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2화
12화 Man Asian Literary Prize
이른 아침부터 초록별 출판사로 이상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헬로우, 초우……로……우크별 퍼브리셔…….
(Hello, Cholock-Star Publis…….)
전화를 건 상대는 꼬부랑거리는 혀를 이용해 쉴 새 없이 마치 속사포처럼 영어를 토해냈다.
“자, 잠깐만요.”
난데없는 영어에 전화를 받은 김 대리는 꽤나 당황해했다.
“미, 미선 씨!”
“네, 대리님.”
“미선 씨, 영어 할 줄 알지?”
“영어요?”
“응.”
“영어라면, 조금?”
미선의 대답에 김 대리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쩝! 토익이 800점 나오면 무엇을 하나?
회화 울렁증인 김 대리는 ‘Hold on.’이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수화기를 미선에게 넘겼다.
“여기, 이 전화 좀 받아 봐.”
-여보세요, 거기가 초록별 출판사가 맞나요?
(Hello. Is there a publisher df green stars?)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It is. What's going on?)
-맙소사, 이제야 연락이 되는군요.
(Oh My God. It is now connected.)
“……네?”
-저희는 Man Asian Literary Prize입니다. 이태리 작가의 <아빠를 부탁해>가 금번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맨 아시아 문학상?
미선은 상대방의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어디라고 하셨나요? 맨 아시아…….”
-Man Group, Man Asian Literary Prize입니다.
“맨 그룹이라고요?”
-네. 맨 그룹이 아시아 작가들을 대상으로 제정한 아시아 문학상입니다.
상대방의 대답에 미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맨 아시아 문학상이라면 아시아 최고 권위의 상이 아닌가?
더욱이 그녀의 기억 속에 한국인 수상자는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조금 전에 누가 수상했다고 하셨나요?”
-……이태리 작가의 <아빠를 부탁해>입니다.
“네. 네, 그럼요. 네. 네. 감사합니다.”
다음 순간,
미선의 허리가 90도 가까이 휘어졌다.
-웅성웅성.
대체 어디서 걸려온 전화길래, 도도한 미선 씨가 저리도 공손한 걸까?
수화기를 넘긴 김 대리는 물론 출판사 직원들 모두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미선의 통화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요~ 정말 영광입니다. 네. 그리고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윽고 통화를 끝낸 미선이 수화기를 내려놓자 사방에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뭐야?!”
“김 대리, 어디서 온 전화였어?”
“미선 씨, 누구 전화야?”
“저…… 한 번만 꼬집어 주시면 안 될까요?”
“왜,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맨 그룹에서 온 전화였어요.”
“맨 그룹?”
“네. 맨 그룹에서 이번에 저희…….”
잠시 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
“와아아아~~~!!”
“대박! 완전 대박!”
미선의 입을 통해 <아빠를 부탁해>가 맨 아시아 문학상, 그것도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출판사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이태리 작가 만세.”
“우리의 이태리 작가 만세, 얼굴 없는 작가 만세~~~!!”
그런데 이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태리 작가의 상복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 말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자자! 오늘 저녁은 제가 쏩니다. 우리 모두 소고기 먹으러 갑시다.”
맨 아시아 문학상 수상 소식에 규용 역시 만면에 미소를 그리며 소고기 회식을 선언했다.
“우와~ 소고기다.”
“소고기~ 소고기!!”
“이태리 작가 만세~ 우리 사장님도 만세! 소고기도 만세~~~!”
“만세~~~ 하하하하!!”
다음 날,
이태리 작가의 Man Asian Literary Prize 수상 소식은 곧바로 대한민국 출판계를 강타했다.
-이태리 작가, 한국인 최초로 맨 아시아 문학상 수상.
-한국 문학계를 강타한 쾌거.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진 이태리 작가의 첫 장편 소설 <아빠를 부탁해>가…….
“헐?!!”
선우 역시 자신의 맨 아시아 문학상 수상 소식에 깜짝 놀랐다.
원 역사를 통해 <아빠를 부탁해>가 성공하리라 확신하고 있었지만 Man Asian Literary Prize라니!!
이건 그의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속도였다.
‘……아무리 빨라도 최소 2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선우는 얼떨떨한 기분마저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이번 일은 모두 규용의 과감한 결단력 덕분에 이루어진 일이라 할 수 있다.
<단팥빵>을 통해 이미 이태리 작가의 저력을 확신하고 있던 규용은 <아빠를 부탁해>의 원고를 받은 그날 밤을 새워가며 원고를 읽었고 묵직한 감동을 받았다.
“……이건 된다. 무조건 된다.”
일단 분위기를 보자는 출판사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규용은 초판으로 무려 20만 부를 찍어내겠다고 선언하는 동시에 <아빠를 부탁해>의 번역본 출간을 계획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규용의 예상이 적중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어린이 도서 <단팥빵> 저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는데 여기에 금상첨화(錦上添花)격으로 한국인 최초로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버린 것이다.
“네, 2만 부 추가 주문이요.”
“부산에 1만 부요.”
“창고에 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시 찍어야겠는데요.”
“로펌에 연락 넣어. 계약서 갱신하자고.”
“네, 대표님.”
그 덕에 바빠진 것은 역설적으로 출판사였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와 강연을 요청하는 편지가 초록별 출판사에 쇄도했다.
일부는 해외에서까지 연락이 왔다.
퍼스트 클래스 티켓은 물론 5성급 호텔 스위트룸과 고액의 강연료까지 제안했다.
하지만 이태리 작가는 얼굴 없는 작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단 한 번도 그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시각,
선우가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한국 시티 은행 지점에 들어서고 있다.
<단팥빵>에 이어 <아빠를 부탁해>가 연타석 홈런을 날린 결과 하루가 다르게 수익금을 불리고 있는 그의 계좌다.
“어서 오세요.”
선우의 계좌를 확인한 은행 여직원의 눈빛이 달라진다.
“소, 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녀는 지점장에게 달려가듯 걸어갔다.
“지점장님. 저기 계신 손님의 계좌에…….”
영문을 모르는 지점장은 눈을 깜빡거렸다.
“뭐? 10억?!!”
“네.”
중학생의 계좌에 십억이 넘는 현금이 있다는 말에 그는 크게 놀랐다.
보통 이런 경우 저 소년은 재벌가의 자제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잠시 후,
시티 은행, 권용 지점장은 넥타이를 가다듬고 선우에게 다가와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잔고도 확인한 겸, 통장 정리를 하려고요.”
“네, 그러시군요. 그런데 혼자 오셨나요?”
“아뇨, 삼촌들과 왔어요.”
“……삼촌들이요?”
삼촌들과 왔다는 말에 권용 지점장은 주위를 살폈다.
“밖에 계세요. 제가 번잡한 걸 싫어해서요.”
“아…… 네.”
‘삼촌들이라고? 경호원이겠지.’
권용 지점장은 선우가 재벌가의 자식이라고 확신했다.
뭐~ 착각은 자유지만 말이다.
“도련님~ 주식 연동형 펀드를 아십니까? 엑시트 전략으로…….”
선우는 어느새 도련님으로 격상되었다.
“도련님도 아시겠지만 분산 투자는 기본이죠. 현금으로 그냥 놔두시면 손해예요. 제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선우는 부지점장의 말을 잠시 경청했지만 곧 흥미를 잃어 버렸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 역시 그렇다.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 경제의 원리나 원칙과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회귀한 지금도 말이다.
“저기요, 지점장 아저씨!”
“네? 도련님.”
“그냥 통장 정리만 해주세요.”
“…….”
감히 어른이 말하는데 중간에서 말을 끊다니!!!
평소의 성격이었다면 버릇없는 애새끼라며 혼을 내줬겠지만 권용 지점장의 표정은 여전히 미소로 가득했다. 직업적 본능을 발휘한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도련님.”
누군가 말하지 않았는가?
돈 있는 놈이 무조건 형이라고 말이다.
* * *
권용 지점장이 선우를 배웅하기 위해 은행 입구까지 따라 나왔다.
입구에는 검정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 두 사람이 선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셨습니까?”
-흠칫!
권용 지점장은 선우를 향해 인사를 건네는 남자들을 보며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
“도련님, 다음에 은행에 오실 일이 있으면 대기하지 마시고 바로 VIP 룸으로 오십시오. 제가 모시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지점장님도 들어가세요.”
“네~~”
저 멀리 권용 지점장의 모습이 사라지자 선우는 봉투 두 개를 꺼내 사내들에게 건넸다.
“약속했던 수고비입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남자들의 정체는 선우가 고용한 대학생 알바였다.
“……오랜만에 좀 걸어볼까?”
이날따라 명동의 하늘이 참 맑다.
선우는 주변의 풍광을 살피며 느릿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코끝을 간질이는 시원한 바람에 들뜬 기분이 왠지 모르게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남산 지척에 이르렀다.
이때,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소란스런 음성이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왈! 왈왈! 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정신 좀 차려보세요.”
“여기요.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사람들이 몰려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이거 119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니야?”
“저기요. 누가 119에 신고 좀 해주세요.”
누군가가 쓰러졌다는 말에 선우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저도 잘은 모르는데요. 저기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졌어요.”
선우는 어깨 너머로 보이는 노인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70대로 추측되는 노인은 현재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입술이 파랗고 얼굴색마저 하얀 것이 한눈에 봐도 위급한 상황으로 보였다.
순간 선우의 머릿속에 수십 가지, 아니 그 이상 되는 경우의 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훗날 여동생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메모라이즈 마법을 이용해 현존하는 의학 서적을 거의 외우다시피 탐독했기에 나타난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휘이잉!
설상가상으로 찬바람마저 불어오고 있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
찬바람이 노인의 체온을 단숨에 앗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만요.”
선우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진 노인 앞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잠시만 비켜주세요.”
그동안 베리우스 마나 연공법을 꾸준히 수련한 덕에 선우의 신체는 성장에 성장을 더했다.
어느 누구도 선우를 중학생으로 여기지 않았다.
더욱이 은행에 다녀오는 길이다.
세미 정장 차림의 선우는 흡사 대학생으로 보였다.
“어, 어?”
“뭐지? 의대생인가?”
선우는 손을 뻗어 노인의 동공과 맥박을 살피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마나를 끌어올렸다.
‘……관조 마법.’
-우우우웅!!
1서클의 관조 마법이 펼쳐지자 선우의 눈앞에 마치 3D 입체 영상처럼 노인의 상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건?’
관조 마법을 통해 노인의 상태를 확인한 선우는 깜짝 놀랐다.
그의 안면에 국소 마비 증상과 함께 혈액 응고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면 마비, 혈액 응고 현상…….’
수십 가지의 증상이 선우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관조 마법을 통해 파악한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자 선우는 노인의 증상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독이다. 그것도 신경 독! 누구지? 대체 누가 독을?’
선우는 재빨리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중독 현상을 보이는 것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이때 선우의 시야에 노인을 향해 짖고 있는 개 한 마리가 들어왔다.
-왈! 왈왈왈!!
‘설마?’
다음 순간 선우는 목줄을 잡고 있는 남자를 불렀다.
“저기요. 아저씨.”
“……저, 저요?!”
“네. 혹시 아저씨가 그 개의 주인이세요?”
“네?”
“그 개요!”
“아, 아닌데요.”
“그럼 혹시 이 할머니 개인가요?”
“네, 그 할머니 개가 맞아요.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제가 잠시 붙잡고 있는 건데…….”
남자의 말에 선우는 눈빛이 달라졌다.
아마도 원인을 찾은 것 같다.
선우는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미네랄 오일이 필요합니다. 혹시 오일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나요?”
“미네랄 오일이요?”
“네, 미네랄 오일이 첨가된 피부 보호제나 컨디셔닝제 혹은 헤어 컨디셔닝제라도 괜찮아요, 누구라도 갖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웅성웅성.
“혹시 이것도 괜찮나요?”
한 여인이 가방에서 미네랄 오일이 함유된 베이비오일을 꺼내 보였다.
“네, 그거면 됩니다. 제게 주세요.”
선우는 노인을 자신의 옆으로 눕힌 다음 여인에게 받은 베이비오일을 손수건에 적신 다음 그것을 이용해 노인의 귀 안쪽을 자극했다.
사람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선우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흐음! 핀셋이 필요한데…… 그래. 명찰이 있지!’
선우는 핀셋으로 사용하기 위해 잠바 안주머니에 있는 명찰을 꺼내 재빨리 바늘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뭐, 뭐하는 거지?”
“저 사람, 저거 제대로 치료하는 게 맞아?”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상관없이 빠른 손놀림 이용해 명찰 바늘을 핀셋 모양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선우는 노인의 귀에 바늘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잠시 후,
핀셋 모양의 바늘에 뭔가 조그만 것이 붙잡혀 나왔다.
-스윽!
“그, 그게 뭐죠?”
“……진드기요.”
“지, 진드기요?”
“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진드기가 사람의 귀에 들어가면 피를 빨고 귀 속에 알을 낳기도 합니다.”
“헐!”
“……정말요?”
“네.”
주위가 순간 조용해진 가운데 선우는 핀셋에 잡힌 진드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것 보세요. 진드기가 맞네요. 아마도 할머니가 키우고 있는 저 녀석에게 진드기가 달라붙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 때문에 할머니의 귀에 진드기가 들어왔고요.”
선우의 말에 개를 데리고 있던 남자가 화들짝 놀란다.
“괜찮아요. 얼굴을 대고 안아주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선생님, 그럼 할머니는 이제 괜찮으신 건가요?”
“네. 진드기를 제거했으니 괜찮아지실 겁니다.”
-우와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순간 선우는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누군가의 신고를 받은 119 구급차가 언덕 너머에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정의감을 발휘해서 사람을 구해냈지만 선우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선의에 의해 행한 행위였지만 중학생이라는 것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낭패를 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선우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선우가 떠난 자리에는 그가 미처 챙기지 못한 하얀색 명찰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