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84화 (28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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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내 마음대로(2) >

엄지를 세워주며 방송사 회의실을 빠져 나온 우현은 사무실로 돌아와 지 피디와 마주했다.

“회당 2억 제작비를 주는 대신 판권과 부가수익을 전부 우리가 가지기로 했어.”

“헐... 대박! 대표님 이게 말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게 아닌데...”

지여울 피디는 우현이 가져온 선물 보따리가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양 국장이 양보해준 거지. 수출판매도 우리가 맡기로 했는데, 이건 내가 그냥 어거지로 가져온 거야.”

“진짜 양세종 국장이 허락했어요?”

“그럼, 당연하지.”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결과가 그렇게 된 거니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으스댔다.

“와... 대박. 회당 2억이 조금 그렇긴 하지만 이 정도면 대박이네요.”

“예전처럼 지상파들이 광고를 독점하는 시대는 끝났잖아. 차라리 시청률이 보장된 콘텐츠를 확보하고 광고수익을 극대화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거야. 회당 제작비 2억만 책정한 것도 시청률과 관계없이 무조건 손실 없이 가자고 판단한 거겠지.”

“그렇긴 하겠네요. 요즘 시청률 5%대 드라마들도 숱하게 많잖아요. 판권 가지겠다고 욕심 부리다가 광고단가 떨어지고 아예 광고까지 떨어지는 것보다는 시청률 끌어올려서 광고수익 극대화하는 게 안정적이면서 확실한 이익이긴 하겠죠.”

“이제는 국내 드라마 제작환경이 많이 바뀌게 될 거야.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젊은 층이 옮겨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예전과 똑같이 해서는 지상파도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될 거라고. 양 국장이 그런 면에서 캐치를 잘 한 거지.”

“그래도 이 정도 거래면 이사회에서 말이 나오지 않겠어요? 특히 시청률 20%짜리 드라마를 외주로 돌리고 판권까지 싹 다 내줬는데...”

지여울 피디의 우려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맞아. 분명 말이 나올 거야. 걔들은 양 국장이 그렇게 내주지 않으면 드라마를 만들 수조차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거니까.”

“그럼 너무 안 된 거 아니에요? 양 국장님 그러다 짤리기라도 하면...”

“더 좋지. 괜찮아. 그 양반 짤리면 내가 임원으로 채용한다고 말해놨어, 흐흐.”

“우와... 부럽다.”

부러워하는 지 피디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자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너무 부러워만 하지 마. 너도 여기서 계속 경력 쌓으면 제작부장 타이틀 달아줄게. 그리고 회사가 더 커지면 임원도 달아줄 거고.”

“우앗! 정말요?”

“그럼, 당연하지. 양 국장 같은 경우는 일종의 낙하산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바닥에서 짬밥이 얼마야? 그 정도 대우는 해줘야지. 그래도 실질적인 업무는 우리 지 피디가 다 하니까 내 마음속 일등공신은 우리 지 피디와 강 피디인 거 항상 알아줘야 해.”

“아하하! 그럼요. 제가 대표님 마음을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지 피디도 파인엔터가 여느 제작사들과 다르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니던 회사를 때려 치고 무작정 찾아온 게 아니겠는가? 때문에 우현의 말이 단순히 빈말이 아님을 알고 헤벌쭉 웃는다.

랜디 오 감독의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면서 우현도 바빠졌다. 그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다른 게 없었다. 바로 투자.

아무리 파인엔터가 ‘28시간’으로 대박을 냈다고는 하지만 3백억 짜리 프로젝트를 움직일 만큼 벌어들이지는 못했다. 설령 3백억 이상을 벌었다고 해도 그 리스크를 제작사 혼자 감당하며 간다는 건 멍청한 짓이다.

중국 신화미디어의 지분 참여로 2백억이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그거야 자본금이 충당된 것이고 이것으로 회사의 몸집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2백억 전부를 영화 제작비로 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분참여로 들어온 2백억 중 백억 정도만 영화제작에 투입한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2백억을 투자 유치하는 게 우현의 일이었다.

“이거 되겠습니까?”

파인엔터의 가장 유력한 기관투자자라고 한다면 당연히 삼전투신운용이다. 이미 투자를 받은 전력도 있고 파인프로덕션을 헐값에 인수할 수 있게끔 도와준 이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파인엔터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중요했다.

때문에 삼전투신의 양재호 팀장은 어지간해서는 우현의 투자권유를 전부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우현이 건네준 투자제안서를 보고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제가 안 될 영화를 팀장님께 들이밀겠습니까? 보시다시피 중국 신화미디어에서 파인프로덕션에 2백억 지분참여를 확정했습니다. 화끈한 사람들이더라구요. 2백억을 단번에 통장으로 쏘던데요?”

“그건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지... 수익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어요. 무려 손익분기점이 천만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중국시장에 제대로 진출해 보겠다고 하지만, 아시죠? 중국에 수출한 영화는 제작사 수입으로 20%밖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요.”

국내 영화를 제작해서 개봉한 영화는 보통 제작사가 40%정도의 수익을 가져가며 해외영화는 50%정도의 수익을 가져간다.

반면에 중국내에서는 해외에서(당연히 한국 영화는 중국에서 해외영화로 분류된다) 들어온 영화는 수익의 20%정도밖에 지급하지 않도록 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은 수익성을 뛰어넘을 만큼 중국 영화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커가고 있죠. 괜히 박리다매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흐음... 그래도 20%면...”

고개를 흔들며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는 양 팀장에게 우현이 한 마디 덧붙였다.

“50%면 하실 건가요? 60%면 하실 겁니까?”

“...”

“수익을 몇 프로로 잡아주는 가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아, 당연히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20%보다는 40%가 훨씬 낫죠.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영화가 한국과 중국, 이 두 군데에서 다 통할까입니다.”

“흐음... 김 대표님께서는 당연히 국내와 중국 두 군데의 시장 모두 공략 가능하다고 보시는군요. 그래서 투자규모는 어느 정도나 원하십니까?”

“그거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죠.”

“하하핫! 우리는 개인투자자가 아닙니다. 대충 말로 때워서 움직이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웃음을 터뜨리는 양 팀장에게 우현은 자리에 풀썩 앉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정확한 데이터와 자료를 기반으로 한 투자금액을 원하는 겁니까? 그런 거 없습니다. 물론 몇 억 투자하다가 단위가 달라지니 떨리는 건 이해하겠습니다만 원래 이 바닥에 정확한 데이터나 분석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뭐, 정히 그렇게 분석자료를 원하시면 만들어드리죠.”

“아뇨, 됐습니다. 어차피 그런 자료 없이도 김 대표님은 잘 해오셨으니까 윗선에서도 이해할 겁니다. 일단 투자금액은 회의를 거친 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양 팀장 혼자서는 투자금액을 확정할 수 없다.

“그럼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삼전투신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로도 십여 개에 이르는 대형투자기관 사람들과 미팅을 이어가며 투자를 호소했다.

내심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장한량의 참여와 신화미디어의 2백억 투자는 투자기관들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삼전투신의 50억 투자 결정을 시작으로 일주일도 안 돼 2백억의 투자가 모두 마무리됐다.

2백억 투자가 마무리되기 전에 유은하의 상대배역으로 이병윤이 결정됐는데, 아직 서른도 안 된 랜디 오 감독의 첫 작품에 캐스팅과 규모가 너무 화려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들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예요. 알죠? 신인감독들이 톱스타들한테 한번 약점 잡히면 작품 개판되는 거.”

지여울 피디의 근심 가득한 말에 우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아무리 재능 있는 감독이라도 초반에 삐끗하면 페이스 잃고 무너질 수 있지. 캐스팅 미팅 때 어땠다고 해요?”

지여울 피디 옆에 앉은 강상훈 피디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참 놀란 게... 랜디 오 감독이 전혀 쫄지 않더라구요. 묵묵히 자신의 시나리오를 설명하고 어떻게 캐릭터를 잡아야 할지 설명하는데 마치 상대의 위치를 전혀 모르는 것 같더라니까요? 배짱이 대단했습니다.”

“좋네요. 그럼 다음 주까지 캐스팅 마무리해주시고 크랭크인 준비해주세요. 아, 장한량 스케줄 전부 체크하셨던 거죠?”

“그럼요. 신화미디어 쪽에서도 이번 영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느낌입니다. 미리 잡아놨던 몇몇 예능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일체 스케줄을 안 잡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기본은 돼있네. 지 피디는 이주희 작가 컨택했어?”

이번에 KBC에서 ‘변호사들’ 시즌 2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전작의 시놉 줄거리를 완성했던 이주희 작가는 꼭 참여시키고 싶었다.

“하아... 컨택했는데, 쉽지 않아요. 아무래도 다른 작품을 하고 싶은가 봐요.”

“그래? 원고료 더 주겠다는 말도 했지?”

“당연하죠. 그런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번에는 정통 멜로물을 준비하고 있는 게 있대요. 그래서 꼭 참여해야 하는 거냐고 묻던데...”

억지로 시키면야 하기는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억지로 시켜봐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뻔하고 원론적인 생각 때문이 아니라 서로 간에 마음이 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작가로 해야 하나? 이재호 작가한테 메인 시놉을 짜게 하는 건 어때?”

“이재호 작가 좋죠. 일단 장편으로는 아직 입봉을 못 한 작가라 조금 걱정이 되긴 하는데 그래도 시즌 1에서 많은 경험을 하기도 했고, 이주희 작가랑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가팀과 조율을 맡았던 작가라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흐음... 일단 이재호 작가 불러 봐. 이야기 좀 해보자고.”

“알겠습니다.”

지 피디가 나가자 우현의 시선은 다시 강상훈 피디에게로 향했다.

“지금 네플릭스에서 하는 ‘카운터’ 촬영은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어요?”

“절반은 넘었습니다. 혹시 은하 씨 스케줄 때문에 걱정이시는 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일단 은하 씨 씬을 앞쪽에 몰아서 촬영해버리면 이달 말까지는 정리가 될 겁니다.”

“이달 말? 흐음... 그럼 은하가 쉴 시간이 거의 없을 텐데? 바로 영화 촬영에 들어가면 많이 힘들 거에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최대한 앞으로 몰아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이 부분은 은하에게 잘 설명하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미국 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윤 작가님은 어째 미국 가서 연락 한번을 안 해.”

“하하, 워낙 바빠서 그렇습니다. 현재 미국 ABC에서 파일럿 제작 승인이 난 상황이라 스튜디오가 정신이 없을 거예요. 캐나다에서 약 2, 3주의 짧은 기간 안에 촬영을 끝내야 하거든요. 그래서 파일럿 촬영이 시작되는 3월 말 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합니다.”

“왜 촬영을 캐나다까지 가서 해야 해요?”

“아, 그게 그 기간 동안 캐나다에서 촬영을 하면 세금혜택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미드 파일럿 작품들이 캐나다에서 촬영한다고 해요.”

“상당히 복잡하네. 알겠어요. 일단 파일럿 제작 승인이 떨어진 것만 해도 한 차례 고비를 넘긴 거죠?”

“맞습니다. 이제 제작하고 반응만 좋으면 정규시즌에 편성 확정될 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이번 랜디 오 감독의 영화에 더해서 파인프로덕션의 기획력을 헐리우드에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다음부터는 우리가 직접 미드를 만들 수도 있겠죠.”

“하하하! 그렇죠.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영화만큼이나 엄청난 돈이 되는 게 바로 드라마 시장이다. 당연히 욕심나지 않을 수 없다.

강상훈 피디와의 회의 후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이재호 작가가 파인엔터 대표실을 방문했다. 덥수룩한 수염과 감지 않은 머리 때문에 푹 눌러쓴 모자는 큰 머리를 다 가리지 못하고 붕 떠 있었지만 어째 정감이 든다.

“날씨도 추운데 불러서 미안합니다.”

“아유,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런데 혹시 ‘변호사들’ 때문에 부르셨나요?”

어디선가 이야기를 들었나보다.

“네. 벌써 이야기가 도나요? 하하하!”

우현의 웃음에 이재호 작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혹시 MBS 쪽 이야기 듣지 못하셨습니까? 김은선 관련돼서...”

[284]< 내 마음대로(2)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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