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81화 (28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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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또 다른 도전(4) >

잠시 후 앞에 놓인 국물닭발을 뜯어먹던 은하는 계속된 우현의 권유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 정말, 맛있는 거 먹는데 집중 안 되게 자꾸 이럴 거야? 그래, 내가 오빠 말 듣고 영어공부를 꽤 오래하긴 했어. 하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거랑 영어로 대사를 치는 건 많이 달라. 오빠도 알면서 그래?”

연기는 기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다. ‘이게 잘하는 걸까?’,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면 결코 좋은 연기를 할 수 없다.

영어로 연기를 한다는 건 그래서 어렵다. 일단 지문을 외우는 것 자체가 한국말보다 힘들고 대사를 치면서 제대로 된 발음인지 계속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또한 언어가 다르면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대사를 치면서 표현하는 제스처도 달라야 할 것인데 이게 정확한 답이 있는 게 아니니 오로지 연기자의 감을 따라가야 한다.

자신의 연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은하는 그래서 더욱 꺼리는 거다. 자신의 필모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알지, 내가 왜 모르겠어?”

“흥, 한국말로 하는 연기도 못해서 나 개창피 당하게 해놓고는...”

“크흠... 오래전 얘기는 왜 꺼내고 그래? 어쨌든 언제까지 국내에서만 놀 순 없잖아? 헐리우드 한 번 가봐야지.”

헐리우드라는 말에 은하는 닭발을 먹다 말고 우현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양념으로 붉게 물든 그녀의 입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난 이런 걸로 거짓말 안 해.”

“전에 이명선 감독하고 작품하면 칸에 갈 수 있다고 한 거 다 뻥이었잖아?”

하여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거야 이명선 감독이 칸에서 상 한번 받아보려다가 힘을 너무 많이 줘서 그런 거지. 시나리오는 나쁘지 않았어.”

상은 대중의 눈높이에서 주는 게 아니기에 사실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칸에 제 집 드나들듯 오가는 감독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지.

“개뿔...”

“잘 생각해 봐. 물론 네가 한류스타에다가 중국, 일본에서도 알아준다고는 하지만 헐리우드 스타들이 가지는 상징성은 따라갈 수 없는 거잖아?”

“누가 몰라? 그리고 이것도 알지. 지금까지 헐리우드 진출한다고 깝치던 애들 결국 다시 국내로 들어와서 결혼하고 애 낳아서 잘 먹고 잘 산다는 거. 아마 그 때 기억은 전부 숨기고 싶은 추억일걸? 일명 흑역사?”

은하는 먹던 닭발을 우현의 앞에 흔들어대며 비꼬았다.

“그래,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전부 국내 영화계에서 제대로 된 필모로 대접받은 이들이 아니었고 연기력도 훌륭하지 못했어.

그저 한류스타라는 것 하나만으로 진출했던 거지. 물론 본인의 매력도 한 몫 했지만 결국 그게 다였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내가 그들의 매니저였다면 결코 그 작품을 추천하지 않았을 거야.”

“흥...”

이번엔 은하도 더는 항변하지 않고 시선만 돌렸다. 우현의 말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내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너도 알다시피 국내 배우는 헐리우드로 진출하기 힘들어. 왜냐, 일단 대한민국이라는 시장이 너무 작아. 물론 이 정도 인구로 천만이라는 관객을 불러들이는 게 기적 같은 일이긴 하지만 헐리우드나 중국 기준에서 볼 때 시장이 작지. 그래서 한국 배우를 쓸 이유가 없었던 거고.”

“다 아는 이야기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결국 너뿐만 아니라 국내 배우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배우를 받쳐줄 수 있는 세계적인 제작사가 필요해. 세계적인 히트작을 찍어내는 제작사가 한국에 있다면 중국이나 헐리우드 자본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오는 건 불문가지지.

그렇게 되면 헐리우드 말고도 우리나라에 또 다른 거대한 영화제작시장이 생기는 건데 이제 어떻게 되겠어?”

“돈을 많이 버는 건가?”

“하하하! 그렇지, 맞아.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거야. 자,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아주 중요해. 우리의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저들에게 흘러들어가야 한다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영어를 해야 한다?”

은하는 그 결론이 못내 마음에 안 드는 듯했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내가 왜 중국배우를 캐스팅했다고 생각해? 중국배우를 써야 중국에서 잘 팔리니까? 그건 맞아. 그게 첫 번째 이유지.”

“그럼 다른 이유는?”

“중국 연예계에서 중국배우들의 몸값이 왜 치솟는 줄 알아?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니까 캐스팅으로 밀어붙이는 거거든. 만약 지속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주는 제작사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인들이 열광하는 콘텐츠와 스타들을 제공해주는 제작사가 한국이라면?”

“오올... 빅피쳐야?”

은하는 처음으로 입술을 내밀며 감탄했다.

“응, 랜디 오 감독에게 3백억짜리 프로젝트를 맡긴 걸 보고 다들 미쳤다고 할 거야. 괜찮아, 그러라고 해. 이건 우리한테 시작이나 마찬가지야.”

“3백억이 시작이면 도대체 얼마짜리를 하려고?”

“글쎄... 어디까지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앞으로 랜디 오 감독뿐만 아니라 헐리우드 감독도 영입할거야. 신입 감독일 수도 있고 중견 감독일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네가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해. 너 뿐만 아니라 소속배우들 모두 영어를 하라고 할 거야.”

다른 곳은 몰라도 미국시장은 영화를 볼 때 자막이 있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언어가 다르면 미국시장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어휴... 소연언니 큰일 났네. 그 언니 영어라고 하면 학을 떼는데... 크크큭.”

“나중에는 한국말로 된 영화를 만들어도 세계적인 흥행이 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면 좋겠다. 당장 그게 쉽지는 않겠지. 어쨌든 이번에 너는 단순히 영어로 대사를 한다는 것 이상을 봐야 한다는 거야.”

은하는 이해했는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알았어. 한다고, 해.”

“흐흐, 잘 생각했어.”

주말이 지나 중국 톱스타인 장한량이 극비리에 입국했다. 언론 보도 없이 에이전시 몇 명과 들어온 것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장한량 측이 굉장히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현 입장에서는 제작 전에 떠들썩하게 소문내주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장한량 측은 아직 캐스팅과 투자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걸 우현 측에 암묵적으로 주지시키고 있었다.

장한량이 파인프로덕션 사무실에서 랜디 오 감독과 만나고 있을 때, 우현은 대표실에서 장한량이 소속된 에이전시이자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신화미디어의 종류홍 이사와 대면하고 있었다.

그는 악수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는데 옆에 자리한 젊은 여성이 빠르게 통역했다.

“한국의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김우현 대표님에 대해서는 전부터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가요? 제가 중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졌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죠.”

그저 예의상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반응이 예상과 달랐다.

“사실 장한량이 유은하 씨를 언급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되지는 않겠죠. 영화촬영이 아이들 봉사활동은 아니니까요.”

그가 하는 말은, 한국에 온 게 장한량의 뜻보다 종류홍 이사 본인의 의사가 더 컸다는 뜻이라는 건데...

“지분투자를 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야 중국내 영화개봉에 차질이 없을 거 아닙니까? 그리고 앞으로 제작하시는 영화와 드라마가 안정적으로 중국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절차죠.”

“어느 정도나 원하십니까?”

“2백억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분이겠죠?”

참고로 파인프로덕션은 파인엔터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

“최대 10%. 이 이상은 드릴 수 없습니다.”

“방금 2백억이라는 말을 듣고도 변동이 없으신 건가요?”

종류홍 이사는 앞에 놓인 차가운 녹차를 마시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2백억이 큰돈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돈은 아닙니다. 지분 10% 이상의 가치는 없습니다.”

“들어보니 내가 지금 CS그룹에 투자를 하는 것 같군요. 여기가 CS E&M인가요?”

코딱지만한 회사를 가지고 허풍을 늘어놓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래도 우현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파인프로덕션의 비전은 큰 건물이나 케이블 방송사 같은 규모가 아닙니다. 바로 사람이죠. 메마른 땅을 도시로 바꿔놓고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필름에 영화를 새기는 사람. 그게 우리 비전입니다.

회사의 규모가 작다고 적은 돈을 투자해 막대한 지분을 챙기고 싶다면 지금 당장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셔도 좋습니다.”

“으음...”

시작부터 선을 긋고 들어가자 종류홍 이사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는 잠시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리더니 입을 열었다.

“랜디 오 감독을 믿으십니까?”

많은 것이 함축된 물음이다. 아직 상업영화에 데뷔하지 못한 감독인데 이런 감독에게 너무 큰 작품을 맡기는 게 아니냐는 물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가리키며 이야기합니다. ‘운이 좋아서 저렇게 된 거다’, ‘저 운도 언젠가는 끝이 날 거다’라고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전 지금 이 연예계에서 바닥부터 올라오면서 단 한 번도 도박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사람을 분석하고 시나리오를 분석했죠. 지금까지 말입니다.

랜디 오 감독을 믿냐구요? 믿습니다. 그가 만든 영화를 봤으니까요. 이거면 답이 됐나요?”

“도박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투자자의 입장에서 그것보다 신뢰를 주는 말은 없겠군요.”

지분을 적게 준다는 것에 꽤나 마음이 상했던 것 같지만 우현의 말에 조금씩 딸려오는 게 느껴졌다.

“신화미디어는 중국내 다른 엔터테인먼트사에 비해 조금 늦게 시작해서 뒤따라가는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단순히 연예매니지먼트 회사였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죠.”

파인엔터처럼 처음에는 연예인들을 케어하는 소속사로 출발해서 지금은 제작, 투자사로 올라섰기에 다른 거대 엔터테인먼트 그룹보다 규모면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장담하건데 3년 안에 중국 내 연예권력 서열을 바꿔드리겠습니다.”

종류홍 이사는 우현의 말을 통역으로 듣고 난 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검지로 우현을 가리키며 허리가 뒤집어져라 웃던 종류홍 이사는 이내 정색하고 말했다.

“그런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낯 뜨거운 말을 잘도 하는군요. 누가 들어도 사기꾼스러운 말이지만 그간 쌓아온 파인엔터의 필모를 보면 아예 허풍이라고 하기도 어렵겠고... 참 저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를 주는 것 같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확률과 통계 아시죠?”

“이건 확률과 통계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사람이 가진 의심, 기대, 공포, 환희 이 모든 걸 고려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사람이란 동물은 이성적이지만은 않아서 말이죠.”

“그래서... 그 모든 걸 고려했을 때, 이사님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우현의 질문에 종류홍 이사는 잠시간 침묵하며 고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내 생각은...”

그 때,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똑똑...

“대표님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민주일 줄 알았는데 강상훈 피디였다. 그는 굳은 얼굴로 우현에게 다가와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귓속말을 건넸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장한량이 랜디 오 감독과 이야기 도중에 자신은 이 작품을 하지 않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응?”

뭔가 크게 틀어졌나보다. 그게 아니라면 호감을 가지고 한국까지 온 첫 만남에서 저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곧이어 밖에서 중국 측 인사가 다가와 종류홍 이사에게 귓속말을 했다. 안 들어봐도 뻔하다. 랜디 오 감독과 장한량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역시나 귓속말을 들은 종류홍 이사의 얼굴은 단단히 굳어졌다. 하지만 우현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뭐... 장한량의 뜻은 잘 알았는데... 아직 답을 안 주셨네요. 이사님의 답은 무엇입니까?”

[281]< 또 다른 도전(4)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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