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화
7화 글을 쓰다
“네가 선우니?”
고운 자태를 지닌 중년의 여인이 선우에게 다가온다.
눈매와 턱 선이 설연과 무척이나 닮은 것을 보아하니 아마도 설연의 엄마인 것 같다.
“네. 제가 선우인데 누구세요?”
“그렇구나. 아줌마는 설연이 엄마야.”
“……네.”
역시 설연이 어머니가 맞았다.
설연의 어머니는 어림잡아도 50대가 분명할 텐데, 그 미모가 상당했다.
아무래도 젊었을 적에 남자들이 꽤나 따라다녔을 것 같다.
“형사님들에게 모두 들었단다. 선우야. 오늘 일! 정말로 고맙구나.”
그녀는 선우를 살포시 안아주며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마워. 만일 네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녀는 어떤 끔찍한 상상을 떠올랐는지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을 거예요.”
“응?”
“제가 없었다고 해도 아마 하느님이 도와줬을 거예요.”
설연을 통해 이미 그녀의 가족이 성당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선우는 일부러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어쩜, 우리 딸막이 말처럼 정말 믿음직하네.”
선우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딸막이요?”
“그래, 우리 딸막이.”
아마도 설연을 지칭하는 것 같다.
“우리 막내딸을 딸막이라 불러. 평소에도 우리 딸막이가 네 얘길 많이 했었는데~~~”
“설연이가 제 얘기를요?”
“그래, 이 아줌마는 우리 딸막이가 과장되게 표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우리 딸막이 말이 맞았어. 우리 딸막이가 어려도 남자 보는 눈이 있네. 호호호호~”
“…….”
딸막이가 어쩌고 우리 딸막이가 저쩌고…….
쩝! 이러다 딸막이란 단어에 중독되겠다.
잠시 후.
설연의 큰언니와 작은언니 역시 선우에게 다가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네가 선우지?”
“네.”
“얘기 다 들었어. 정말 고맙다.”
“나도 들었어. 네가 그렇게 용감했다며~ 정말 고마워, 선우야.”
“아니에요.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거듭된 감사 인사에 선우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는데 두 여인의 눈에는 감격했다는 눈빛이 가득했다.
그리고 몇 마디의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선우야, 너 혹시 화장품 쓰니?”
“네?”
“언니, 초등학생이 무슨 화장품을 써?”
“그, 그렇지? 근데 피부가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물어봤네. 헤헤~~”
선우가 잠시 멋쩍어하는 사이 설주의 행동이 이어졌다.
“꺄아아~~ 이 피부 좀 봐, 꽉 깨물어주고 싶어.”
“어머, 언니! 지금 뭐하는 거야?”
“뭐가?”
설주의 태연한 반문에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던 설희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나타났다.
“호호~ 그랬단 말이지.”
-쪽~
기습적인 뽀뽀로 설희가 가세했다.
“선우야~ 너 왜 이렇게 귀엽니~~”
“그러게 말이야. 정말 귀엽지?”
“응! 언니, 게다가 분위기 진짜 대박 아니야? 어쩜 이렇게 귀티가 나지?”
“선우야, 누나도 뽀뽀해 줄게.”
-쪼오옥~~
“우이쒸!! 지금 뭐 하는 거야? 우리 선우에게 누가 뽀뽀하랬어? 나도 아직 못 해봤는데!!!”
“그럼 너도 하든가?!!”
“……그, 그런가?!”
-쪽!
결국 설연마저 선우의 볼에 뽀뽀를 했다.
‘……얘네들, 지금 뭐하는 거니?’
선우는 세 자매의 행동에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
“선우야, 너 내 동생 해라. 제발~~~”
“그래, 선우야~~”
“선우야~”
“선우야, 선우야~”
“선우야, 혹시 너 아역 배우 안 할래?”
방송국 PD인 한설주는 직업 특성상 방송이나 드라마에서 귀엽게 생긴 아이들을 많이 봐왔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선우만큼 자신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뭔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귀한 품격이 느껴지고 있었다.
“누나가 이래봬도 방송국에서 힘이 좀 있거든~~ 말만 해. 누나가 키워줄게. 호호호호~~”
“생각 없거든요.”
누가 누굴 키워준다는 말인가?
T&B 엔터의 제안도 단칼에 거절했는데, 장난 지금 나랑 하냐?
“히잉~”
한설주는 선우의 거절에 울상을 지어 보였지만 이내 툴툴 털어버리더니 선우를 꽉 껴안았다.
“그럼 뭐…… 일단 내 동생부터 해라. 호호호호~”
둘째 언니인 한설희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이런 아이는 처음이었다.
진심으로 선우를 동생으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선우야~”
“선우야~~”
“선우야~~~”
“저기, 한 사람만 말해줄래요?”
“호호호호~~”
세 자매는 선우를 중심에 놓고 북을 치고 장구까지 치고 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친자매가 맞구나. 친자매 맞아.’
그 시각,
한상우 차장검사 부부는 선우의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두 집안이 서로 가깝게 어울리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발단은 선우였지만 사람 좋고 친화력까지 가지고 있는 규용 덕분에 두 집안은 급격히 가까워졌다.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규용과 대검 차장검사 한상우는 무려 20살 가까이 나이 차가 났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무장한 규용 덕분에 두 사람은 곧 형님 동생 하는 사이로 변모했다.
남자들의 관계로 인해 수연 역시 미희에게 언니라 부르며 가까워지게 되었고 두 집안은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선우 역시 이 같은 상황에 불만은 없었다.
무엇보다 한상우 차장검사라는 사람 때문이다.
그는 차장검사라는 고위직에 있었으나 은근히 소탈한 면이 있었고 선우가 판단하기에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정치권에도 그렇고 경제 분야에도 그렇고 말이다.
아무튼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살 만한 것 같았다.
“아이고, 우리 예비 사위, 왔는가?”
“안녕하세요.”
주말이라 그런지, 한상우 차장검사가 집에 있다.
“이봐, 예비 사위. 오랜만에 봤는데 오늘은 나랑 술이라도 한잔해야지?”
‘……이보세요. 차장검사님. 말은 고맙지만 전 아직 초등학생이거든요.’
“여보, 선우는 아직 초등학생이에요.”
“왜~~ 어른이 주는 술은 괜찮아.”
“농담도 참~ 적당히 하세요.”
“험험~ 알았어.”
그나마 제재해 주는 분이 있어 다행이다.
“선우야, 통닭 시켜 놨으니까 먹고 가렴. 알았지?”
“통닭이요?”
“응, 양념 한 마리, 후리이드 한 마리 시켜놨으니까 먹고 가라~~”
“……네.”
“호호호~ 역시 사위 사랑은 장모라니까~~”
“……!!”
이때, 예쁘게 옷을 갈아입은 설연이 거실로 나왔다.
“선우야~”
설주와 설희 역시 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선우 왔구나~”
“이야~ 이게 무슨 냄새여? 역시 선우가 오는 날은 통닭 파티네. 호호호~”
“선우야. 이쪽에 앉아, 누나랑 같이 먹자.”
“우쒸~ 선우 자리는 여기거든!!”
-우걱우걱~~!!
설연의 가족과 함께 통닭을 맛나게 먹고 있는데, TV에서 조영삼 정부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조영삼 정부는 과거 군사 정권에 의해 수감된 박노애, 김남수…… 문학가를 석방하였습니다.
“역시 민주화 운동을 한 분답게 좋은 일 많이 하네.”
나직한 목소리의 혼잣말이었지만 설주가 얼핏 들은 모양이다.
“민주화 운동? 선우야, 너 민주화 운동이 뭔지 알아?”
“……윤대중 아저씨와 함께 반독재, 유신 체제에 저항하며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셨잖아요.”
“반독재 유신 체제? 민주화 시위? 그게 뭐야? 선우야?”
대화에 참여하고 싶던 설연이 물었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은 정부는 모든 헌법 기능을 정지시키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시키는 동시에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유신 체제를 시행했어. 수많은 대학생들과 재야인사들은 유신 체제를 반대했는데 1979년 당시 조영삼 신민당 총재의 제명으로 인해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게 돼. 부산에서 시작된 시위는 곧 마산과 창원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정부는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며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했지.”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데?”
“정권 내부에서 말이 많았어. 그런데 그 해 10월 26일 박정은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유신 체제는 자연스럽게 종결되었어.”
“……!!”
“……!!”
순간이었지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어, 언니. 콜라 좀 더 줄까?”
“그…… 그래. 더 줘.”
설희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설주의 컵에 콜라를 가득 채운다.
이때, 설연이 선우에게 물었다.
“선우야. 그럼 앞으로 우리나라는 잘되겠다. 그치?”
“왜?”
“민주화 운동을 하신 분이 대통령이 됐다고 했잖아.”
“…….”
참 아이다운 생각이다.
“그럴 수도 있지. 아무래도 정권 초기라 국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커.”
“국민들을 위한 정책?”
“응. 가령 예를 들자면 지하 경제를 양성화시킬 수 있는 금융실명제나 군부를 개혁하는 정책들 말이야. 하지만…….”
‘……조영삼 대통령은 자식 관리를 잘해야 했어. 그리고 다가올 경제 위기에 더 신경을 써야 했지.’
선우는 끝말을 아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설주와 설희의 눈이 마치 튀어나올 듯 커져 있었기 때문이다.
“뭐~ 나도 잘은 모르겠네.”
“그래~ 선우야. 어려운 얘기는 그만하고 빨리 닭이나 먹자.”
“으, 응.”
이와 같은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한상우 차장검사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으허허허~ 저게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그는 터져 나오려는 미소를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총명하단 말을 들었지만 이건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더욱이 금융실명제에 대해 말할 땐, 심장이 터질 만큼 놀랐다.
‘저 녀석, 진짜로 사위 삼아버릴까?’
이것은 비단 한상우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어쩜~~ 저렇게 똑똑할 수가 있지? 게다가 봐봐! 동작 하나하나에서도 범상치 않은 품격이 느껴져.’
막내딸과 똑같은 나이인데, 도무지 빈틈이 없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선우를 바라보고 있는 미희의 눈빛은 더더욱 따듯해졌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선우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IMF까지 앞으로 4년인가?’
1997년!
선우의 기억 속에 1997년은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바로 대한민국에 국가부도사태(IMF)가 일어나 나라의 경제가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1997년 12월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부도사태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그것은 2001년 8월이 되어서야 끝이 났지.’
선우는 그 시절 매일매일을 마치 살얼음 위를 걷듯 노심초사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무슨 걱정이 그리도 많았는지, 아버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때가 온 건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에 분명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설연을 통해 이어진 인연으로 인해 선우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좋아, 해보는 거야.’
선우의 이와 같은 결정이 훗날 어떠한 결과를 가지고 올지 그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는 북극성이 집으로 가는 선우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었다.
* * *
-어느 비 오는 날 아침, 승우, 미우 남매는 나뭇가지에 걸린 기묘한 단팥을 엄마에게 가져다준다.
아이들에게 단팥을 받은 엄마는 모두의 아침을 위해 단팥을 반죽해 빵을 만든다.
단팥빵이 완성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단팥빵이 하늘을 향해 두둥실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승우, 미우 남매는 고양이, 강아지 친구들과 함께 단팥빵을 타고 멋진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선우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뭔가에 홀린 듯,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글을 완성해 갔다.
한 장, 한 장…… 또 한 장,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어느새 그 끝에는 <단팥빵>이라 적힌 원고지가 그의 책상 가득 수북이 쌓여 있다.
‘아마 2004년이었을 것이다.’
선우의 기억 속에 <단팥빵>은 원래 <둥근빵>이라는 이름으로 2004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둥근빵>은 출간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얼마 후,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매절이라는 불공정 형태로 출판사에 모든 권리를 넘긴 탓에 작가 본인은 2천만 정도의 수익을 얻었을 뿐이다. 출판사는 100억(추정) 이상의 수익을 올렸는데 말이다.
후에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작품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선우는 일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단팥빵>이란 작품이 그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2004년에 나와야 될 작품을, 훔친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선우는 내면의 소리를 애써 외면했다.
시간을 거슬러 회귀한 그 순간, 이미 과거는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후에 기회가 된다면 꼭 보은(報恩)하겠습니다.”
선우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잠시 응시하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얼마 후,
선우는 ‘이태리’라는 필명을 사용해 규용이 운영하고 있는 초록별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운명이라는 이름의 수레바퀴는 이렇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초록별 출판사.
“……단팥빵.”
최규용 대표는 신인 작가가 보낸 원고를 책상 위로 내려놓았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 걸려 있었다.
“윤 팀장, 자네도 읽어봤나?”
“네, 사장님.”
“어땠어?”
“소재가 재밌고 내용이 감동적입니다. 게다가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서 어린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직원의 대답에 규용 역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윤 팀장이 제대로 봤네. 이 작품 왠지 대박의 냄새가 나. 물론 아쉬운 부분도 간간이 보이지만 말이야. 뭐 그거야 출간 전에 수정을 하면 될 것 같고!! 윤 팀장!”
“네, 대표님.”
“작가랑 미팅 한번 잡아봐.”
“계약하시는 겁니까?”
“그래, 이거 느낌이 강하게 온다. 이 작품 우리가 꼭 잡자고!”
“알겠습니다. 대표님.”
규용은 이때까지만 해도 <단팥빵>의 저자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며칠 후,
기다렸던 답장이 왔다.
-선생님의 작품 <단팥빵>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단팥으로 빵을 만들고 그것을 먹으면 하늘을 두둥실 날아가…….
(중략…….)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아름답고 교훈적인 소설이었습니다.
다만 뒷부분이 앞의 내용과 비교해 볼 때 미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더군요.
혹시 어떠한 의도가 있으셔서 그렇게 하신 건지요?
(중략…….)
만약 이태리 작가님이 허락만 하신다면 저희는 작가님의 <단팥빵>을 출간하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호오~ 역시 우리 아빠지만 능력이 있어~~’
글을 쓰면서도 내심 마음 한구석에 걸렸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을 정확이 파악하고 끄집어냈다.
문제의 요지는 사실 이렇다.
선우가 규용에게 보낸 <단팥빵>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2004년에 출간된 내용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하지만 과거의 내용과 100% 똑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무리 기억력의 비약적인 상승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단팥빵을 읽었던 선우의 기억력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선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줄거리와 내용에 자신이 추가로 이야기를 만들어 살을 붙였는데 비율로 얘기하면 대략 6~70%의 원작 스토리에 3~40% 정도를 그가 새롭게 만든 것이었다.
-최고의 편집자를 만난 것 같습니다.
사실 말씀하신 부분은 제가 글을 쓰면서도 내심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었습니다.
지적해주신 부분을 수정한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P.S 저 역시 귀사와 함께하길 희망합니다.
선우는 품에서 한 장의 명함을 꺼냈다.
명함에는 설연의 둘째 누나인 한설희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태양 로펌, 한설희 변호사 010-3445- 9**1>
얼마 후.
선우는 한설희 변호사와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어머~ 이게 누구야?”
“며칠 전에도 봤거든요.”
“헤헤헤~~ 집에서 보는 거랑 이렇게 밖에서 보는 거랑, 같니?”
회사 로비에서 만났기 때문인가?
주변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한설희 변호사잖아? 저 옆에 있는 아이는 누구지? 동생인가?”
“맞아. 막내 동생이 있다고 들었는데, 동생인가 보네. 와아~~ 분위기 쩐다.”
“와~ 완전 부티 난다. 어쩜 분위기가 저렇지?”
“분위기 예술이네. 마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도련님 같군.”
“……근데 여동생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선우에게 쏟아지고 있다.
선우는 자주 있는 일이라 신경 쓰지 않았지만 한설희는 이러한 시선 집중에 은근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저것 봐라! 입이 아주 찢어질 것 같다.
각설하고 마침 시간도 점심시간이라, 그녀는 선우를 데리고 인근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변호사는 입이 무겁죠?”
“응?”
뜬금없는 질문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한설희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무거울 수도 가벼울 수도 있지~”
왠지 장난 섞인 어투다.
“변호사 또는 변호사이었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호오~”
선우의 말에 설희의 두 눈이 커졌다.
마치 ‘네가 그걸 알아?’라는 듯한 눈빛이다.
“그래. 제26조, 비밀유지의 의무구나. 맞아. 변호사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지.”
“그럼 지금부터 제가 누나에게 말할 이야기도 비밀을 지켜주시는 건가요?”
“뭐?”
설희는 지금의 상황이 무척이나 재미난 듯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호~~ 네! 알겠습니다. 고객님은 제게 무슨 비밀을 말씀하고 싶은 건가요?”
장난기가 다분한 어투다.
“제 대리인이 되어 주세요.”
“대리인?”
초등학교 6학년생이 대리인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의아해하는 그녀다.
“제가 아직 미성년자라 계약을 맺기가 곤란해서요.”
“계약, 무슨 계약?”
계약이라는 말에 설희의 눈빛이 진중하게 변했다.
“일단 이것부터 한번 봐 주세요.”
선우는 책가방에서 자신이 쓴 <단팥빵>의 원고를 내밀었다.
30분쯤 지났을까?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단팥빵>의 원고와 선우의 얼굴을 연이어 바라봤다.
“이, 이걸 네가 썼다고? 그게 정말이니?”
“네. 누나가 방금 보신 건 1편이에요. 시리즈물로 계속 쓸 건데, 현재 다섯 편까지 만들어 놨어요.”
“……뭐?!!!”
당최 이게 말이 되는가?
이렇게 재밌는 동화를 시리즈물로 썼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짜리가, 그것도 무려 다섯 편이나 말이다.
-꿀꺽!
한번 벌어진 설희의 입은 다물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나, 그 입 좀 다무시죠. 그러다 파리 들어가겠어요.”
“헙!”
선우의 지적에 순간 설희의 얼굴이 빨갛게 붉어졌다.
“훗~”
선우는 한쪽 입가를 올리는 동시에 책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건 뭐니?”
“출판사에서 보내온 계약서예요.”
“출간 계약서?”
“네.”
선우는 조금 전과는 달리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 제가 누군지, 제 나이가 몇인지, 저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왜?”
“……보시다시피 전 어리잖아요.”
‘헐!!’
선우의 대답에 설희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보통 아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생각이다.
역시 뭔가 다르다.
“……하지만 여긴 선우 너네 아버지 회사잖아. 적어도 부모님께는 알려드려야 하지 않을까?”
“아니요. 부모님이 알게 되면 결국 시간문제일 뿐,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거예요. 누나도 알잖아요. 부모들의 자식 자랑!”
“하긴 일가친척은 온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시겠지.”
“가능하다면 제가 미성년자에서 벗어나게 될 때까지 비밀로 하고 싶어요.”
“…….”
그녀는 선우의 말에 생각에 잠겼다.
‘그래. 선우의 말이 맞아. 이런 책을 초등학생이 썼다고 하면 저 승냥이와 같은 언론에서 선우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 더욱이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맛본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그 끝이 좋지 않았어. 그래! 맞아. 어떻게 보면 선우가 현명한 판단을 내린 거야.’
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그럼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변호사님, 일단 저랑 계약부터 하셔야죠. 그리고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 등록도 함께 진행해 주세요.”
선우의 사무적인 말투에 설희의 입술이 마치 주꾸미처럼 앞으로 쭈욱 나왔다.
“……고객님, 전 좀 비싼데요.”
비싸다는 그녀의 말에 선우는 <단팥빵>이 적힌 원고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살랑살랑!
“왜 이러세요, 저 능력 있는 남자예요.”
“쳇! 알았다. 알았어.”
설희는 필요한 자료를 확인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참, 선우야.”
“네, 누나.”
“전에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네, 말씀하세요.”
“너, 무슨 향수 쓰니?”
“향수요?”
“응.”
설희의 말이 이어졌다.
“전에 설연이가 네게서 굉장히 포근한 향기가 난다고 했는데, 오늘은 내게도 그게 느껴져서 말이야. 이게 대체 무슨 향수지?”
설희의 말에 선우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전 향수 안 쓰는데요.”
“그래?”
“네.”
“그럼 비누 냄샌가?”
“…….”
설희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신경을 끄는 눈치다.
이 시대에 어린아이가 무슨 향수를 쓰겠는가?
“암튼 알았어. 그럼 누난 먼저 일어날게, 너 때문에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다.”
“네, 누나. 감사해요.”
“감사는 뭘~~”
선우의 시야에서 설희가 사라지자 선우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그려졌다.
그동안 그를 궁금하게 만들었던 의문이 풀렸기 때문이다.
“향기, 분명 향기라고 했다. 그럼 혹시……?!!”
설연이 그를 그토록 쫓아다닌 이유, 그녀는 선우에게서 마나의 향기를 느꼈음이 분명하다.
마나는 세상을 이루는 존재이자 모든 것을 포용하고 안아주는 기운으로 다시 말해 세상을 이루는 근본이라 할 수 있다.
“내게서 마나의 향기를 느꼈다니, 재능이 있는 건가? 만약 저쪽 세계였다면 마법사가 됐을 수도…….”
궁금했던 문제가 풀렸기 때문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선우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한결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