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화
9화 첫 장편 소설 <아빠를 부탁해>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니?”
“뭐가요?”
“네가 가진 돈 말이야. 어떻게 할 거야?”
“음……!!”
선우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통장에 넣어둘 거니?”
“아니요.”
“그럼?”
“투자를 해야죠.”
투자를 하겠다는 선우의 대답에 설희는 놀란 기색이다.
“투자?”
“네.”
“……어디에 투자할 건데?”
“당연히 주식이죠.”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당돌한 말에 설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보였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실패를 맛보는 게 주식이 아닌가?
“주식을 사겠단 말이니?”
선우는 설희의 이 같은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지금 하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럼 그렇…….”
“좀 더 총알이 모이면 그때 투자할 생각이에요.”
“뭐?!!”
선우의 이어진 대답에 설희는 깜짝 놀랐다.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것도 놀랄 일이었지만 총알이 더 모이면 그때 투자하겠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하지만 어린아이의 치기라고 생각하기엔 선우가 보여준 행보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돈도 거액이었고 말이다.
“……진심이니?”
“네.”
“……!!”
너무나도 당당한 대답에 설희는 일순 할 말을 잃었다.
“누나도 여유가 있으면 외화나 금에 투자하세요.”
“외화나 금?”
-피식!
설희의 반문에 선우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애매모호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외화나 금에 투자하라고? 이 얘긴 뭐지? 설마 한국 경제에 위기가 닥쳐온다는 말긴가?’
그녀 역시 해외 로펌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한 선배로부터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에 대하여 들은 기억이 있었다.
‘……이 아이는 대체?’
선우를 바라보는 설희의 표정이 다시금 묘하게 변했다.
‘호오~ 뭔가 느낀 모양이군.’
역시 머리 좋은 변호사는 다른 것 같다.
선우는 설희의 시선을 은근슬쩍 피하며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빌딩숲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잠시 사색에 잠겼다.
‘조영삼 대통령 이후 정권을 잡은 윤대중 대통령은 국내 경기를 살리기 위해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규제 완화 등 부동산 활성화 정책을 집중적으로 펼치게 된다. 정부는 IMF로 인해 건설업체 부도가 잇따르자 신규 주택 구입에 따른 취득세와 등록세를 감면하고 양도소득세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했지. 98년 6월쯤이었나? 아파트값이 바닥을 치자 정부의 규제 완화가 본격화되었고 이후 아파트값은 2000년 상반기까지 등락을 반복하다 본격적으로 상승이 시작되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2003년 참여정부의 10.29대책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어.’
선우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정리했다.
그는 <단팥빵> 시리즈로 인해 2-3년 안에 최소 70억에서 최대 150억의 수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기에 특별한 경우가 발생하는 것을 제외하고 일단은 97년 10월까지 보유한 자본을 외화와 금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1998년과 99년이 되면 보유한 외화와 금을 전부 현금화해 부동산(상가와 빌딩)을 집중적으로 매입하는 것이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7호선이 제격이었다.
온수에서 신풍, 신풍에서 청담, 청담에서 건대입구에 이르는 구간이 2000년이 되면 단계적으로 개통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로 98년, 99년에 이쪽 주변의 역세권 상가나 빌딩의 경매 물건을 낙찰받으면 투자한 지 2~3년 만에 평균 세 자릿수의 투자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또한 IMF 시절, 정부의 정책으로 양도세가 한시적으로 면제되었는데, 이는 곧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두게 되더라도 단 한 푼의 양도세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위기는 곧 기회다.’
기업이 뛰어난 인재를 뽑기에 가장 좋은 시점은 경기가 침체돼 실업률이 최고조에 이를 때라고 한다.
이는 곧 투자 시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하기 가장 좋은 시점 역시 시장이 침체되었을 때였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그래. 선우도 잘 들어가~”
“참! 선우야. 부탁이 하나 있어.”
“부탁이요? 뭔데요?”
“……여기에 사인 좀 해줘.”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단팥빵>을 꺼내 내밀었다.
“후후후~ 넵!”
설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선우는 책상에 조용히 앉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속담이 있지.”
그는 과거의 기억에서 또 하나의 소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소설이자 내 첫 장편 소설이 될…….”
선우는 노트를 펼쳐 빠른 속도로 글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아빠를 부탁해.”
이 소설의 원 제목은 <엄마는 어디에>다.
2008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서울역에서 자식의 집에 가려다 남편의 손을 놓쳐 실종된 어머니와 그 엄마를 찾는 가족들이 그녀의 흔적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소설의 각 장은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엄마의 시선으로 서술되는데, 선우는 <엄마는 어디에>의 전체적인 플롯을 차용하지만 주인공을 엄마가 아닌 아빠로 바꾸어 버렸다.
당연지사 책 제목 역시 <엄마는 어디에>가 아닌 <아빠를 부탁해>가 되었고 말이다.
-치매 증세로 인해 소중한 기억들이 사라지고 있는 아버지.
어느 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올라오게 된다.
복잡한 터미널, 아버지는 어머니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길을 잃고 행방불명된다.
이때부터 이 소설의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된다.
소설의 결말은 애통하게도 아버지의 죽음으로 귀결되지만 가족들은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통해 아버지도 아버지이기 전에,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기 전에 한 사람의 남자였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선우는 <아빠를 부탁해>를 통해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절절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글을 쓰면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들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작업까지 병행한다.
그의 기억 속에 <엄마는 어디에>에 대한 표절 시비가 원 역사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2001년에 나온 <목동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에 실린 수필이었지?’
사실 엄밀히 말해 선우가 <아빠를 부탁해>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문제가 되는 수필 역시 지금 시점에서 보면 8년 후에나 나올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우는 이미 완성된 원고에 또다시 시간을 투자해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쓴 것은 일종의 자기 위안 혹은 자신에 대한 회개와 반성의 발로(發露)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선우는 마침내 그의 첫 장편소설 <아빠를 부탁해>를 완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