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화
10화 개존잘 최선우
시간이 흘러 14살이 된 선우는 미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소재 명문 사립인 재경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선우가 기억하고 있는 원 역사에서 선우는 공립 최강 중학교에 입학했었는데 초록별 출판사의 성공과 함께 설연의 가족과 얽히면서 그 역시 명문 사립으로 알려진 재경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물론 설연 역시 선우를 따라(?) 재경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응?!”
“……헙!!”
입학식에 나타난 정체 모를 남자아이 덕분에 정문 주변이 술렁거렸다.
“헐…… 대박! 봤어?”
“……어!”
“진짜 죽인다.”
“쟤, 쟤 누구야?”
선우의 존재를 인식한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은 그가 강당으로 사라질 때까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당으로 가는 걸 보아히니, 이번에 입학하는 신입생인가 본데? 분위기 작살이다. 그치?”
“제대로 좀 보게 물어보지 좀 마. 이년아.”
잠시 후,
재경 중학교 정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또다시 집중시키게 만드는 아이가 나타났다.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타고 다닌다고 알려진 커다란 밴의 등장이다.
-웅성웅성.
“저건 뭐야?”
“누구지? 설마 우리 학교에 연예인이 입학하나?”
잠시 후,
문이 열리자 아이들의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와!! 설연이다.”
“대박! 완전 대박!”
“……진짜 예쁘다.”
“이야~ 설연이 우리 중학교에 입학하나 봐.”
“하하하하하~~~ 내가 설연과 같은 학교에 다니다니, 하나님, 부처님, 해님, 달님, 별님! 감사합니다.”
차에서 내린 설연은 아이들의 반응에 살포시 미소를 지어줬다.
“여…… 여신님~~!!”
“바, 방금 봤지? 날 보고 웃어줬어.”
“지랄! 나 보고 웃은 거야. 이 새끼야.”
올해의 재경 중학교는 선우와 설연과 같은 신입생들의 등장으로 입학식 날부터 더욱더 술렁거렸다.
‘선우도 왔겠지? 흐음~ 강당에 있으려나?’
설연은 입학식이 열리는 강당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이어지고 있다.
‘어후……!’
‘언제쯤 끝날까?’
“……마지막으로 친애하는 재경 중학교 학생 여러분. 여러분~~~”
‘시X! 또 마지막이래.’
‘아악! 미치겠다.’
교장 선생님은 마지막이라는 말을 벌써 여섯 번이나 남발하고 있다.
신입생들의 표정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후에야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끝났다.
아이들은 각자 지정받은 교실로 걸어갔고 선우 역시 걸음을 옮겼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자 재경 중학교 1학년 3반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교실이 발칵 뒤집어졌다.
“서, 설연 맞지?”
“……대박!!”
설연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눈빛은 마치 여신을 목격한 것과 같았다.
그러나 설연과 같은 반이 된 여자애들은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왜 하필 우리 반이야?’
‘쳇! 남자애들은 좋겠다.’
‘설연이랑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
‘……흥! 재수 없어.’
-힐끔, 두리번두리번!!
설연은 주변을 살피며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 같은 모습이다.
‘선우가 안 보이네. 아직 안 왔나? 같은 반이라는 걸 확인했는데…….’
아쉬움의 한숨이 토해질 찰나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선우가 교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
-드르륵!
“……!!”
“……?!!”
180cm의 키에 백옥 같은 피부를 지닌, 선우의 등장에 교실 전체가 술렁거렸다.
‘헐!!’
‘우와아~~!’
‘쟤, 쟨…… 뭐야?’
선우의 등장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꿀꺽!
개중엔 침음을 삼키는 아이도 있었다.
“뭐야?”
“여자애들 반응이 왜 저래?”
선우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아이들의 눈빛이 마치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해롱거렸고 이와는 반대로 남자아이들의 표정은 참담했다.
‘저 새끼 피부가 왜 저래? 파운데이션이라도 바른 거야?’
‘……쩝!’
‘젠장, 염병할!’
몇몇은 감탄을, 몇몇은 탄식을 또 몇몇은 아주 심할 정도로 표정이 굳어 있었다.
‘나의 화려한 중학 생활은 시작도 못 해보고 끝이 나겠군. 그래도 괜찮아. 내겐 설연이 있으니.’
남자아이들의 눈빛이 설연을 향하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선우야~”
선우를 발견한 설연이 그를 향해 반가운 듯 손을 흔든 것이다.
‘뭐, 뭐야?’
‘서, 설마 두 사람이 아는 사이?’
‘그래도 사귀는 건 아니겠지? 그래. 아닐 거야.’
하지만 신은 가혹했다.
설연이 남자아이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선우에게 다가가 과감하게 손을 뻗었기 때문이다.
“선우야, 이쪽으로 와, 나랑 같이 앉자.”
“됐어. 난 여기에 앉을 거야.”
“……?!!”
“……헐!!”
선우의 대답에 남자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가 감히 설연에게 저따위로 대답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시선이 선우에게 꽂혔고 교실은 순간 깊은 적막에 싸인 것 같았다.
“쳇~ 알았어. 그럼 내가 그리 갈게.”
설연이 움직여 선우의 옆자리로 다가갔다.
“……대, 대박!!”
“이거 레알이야?”
“몰래 카메라 아니지?”
남자아이들의 얼굴에 당황해하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선우는 물론 설연 역시 아이들의 반응에 상관치 않는 분위기다.
“그건 무슨 책이야? 그새 책이 또 바뀌었네.”
언뜻 비친 선우의 가방에서 양장본 책을 발견한 설연이 궁금한 듯 물었다.
“……논문이야.”
“논문?”
“응. 헤밍웨이에 대한.”
“헤밍웨이라면, 소설가?”
“그래.”
“헤밍웨이에 대한 논문이 있어?”
“보시다시피.”
선우는 그의 가방 한쪽을 차지한 헤밍웨이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을 슬쩍 보여줬다.
“역시~~ 내 낭군님이라니까.”
설연은 선우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것은 선우만이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참, 선우야, 이따 방과 후에 나랑 영화관 가자.”
“영화관?”
“응. 이번에 내가 나온 영화가 개봉했거든. 제발 같이 가자~~”
주인의 사랑을 간구하는 강아지처럼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다.
“…….”
그냥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면 거절했겠지만 이건 그녀가 출연한 영화였다.
가지 않는다면 최소 한 달 각이다.
“알았어.”
선우는 후환이 두려워 같이 가기로 했다.
“……알았어. 제목이 뭐야?”
“<21세기 소녀>, 가족 코미디 영화야.”
바로 그 순간,
우측 열 맨 끝자리에 앉아 있는 이상민의 얼굴이 구겨졌다.
-방과 후,
선우는 설연과 함께 그녀의 매니저가 가지고 온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잠시 후, 영화가 시작되었다.
“와! 설연 봐라. 진짜 귀엽지 않냐?”
“완전 예쁘다.”
“저대로만 커도 진짜 대박이겠다.”
설연이 지금 지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모르고 여기저기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중학생이 되었지만 그녀는 어느덧 아름다운 여자로 변해 가고 있었고 영화 속의 설연은 완벽한 연기자였다.
‘호오~ 정말 대단한데.’
설연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에 삼촌(?)들의 마음이 들렸다 놓이기를 반복한다.
T&B 엔터에서 다져진 연기력이 이번 영화에서 터진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선우야, 아들~~”
“네, 엄마.”
“너 혹시 설연이가 나온 영화 봤니? 그 21세기…….”
“<21세기 소녀>요?”
“어? 봤나 보네.”
“네. 오늘 봤어요.”
“누구랑 봤어?”
“제가 누구랑 봤겠어요.”
선우의 대답에 수연의 눈빛이 한층 의미심장해졌다.
“……설연이 연기 정말 잘하더라.”
“그러게요.”
“며느릿감으로 딱 좋은 것 같아.”
-콜록콜록!!
물을 넘기던 선우는 그만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다음 날,
오전 수업이 모두 끝나고 기다렸던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자! 번호대로 나와~~”
담임선생의 말에 모두들 차례대로 나와 줄을 선다.
“한 사람 앞에 하나씩이니까, 한 개씩만 가지고 가고 내일부턴 주번이 나눠주면 된다.”
“네.”
할 말을 마친 담임은 교무실을 향해 그대로 사라졌다.
“비켜, 새끼야.”
담임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시비를 거는 녀석이 있다.
정태다.
녀석은 한눈에 봐도 불량한 인상에 덩치도 꽤 컸다.
“뭘 봐?”
정태는 선우와 눈이 마주치자 더욱 인상을 구기며 위협을 가해왔다.
“뭘 보냐고, 이 새끼야! 꼽냐?”
“……휘유!”
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딜 가나 꼭 이런 놈들이 있기 때문이다.
맛을 봐야 이게 된장인지 똥인지 아는 놈들…….
우유 따위야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이대로 넘어갈 순 없다.
아예 초장에 밟아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시비를 걸기 때문이다.
선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씨익!
“어? 웃어?”
녀석은 황당해하며 입을 열었다.
“이런 X만 한 새끼가…… 죽으려고…….”
녀석은 두세 번 정도 투덜거리더니 선우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주먹을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주먹이 선우의 몸을 때렸다.
-수군수군!
“야! 말려야 하는 것 아니야?”
“저러다 크게 다치는 것 아니야?”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선우의 눈과 정태의 눈이 마주쳤다.
“……!!!”
선우의 눈빛은 약자의 것이 아니었다.
섬뜩한 투기가 가득한 야수의 눈빛이었다.
‘무슨 놈의 눈빛이……?!!’
정태가 흠칫하는 순간, 선우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쉬익!
선우는 번개와 같은 빠르기로 정태의 멱살을 잡았다.
“끄윽! 이, 이 새끼가…… 이 손 못 놔!!”
정태는 선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선우의 힘에 눌려 꼼짝하지 못했다.
‘무…… 무슨 놈의 힘이…….’
-퍼억!
멱살을 잡은 손을 그대로 뻗어 정태의 안면을 가격하자 ‘주르륵’ 소리와 함께 코피가 흘러내렸다.
“이런 개자식이!”
피를 본 정태가 흥분에 무식하게 달려들자 그 순간 선우의 주먹이 움직였다.
원투 스트레이트, 전광석화와 같은 주먹이 정태의 얼굴을 강타했다.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정태의 커다란 몸이 책상 위로 날아갔다.
-우당탕탕!
“마, 맙소사…….”
“동부초의 박정태가 진 거야?”
아이들은 이와 같은 광경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정태가 의자를 집어 들었다.
“개새끼, 주, 죽여 버리겠어.”
-스스스슷!
이때, 선우의 눈에서 강력한 기세가 올라왔다.
“……죽고 싶지 않으면 의자 내려놔라.”
저쪽 세계에서 흑마법사로 살아가며 이 꼴 저 꼴을 경험한 인생이다.
그것은 아직 뼈도 덜 여문 중학생 따위가 견딜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덜덜덜덜…….
선우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은 정태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변하더니 이내 정태가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아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선우가 이겼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시각,
“……저 병신 같은 새끼, 덩칫값도 못 하네.”
이상민은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선우를 바라보며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를 엿보던 상민이 드디어 설연에게 다가갔다.
“설연아, 안녕.”
“어, 안녕.”
“오늘 바빠? 혹시 안 바쁘면 나랑 같이 랍스터 먹으러 갈래?”
“랍스터?”
“응, 너만 좋다면 나랑…….”
“미안~”
단번에 거절하는 설연의 행동에 상민의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애써 미소를 보이며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랍스터가 싫은 거야? 그럼 다른 것 먹을까?”
“설연아, 너 한경 제약 알지? 이건 네게만 말해주는 건데 사실…….”
상민의 노력은 가상하기까지 했다.
“몰라.”
“어? 모, 몰라?”
“어, 몰라.”
“아…… 그, 그래. 모, 모르는구나.”
한경 제약을 모른다는 말에 상민은 눈에 띄게 당황했지만 그의 자랑은 계속되었다.
“한경 제약은 아주 큰 제약 회산데, 너 얼마 전에 CF도 찍었잖아.”
“아~ 한경 제약!! 그래. 이제 알겠다.”
“그치? 후후후~ 사실 우리 아빠가 그 회사 사장이고 우리 할아버지가 회장이야.”
상민은 어떻게든 설연의 관심을 끌고 그녀와 좀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펼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
상민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이때, 교무실에 다녀온 선우가 다시 반에 돌아왔다.
“선우야, 이제 끝났어?”
“응.”
“그럼 집에 가는 거지?”
“응.”
“헤헤~ 그럼 같이 가자.”
설연은 그 즉시 선우를 향해 뛰어갔고 그것을 바로 옆에서 바라보던 상민의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젠장! 가만두지 않겠어.”
설연과 선우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상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주먹을 꽉 쥐었다.
‘최선우, 모두 저 새끼 때문이야.’
* * *
“어머! 쟤야, 쟤!”
“……헐, 진짜 대박이다.”
-웅성웅성!
“저…… 피부 좀 봐. 개존잘!!”
“그러게, 빛이 난다. 빛이 나.”
“분위기는 어떻고? 정말 죽이지 않니?”
“아우~~ 요즘 학교 올 맛 난다. 내 눈이 호강하네. 호강해~~”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온통 선우에게 집중되고 있다.
역시 개존잘, 시선 강탈자답다.
방송이나 드라마를 통해 수많은 남자 배우와 가수들을 봐왔지만 눈앞에 있는 선우만큼 시선을 강탈하는 남자는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선우의 외모는 티비에 나오는 스타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났다.
그런데 눈앞에서 실물을 보면 그야말로 시선을 뗄 수 없다.
“나의 왕자님을 이제야 만났어.”
“무슨 소리! 선우는 내 낭군님이거든.”
설연이 붙어있을 때는 그녀의 눈치를 살폈지만 오늘과 같이 촬영이 있어 학교에 나오지 못한 날에는 아주 대놓고 선우를 향해 사랑의 하트를 날렸다.
이때,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병진이가 다가와 친한 척한다.
“선우야.”
“응?”
“방과 후에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놀지 않을래?”
“너희 집에서?”
“응, 옆 반 지연이랑 혜진이도 올 거야.”
‘네가 온다면 걔들이 온다고 했어. 제발 온다고 얘기해줘.’
병진의 눈빛엔 간절할 바람이 섞여 있었다.
“미안, 공부해야 해.”
선우는 짐작대로 거절했다.
‘제, 젠장……. 울고 싶다.’
“어…… 어, 그래. 그럼 다음에 시간 되면 꼭 얘기해줘.”
“그래.”
“선우야~”
이번엔 지수다.
그녀는 3반에서 손에 꼽히는 얼짱(설연은 논외다)으로 호시탐탐 선우에게 다가갈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설연이 촬영 문제로 학교를 빠지자 그 기회를 잡은 것 같다.
“저기…… 선우야. 오늘 방과 후에 나랑 같이 영화 보러 가지 않을래?”
지수는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붉어진 얼굴을 숙이는 동시에 몸을 배배 꽜다.
“……방과 후에?”
“응.”
지수는 선우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훗, 어디 이래도 안 넘어가나 보자.’
-스윽!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무기를 선우에게 들이댔다.
“선우야~~ 나랑 같이 영화 보러 가자. 응~~”
애교 섞인 비음과 함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지수의 풍성한 가슴이 선우의 팔에 걸려 물컹거렸다.
“같이 가자~~앙~~!!”
지수의 화끈한 행동에 몇몇 남학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워워!!!’
‘시X, 지, 지수가!!’
‘대체 저 새끼에게 왜들 저러는 거야?’
‘부, 부러……우면 지는 거다.’
‘……내가 졌다. 최선우,’
왜 여자아이들은 선우만 보면 저렇게 환장하는 것일까?
남자아이들은 여자애들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일반인들의 기준에서 봤을 때 사실 지수 정도면 꽤 매력적인 여자다.
특히 C컵을 넘어 거의 D컵에 가까운 저 가슴은 굉장한 메리트였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선우는 판타지 세계에서 귀족이라 부를 수 있는 마법사로 살았다.
초반엔 고생깨나 했지만 그는 후에 엘프급의 미녀들과 가히 질펀하게 놀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난(?) 삶을 살아 지수의 육탄(?) 공격 따위에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지수의 가슴에는 시선이 한 번 돌아갔지만 말이다.
“보고 싶은 책이 있어서, 미안.”
“채, 책이라고?!!”
“그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선우의 대답에 지수의 표정이 꽤나 볼만하다.
‘……아!! 내가 지금 무생물에게 진 거야? 그런 거야?’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지수다.
그러나 지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와 정반대였다.
“그, 그래.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당연히 읽어야지. 대신 다음에는 나랑 꼭 영화 보러 가자. 알았지?”
“…….”
“그럼 다음에 봐.”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지수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돌아섰다.
“큭큭큭큭!”
“어머머, 웃겨라. 저 여우 같은 지수가 물먹었네. 역시 선우다.”
“후훗! 꼬시다. 꼬셔~~”
한쪽 구석에 모여 있던 여학생들은 지수의 모습에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선우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지수가 느낀 감정이다.
‘아…… 존나 시크해. 개멋져!!’
이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상민이 재민을 불렀다.
“재민아.”
“응. 상민아.”
선우를 바라보는 상민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다음 시간이 체육시간이지?”
“응.”
“야, 이따가 우리가 저 새끼…….”
상민은 재민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체육 수업이 시작되었다.
여자아이들은 체육관 왼편에서 발야구를 했고 남자아이들은 오른쪽에서 A팀과 B팀으로 나누어 족구를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A팀엔 다들 건장하고 날쌘 아이들이 포진되었고 B팀은 A팀에 비해 상당히 부실해 보인다.
B팀에 속한 선우와 재민만 제외하고 말이다.
이것은 모두 상민의 계략이었다.
그가 누구던가?
대한민국 굴지의 제약 회사로 이름이 알려진 한경 제약 회장의 손자가 아닌가?
그는 어디를 가도 늘 사람들의 관심과 포커스를 받았는데, 중학교에 들어와 자존심이 밑바닥을 치게 되었다.
선우만 보면 배알이 꼴렸고 심사가 꼬였다.
이제는 일종의 자격지심(自激之心) 같은 것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더 이상은 두고 보기가 싫었다.
선우에게 큰 망신을 주고 싶었다.
상민은 재민을 통해 반에서 운동깨나 한다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음모를 꾸몄다.
이번 체육 시간에 선우에게 개망신을 주자고 말이다.
아이들은 상민의 제안에 잠시 망설였지만 상민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결국 승낙했다.
다만 선우의 무서움을 직접 경험한 정태는 겁쟁이라는 수모를 받았지만 이들의 계략에 동참하지 않았다.
“자! 다들 시작하자.”
“화이팅!”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마침내 두 팀의 시합이 개시되었다.
선공은 상민이 속한 A팀이다.
-퉁!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공이 날아온다.
B팀의 중철이 공을 받았다.
그러나 완벽하게 공을 받지 못해 비실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퉁!
B팀의 공격을 무난하게 받아 올린 현태가 적당한 위치에 공을 올려 상민에게 토스하자 강력한 스파이크가 이어졌다.
-팡!!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상당한 파워가 실린 공격이다.
“1대 0.”
몇 번의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B팀은 무참히 깨질 뿐이다.
어느새 여자애들의 발야구 경기가 끝이 났는지 하나둘씩 다가와 응원을 펼치기 시작했다.
“B팀 이겨라, B팀 이겨라. 선우야, 잘해.”
“최선우, 최선우~~”
마침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아예 대놓고 선우를 응원한다.
“꺄아악! 선우가 날 봤어.”
‘저, 저년들이!’
상민의 질투심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플레이! 야! 어서 시작해.”
경기는 속개되었다.
B팀은 여전히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자신의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은 뒷전이고 공을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특히 중앙 수비를 맡고 있는 재민이 문제다.
몸놀림을 보면 운동신경이 꽤 있어 보였는데, 발이 개발이다.
재민이 공을 받으면 대부분 이상하게, 혹은 굉장히 어려운 각도로 공이 튀었다.
“내가, 내가 받을게.”
이번엔 중철이 공을 향해 재빨리 뛰어갔지만 공을 받아내기에 역부족이다.
“A팀, 득점!”
환호와 야유가 쏟아지는 가운데 상민의 서브가 이어졌다.
재민이 달려가 발을 뻗었다.
-퍼억!
“……?!!”
패스인가? 공격인가?
재민의 발에 맞은 공이 강하게 튕겨 나오며 선우의 엉덩이를 그대로 가격했다.
“큭큭큭큭!”
A팀 팀원 몇몇이 웃음을 토해낸다.
“선우야, 괜찮아? 미안하다.”
“……괜찮아.”
사과를 하는 재민의 눈빛에 웃음기가 엿보인다.
‘……박재민, 너였냐?’
원래는 승패에 연연치 않고 그냥 즐길 생각이었지만 생각을 바꿔야겠다.
“B팀 파이팅!”
“최선우 화이팅!”
“이번에는 내가 중앙을 맡을게.”
선우는 마치 선언하듯 말했고 곧이어 경기가 재개되었다.
‘이 녀석들아, 이 형님이 과거 군대에서 X나게 한 게 뭘 줄 알아? 삽질이랑 바로 족구다.’
그뿐만이 아니다.
판타지 세계에서 돌아온 선우는 베리우스 마나 연공법을 통해 강철의 체력 역시 보유하고 있었다.
시합이 재개되자 선우는 같은 팀인 재민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동시에 안정된 수비로 A팀의 공격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퉁!
B팀의 중철이 어설프게 발을 대는 바람에 공이 튀었다.
아무래도 코트 밖으로 아웃이 될 것 같다.
모두들 실점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이때 누군가가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선우다.
선우는 마치 한 마리의 독수리가 하늘을 향해 날개를 쭉 펼친 것처럼 공을 향해 발톱을 세웠다.
-쾅!
“……?!!”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바나나킥처럼 휘어진 족구공이 A팀 라인 안으로 떨어진 것이다.
“와! 미친!”
“지금 봤어? 공이 대박으로 휘던데~!!”
모두들 휘둥그레진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B팀, 득점!”
이어서 심판의 외침이 나오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우와와~~”
“꺄아아아악!”
“최선우, 최선우!”
“우유 빛깔 최선우, 플레이 플레이 최선우~~”
A팀 선수들 역시 방금 전 선우가 보여준 슈퍼 플레이에 넋이 나간 표정이다.
“방금 봤어?”
“……꿀꺽!”
“우, 운이었겠지.”
-삐릭!
“B팀 서비스.”
심판의 말에 선우는 공을 높게 띄웠다.
-광!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는 스파이크 서브다.
A팀의 상민이 몸을 급히 날렸지만 역부족이다.
빠른 속도로 날아온 공은 외곽 코너에 정확히 떨어졌다.
“B팀, 득점!”
득점을 인정하는 심판의 외침이 이어지자 또다시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악!”
“우와! 족신이다. 족신!”
선우의 독보적인 활약에 B팀의 패배가 확실했던 경기가 듀스까지 갔다.
2점을 먼저 내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경기는 점점 재밌어졌다.
눈에 빤히 보이는 재민의 활약(?) 덕분에 득점과 실점이 이어지는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야! 박재민. 너 대체 뭐하는 거야?”
“내가 뭘?”
“패스를 그렇게 받으면 어떻게?”
“아! 시X, 내가 일부러 그랬어?”
재민의 계속된 실수에 분위기가 개판이다.
“야! 왜들 그래? 즐기면서 하는 거잖아.”
“이 새끼가 계속 이러잖아.”
“내가 뭘?”
“야! 야! 둘 다 그만해. 선생님이 보고 계셔.”
“……!”
선생님이 보고 있다는 말에 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노려본 후 제자리로 돌아갔고, 경기가 다시 속개되었다.
현재 스코어는 20:21.
한 점만 내면 B팀의 승리고 한 점을 주면 또다시 듀스다.
공격권은 A팀에 있다.
-퉁!
상민이 찬 서브가 호선을 그리며 재민이 있는 방향으로 정확히 날아왔다.
“마이~~”
재민이 손을 들며 마이를 선언했다.
다음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아마도 실수를 가장해 범실을 범할 것이 분명했다.
선우는 그런 재민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쿵!
“아!!”
응원하던 여자아이들의 탄식 소리가 새어 나온다.
선우가 예상했던 대로 공은 라인 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휘이익!
중철이 공을 향해 뛰었지만 정상적으로 받아 내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네트와의 거리도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중철은 누군가가 달려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파파팍.
“어, 어…… 어?!!”
선우의 상체가 그를 향해 마치 튕기듯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악!!”
중철은 두 눈을 찔끔 감으며 그대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선우의 행동은 거침이 없다.
그는 오른손을 뻗어 중철의 어깨를 지지대로 삼아 뒤집어 축구에서나 볼 수 있는 오버헤드 킥을 날렸다.
-꽝!!!!!
대포알 터지는 소리와 함께 선우의 발을 떠난 축구공이 번개처럼 날아갔다.
그런데 날아가는 방향이 요상하다.
“어?”
뭔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이미 재민의 고개가 돌아가고 있었다.
-퍼억!
“악!”
“아악!”
두 번의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비명 소리의 주인공은 재민과 상민이다.
선우가 때린 슛이 얼마나 빠르고 강력했는지 재민의 안면을 가격한 공은 그대로 네트를 넘어 상민의 얼굴까지 때린 후, 그대로 땅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퉁…… 퉁…… 퉁!
“라인 인! 20:22, B팀 승리.”
“꺄아아아악!”
“우와와~~~~!!”
재민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동안 땅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쪽팔림에 얼굴이 붉게 상기된 상민은 독기 어린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