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79화 (27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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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또 다른 도전(2) >

일단 희색이 만면한 랜디 오 감독을 내보내고 강상훈 피디와 독대했다. 강 피디는 잔뜩 굳은 얼굴의 우현을 보고 안절부절 못하며 앞에 놓인 냉수만 들이켰다.

“내가 지 피디 말고 강 피디님한테 랜디 오 감독 신작을 맡겨놓은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사실 국외업무는 제가 맡고 국내업무는 지 피디가 맡은 상황에서 저에게 랜디 오 감독의 신작을 같이 준비하라는 게 의외이긴 했습니다.”

“아까 들었으니까 아시겠지만 손익분기점이 천만이에요. 국내 관객들만 목표로 해서는 이 영화 만들 이유가 있을까요?”

천삼백만 관객 들게 하겠다고 손익분기점 천만 영화를 만들겠다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로코 영화나 코믹액션 영화로 천만을 노리는 게 훨씬 이득일 거다.

그런면에서 보면 작년에 개봉했던 '군함도시'의 제작비가 270억 인걸 고려할 때 제작사인 CS엔터가 얼마나 큰 모험을 했던건지 알 수 있다.

“그건 맞습니다. 그래서 랜디 오 감독도 수출에 대한 고심을 충분히 하고 있는 중이구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겠죠. 그런데 그냥 ‘잘 만들어서 수출해보자’라고 하면 내 입장에서 답이 안 나오는 문제예요. 랜디 오 감독 입만 바라보고 3백억을 던질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그럼...?”

“영화의 퀄리티를 떠나서 우리 영화를 대신 홍보해줄 파트너를 찾아야합니다.”

강상훈 감독은 우현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아! 외국 투자자를 끌어오신다는 말씀이시죠? 그렇다면 대상이 중국이겠죠?”

“당연히 중국이 가장 좋죠. 기본적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호감이 깔려있는 상태고 투자자들 역시 한국영화 투자에 대해서는 익숙한 상태니까.”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3백억이라는 돈은 파인프로덕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당연히 투자를 받아야 할 것인데 지금까지 우현이 보여준 게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3백억을 끌어 모으는 것은 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문제는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 인데 여기에 우현이 중국 자본을 들여오자는 말을 한 것이고 강상훈 피디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중국 자본을 끌어오는 이유는 단순히 많은 금액의 투자를 받는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줘서 그것으로 사업을 하게끔 했는데 그 사업이 잘 돼야 자신에게 돈도 갚고 투자한 돈도 배로 불려 갚아준다고 하면 누구든지 돈을 빌린 사람의 사업이 잘 되게끔 도와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국자본의 투자를 받게 되면 중국으로의 수출이 잘 되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 내에서 영화가 흥행할 수 있게끔 투자자들이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려고 한다.

“어차피 중국 상해가 주 활동무대이고 중국인 캐스팅이 필요한 상황이니 특급 배우로 캐스팅하는 걸 생각해봐요.”

“대표님께서 극의 주 활동무대를 중국으로 하라고 한 이유가 있었군요. 특급이라면... 중국배우들 몸값은 정말 비쌉니다. 몸값이 백억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서...”

중국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따라서 금융, 부동산, 제조업 계열의 회사들까지 자체적인 영화제작사를 설립하거나 대규모 지분투자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런 투자열기에 힘입어 1년 동안 중국 전역에 새롭게 만들어진 스크린 숫자만 8천개를 넘어서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중국시장은 영화업계에서 봤을 때 황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한국영화에 출연한다고 하면 의외로 몸값을 낮게 해서 출연하려는 배우도 있을 겁니다. 일단 한번 알아보세요. 캐스팅에만 예산 백억 잡아놓고 뭘 겁내고 그래요?”

이처럼 폭발하듯 성장하는 중국 영화계에 있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받는 것은 바로 영화의 질이 낮다는 것이다.

보통 대작이라고 만들어지는 것들은 무협을 기반으로 한 SF물이나 사극이 대부분인데 이는 중국내에서 영화소재에 대해 철저하게 검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에 비판적인 요소들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칼같이 잘라내니 결국 만들 수 있는 건 정권과 전혀 상관이 없는 무협과 사극 정도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니 감독과 작가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그들 스스로도 겉으로는 자국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자랑스러운 듯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예능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고 부러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우현은 분명 배우들 중에 한국영화 스태프, 배우들과 같이 일해보고 싶은 이가 하나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몸값을 턱없이 낮춰 부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협상이 가능할 만큼 호감을 가진 이가 있지 않을까?

“주연급 배우가 9명이나 있으니 백억을 잡았죠. 아! 그럼...?”

“우리나라는 은하급 톱스타 딱 한 명만 더 있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톱스타는 아니더라도 연기력이 탁월한 배우들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로 채워 보자는 거죠.”

“흐음... 그렇게 되면 국내 파워는 조금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무려 3백억이나 들어가는 영화치고 국내 캐스팅 파워가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국내 영화시장은 옛날과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영화 흥행을 위해 톱스타만 주구장창 캐스팅하고 스토리는 무시했잖아요? 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한때 우리영화는 돈 주고도 안 본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렇죠. 국내 영화시장이 지금만큼 우호적으로 바뀐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캐스팅보다 극의 내용이 훨씬 중요해요. 스토리만 훌륭하면 캐스팅이 조금 떨어져도 국내 관객들은 충분히 영화관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볼 준비가 돼있습니다. 그걸 잊으면 안돼요.”

“알겠습니다. 그럼 중국 쪽 엔터테인먼트 사람들과 접촉을 해보겠습니다. 대표님 말씀처럼 분명 조금 적은 개런티로도 흥미를 보일 배우가 있을 겁니다.”

“만약 중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배우가 캐스팅되면 투자 받는 것도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렇겠죠. 중국 투자자들이야 작품이 뭐가 됐든 돈이 될 것 같으면 투자하겠다고 돈 싸들고 오니... 특히 자국 톱스타에 미쳐있지 않습니까?”

중국 배우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게 된 원인이 바로 저 투자자들 덕분인데, 중국은 우리나라나 헐리우드 같이 배우 몸값에 대한 기준이 잘 세워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한 배우의 몸값이 올라가면 그와 비슷한 급으로 취급되는 배우의 몸값 역시 별다른 이유 없이 치솟아 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된 끝에 지금의 시장이 형성돼있다고 보면 된다.

제작비는 한정적이고 배우 몸값은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으니 영화의 질이 떨어지는 건 불문가지.

“그럼 난 강 피디만 믿을게요.”

“알겠습니다. 꼭 좋은 결과 얻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예요. 난 국내시장만 바라보면서 이 영화를 만들 생각 없습니다.”

처음 랜디 오 감독에게 이 시나리오를 주면서 극의 무대를 서울에서 중국으로 바꾸라고 했었다. 그렇게 되면 제작비가 월등히 올라갈 거라고 우려했었지만 중국 시장을 노려보겠다는 생각에 밀어붙였는데 설마 제작비를 3백억이나 책정해서 올 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중국 영화시장에서 제대로 된 흥행만 기록한다면 손익분기점이 천만인 것은 그리 큰 리스크가 아닐 수도 있다.

사흘이 지나 강소연의 ‘변호사들’이 마지막회 방송을 앞두고 있었다. 전날 시청률이 22.1%로 꾸준히 20%가 넘는 시청률을 찍어주고 있었기에 마지막회는 그것보다 조금 더 오른 시청률을 기대하는 중인데 그래도 마지막이라 강소연과 같이 회사 사무실에서 시청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종방연 재밌었어요? 사진 보니까 분위기 좋아 보이던데?”

“아무래도 쪽대본도 없고 촬영이 순조로워서 작가님들이랑 배우들 사이가 좋긴 했었죠. 아시죠? 날림 쪽대본으로 배우들 힘들게 하면 종방연에서 서로 서먹서먹하잖아요?”

“하하, 은하는 그럴 때 아예 잠깐 앉았다가 나가버리던데?”

“은하 고것은 쪽대본 드라마 고작 하나 해보고서 엄살은... 그래도 그건 시청률이라도 나와 줬지. 나 옛날에 드라마 할 때는 시청률은 시청률대로 안 나와, 촬영 빡세게 해... 그런 상황에서 종방연은 그냥 서로 모여서 싸우자는 거지.”

“어쨌든 수고 많았어요. 이제 조금 쉴 생각이죠?”

“그래야죠. 사실 ‘변호사들’도 조금 무리해서 한 거니까... 석 달은 쉬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보통 배우들이 한 작품 하고 쉬면 석 달에서 반년은 우습다. 아예 몇 년을 일 안하고 쉬는 톱스타들이 어디 한 둘인가?

“아예 반년 정도 쉬지 그래요? 여행도 좀 다니고.”

“이제는 여행도 힘들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하하하, 벌써 나이 타령하기에는 조금 그렇지 않아요?”

“고생을 많이 해서 그래요. 추운데서 연기하면 벌써부터 뼈마디가 시려워.”

그렇게 소연과 TV 볼 준비를 하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강상훈 피디가 허겁지겁 사무실로 들어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일이 있는 듯싶어 소연을 두고 일어나 대표실로 향했다.

“아직 퇴근 안 했어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회사에 나와 있어요?”

“사실 퇴근했다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중국 쪽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뭐래요?”

이제 어지간한 일로는 긴장도 하지 않았지만 3백억이 달린 영화의 첫 스타트나 다름없는 중국 쪽 캐스팅 이야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놀라지 마십쇼. 글쎄, 장한량이 관심이 있다고 연락해왔습니다.”

“장한량? 진짜?”

꽃미남 외모로 유명한 장한량은 중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톱스타 중의 한명이다.

“몸값이 무려 오천만 위안인데 우리 측에서 제대로 된 개런티를 지급할 수 없다는 걸 알고도 흥미를 표시했습니다. 거기다 평소 유은하와 같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해왔었다고 하더라구요.”

이미 유은하의 캐스팅은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중국 쪽 에이전시에 제의할 때도 유은하가 캐스팅 확정된 상태라고 전했는데 이게 또 절묘한 한 수가 된 것 같다.

“오천만 위안이면 얼마야? 대략 80억 정도 되나?”

“네. 그쯤 될 건데, 자세한 건 계산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작품 하나에 80억을 받는다니 후덜덜하지만, 놀랍게도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남자배우는 영화배우 출신이 아닌 SN엔터 출신의 크라스와 루헌이다. 이 둘은 몸값이 1억 위안을 넘는다. 이러니 중국 애들이 소송 걸고 도망칠 만하지 않은가?

“그래서 어느 정도나 달래요?”

“아직 금액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일단 감독과 미팅을 해보고 확정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다행스럽게도 현재 큰 스케줄은 없다고 합니다. 아마 당장 부르면 바로 오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오케이. 그럼 이제 국내 캐스팅도 시작합시다. 그리고 국내 투자는 장한량 캐스팅 확정 후에 진행하도록 하죠.”

“장한량만 잡으면... 일단 중국 쪽 투자는 손 안 대고 가만히 있어도 몰려들 겁니다. 아마 백억 정도 유치하는 건 문제 없을 것 같은데요?”

“프로덕션 자체적으로 자금이 얼마정도 가능한지 알아 보시구요. 보자... 다음 주에 보자고 하죠.”

“그럼 그쪽 에이전시에다가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고 하겠습니다. 스케줄은 조율해봐야겠지만 아마 다음 주 내에 미팅 가능할 겁니다.”

대어를 잡았다는 생각인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사라진 강 피디를 뒤로하고 다시 소연의 옆에 자리를 잡으니 그녀가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어왔다.

“뭔데 그렇게 신나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아, 이번에 랜디 오 감독 영화 캐스팅 때문에요.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고민 중인데 마침 중국 측 배우가 관심 있어 하네요. 조만간 미팅 잡힐 것 같아요.”

“아... 그 영화... 잘 될 것 같아요? 벌써부터 말 많던데.”

그럴 거다. 사장이 아직 입봉도 못한 감독한테 3백억을 베팅했다는 이야기가 회사 내에 돌고 있을 텐데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직원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 실패할 작품은 안 합니다.”

“흐음... 그렇구나. 그런데 그거 알아요?”

“네? 뭐가요?”

[279]< 또 다른 도전(2)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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