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87화 (28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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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내 마음대로(5) >

누가 보더라도 비꼬는 말이라 정우찬 국장과 김은선 작가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하지만 우현은 자리에 앉아 허리를 뒤로 양껏 젖혔다. 적진에 들어와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지 말고 우리 이성적으로 해결합시다. 김우현 대표님, 데려가신 촬영감독하고 조명감독은 우리 회사에 남은 얼마 안 되는 인력입니다. 굳이 꼭 데려가셨어야 했어요?”

정우찬 국장은 화를 꾹 누른 채 점잖게 이야기했다.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까놓고 이야기합시다. 우리 엿 먹이자고 편성 그렇게 잡은 거 모를 줄 알았어요?”

다짜고짜 던진 직구에 순간 당황했는지 정 국장이나 김 작가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에 우현이 비꼬듯 말을 이었다.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마시고, 어디 대답 한번 해보시죠?”

“흐음... 김 대표님이 뭔가 오해하셨나본데 우리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MBS가 몇 년 전부터 드라마 시청률이 계속 저조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몇 개 만들어봤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죠. 그래서 김은선 작가님을 모셨던 겁니다.”

정 국장의 변명에 우현이 정색하고 말했다.

“그럼 편성 미루세요.”

“그, 그건...”

“우리 쪽에서 5월 초 편성한다고 기사 나간 다음에 4월 말로 편성 잡았으면 엿 먹어보라는 거 아닙니까? 그럼 편성을 바꾸세요. 그럼 국장님의 순수한 마음을 인정해 드릴게요.”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너무 하시네. 김우현 대표님! 세상 혼자 사는 거예요? 너무 천방지축인 거 아니야? 경쟁사와 편성 협의하는 곳이 어딨어!”

보다 못한 김은선 작가가 고성을 지르며 나섰다. 하지만 우현은 뉘집 개가 짓느냐는 표정으로 아예 시선도 주지 않고 답했다.

“내가 원래 내 멋대로 사는 사람이라...”

답하는 와중에 핸드폰에 진동이 울려서 보니 지여울 피디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임혜진 출연 캔슬됐어요]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양세종 국장이 한 건 한 게 틀림없다.

“김 대표님, 우리 이러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합시다. 앞으로 MBS에 배우들이랑 가수들 절대 출연 안 시킬 생각이에요?”

“그럼 국장님은 우리 엿 먹이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셨나봅니다? ‘나는 괜찮지만 너는 안 된다’ 뭐 이런 생각인가요?”

“김 대표님!”

정 국장도 화가 났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우현은 신경 쓰지 않고 김은선 작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김 작가님은 여배우 다시 구하셔야겠어요?”

“네? 그게 무슨...”

그녀는 황급히 핸드폰으로 기사를 검색하다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무슨 기사를 봤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정우찬 국장도 황급히 기사를 보고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김우현 대표님!”

그녀는 화가 단단히 났는지 회의실 밖에까지 다 들릴 정도로 고성을 질렀다.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닙니다. 뭐 믿지는 않으시겠지만... 어쨌든 이제 다시 이야기해보죠. 정우찬 국장님? 편성 바꾸실 의향이 있습니까?”

“방송사가 일개 제작사한테 이리저리 휘둘릴 것 같습니까?”

“아니면 말구요. 김은선 작가님은 어때요?”

“...”

그녀도 이제는 사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다는 걸 느꼈는지 입을 열지 못했다. ‘만약 대본리딩 전에 남주가 빠지면?’이라는 걱정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거다.

“편성만 바꾸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치킨게임을 하고자 달려들면 저도 그냥 당하지 않아요. 어디 한번 잘 찍어보시죠?”

우현이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을 데리고 오면서 MBS에 남아있는 스태프 중에 가장 경력이 많은 사람이 5년 내외라고 알고 있다. 찍으려면야 못할 것도 없지만 퀄리티는 당연히 보장할 수 없다.

게다가 파인프로덕션이 더 영입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으니 자칫 잘못하면 편성이 펑크날 수도 있었다.

모든 드라마를 외주로 돌리는 MBS에게 드라마 편성 펑크는 그대로 방송 사고나 다름없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김우현 대표님, 제작사가 방송사랑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짓을 하고도...”

정우찬 국장은 더는 밀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정색하고 말했지만 우현은 다 듣지도 않고 말을 끊었다.

“정 국장님, 서로 힘들게 말싸움하지 맙시다. 편성을 바꿀지 말지만 결정해주세요. 그리고 김 작가님, 나 누구랑 이렇게 얼굴 붉히고 싸우는 거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김 작가님은 알아서 갈 길 가시고, 나는 나대로 갈 길 가자구요. 거 참 힘들게 사시네.”

만약 우현이 파인엔터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절대로 이렇게 강하게 나갈 수 없었을 거다. 방송사에게 연예기획사는 철저히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인프로덕션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고 최고 수준의 작가를 보유하고 있기에 방송사에게 떵떵거리며 큰 소리 칠 수 있는 거다.

방송국 회의실을 나와 사무실에 도착할 때쯤, 정우찬 국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안 받을까 하다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습니까?”

“좋습니다. 편성 8월로 바꾸죠.”

결국 MBS에서 항복하고 말았다. 이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 당장 방송이 두 달 앞까지 다가왔는데 만약 스태프가 더 빠져나가고 주연배우 캐스팅이 말려버리면 방송 자체가 안 될 것이다.

외주제작사에 맡기고 싶어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어 짧은 단편을 넣어야 할지, 장편을 받아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흐음... 알겠습니다. 어쨌든 국장님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저는 정말 국장님과 얼굴 붉히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 대표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이 마무리됐으니 다시 그의 마음을 달랬고 정 국장도 이왕 숙이고 들어간 상황에서 자존심을 세울 수도 없었다.

“그런데 김은선 작가가 쉽게 승낙하던가요? 보통 고집 있는 양반이 아닌데...”

“임혜진 씨 캐스팅도 그렇고 스태프 이탈로 제작에 차질이 있으니 어쩌겠어요? 그래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순순히 받아들이더군요.”

“일단 7월 편성이면 5월쯤에 촬영 들어가겠네요. 만약 그 때까지 촬영감독이랑 조명감독 못 구하면 저희가 파견지원 해드리겠습니다.”

이미 회사를 옮겼으니 원래대로 돌려준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최선의 방책은 파견지원인데 그렇게 되면 서로 간에 조금 어색할 것이지만 어쩔 수 있나?

“언제 술이라도 한 잔 하죠.”

“제가 시간과 장소 마련해보겠습니다. 그럼 그 때 뵙겠습니다.”

어쨌거나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MBS는 4월말에 잡혔던 편성을 8월로 미뤘으니 다른 걸 끼워 넣기 위해 분주할 거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을 정도로 빠르게 일을 해치우지 않으면 2회나, 4회 짜리 단편을 끼워야 할 거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지여울 피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결과를 물어본다. 일단 그녀를 대표실로 불러들인 다음 먼저 양세종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장님, 접니다.”

“어, 그래. MBS에 담판 지으러 갔다며?”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지 피디에게 들었어요?”

“그랬지. 내가 애가 타서 견딜 수가 있겠어?”

“하하, 하여튼 성질 급하시기는... 일은 잘 해결됐어요. 김은선 작가 거를 8월로 미루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야... 정말 MBS에서 그렇게 한대? 정말?”

양 국장은 믿기지가 않는 목소리였는데 맞은편에 앉은 지 피디의 얼굴도 딱 그랬다.

“그럼요. 그런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임혜진을 어떻게 꼬셨길래 김은선 작가를 까고 나왔어요?”

“야, 미쳤다고 임혜진이 김은선을 까겠냐? 그거 뺑끼였어.”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풀잎액터스 홍 대표랑 내가 또 보통 사이냐, 응? 도움 한번 받았지. 아직 계약서를 쓴 상태는 아니라길래 하루 이틀만 시간 좀 벌어달라고 했어. 방금 기사 낸 기자도 내가 약 좀 쳤지.”

이런 곰 같은 여우를 봤나? 확실히 보통 양반이 아니다.

“뭐예요, 그럼 내일쯤 다시 말을 바꾼다는 거네?”

“홍 대표도 길어야 이틀이라고 했어. 그 뒤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계약서에 도장 찍는단다. 사실 임혜진도 그동안 작품복이 없었잖냐? 머리에 총 맞은 게 아니고서야 이런 기회를 놓치겠어?”

“내가 딱 그 생각이었다니까요? 그런데 다른 이도 아니고 임혜진이 김은선을 깠다고 하니 나도 그 순간 놀랄 노자였다니까.”

“하하하!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재치가 있어. 그렇지? 응?”

“암요, 암요. 국장님이 이런 센스가 있었다니... 하하하! 어쨌든 잘 하셨습니다. 그리고 홍 대표한테 괜히 시간 끌지 말고 바로 계약서에 도장 찍으라고 하세요. 괜히 우리 때문에 꼬일라.”

“그렇지? 안 그래도 김 대표가 잘 처리했다니까 내가 바로 전화하려고 했어. 오케이. 난 그럼 이제 신경 끄고 있는다?”

“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지 피디가 연신 손뼉을 쳤다.

“대박! 진짜 김은선 작가를 8월로 밀어낸 거예요?”

“그렇다니까. 그런데 양 국장이 센스있게 잘 했네. 조금 있으면 풀잎액터스에서 정정기사 나갈 거야. 기자가 졸라게 오버했다고 하면서 말이야.”

우현의 말처럼 1시간도 지나지 않아 풀잎액터스에서 김은선 작가의 작품과 정식으로 출연계약을 맺을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졸지에 김은선 작가만 새가 된 셈이지만 누구한테 항의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며칠 뒤, 강소연과 ‘변호사들’ 시즌 2에 대한 출연계약을 맺었다. 그녀는 최소 반년은 쉬려고 했었는데 억지로 일하게 생겼다며 우현에게 눈을 흘겼지만 출연료를 듣고는 불만을 토해내던 입을 싹 다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회당 8천이면 국내 여배우 중에는 톱중에 톱이다. 거기에 호평으로 끝난 시즌 1에 이어 시즌 2를 이어간다는 상징성까지 있으니 그녀로서도 휴식을 뒤로 미루는 것에 그다지 불만을 가지지 못했다.

강소연을 비롯해 시즌 1에 출연했던 주조연 배우들 대부분이 출연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제작에 돌입했다. 연출은 지상파에서 드라마 제작경력이 상당한 고요준 피디로 이 친구 또한 MBS 출신이다.

실력 있는 사람인데 MBS에서 대형 케이블 방송사로 이적해 몇 개의 작품을 성공시킨 후 외주제작사에 영입됐다가 작품이 엎어져 방황하던 중에 파인프로덕션으로 이직했다.

그는 시즌 1때 촬영했던 외부세트장을 KBC로부터 싸게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제작일정을 착착 진행해 우현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3월 중순이 됐을 때, ‘변호사들’ 시즌 2의 대본리딩이 이루어졌다. 그간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준 이는 은하도, 유니도, 파이브걸즈도 아닌 별이였다.

별이가 출연한 결혼시대는 전형적인 로맨스 물로 그저 평타만 치더라도 만족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별이가 너무 예쁘게 나오면서 네티즌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드라마가 끝나면 별이의 짤들이 돌아다녔고 시청률은 평면적인 스토리에 비해 조금씩 상승했다. 가히 인생작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우현 입장에서는 결혼시대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네티즌들의 댓글도 댓글이지만 일단 별이에게 CF 관련해서 광고제작사에서 연락이 오는 비율이 높아졌다. 주로 몸값을 묻는 전화였다. 또한 예능섭외 요청도 물밀듯이 들어왔다. 아무리 예능은 출연하지 않는다고 거절해도 계속해서 전화가 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네? 우리 별이를요?”

멀리 미국에서 전화를 걸어온 윤해연 작가는 느닷없이 별이를 원했다.

“영어 못하는 한인 역이 필요하단 말이야.”

[287]< 내 마음대로(5)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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