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80화 (2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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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또 다른 도전(3) >

“대표님이 극찬하셨다던 영화 ‘푸른 별’이 촬영을 마무리했다고 하네요.”

“네? 벌써요?”

남녀 주연배우가 투닥거리다 사랑이 불붙는 로맨틱 코메디도 아니고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가 무슨 촬영을 벌써 끝냈단 말인가?

“네. 석호가 단역으로 출연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벌써 후반기 작업에 들어갈 거라는 말이 들려요.”

보통 전쟁영화 촬영기간은 기본이 년 단위이다. 후반기 작업을 제외한 상태에서 1년 찍고 개봉한다면 빨리 찍었다고 할 수 있다.

“석호가 나오는 분량이 얼마 안 돼서 초반에 스케줄 있는 것만 체크하고 잊어버렸는데... 참 그 감독 대단하네...”

“정치적인 이유라던데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정말 정치적인 의도로 찍고 있는 거면 최소 선거 몇 달 전에는 개봉해야 할 테니까.”

“그럼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응? 뭐가요? 설마 제 명예에 흠집이라도 갈까봐서요?”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되는지 우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대표님은 더 잘 아시겠지만 우리들은 한 번 이미지에 금이 가면 다시 이어붙이지 못해요. 더 나은 연기와 매력으로 덧붙일 수는 있어도 결코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못하죠. 어쩌면 대표님의 상징인 ‘미다스의 손’은 양날의 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 깨지기 시작한 신화는 오히려 더 많은 공격을 받게 될 테니까요.”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그러길 바라고 있어요. 그래야 우리 배우들이 더 쉽게 배역을 얻지 않겠어요? 요즘 작품 하나 고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작가들이나 감독들이 시나리오 보내놓고 전부 내 눈치만 보고 있다니까요? 투자자들은 또 얼마나 전화를 해대는지... 아주 골치 아파요.”

“뭐, 그러시다면야...”

그녀는 우현의 아무렇지 않아 하는 모습에 다시 예전의 도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쨌거나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걱정은요.”

‘변호사들’ 마지막회는 기대했던 대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 채 마지막 부분에서 시즌 2를 예고하는 듯한 장면을 보여주며 마무리되었다.

누군가 시즌 2를 만드는 거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생각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시청률도 좋고 광고도 완판이지만 아마도 시즌 2를 하게 될 때는 제작비가 최소 곱절은 올라갈 것이고 그걸 방송사에서 허락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강상훈 피디는 서류 한 장을 들고 우현이 있는 대표실을 방문했다.

“그쪽 에이전시로부터 미팅에 대한 확답을 받았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 비행기로 인천에 들어오겠다고 하는데, 그 전에 한 가지 확답을 받길 원했습니다.”

“어떤 거요?”

“장한량의 에이전시에서 파인프로덕션에 대한 투자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야 중국내 진출도 용이해질 거라면서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중국내 제작사 또는 자본이 참여해야 일이 수월해진다. 때문에 국내 제작사들은 다양한 형태로 중국자본을 받아들여 제작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또 오해요’, ‘K팝스타 만들기’ 등 드라마, 예능제작 업체인 ‘도마뱀 미디어’는 중국 DMG그룹으로부터 약 250억을 투자받았는데 현재 ‘도마뱀 미디어’의 최대주주가 바로 DMG그룹이다.

국내 투자, 배급 최대회사인 ‘쇼박수’는 화이브러더스와 3년간 독점 합작계약을 맺었으며 국내 케이블 방송시장과 영화, 드라마 제작 등 방송재벌이나 다름없는 CS E&M은 텐센트 그룹으로부터 5천3백억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천만영화인 ‘부산으로’와 ‘전직 변호인’을 배급하고 ‘김은선 작가가 쓴 ‘태양의 후손’을 만든 NEWS는 화처미디어로부터 5백억이 넘는 투자를 받았었다. 중국내 ‘태양의 후손’ 신드롬이 일 수 있었던 건 바로 중국 자본이 NEWS의 지분 참여 형태로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손’은 최초로 한국과 중국 동시 방영을 했는데 이걸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제작을 해야만 했다.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드라마 전체를 미리 심의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5백억 넘는 투자가 아니었다면 사전제작으로 그런 큰 규모의 드라마를 만들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고 한국과 중국 동시 방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이들 모두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돈보다 자체 제작한 콘텐츠의 중국 진출을 위해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죠. 받읍시다. 얼마나 주겠대요?”

“일단 투자규모는 상당할 겁니다. 아시다시피 국내 대형 제작사 치고 중국 자본이 안 들어온 제작사가 없지 않습니까?”

“투자야 10%지분 이내에서 받으면 되죠. 뭐가 문제입니까?”

대수롭지 않은 우현의 반응에 강 피디가 오히려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표님, 중국 자본이 들어오는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적은 지분을 요구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더 큰 지분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강 피디님은 의외로 소심하신 면이 있으시네요?”

“제가요?”

“하하,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걱정부터 하고 계시잖아요? 저는 지금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거예요. 꼭 헐리우드에서만 제작비 천억 영화 만들라는 법 있습니까? 우리나라도 만들 수 있어요. 단지, 시장이 코딱지만해서 못 만들 뿐이지. 대한민국 인구가 1억만 됐어도 중국 투자 안 받았어요.”

“그거야 그렇지요.”

“그 시장을 넓혀 보려는 거예요. 손익분기점이 천만이지만 일단 천만 넘기면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전부 순이익이나 다름없는데 그걸 포기할 이유가 있습니까? 게다가 지분투자를 더 요구할 수야 있겠죠. 솔직히 내가 투자자라도 돈 있으면 투자 더 하려고 하겠네. 하지만 내가 반대하면 억지로 내 입에 돈 쑤셔 넣을 수 있겠어요?”

“그래도... 중국시장 수출을 빌미로 투자금액을 늘리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어차피 중국시장은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단지 회사가 더 성장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할 과정에 지나지 않아요. 이왕 이런 능... 아니, 제작사를 차려봤으면 당연히 세계적인 회사를 꿈꿔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목표는 당연히 헐리우드겠죠.”

하마터면 능력이라는 말을 할 뻔했다.

“그, 그렇긴 합니다.”

“우리 엄한 곳에서 힘 빼지 말아요. 내가 중요시하는 건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돈을 벌었으면 하는 거예요. ‘태양의 후손’이 중국에서 잘 나갈 때 누구도 그 드라마가 중국드라마라고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한류열풍을 이끈 주역이라면서 칭송하고 박수를 쳐줬지.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내가 봤을 때 랜디 오 감독 재능 있습니다. 고작 단편영화라고 하지만 나는 가능성을 봤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감독이 될 테니까 기대해봅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쪽 에이전시한테 구체적인 투자내용을 메일로 첨부하라고 전하겠습니다. 미팅 때는 랜디 오 감독이랑 같이 만나시는 건가요?”

“미팅은 랜디 오 감독만 나가라고 하세요. 우리는 에이전시랑 대화하면 되는 거니까. 서로 관심 있는 분야끼리 만나자고 해요.”

“하하, 알겠습니다.”

강 피디를 내보낸 직후 은하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회의 끝났지?”

“응, 오래 기다렸어?”

“조금?”

그녀는 오랜만에 회사에 얼굴을 비췄는데 새벽부터 샵에 들렀는지 풀메이크업을 마친 상태였다.

“그럼 갈까?”

밖으로 나오니 은하의 매니저인 혜숙이 밴의 운전석에 앉아 우연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오셨어요?”

“아이 참...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순간 등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찰싹!

“됐어, 내 마음이야. 일단 타. 오늘 오랫동안 돌아다녀야 하잖아.”

그동안 작은 오피스텔에 머물던 우현은 별이의 ‘28시간’ 대박 이후 집을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우현이 처음으로 제작에 나섰던 ‘28시간’은 극장에서 최종스코어 880만에 내려왔는데 발생된 총 매출은 무려 712억에 달했다. 물론 여기서 부가세와 문예진흥기금을 제하고 극장배분을 나눈 게 진짜 제작사의 매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금액이 무려 228억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 금액에서 투자배분을 나눈 후 미 지급된 각종비용과 러닝개런티 등 추가지급 비용을 모두 제하고 회사에서 거둔 순이익은 무려 100억이 넘었다.

첫 영화제작 성공을 기념하며 직원들에게 보너스가 돌아갔고 우현은 이번에 강남에 집을 마련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여기서 은하가 끼어들었다. 우현이 집을 사는데 당연히 자기가 봐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파트가 좋은데.”

“내가 살 집인데 왜 네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말하냐?”

“허... 당연한 거 아냐? 시끄럽고, 일단 아파트 먼저 보러 가자.”

원래는 논현동의 고급빌라가 우현의 로망이었지만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뜻에 따라 삼성동 주변의 고급 아파트를 먼저 둘러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인중개사 앞에서는 그저 선글라스만 끼고 묵언수행을 하고 있어 여배우 포스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는 정도?

혜숙은 이제 은하와 우현과의 관계를 다 알고 있는지 그녀가 어떤 말을 하든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유은하 씨께서 살 집이시죠?”

공인중개사의 당연한 듯한 저 물음에 우현이 잽싸게 앞으로 나섰다.

“아닙니다. 일단 저희 소속사에서 쓸 예정이고 여기 은하 씨는 소속 후배들이나 작가를 직접 챙기기 때문에 혹시 문제가 없는지 같이 보려 와주신 거죠.”

“아...”

소속 후배들이 살 집을 은하가 왜 봐주나? 공인중개사도 의문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여긴 뷰가 별로네.”

“으음... 여긴 채광이 가려. 음습해.”

“뭐야. 이 위층에 조은정이 산다고? 안 돼, 별로야.”

은하는 마치 본인 집 이사하는 것 마냥 가는 집집마다 세심하게 살폈(?)다.

“그만 태클 걸어. 이 정도는 훌륭하구만. 그리고 조은정이랑 언제 볼 일 있다고 그래? 그리고 조은정은 심지어 아나운서잖아?”

더는 참기 힘들어 중개사가 안 보이는 곳에서 소리를 죽여 한 마디 했지만 그녀는 결코 기가 죽지 않았다.

“안 돼. 생긴 것만 봐도 딱 얌체 같은 게 언제 쪼르르 내려와서 알랑방구를 뀌어댈지 몰라. 혹시 알아? 연기하고 싶다고, 언제 같이 대본 연습 좀 하자며 찾아올지? ‘대표님이 남자주인공 역할 좀 해주세요. 제가 여자주인공 해볼게요.’ 이 지랄할지 어떻게 아냐구, 내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연기까지 하니 아예 당해낼 수가 없다.

“아이고 그러세요. 그래, 여기는 별로다. 그러니까 내가 논현동 가보자고 했잖아.”

“거긴 동네가 시끄럽단 말이야. 술동네야, 술동네.”

결국 저녁 7시까지 돌아다닌 끝에 논현동의 50평짜리 고급빌라를 선택했다. 전세가로 무려 12억. 매매가는 20억이 넘어가는 물건인데 이번에는 은행대출을 껴서 전세로 지내다 돈을 더 벌면 집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인테리어 해줄까?”

“전세집에 무슨 인테리어를 하냐? 이 정도만 해도 과하지. 이대로 살다가 나중에 진짜 집 사면 그때 인테리어 해줘.”

“칫... 마음에 안 들어.”

그녀는 우현이 보기에 충분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인테리어가 마음에 안 드는지 탁자나 선반을 툭툭 치고 다녔지만 그래도 우현이 집을 새로 얻는 것 때문인지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인테리어 말고 그 돈으로 다른 거나 사줘라.”

“호오... 드디어 검은 속내를 보이시는구만. 뭔데? 차?”

“아니, 시계. 차는 내가 할부로 사면 돼.”

은하는 선글라스를 슬쩍 고쳐 쓰더니 비릿하게 웃었다.

“그 정도야 뭐... 이제 좀 컸네. 데리고 다니기 부끄럽지 않겠어.”

“푸하하하!”

그녀는 우현의 폭소를 뒤로 하고 유유히 집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녀를 따라 논현동의 유명한 닭발집에 들어선 일행은 각자 먹고 싶은 걸 시키고 술을 돌렸다.

주변에는 유은하를 알아본 젊은 친구들이 각자 핸드폰으로 연신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그녀를 비롯한 일행은 개의치 않았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지기에 이제는 익숙했던 것이다.

게다가 매니저인 혜숙이 같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우현과 은하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 영화 곧 들어갈 것 같아. 알지?”

“아... 랜디 오 감독이랑 하는 거?”

“응, 중국배우 장한량 캐스팅 때문에 다음 주에 미팅 있어.”

“오올... 좀 크게 간다?”

“그럼. 그리고 말이야, 너 이번에 영화에서 영어 좀 해볼래?”

“영어? 나더러 영어로 대사를 치라고?”

[280]< 또 다른 도전(3)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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