지만 나는 초록별 출판사가 이제야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했다고 생각하고 있네. 지금 이 시점에서 문학사와의 합병은 모험이라고 생각하네.”

합병에 반대하는, 조금은 부정적인 발언이다.

“아니, 최 대표, 다시 한 번 생각해 주게. 지금이 적기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거네.”

규용이 반대의 의견을 말하자 진우는 확신에 찬 어투로 다시 한 번 그의 주장을 강하게 어필했다.

“지금 투자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10년 후에도 초록별 출판사의 위치는 딱 이 자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걸세. 그냥 안정적인 위치! 거기까지겠지. 최 대표. 부탁하네. 이번 합병이 성공하면 초록별은 정말로 별이 될 걸세. 자! 자! 내 얘기를 좀 더 들어 보게.”

“……!”

“……!!”

뭔가 확신에 찬 진우의 설득에 회의실의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이다.

문학사와의 전략적 합병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한층 더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고 그것은 규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 상황에 합병에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진우의 설득에 그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휴~ 그래, 알겠네. 알겠어.”

알겠다는 규용의 말에 진우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후후~ 넘어왔군. 넘어왔어.’

진우가 제안한 인수 합병에 규용 역시 찬성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은 듯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부 모르고 있었다.

현 문학사의 사장은 바지 사장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주인은 바로 김진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모종의 음모를 진행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합병 조건이 어떻게 되지?”

“차트를 가지고 왔네. 저쪽에선…….”

그런데 이때,

어느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사람이 초록별 출판사로 찾아왔다.

“여기가 초록별 출판사가 맞습니까?”

“……누구십니까?”

“네, 태양 로펌에서 왔습니다.”

“태양 로펌이요?”

태양 로펌은 이태리 작가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로펌이다.

“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태양 로펌, 변호사 조현탁

직원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에 입성(?)한 조현탁 변호사는 얼굴 없는 작가가 준비해준 편지를 공개했다.

-근래에 초록별 출판사가 시장에 나온 출판사들을 대상으로 전략적 합병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만약 초록별 출판사가 타 출판사와 합병을 진행할 경우 저는 초록별과 앞으로 함께할 수 없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중략)

이미 계약된 단팥빵 1편부터 7편의 경우, 계약이 만료되는 즉시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진행할 것이며 이것은 <아빠를 부탁해> 역시 동일합니다.

원고를 보낸 단팥빵 8편의 경우 출간 금지와 함께 원고의 조속한 회수를 요청하는 바이며 아쉽지만 초록별과의 인연은 여기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게 대체!!”

-웅성웅성!!

날벼락이 떨어졌다.

황금 알을 낳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낳아줄 이태리 작가가 초록별 출판사에 이별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 이유가 뭡니까?”

안색이 급변한 규용이 다급히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저희가 섭섭하게 해드렸나요?”

윤정환 팀장의 질문도 이어졌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네요. 작가님에겐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편지에 다 적혀 있는데 이해를 못 하셨나 보군요.”

규용과 정환의 질문에 조현탁 변호사는 좌중을 한 번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드리죠. 이태리 작가님은 초록별 출판사와 문학사 간의 합병을 원하지 않고 계십니다. 합병을 진행하시면 앞으로 빠이빠이! 이제 아시겠습니까?”

“……!”

“……!!”

잠시 동안 침묵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태리 작가의 이별 선언이 그만큼 위력이 컸다는 반증일 것이다.

“……만약에 말입니다.”

이때, 깊은 침묵을 깨고 규용이 입을 열었다.

“저희가 전략적 합병에 관한 계획을 백지화(白紙化)한다면 이태리 작가님과의 계약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대로 유지되는 겁니까?”

“네, 물론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초록별 출판사가 지금의 기조를 유지한다면 앞으로도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조현탁 변호사의 말에 규용의 얼굴에 다행이라는 안도의 빛이 나타났지만 이와 반대로 김진우의 표정은 똥을 씹은 마냥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지? 지가 스타 작가면 스타 작가지, 왜 작가 나부랭이 따위가 출판사 운영에 대해 왈가왈부(曰可曰否)하는 거야? 이래도 되는 거야?’

한편 이태리 작가의 말이 전해지자 규용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진우의 열변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 사실이지만 원래부터 그리 내키지 않던 합병이었다.

“작가님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문학사와의 인수 합병은 없던 것으로…….”

규용의 말투에서 자신이 계획한 판이 틀어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진우가 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게 지금 뭐하는 겁니까? 지금 우리를 협박하는 겁니까?”

“네? 협박이요?”

“네! 협박이요. 왜 작가가 출판사의 경영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겁니까?”

날을 잔뜩 세운 진우의 거친 반문이 이어졌다.

“이거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 아닙니까? 변호사시니 잘 아시겠네요. 이거 혹시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닙니까?”

한설희 변호사의 부탁을 받고 초록별 출판사에 온 조현탁 변호사는 진우의 거센 반응에도 불구하고 일절 감정 변화가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

조현탁 변호사의 짧고 간결한 대답에 진우의 얼굴은 마치 똥 씹은 마냥 구겨지고 말았다.

“전할 말을 다 전해 드렸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네요. 그럼 전 이만…….”

다음 순간,

조현탁 변호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실을 나섰다.

“자, 잠깐만요.”

“변호사님. 변호사님!!”

“젠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각설하고 결과를 말하자면 선우의 개입으로 인해 초록별 출판사와 문학사 간의 전략적 합병은 무산되고 말았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초록별 출판사와 문학사의 합병이 무산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 변호사님.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선우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그 해…….

한국인 최초로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한 이태리 작가의 첫 장편 소설 <아빠를 부탁해>가 국내 유명 문학상마저 모조리 석권하는 기염을 토해내고야 말았다.

-만해 문학상 수상자, 이태리 작가.

-동인 문학상 수상자, 이태리 작가.

-황순원 문학상 수상자, 이태리 작가.

-호암상 예술상 수상자, 이태리 작가.

“잠시 후, 제22회 이상 문학상 수상식이 열릴 예정이오니 참석해주신 내빈 여러분들께서는 지정된 좌석에 착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사람들이 지정된 좌석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오늘도 없나? 안 보이지?”

“그러게, 오늘도 대리 수상을 하나 봐.”

“저기 저 사람이 초록별 출판사 최규용 대표지?”

“응.”

“근데 왜 나오질 않는 걸까? 이태리 작가가 정말 실존하는 작가가 맞긴 한 거야?”

“내 말이…….”

“그러니까 얼굴 없는 작가겠지.”

“먼데이 서울 애들은 뭐하나 모르겠네.”

“그게 뭔 소리야, 먼데이 서울은 왜?”

“아니~~ 연예인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니지 말고 이태리 작가에 대해 좀 알아봤으면 해서 말이야. 그럼 대박이지 않겠어?”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기자들끼리 나누는 낮은 대화가 선우의 귓가에 들려온다.

나름 조용하게 소곤거렸지만 베리우스 수련법을 익힌 마법사의 감각은 생각 이상으로 예민했다.

한편 이태리 작가의 <아빠를 부탁해>가 이상 문학상까지 석권했다는 수상 소식에 내빈석에 앉아 있던 김진우의 표정이 보기 흉할 정도로 심하게 구겨지고 말았다.

그런데 기가 막힌 우연으로 규용을 따라 이상 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한 선우가 진우의 그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

“……!!”

선우와 눈이 마주친 진우는 재빨리 표정을 바꿔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선우는 그의 썩은 표정을 분명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 말종이로군.’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그중에 말종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

100번을 잘해줘도 1번 못해주면 그걸 기억하고 원한을 갖는 이들이 있다.

김진우는 그런 자였다.

‘이제 슬슬 저 가면을 벗겨줄 때가 되었지.’

마침 준비도 끝났다.

선우는 문학사와 초록별 출판사의 전략적 합병이 무산된 직후 나름 그 바닥에서 신용이 있다고 알려진 심부름센터(전직 형사가 운영하고 있는)를 수소문해 진우에 대해 조사했다.

특히 문학사와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했는데, 과연 돈의 위력(시세의 세 배를 줬더니)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열과 성의를 다한 박 소장의 활약 덕에 문학사와의 관계는 물론 김진우의 자저분한 여성 관계와 성적 편력까지 모조리 알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그가 어제 입은 팬티 색깔까지도 말이다.

-뿌드득!

진우의 모습을 확인한 규용 역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나 진우는 이와 같은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한껏 여유 있는 미소를 지은 채 규용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어~ 최 대표.”

“…….”

“대리 수상 하러 왔나 보네. 뭐~ 암튼 축하한다.”

그러나 진우를 바라보는 규용의 눈빛은 아주 매서웠다.

“……왜 그랬냐?”

“뭐?”

“대체 왜 그런 거야?”

낮게 깔린 규용의 목소리는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보다 더욱 큰 긴장감을 가져다주었다.

진우의 안색 역시 변했다.

“……뭐가?”

“몰라서 물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말을 해야 알지, 다짜고짜 왜 그랬냐고 묻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

진우의 말에 규용은 고개를 돌려 선우를 바라보았다.

“선우야.”

“네.”

“아빠가 진우 아저씨랑 해야 할 얘기가 있는데, 잠깐만 저쪽 테이블로 가서 앉아 있으렴.”

“네, 그럴게요.”

선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규용의 말에 따라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감각이 무척이나 예민해진 덕에 선우는 작게나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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