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 세상에 공짜는 없다(3) >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그렇게 똥꼬에 힘을 팍 주냐?"
"흐흐... 이번에 주말 예능 새로 준비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맞습니까?"
"주말예능? 글쎄?"
양 국장은 모른 척 의뭉을 떨었지만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우현은 놓지지 않았다.
"형님, 자꾸 이러면 나 섭섭하려고 해요.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기 있어요?"
"아... 이 귀신같은 놈. 그런데 나도 정확히 아는 건 아니야. 최상경 CP가 결정하는 거라구. 아직 어떻게 결론 났는지 알지도 못해."
"내가 뭘 들이밀지 말도 안 했는데 자꾸 그렇게 펄쩍 뛸 거예요?"
"야,내가 딱 들어보니 드라마 주, 조연으로 누구 꽂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예능에 고정으로 누구 하나 들이밀어 보겠다는 것 같은데, 내 소관도 아닌 걸 내가 어떻게 장담하고 딜을 받냐?"
이 양반이 눈치는 빨라서...
"그럼 물어보세요. 그럼 되겠네."
"아우... 좋아. 내가 물어는 볼게. 뭔데? 아니, 누구를 들이밀고 싶은데?"
"한미소라고 파이브걸즈 아시죠?"
"파이브걸즈? 당연히 알지. 걔들 예능 잘 나오잖아."
배우들이야 예능 줄연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유니나 파이브 걸즈는 예능 출연이 다반사다.
가수들은 신비감보다는 얼굴은 익숙하고 노래는 자주 들릴수록 좋다.
"잘 나오는데, 알다시피 전부 단발성 게스트 아닙니까? 한미소가 얼굴은 예쁘고 청순한데 의외로 말을 잘하고 예능감이 있다니까요? 그 최상경 CP인가 하는 사람한테 한번 말해보세요."
"그러니까 게스트가 아니라 쪽 고정으로 꽂아 달라 그거지? 한미소라는 애를?"
예능프로에서 단발성 게스트와 고정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일단 화제성은 물론이고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면 제 발등을 스스로 찍지 않는 한 호감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물론 시청률이 받쳐준다는 전제다.
출연료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파이브걸즈 같은 걸그룹은 게스트로 출연할 때 회당 몇 십만 원이 고작이지만 고정만되면 회당 몇 백만 원은 기본이다.
작년이라면 파이브걸즈를 지상파 주말 예능에 고정으로 들이밀 생각을 못했겠지만 지금은 작년에 비해 인지도나 인기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으니 밀어볼 수 있는 거다.
"그렇죠. 그럼 내가 진짜 형님이니까 솔직하게 말하지만 양심적인 금액으로 '미씽유' 리메이크 넘겨 드릴게. 아시죠? 이제 9월에 첫 방 나가는 거? 지금 우리쪽에서는 국내 동시상영 밀고있어요. 게다가 별이가 조연으로 출연하니까 이거 분명히 먹히는 겁니다."
"말 안 해도 안다. 아니까 달라고 하지."
그러니까 말이다.
저 곰 같은 여우인 양 국장은 벌써 '미씽유' 리메이크가 한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거다.
"일단 물어보세요. 그 쪽에서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김 대표야, 너도 주말 예능이 방송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지? 솔직히 꽂아주는 거야 무슨 문제가 있겠냐만... 막상 시켜보고 난 뒤에 죽 쓰면 걔 혼자 바꾸기도 애매하고 프로그램 전체가 이상해진다니까? 그거 알잖아?"
"알죠. 그런데 잘해요."
우현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 전에 유니와 파이브걸즈를 데리고 했던 야유회 때문이다.
평소 배우 쪽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기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경수와 유니팀에게 회식을 제안했더니 마침 이틀정도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하며 야유회를 가자고 떼를 썼었다.
이왕이면 배우들과도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스케줄 상 맞출 수가 없어서 결국 가수팀들과 야유회를 갔는데 얌전을 떨 것 같던 한미소가 의외로 발군의 입담을 자랑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평소 예능프로그램보다는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 봤기에 예능쪽 재능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순간적으로 말을 받아치는 재치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간 예능에 게스트로 가끔 나간적도 있었는데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기에 왜 그런지 물어보니 이미지 관리를 위해 그랬다고 한다. 배우도 아니고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한미소는 사실 노래나 춤보다 오로지 얼굴 하나만으로 뽑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얼굴천재(?)과다.
본인도 그걸 알아서 그랬던 건지 괜히 스스로가 조신한 척하고 있었나보다.
혹시 이번에 예능으로 팍팍 밀어주면 잘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자신 있다고,맡겨만 달라고 했다.
그래서 어떤 예능을 하면 좋을까 고심하고 있던 차에 KBC에서 주말 예능을 개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어떻게 꽂아볼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최상경 CP가 눈이 높아. 물어보고 싶어하면 나도 방법 없다."
"그래요. 난 괜찮아요."
"하아... 알았어. 일단 끊어봐."
"예압! 수고하십쇼!"
전화를 끊고 나자 지여을 피디가 상체를 내밀며 눈을 빚냈다.
"미소를 KBC 주말예능에 꽂으시게요? 그럼 대박인데?"
"안 될 가능성이 크지. 기대하지 마. 나도 될 거라 생각하고 던진 거 아니야. 우리 양 국장 마음 같아서야 당장 꽂아주고 리메이크를 가져오고 싶겠지만 예능이라는 게 딱 정해진 컨셉이 있는 거잖아. 대부분 남자예능이 대세인 때에 걸그룹 소속 여자 애 하나가 고정으로 들어가기 쉽겠어? 혹시 몰라서 하나 던져본 거야."
"그래도 양세종 국장님 정도면 그 정도 힘이 있지 않을까요?"
"에이... 예능쪽 애들도 은근히 자존심 쎄다. 넙죽넙죽 받는 친구들이 아니야. 그리고 미소가 지금껏 이미지 관리한다고 조신하게 있었으니 걔들도 모니터링 한다고 딱히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사실 TVM에서 오리지날을 만들었는데 그걸 KBC랑 가장 먼저 상의하면 되겠어? 상도의가 있지."
지 피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너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한다. 양 국장님 섭섭하시겠어요"
"섭섭하기는? 그 양반, 솔직히 우리 덕분에 상반기에 얼마나 좋았어? 자다가도 실실 웃음이 나왔을 걸? 이 정도 노력가지고 뭘... 노력도 아니다. 그냥 말 한번 툭 던져보고 아니다 싶으면 말 거야. 그 양반 원래 그렇게 질척거리는 타입은 아니거든."
그건 맞았다.
은근히 체면을 중시하는 양 국장은 그냥 한 번 툭 던져보고 말려고 했다.
그런데 최상경 CP의 반응이 생각과는 달랐던 거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을 때, 우현은 양 국장이 그냥 막무가내로 우리쪽과 계약하자고 떼를 쓸 줄 알았다.
그런데 목소리가 기대하던 톤이 아니었다.
"너 분명히 말했다? 이번에 그거 우리한테 넘기는 거다?"
'이 양반이 이렇게 나오면 안 되는데?' 싶었지만 일단 질러놓은 게 있으니 딴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알았다니까요? 최상경 CP인가 하는 사람이 우리 미소를 고정으로 써준대요?"
"야,진짜 김 대표 너는 복이 막 굴러들어오나 보다. 최 CP가 말하는 게 딱 여자 아이돌 하나가 필요했대. 너무 잘 할 필요도 없고 딱 리액션만 잘 해주고 아저씨들 사이에서 분위기만 띄워주면 된단다."
이게 진짜로 먹히다니...
"진짜 그래요? 미소를 써준대요?"
"진짜라니까! 너 두말 하는 거 아니지? 오늘 내로 방송국으로 실무진들 데리고 들어와라.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후딱 해치우자."
"알겠습니다. 거, 방송국 가는 김에 최상경 CP도 보자고 해요. 진짜 우리 미소를 쓸 건지 말이에요."
"오케이! 의심 많은 놈 같으니라고... 우리 김 대표님이나 약속 잘 지키세요."
"아유, 저야 말해 뭐해요. '김우현'하면 신뢰 아닙니까?"
일단 전화를 끊고 나서 지여울 피디를 불렀다.
"내가 전에 양 국장한테 한미소 예능에 꽂아달라고 했었잖아?"
"그랬죠. 안 될 거라고 했었잖아요? 왜요? 설마 된대요?"
우현의 애매한 표정을 보고 그녀도 뭔가 상황이 변했다는 걸 알아챘다.
"그렇다네? 딱 걸그룹 멤버 하나가 필요했대. 내려가서 ABC 방송국이랑 협상 가능한 애들한테 지금 KBC들어갈 거니까 준비하라고 해줘. 아무래도 KBC한테 넘겨야 할 것 같아."
"그래요. 잘 됐네요. 나중에 TVM쪽에서 말이 나오면 그 때 잘 달래면 되죠."
"그렇지? 그리고 그거 가지고 와봤자 TVM에서 안 할 거 아냐? 전문 영화채널로 옮겨서 방영하겠지. ACN이나 CGW이런데서 말이야."
"생각해보니 그렇네. 걔들이 막 우길 게 아니네요."
"아, 그리고 지금 상암동에 파이브걸즈 촬영 중이지?"
"맞아요. MBS 예능 활영하고 있어요."
"경수한테 전화해서 한미소 KBC로 보내라고 해. 거기 CP한테 한번 보여주고 확답을 받아야겠어."
"알겠습니다."
1시간 뒤, 사무실에서 줄발한 우현 일행이 KBC 방송국에 도착했을 땐 이미 미소가 론자서 드라마국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빨리 왔네? 경수랑 다른 애들은?"
"아직 녹화 덜 끝나서요."
"너는 어떻게 빠져나왔어? 안 보내줬을 텐데?"
당연히 녹화가 끝났을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보다.
"저 없어도 촬영 가능해서 감독님께 말씀드리고 나왔어요. 대신 경수오빠가 방송국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갔어요."
"응, 알았어. 일단 들어가자."
"그런데 저 드라마 하는 거예요?"
눈을 반짝이는 게 은근 연기가 하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우현이 봤을 때, 미소는 연기에 대한 재능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예쁘긴 한데 딱 걸그룹 수준에서 예쁜 수준이라고나 할까?
"아니, 너 내가 전에 예능 시켜준다고 했지? 잘 하면 고정 될 것 같은데, 일단 들어가서 회의해봐야 하거든? 잘 보여라."
"옙! 자신 있습니다!"
그녀는 잠시 실망하는 눈지였지만 그래도 주먹을 쥐고 파이팅 하며 우현을 따랐다.
이제는 아예 익숙해진 드라마국의 커다란 회의실에 들어서니 얼마 후 양세종 국장이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과 함께 들어섰다.
"전보다 얼굴이 더 좋아진 것 같아? 결론한다더니 너도 얼굴관리 받냐?"
"부러우면 국장님도 관리 받으세요."
"누구한테 잘 보이라고? 설마 마누라한테 잘 보이라고 하는 건 아니지? 아, 이 친구가 한미소인가? 반가워요. 여기는 주말 예능 담당하고 있는 최상국 CP. 여간 깐깐한 사람이 아니야."
"안녕하십니까! 파이브걸즈에서 한미모를 담당하고 있는 한미소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미소는 양 국장과 최상국 CP에게 연속으로 허리를 숙였다.
"반가워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이 파이브걸즈인데 어떻게 딱 들어맞았네요?"
싱글거리며 웃는 걸 보니 미소를 두고 딴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정말 우연찮게도 준비하고 있던 예능 컨셉에 미소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자, 그럼 이쪽은 잘 풀린 것 같으니 데려가서 애기하고 있지?"
"그럴까요?"
최상국 CP가 미소를 데리고 나가자 양 국장은 우현이 데리고 온 직원들을 슬쩍 살피며 웃음을 머금었다.
"싸게 해줄 거지?"
"그럼요. 솔직히 나는 가격 협상하러 온 거 아니에요. 이 친구들한테 적당히 남기고 팔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편성 실무진한테 와서 이야기하라고 해요."
"진짜? 정말이지?"
"정말이라니까요. 의심도 많은 양반이셔, 아주..."
"흐흐... 알았다. 그럼 내가 실무진 불러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있잖아요? 혹시 단막극 부활시킬 생각 없어요?"
"단막극? 갑자기 무슨 단막극? 우리 단막극 다시 접었잖아?"
"그러니까... 그거 다시 할 생각 없냐구요."
양 국장은 표정을 찡그리며 상체를 슬쩍 뒤로 뺐다.
"김 대표야, 단막극은 돈이 안 된다. 제작비 때문에 위에서 안 좋아해. 광고도 안 붙고 시청률도 영..."
"제작은 우리가 할 테니까 편성만 주세요. 어때요?"
"하루 24시간이야. 드라마 끝나면 예능 해야지. 우리도 남는 시간 없어."
"토요일 자정 시간 주세요."
그제야 시큰둥했던 양 국장의 얼굴에 반응이 온다.
"토요일 자정? 아무리 주말이라도 그 시간이면 PPL도 잘 안 들어올 걸? 그런데 그걸 네 돈으로 제작해서 하겠다고? 뭐야? 뭐 때문에 단막극에 돈을 대려고?"
"PPL은 따 올 자신 있어요. 하여튼 재주는 우리가 부릴 테니까 어때요? 콜?"
196. < 세상에 공짜는 없다(3)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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