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화
6화 위기에 빠진 설연을 구하다
“어머머, 저 여자애 좀 봐.”
“꺄악, 너무 귀엽다.”
“인형 같다. 완전 인형이야. 부모님이랑 같이 왔나?”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설연을 목격한 레스토랑 손님들이다.
“혹시 아역 배우 아니야?”
“어쩜 좋아~ 인형 같아.”
“저기 봐, 남자애도 장난 아니다.”
“그러게, 대박!!”
“헐!! 저 피부 좀 봐. 마치 빛이 나는 것 같지 않니?”
“아! 갖고 싶다.”
대한민국 상위 0.1%에 들 만큼 귀여운 외모를 자랑하는 설연이다.
여기에 지구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오라를 지닌 선우의 등장이다.
사실 외모로만 따지자면 선우는 설연과 비교할 수 없다.
그만큼 설연이 독보적이다.
하지만 선우를 본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섣불리 시선을 돌리지 못했는데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일종의 고귀한 품격을 지닌 예술품에 사로잡힌 모습과 비슷했다.
‘……대박이다!’
레스토랑을 찾은 T&B 엔터테인먼트 김일환 대표 역시 한참 동안이나 설연과 선우의 모습을 대놓고 지켜봤을 정도였다.
잠시 후,
“안녕, 얘들아.”
설연과 선우에게 낯선 사내가 다가왔다.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야.”
-T&B Ent 대표이사 김일환.
“너희들 부모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니?”
그는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박힌 명함을 꺼내 보였다.
“T&B?”
남자는 자신을 상당한 규모의 연예 기획사 대표라고 소개하는 동시에 두 사람의 귀여운 외모에 반했다며 혹시 아역 배우나 CF 모델에 관심이 없냐고 물었다.
“아역 배우요? 그럼 연예인이 되는 건가요?”
“그래.”
“호호~~ 재밌겠다.”
“그럼, 완전 재밌어.”
일환은 여자아이의 반응에 신이 났다.
“넌 어떠니? 넌 연예인 되고 싶지 않니?”
“전 별로요. 그런 것에 관심 없어요.”
“어? 관심이 없다고?”
“네.”
“……그, 그렇구나.”
관심이 없다는 선우의 즉답에 T&B를 이끌고 있는 일환은 내심 당황했지만 내색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얘들아, 너희들 혹시 이 사람 아니?”
그는 연예인 사진을 꺼내 보이며 그의 회사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 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동건 오빠요?”
정동건은 92년 MBS 21기 공채로 데뷔한 배우로 요즘 한창 인기몰이 중에 있는 배우다.
설연은 정동건이 T&B에 있다는 말에 한순간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을 보였지만 선우는 처음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선우야.”
“응.”
“넌 연예인이 되고 싶지 않아?”
“응, 관심 없어.”
“그, 그래? ……그렇구나.”
설연은 뭔가 상당히 아쉬워하는 눈빛이다.
“왜, 넌 배우가 하고 싶어?”
“아, 아니…… 나도 하고 싶진 않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왠지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선우에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설연이 아역 배우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녀의 미모라면 아주 잘나가는 아역 배우가 되어 바빠질 것이 자명했다.
‘후후후! 그래, 바로 그거야. 본인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선우는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이참에 껌 딱지처럼 달라붙는 설연을 살짝 떼어 놓으려는 생각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졌다.
“설연아, 배우가 하고 싶으면 해 봐, 내가 열심히 응원해 줄게.”
“열심히 응원해주겠다고?”
설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응.”
“그게 정말이야?”
“그래, 내 생각에 넌 아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후에 설연의 부모와 만나 계약을 채결한 T&B의 김일환 대표는 선우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프로 낚시꾼은 서두르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동경하는 곳이 바로 연예계, 그는 밑밥을 깔아 놓고 때가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선우라고 했던가?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야.’
선우의 얼굴을 떠올린 일환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아이보다 잘생긴 아이들은 많아. 우리 회사만 봐도 그렇잖아. 그런데 대체 이 감정은 뭐지? 저 아이는 뭔가 격이…… 달라! 고귀한 빛을 뿜어내는 느낌이야.’
일환은 수많은 별을 만드는 사람답게 선우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품격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선우야, 난 포기하지 않는다. 기다리마.’
그는 선우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구애(?)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딩동댕 동!
5교시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하교를 준비했다.
“설연아. 내가 맛있는 것 사줄게. 나랑 같이 가자.”
“아니야, 설연아. 나랑 같이 잠실월드 가자.”
“얘들아, 됐거든~~ 설연이는 우리 집에 갈 거야.”
미래 초등학교 남자애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다.
바로 한설연이다.
한 편의 광고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린 설연은 그 후 드라마 여주인공의 아역으로 낙점되면서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하지만 설연은 누구나 인정하는 아역 스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우만 바라보고 있는 선우바라기다.
그리고 선우 역시 설연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이유로 여자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받고 있었다.
“설연아, 오늘은 나랑 같이 가자. 엄마가 피자랑 통닭 시켜준다고 했어.”
“미안한데, 난 선우랑 갈 거야~”
“서, 선우?”
“오늘도 선우랑 가는 거야?!”
남자아이들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응!”
“에이~ 그러지 말고 오늘은 우리랑 놀자.”
“그래, 설연아. 우리랑 놀자.”
“아~~~ 제발, 제발 부탁이야.”
두 손을 모아 애원하는 녀석도 있다.
공교롭게도 설연의 눈이 선우와 마주쳤다.
‘어떻게 할까?’
마치 이렇게 묻는 듯한 눈빛이다.
선우는 그런 설연을 향해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네가 놀고 싶으면 노는 거지, 난 갈 테니 네 맘대로 해.’
어느새 가방을 정리한 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설연 역시 재빨리 일어났다.
“애들아, 미안~ 내일 보자. 선우야, 같이 가!!!”
순간 남자아이들의 원망스러운 눈빛이 선우를 향해 쏟아졌다.
‘……쩝!’
이건 뭐,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격이다.
“기다려~~~”
설연은 행여나 놓칠까 가방을 손에 쥔 채 달려 나갔다.
선우와 설연이 사라진 교실,
“휘유, 대체 설연인 왜 선우만 좋아할까?”
누군가의 한숨 소리를 시작으로 남학생들의 푸념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내 말이!!! 설연인 왜 선우만 좋아하지?”
“……그러니까! 못생기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잘생기지도 않았잖아. 외모만 따지면 저기에 있는 도현이가 더 잘생겼지!”
사실이다.
얼굴만 따져보면 선우보다 잘생긴 남자애들이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선우를 보면 좀처럼 시선을 뗄 수 없다.
마치 뭐에 홀린 사람처럼 말이다.
선우에게선 마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묘한 분위기? 그건 인정해.”
“하지만 그뿐이잖아!”
“……선우에겐 남들과 다른 게 있어.”
“그게 뭔데, 다른 게 대체 뭔데?”
“…….”
“……!!”
“분위기, 뭔가…… 빛이 나는 것 같지 않아?”
“……헙!!”
누군가의 입에서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정답이 나왔다.
아이들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다.
왠지 모를 패배감이 아이들에게 밀려왔고 개중엔 서글픈 마음에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도 있었다.
“흑!”
“우아앙!”
* * *
“호오~~”
마른 체형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지닌 남자가 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마치 먹이를 찾는 사냥꾼의 눈빛과 같다.
설연과 선우가 지나간 자리,
남자는 맛있는 먹잇감을 찾았는지 번득이는 눈빛을 보이며 천천히 두 사람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뭐지?’
이상한 일이다.
선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 느낌은……?!!’
평소라면 이 근처에서 헤어졌겠지만 왠지 모를 위화감에 오늘은 그녀의 집까지 동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설연아.”
“응.”
설연은 선우의 음성에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집까지 바래다줄게.”
“정말?”
“응.”
“꺄아아~~”
뭐가 그리 좋은지 아주 함박웃음이다.
“근데…… 손 좀 놓고 가면 안 될까?”
“헤헷, 알았어.”
-한양 아파트.
“잠깐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찰나 한 남자가 급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선우는 위화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우울한, 끈적한, 욕망에 점철된 기운이 낯선 남자에게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안녕, 얘들아.”
남자는 친절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
설연은 남자의 인사에 반응을 보였지만 선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화감에 대해 확신했다.
‘이건 마치 인간 사냥꾼이나 변태 성욕자와 마주한 느낌이로군.’
만약 선우가 저쪽 세상에서 음차원의 기운을 주로 다루는 흑마법사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기운이다.
“설연아. 이쪽으로 와.”
그 순간 남자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지만 선우는 짐짓 태연한 척,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는 몇 층 가세요?”
선우의 질문에 남자의 시선이 움직인다.
“그건 왜?”
“저희는 꼭대기 층에 가야 하는데, 아저씨가 층수를 안 누르셔서요.”
“……아저씨도 꼭대기 층에 가.”
남자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꼭대기 층이요?”
“그래.”
“……이상하네요.”
“뭐가?”
“꼭대기 층엔 집이 하나만 있거든요.”
선우의 말에 남자의 눈빛이 순간 크게 흔들렸다.
“아! 그건 말이지…….”
남자는 마치 그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주려는 듯, 왼손을 들었다.
그러나 선우는 재빨리 오른손을 들어 남자의 왼손을 쳐냈다.
-탁!
“헐?!!”
예상치 못한 선우의 반응에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내 누런 이빨을 보이며 히죽 웃었다.
“훗! 애새끼 주제에 눈치 한번 빠르네.”
남자는 숨겨놨던 가면을 마침내 벗어 던졌다.
“무슨 짓이죠?”
“무슨 짓이죠? 말본새하고는!! 요즘 애들이 이렇게 싸가지가 없다니까!”
선우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이 사갈(蛇蝎)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너처럼 버릇없는 새끼부터 초장에 버릇을 고쳐줘야 해. 그래야 어른 무서운 줄 알지. 그리고 다음에는 예쁜 아이, 네 차례야. 조금만 기다려. 이 삼촌이 예뻐해 줄게. 흐흐흐흐~”
음욕에 찬 마귀가 마수(魔手)를 드러냈다.
“죽어!”
남자는 괴성과 함께 선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휘익!
큼지막한 주먹이 바람을 일으키며 허공을 가른다.
“어랏, 이, 이 녀석이?”
기껏해야 초등학생이다.
단 한 방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선우가 그의 주먹을 피해내자 남자는 순간 당황했다.
-퍼억!
그때 선우의 발차기가 남자의 정강이를 때렸다.
“억!”
생각지 못한 반격에 고통이 밀려왔지만 참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개…… 씨X 새끼가!!!”
남자는 오히려 거친 음성을 토해내며 크게 씩씩거렸다.
성인 남성이 초등학생 따위에게 일격을 허용했다는 점이 무척이나 창피한 모양이다.
“네 녀석의 뼈마디를 아주 자근자근 씹어주마.”
-퍼퍼퍽!
남자의 주먹이 마치 소나기처럼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복싱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 같다.
선우 역시 가드를 올려 남자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상대가 비슷한 또래가 아닌 완연한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퍼억!
꽤 묵직한 음이 터져 나왔다.
체중을 실은 남자의 주먹에 선우의 몸이 구석으로 튕겨나갔다.
하지만 남자의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었다.
“죽어, 이 새끼야. 죽어!!”
남자는 마치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는 듯, 선우를 향해 더욱더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고 광기 어린 그의 주먹질에 선우의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 곳곳에 시퍼런 멍울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만약 베리우스 연공법을 익혀 근골이 강해지지 않았다면 이미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죽어라, 죽어! 죽으라고 이 쒜끼야. 하하하하!!”
-퍽퍽퍽!!!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엘리베이터 내부를 장악했다.
하지만 선우의 눈빛 역시 한층 더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뭔가 기회를 노리고 있는 눈빛 같았다.
“으아앙! 아저씨, 그만 때려요.”
선우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해 보이자 설연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만해요, 우리 선우, 때리지 마세요.”
“이, 이년이!!”
남자는 예상하지 못한 행동에 당황한 모습이다.
“이런 빌어먹을!! 너 저리 안 꺼져?”
“싫어요. 안 돼요.”
남자는 울음을 토해내면서도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설연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넌 좀 이따가 예뻐해 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그의 손이 설연을 향해 뻗어나갈 찰나 선우의 손이 기묘하게 움직였다.
설연 덕분에 수인을 완성한 것이다.
다음 순간,
선우의 입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이 뻗어 나왔다.
“……저주(curse)!”
-우우웅!
마침내 흑마법이 펼쳐졌다.
“헉!”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그림자가 심연에서 깨어나 남자를 덮쳤다.
단말마의 신음성과 함께 남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다.
감당할 수 없는 오한이 전신에 퍼졌기 때문이다.
“이…… 이게 대체……?!!”
당황함이 역력해 보이는 남자의 뒤로 선우가 몸을 세웠다.
“설연아, 이제 괜찮아. 내 뒤로 가 있어.”
“……응.”
확신에 찬 선우의 음성에 설연은 몸을 움직였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선우의 손이 또다시 기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뭐 하는 거야?”
그리고 다음 순간,
선우를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음성이 새어 나왔다.
“중독(poison).”
“허억!!”
선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는 참을 수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
“우……우, ……우웩!”
갑작스런 토악질에 남자는 크게 당황한 표정이다.
“이, 이게…… 대체…… 웩! 우……웩!”
또다시 토악질이 올라왔다.
선우는 비릿한 미소를 보이며 남자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덤벼.”
“……?!!”
“덤벼!”
“뭐, 뭐라고?”
“덤비라고! 병신아. 못 들었어? 귓밥이라도 파줄까?”
선우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남자는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는 눈치다.
“이런 X…… 같…… 은 새끼…… 가 감히 주…… 둥…… 이만 살아가지고!”
그의 입에서 곧바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선우는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흑마법을 연이어 펼쳐낸 덕에 마나가 바닥을 드러냈지만 누구보다 흑마법의 위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 선우야…….”
갑자기 터져 나온 선우의 도발에 설연은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안 오면 내가 가도록 하지. 내 주둥이가 살았는지, 아니면 당신의 주둥이가 살았는지 가보면 알겠지.”
선우는 남자를 향해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어…… 어…… 어?!!”
남자는 크게 당황한 모습이다.
이성적으로는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퍼억!
전세는 역전됐다.
선우는 마치 샌드백을 때리듯 남자의 전신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퍽퍽퍽…… 퍼퍽!!
“켁…… 켁켁! 끄억!!”
초등학생의 주먹이 얼마나 강해봤자 얼마나 강할까?
하지만 선우는 베리우스 마나 연공법을 꾸준히 수련한 초등학생이다.
그의 힘과 스피드는 꽤나 강력했다.
“으, 으윽! 컥!”
둔탁한 신음 소리와 함께 남자는 몸을 크게 비틀거리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 괜찮을 거야.”
-주르륵!
“서, 선우야?”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던 선우의 얼굴에 두 줄기 쌍코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마나가 완전히 고갈된 여파다.
“아…… 이…… 쪽팔리게…….”
-털썩!
“선우야, 선우야!!”
선우는 그것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파트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아이! 깜짝이야.”
“어머?!! 얘들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니?”
눈물범벅이 된 여자아이가 피투성이의 남자아이를 붙잡고 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바닥에도 웬 성인 남자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저 아저씨, 나쁜 아저씨예요.”
설연의 외침에 사람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웅성웅성!!
“이봐요. 누가 112에 신고 좀 해주세요.”
* * *
-선우네 집.
“네, 경찰서요?!!”
“……?!”
수연과 규용은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자마자 크게 놀랐다.
선우가 왜 경찰서에 있단 말인가?
뒤이은 경찰관의 설명에 자초지종을 알게 된 두 사람이다.
“아이들은요, 아이들은 괜찮습니까?”
-남자아이가 다쳐서 정신을 잃었지만 좀 전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좀 더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일단 두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
선우가 다쳐 정신을 잃었다는 말에 수연과 규용은 순간 심장이 덜컥 멎는 줄만 알았지만 지금은 무사하다는 말에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경관님, 거기가 지금 어디라고 했죠?”
-네, ** 경찰서입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네, 일단 아이들은 이곳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오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수연과 규용은 하던 일을 멈추고 경찰서를 향해 출발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있었는지 두 사람 모두 연락을 받은 후, 30분도 되지 않아 경찰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자식 걱정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갈 정도다.
“선우야.”
“엄마.”
“선우야!!!”
“……아빠. 저 여기 있어요.”
부모의 품에 안긴 선우는 그가 행한 행동에 걱정 섞인 꾸지람을 들어야 했지만 친구를 위해 두려움에 맞선 용기에 큰 칭찬을 받았다.
“그래, 자고로 남자라면 그래야지. 잘했다. 선우야.”
남편의 칭찬에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수연의 내심은 미묘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의 아들은 아직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초등학생이다.
수연은 선우의 용기 있는 행동에 잘했다고 칭찬할 수만은 없었다.
그저 애꿎은 입술만 깨문 채,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볼 뿐이다.
“엄마. 죄송해요.”
선우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연의 눈빛을 보고 그녀가 느끼고 있을 복잡한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아니야. 우리 아들, 참 용감했다.”
수연은 선우를 꼭 안아줬다.
“어린아이인 줄 알았는데 참으로 대견하고 대단하네. 잘했어. 아들.”
“…….”
잘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왜 그랬을까?
마치 막혔던 둑이 터지듯, 선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꽤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마나가 고갈되어 하마터면 역류(逆流)할 뻔했다.
‘아씨, 쪽팔리게…….’
정신연령이 100세를 넘었는데, 눈물이라니!!
하지만 선우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한 느낌에 그는 분명 웃고 있었다.
“설연아!!”
“누구야! 누가 우리 막내를 건드렸어?!!”
이때 한눈에 봐도 범상치가 않은 포스를 풍기는 미모의 여인들이 경찰서 안으로 쳐들어왔다.
-웅성웅성.
두 여인의 정체는 설연의 친언니들이다.
경찰서 인근에 있었는지 부모님보다 한발 먼저 경찰서에 도착한 것 같다.
“큰언니, 작은언니.”
“설연아!”
“막내야. 괜찮니?”
설연은 두 언니를 보자마자 그녀들의 품에 달려들었다.
“우아앙!”
“괜찮아. 설연아.”
설연의 두 언니는 상당히 잘나가는 사람들이다.
큰언니 한설주는 방송국 PD고 작은언니 한설희는 꽤 유명한 로펌에서 근무하고 있는 변호사였다.
“담당 형사분이 누구시죠?”
“……전데요?”
피해자의 가족 중에 방송국 PD와 로펌 변호사가 있다고 하자 경찰서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후에 벌어질 일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분 후,
경찰서 전체가 발칵 뒤집어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설연의 아버지가 등장함으로써 벌어진 일이다.
“아빠.”
“아빠!!!”
경찰서에 도착한 한상우가 신분을 밝히자 형사들의 눈빛이 휘둥그레졌다.
“추, 충성!”
곧이어 담당 과장을 포함해 ** 경찰서장 이하, 고위 간부 전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뭐지?’
선우가 알고 있기로 설연의 아버지는 서초동에 위치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먼저 설연의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가 서초동에 위치한 것은 맞다.
그런데 그 회사의 정체가 바로 서초동에 위치한 대검찰청을 말하는 것이었고 아버지의 직함은 차장검사였다.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차관급에 준하는 위치로 그야말로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자리였다.
-검찰총장(장관급)
-고검장급 검사장, 지검장급 검사장, 대검 차장검사(차관급)
-차장검사(1급)
-부장검사(2급)
-부부장검사(3급)
-평검사(4급)
대검찰청 차장검사의 등장에 경찰관들의 안색이 그야말로 새하얗게 변했다.
이는 경찰서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봐, 박 형사.”
“네, 서장님.”
양종현 경찰서장은 피의자 김종철 관련 차트를 확인하며 담당 형사를 불렀다.
동종의 전과를 가지고 있는 김종철은 집행유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동종의 범죄를 저질렀기에 가중 처벌이 가능했다. 게다가 그가 범행 대상으로 삼은 이가 누군가?
현직 대검찰청 차장검사의 딸이지 않은가?
그것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다는 늦둥이, 막내딸이었다.
어쩌면 10년 이상도 가능했다.
양종현 서장의 살벌한 음성이 이어졌다.
“저 새끼! 최소 10년은 감방에서 썩을 수 있게, 아주 제대로 조사해.”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