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97화 (297/301)

197. < 세상에 공짜는 없다(4) >

양세종 국장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중에 방송국 직원 몇몇이 들어오자 그들을 향해 말했다.

"어,잘 왔어. 여기 파인프로덕션 직원들이니까 실무진끼리 잘 해결해. 우린 할 얘기가 더 있으니까 나가서 일 보고."

"알겠습니다."

우현을 따라온 파인프로덕션 직원들이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 넓은 회의실에는 양 국장과 우현만 남았다.

"김 대표야, 단막극이라는 게 일단 시작하면 최소 한 분기는 끌고 가야 해. 몇 개 해보다가 말 수가 없다고. 아무리 1,2편짜리 드라마라지만 제작비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야. 특히 이름 있는 배우를 쓰면 더더욱 그렇겠지. 그런데도 하려는 이유가 뭐야?"

목소리를 착 깔고 말하는 게 나름 진진해 보였지만 우현은 피식 웃으며 농치듯 말했다.

"형님은 내가 그것도 모르고 달라고 할 것 같아요? 날 어떻게 보고... 이유는... 비밀입니다."

양 국장의 미간이 팍 찌그러들었다.

"새끼... 진짜 제대로 할 수 있어?"

"솔직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뇨?"

KBC는 누가 워래도 공영방송이다.

때문에 양 국장으로서는 회사 이익을 위해 단막극을 폐지했다는 오명이 달가울 수가 없었다.

"19금 만들거나 그런 거 아니지?"

"거, 형님은 날 뭘로 보고... 편성이나 확정하고 통보해줘요. 7월 중순이나 8월 초순이면 대략 맞겠네."

"좋아. 그럼 우리도 단막극 자체 광고 때릴 테니까 다음 달 초까지 촬영해서 예고편 넘겨. 다시 말하지만 우리 쪽에서 나가는 돈은 없는 거야!"

"자기 돈도 아니면서 짠돌이 같아 가지고는..."

"야, 내 돈이면 아끼지 않지. 회삿돈이잖냐."

"그럼 다음에 술값 형님이 내시는 거죠?"

짠돌이라는 말에 역정 내던 양 국장은 슬며시 시선을 돌리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크흠... 아, 난 회의가 있어서 먼저 나가봐야 할 것 같네. 그럼 조심해서 가고..."

저 짠돌이에게서 술을 얻어먹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방송국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회의를 끝낸 직원들을 데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지 피디를 불렀다.

"말씀은 잘 끝내셨어요?"

"응,거기 예능 CP가 미소가 마음에 들었나봐. 덕분에 양 국장만 신났지, 뭐. 그리고 말이야... 내가 양 국장한테 단막극 편성을 좀 만들어 달라고 했어."

"네? 갑자기 무슨 단막극이에요?"

"내가 작가팀도 만들고 피디랑 여러 스태프들도 영입하고 있지만 그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헐... 지금 파인프로덕션 직원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아세요?"

"알지. 하지만 문제없잖아? 문제는 스태프들의 숫자가 아니야. 그들을 유지할 수 있는 작가와 피디의 역량이 중요하지."

"그렇기는 하죠. 잘 만든 작품 하나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오긴 하니까...그래서 작가와 피디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단막극에 손을 대시는 거예요?"

"응, 제작은 우리 돈으로 할 거야. 편성은 토요일 자정."

지 피디의 얼굴은 우현의 선언에 잔뜩 굳어버렸다.

"상당한 돈이 들어갈 거예요. 그것도 지속적으로..."

"제작은 PPL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어. 방송사에서 PPL수입을 건드리지 않을 거니까 생각보다 상당부분 보중이 될 거야."

"주말이라고는 해도 자정에다가 단막극인데 PPL이 들어올까요?"

"우리가 그저 그런 제작사라면 당연히 안 들어오겠지. 하지만 내가 누구야? 아마 나 때문이라도 PPL 안 할 수는 없을 걸?"

지 피디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시 한 번 우려를 표했다.

"그래도 너무 무모하게 키우려는 거 아닐까요? 그것보다는 재능 있는 사람들 위주로 영입하는 게..."

"그것도 맞아. 재능 있는 친구들을 영입해서 쓰면 되지. 그런데 그런 친구들을 어떻게 영입해? 공모전? 그래, 전처럼 해서 송유리 작가 같은 능력 있는 친구도 영입했지. 그런데 편성 못 받아서 골골대다가 겨우 준비 들어가잖아."

"그래도 들어가는 게 어디에요?"

"틀렸다는 게 아니야. 작가의 흥행력이라는 건 처음부터 타고난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점점 발전해나가는 작가도 있지. 내가 아무리 좋은 작품을 잘 골라낸다고 해도 잠재력까지 완벽하게 살펴볼 수는 없는 거잖아. 지속적으로 작품을 만들 기회를 마련해주면 점점 발전해 나갈 거라고. 이건 감독도 마찬가지야."

"아... 드라마 피디만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영화감독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은 거네요."

"바로 그렇지. 드라마와 영화가 다르긴 하지만 단막극일 경우는 큰 차이가 없어. 신인 감독들은 단편영화 이후로 장편으로 데뷔하는데 그 중간다리가 돼줄 거야. 연출 실력을 키울 수 있는데다가 내가 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자세하게 볼 수 있지. 그럼 실제 상업영화를 제작할 때 내가 평가하기 훨씬 쉬워지지 않겠어?"

어떻게 보면 정말 무모한 방식이긴 하지만 우현이기에 할 수 있는 교육(?)이다.

흥행에 대한 자신감과 시나리오를 보는 눈을 믿기 때문에 단막극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돈이 아깝지 않은 거다.

"흐음... 그렇긴 하네요. 그럼 회사 입장에서도 홍보를 해야 하는 거네요?"

"그렇지. 앞으로 KBC에서 만드는 단막극은 전부 우리가 책임지고 만들어야 해.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작가와 피디가 필요해."

"작가와 피디를 영입하는 건 문제 없어요. 지상파에 단막극을 바로 낼 수 있다고 하면 작가 지망생 수백 명이 몰려들 거니까요. 아직 입봉하지 못했거나 일이 없어서 반백수인 연출가도 많을 거구요. 한 달 정도면 중분해요."

지 피디도 우현의 자신 있는 말에 설득됐는지 바로 의욕을 불태웠다.

"한 달이면 너무 빡빡해. 당장 7월 초에 한편 찍고 예고편 편집해서 방송국에다 보내줘야 해."

"어? 기간이 너무 타이트한데... 그럼 이렇게 하죠. 지금 '변호사들' 시즌2가 거의 마무리라, 작가팀 중에 단편 하나 가능한 사람 있는지 권유해볼게요. 아마 서로 하겠다고 나설걸요?"

"좋아. 그럼 파인프로덕션에 공지하고 실무진 보내서 정식으로 계약 진행해."

"결론 앞두고 너무 바쁘게 보내시는 거 아니에요?"

사실 바쁘긴 하다.

어제도 은하와 스튜디오 촬영을 하느라 진을 뺐고 오늘 저녁엔 신론집에 들여놓을 가구를 보기로 했다.

"바쁘긴 한데, 단막극은 작품 선정할 때 내가 관여하지 않을거야. 완성된 것만 보고 판단할 거니까."

"아... 그럼 제가 결정하면 된다는 거죠?"

"그렇지. 미리 어떤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 활영 전에 내가 손대면 안 되기도 하고... 나는 결과만 보고 판단할 테니까 지 피디 일 많으면 제작피디 하나 더 뽑아."

"어머, 그래도 돼요?"

두 손을 모으고 좋아하는 걸 보니 많이 힘들었나보다.

"그럼. 부사수 하나 뽑아서 일 잘 가르쳐. 이제 제작피디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일 거야."

벌려놓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 말이다. 은하가 결혼준비 때문에 일을 쉬고 있고, 별이가 미국으로 가서 미드 '미씽유'를 촬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제 곧 준비에 들어가는 송유리 작가 작품과 단막극 준비만으로도 집에 들어가기도 힘들 거다.

"흐흐...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송 작가가 제목을 '내 인생의 태클'로 정했어요. 여주는 생각하셨던 대로 정인주를 캐스팅할까요?"

"그래, 어차피 우리 쪽 배우는 걔밖에 없잖아. 잘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남주는 누구로 할까요?"

"마음 같아서는 석호를 남주로 쓰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자기식구들만 챙긴다고 말 나올 거 아냐? 석호는 다른 작품 찾아 주기로 하고, 송 작가는 누구를 원한대?"

"송 작가는 원래부터 공우 팬이었어요."

"에이... 공우는 너무하지. 인주가 너무 죽어, 안 돼."

공우를 붙이기에는 정인주가 너무 처진다.

아무리 로코가 남주빨로 간다고는 하지만 여주가 급이 너무 차이나면 곤란하다.

게다가 공우면 제작사 입장에서 출연료 부담도 상당할 거다.

"그럼 한 번 물어볼게요."

"아, 그리고 평소 드라마 PPL 들어오는 대기업들 있지? 중소기업 말고. 냉장고나 청소기 같은 거 들이밀고 싶어 안달하던 애들한테 우리가 KBC랑 맺은 계약 이야기하고 PPL달라고 해."

"싫다고 하면..."

"일단 그렇게 해봐. 걔들이 싫다고 하면 다시 말하고. 의외로 PPL 넣어주겠다고 할지도 모르잖아? 나 바쁘니까 이만 하자고. 나가야 해."

지 피디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알았다고 하면서 넘어갔고 우현은 바로 옷을 챙겨 입고 대표실을 나섰다.

"나가시는 거예요?"

민주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하하, 오늘 은하랑 신혼집에 들어갈 가구 보기로 했거든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요."

"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사실 결혼 전 준비기간이 신랑과 신부 모두에게 기쁨과 설렘을 주지만 반대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때문에 우현은 은하와 만날 때마다 좋기도 하지만 은근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짠! 나 어때?"

은하를 데리러 가니 이제 여름이 다가왔다고 민소매에 미니 스커트를 입고 반겼다.

어제 10시간에 달하는 스튜디오 촬영도 철인처럼 힘든 내색 하나 없이 해치우더니 오늘도 놀러가는 것처럼 기대에 들뜬 얼굴이었다.

"와! 너무 예쁜데?"

"흥! 성의 없기는... 가자!"

리액션에 담긴 영혼까지 꿰뚫어 보는 그녀는 조수석에 앉더니 손에 들고 있는 도면과 잡지책을 다리에 턱 올려놓았다.

"여기 인테리어에 맞줘야 하니까 가지고 왔어. 나 잘했지?"

"어, 잘 생각했다."

"히힛! 엄마가 오빠랑 잘 상의해서 좋은 걸로 맞추래. 오랫동안 써야 하니까 오빠 취향도 신경 쓰라고 하더라구.

그러니까 고를 때 오빠도 의견을 내, 알았지?"

"알겠어."

결혼을 발표한 이후 모든 구매 결정에 은하의 의견이 백프로 반영됐다.

이번에도 의견을 내라고는 하지만 결국 은하 마음에 드는 가구를 고를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알았다고 한 건 어차피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간 성의가 없다며, 관심이 없는 거냐며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성의 있고 원가 분석적인 의견을 내야 은하가 나름의 반박을 통해 자신의 선택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는 최종적으로 우현과의 다정한(?) 의견교환 이후 합리적인 구매를 했다는 만족감을 갖게 될 것이다.

은하 어머니가 우현의 취향을 생각하라고 했다는 말은 우현의 마음에도 들었던 결정이라는 것으로 마무리 될 것이다.

"그럼 논현동으로 고고!"

신난 은하는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고개와 다리를 까딱거리며 기대와 설렘에 부풀어 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논현동 가구거리에 도착해 소파를 둘러보는데 지 피디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 대표님, 통화 괜찮으시죠?"

은하는 우현이 통화하는 걸 슬쩍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소파를 훑어보았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이 빨리 끊으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응,괜찮아. 얘기해."

슬쩍 고개를 돌려 매장 바깥을 바라보았다.

"몇몇 곳의 홍보 담당자랑 얘기해봤는데 PPL에 회의적인데요? 시간도 늦고 단막극이라 어려울 것 같다고..."

"아, 그래? 그럼 다음에 우리가 만드는 영화나 드라마에 PPL 안 넣어주겠다고 해. 그래도 안 해주는지 한번 보자고."

그녀는 설마 우현이 이 정도까지 밀어붙일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잠시간 침묵이 흐르고 난 뒤에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그건 조금... 쎄게 나가는 게 아닐까요?"

"괜찮아. 안 하겠다고 하면 지들만 손해지. 경쟁사 빠방하게 밀어줄 거거든."

197. < 세상에 공짜는 없다(4)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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