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77화 (27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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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이건 음모라니까?(5) >

지 피디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았지만 내심 일이 꼬였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배우가 펑크 났다고 해도 그걸 메우기 위해 전화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최 국장이 기사를 낸 이가 파인엔터임을 알고 전화했다고 생각하는 게 더 현실성 있다.

“네, 김우현입니다.”

“김 대표, 나 최규식이에요.”

“아이고, 국장님이 어쩐 일입니까?”

“어쩐 일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으면서 그래요?”

묘한 말이다. 지금 상황을 이 꼴로 만든 게 누구냐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단순히 기사 봐서 알고서도 모르는 척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하하, 기사는 봐서 알고 있습니다. 송유라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죠?”

“흐음... 내 급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봅시다. 송유라 그거... 김우현 대표가 한 일이에요?”

음성을 들어보니 최 국장이 의심만 할뿐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걸 어떻게 받아야 하나?

“그럴 리가요. 우리 석호가 주조연으로 들어가 있는데 제가 머리에 총 맞았다고 그러겠습니까?”

“그렇지? 하이고... 내가 참 속이 말이 아닙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까 이런저런 소리도 들리고... 참, 이 짓도 못 해먹겠어. 오죽하면 지네가 처리 못해서 내가 이런 전화나 하고 있을까.”

“심려 크시겠습니다.”

그냥 의례적으로 한 말이지만 최 국장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역시 내 마음을 아는 건 우리 김 대표밖에 없어. 그래서 그런데 우리 김 대표가 봤을 때, 누가 좋겠어요? 나는 아무리 생각하도 김 대표밖에 안 떠올라, 이 상황을 정리할 사람이 말이야.”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이제 보니 최 국장은 우현이 벌인 일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넌지시 제시를 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잘 마무리한다면 계속 모른 척 넘어가겠다는 뜻이다.

“이것 참, 저를 그렇게 높이 생각해 주시니...”

“이 바닥에서 ‘미다스의 손’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 대표를 누가 하찮게 생각하겠어요? 겸손은 그만 하고 나는 우리 김 대표가 현명한 답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주 바쁜 상황인 거 알고 있죠?”

“그럼요,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니 지 피디가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영감탱이가 벌써 눈치 다 챘네.”

“그래요? 그런 것치고 분위기가 나쁘지 않던데요?”

“내가 일을 벌였으니 나더러 마무리하라는 것 같아.”

“어? 최 국장이 그렇게 쉽게 넘어가 주던가요? 제가 알기로 여간 깐깐한 양반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어째 말하는 걸 들어보니 자기는 이 일의 전말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려는 것 같기는 해.”

“왜요?”

지 피디만큼이나 우현 역시 궁금했다.

“흐음... 일단 최 국장은 내가 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공 작가가 아니라면 당연히 DH엔터 쪽에서 들은 게 아닐까요?”

그녀의 말에 우현은 고개를 저었다.

“DH엔터에서 미쳤다고 그걸 이야기했겠어?”

“그게 왜 미친 짓이에요?”

지 피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

“아무리 내가 일을 벌였다고는 해도 결국 여기까지 온 계기는 자기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결국 방송사에다가 ‘김우현이가 원흉이에요!’라고 일러바치는 건 자기네 발등에 도끼를 찍는 일이라는 거지. 방송사에서는 DH엔터를 사고치고 뒷수습도 못하는 병신으로 취급할 테니까.”

“아...”

“윤 대표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걸 알겠지. 그러니 방송사에다가 일러바치지는 못해.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누군가는 최 국장에게 알려줬다는 것인데... 일단 일부터 해결하고 보자.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알게 되겠지.”

“그럼 누구를 생각하세요? 당장 우리 배우들은...”

“당연히 안 되지. 지나는 영화 ‘무조건 잡는다’ 캐스팅 확정돼서 스케줄을 못 맞춰. 별이랑 은하는 촬영 중인 드라마 끝내고 억지로 스케줄 맞춰줄 수는 있지만 솔직히 이 드라마에 꽂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럼 다른 회사 배우를 맞춰줘야 하는 거네요? 돈이 안 되는 일이네.”

“그렇지. 그래도 최 국장이 안 이상 돈이 안 돼도 맞춰줘야 해, 흠...”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아직 촬영도 되기 전에 교체로 들어가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땜빵은 땜빵이다.

여배우 자존심에 전국민이 다 아는 땜빵으로 작품을 하게 된다는 건 용납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똑똑...

“저기 대표님...”

민주가 고개를 내민다.

“응? 무슨 일이에요?”

“하늘 씨가 오셨는데요.”

“누구? ‘핫칙스’의 하늘?”

“네.”

이 모든 일의 시작이 하늘의 갑작스러운 방문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당시 그 쪽팔림을 당해놓고 또 찾아왔다는 게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았어요. 기다리라고 하세요.”

민주가 나가자 지 피디가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물었다.

“이쯤 되면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싫단 말이야. 솔직히 거 어린애 같은 발성도 그렇고 이미지 자체가 고급스럽지도 않아. 미니 여주급으로 계속 쓰이겠지만 그 이상은 힘들어.”

“에이... 대표님은 너무 톱스타만 키우려고 하신다. 중견급 연기자들도 있어야 허리가 튼튼해지죠. 너무 안 된다는 쪽으로만 생각하지는 마세요.”

“글쎄... 일단 만나보고.”

하늘이 기다리고 있는 작은 회의실에 들어가니 그녀가 벌떡 일어서더니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정인주입니다.”

“일단 앉아요.”

전에는 뭔가 여배우 티를 억지로 내려고 했었다면 지금은 신인 때의 마음가짐 같다고나 할까? 긴장했는지 입술을 살짝 깨물고 긴장한 눈빛으로 우현을 바라보았다.

우현은 걸그룹 출신이던 별이를 배우로 키웠지만 원래 아이돌 출신이었던 친구들을 배우로 키우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일단 가수와 배우를 오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데다가 촬영장에서 한번 여배우 대접을 받아본 친구들은 다시는 춤추고 노래하는 걸 하고 싶지 않아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걸그룹 활동을 할 때는 피디들을 하늘같이 모시며 반말을 듣고 때로는 음흉하게 쳐다보는 눈길을 견디며 노동에 가까운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다 촬영장에서 ‘누구 배우님’ 소리를 들으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장을 받으면 이게 무슨 세상인가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게 배우에 대한 갑작스러운 열망을 느끼는 이들 대부분이 본인의 스타성에만 주력할 뿐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간혹 뒤늦게 배운 연기에도 천부적인 자질로 여느 연기자 못지않은 연기력을 뽐내는 경우도 있지만 정만 흔치 않은 경우다. 그 흔치 않은 경우 중 하나가 바로 김별이었지만.

“미리 연락도 안 드리고 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일단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들어볼까요?”

그녀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잠깐 헛기침을 한 뒤 입을 열었다.

“큼... 네, 제가 오늘 찾아온 이유는 전에 찾아뵈었던 것처럼 파인엔터와 계약을 했으면 해서입니다.”

자기가 말하면서도 민망하고 부끄러운지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또한 손을 미미하게 떨고 있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흐음...”

이번에는 전처럼 쉽게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정인주는 우현이 갈등하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이제 저는 유제이에서 미운오리새끼가 됐어요. 같은 멤버들도 저와 서먹한 사이가 됐고 소속사 대표님도 대놓고 겉으로는 잘 대해주고 있지만 재계약만 체결하면 어떻게 변할지 안 봐도 뻔해요.

게다가 파인엔터에서 거절했다는 기사가 나간 후에는 다른 회사에서 더 이상 문의도 오지 않아요.

물론, 어떡하든 유제이와 재계약을 하지 않게 되면 어영부영 다른 회사와 계약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회사가 제대로 된 케어를 해줄지는 의문이에요.”

그녀의 다급한 심정이 느껴졌다.

“우리 회사에 들어온다고 해도 제대로 된 케어를 해주지 못할 수 있어요. 말했죠? 매니저에 코디, 메이크업 등등... 제대로 된 스태프를 꾸리려면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하고 처음에는 밴도 지원 못해줘요.”

“밴은 처음부터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큰 중고차면 돼요. 스태프는 천천히 준비해 주셔도 되구요. 제가 열심히 할게요.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거부할 수가 없었다.

“으음... 연기 열심히 해볼 생각이에요? 적당히 노력하는 정도로는 힘든데... 인주 씨 발성이 문제인 거 알죠?”

“네...”

“그래요, 그럼 솔직하게 말할게요. 발성이 중고등학생같아요. 말에 고급스러움이 묻어나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맡는 배역에 한계가 있죠. 전에 성공했던 드라마는 캐릭터 자체가 철없는 고등학교 시절을 연기했기 때문에 논란이 없었던 건데, 그건 엄밀히 말하면 인주 씨가 연기를 잘 했다기보다 그 배역에 잘 맡는 사람을 썼던 것뿐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우현의 뼈있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속상할 테지만 우현이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이상 자신을 내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모든 일이 인주 씨가 우리 회사로 찾아오면서 시작된 일이니까 인주 씨가 마무리 해봐요.”

“네? 그게 무슨...”

하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그녀로서는 송유라의 사태에 자신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전혀 모를 터였다.

“MBS에서 하는 ‘비밀연애’, 거기 여주인 송유라가 까인 거 알고 있죠?”

“네, 그런데 그 일이 왜 제가...”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그래요. 어쨌든 그 송유라 대신에 땜빵 한 번 해볼래요?”

“저, 정말요?”

그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제의였을 거다.

“거기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 봐요. 그러면 이번 재계약 시점 전에 우리가 결과를 알려줄게요.”

“...”

그녀는 순간 대답을 못하고 망설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파인엔터에서 그녀를 계약해줄 것인가 명확한 답을 못 받아내면 유제이엔터로 돌아가서 그녀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계약을 해주겠다는 결과를 원한다면 내 대답은 ‘노’예요. 그래도 여기까지 온 노력과 용기가 가상해서 일 하나 주는 거니까 날 원망하지 말아요.”

“원망하지 않습니다. 꼭 열심히 노력해서 어... 하여튼 대표님 마음에 들어볼게요.”

그제야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자각한 그녀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섣불리 저울질하려고 하다가는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걸 알았던 거다.

“정말 잘해야 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90도로 허리를 굽히는 그녀를 두고 회의실을 나온 우현은 궁금함을 못 참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여울 피디를 데리고 대표실로 들어갔다.

“어떻게 됐어요?”

“기다려봐.”

우현은 곧바로 MBS의 최규식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벨이 두 번이 채 울리기도 전에 받았다.

“국장님, 제 전화 많이 기다리고 계셨죠?”

“허허... 내 사정을 우리 김 대표 말고 누가 알아주나? 그래, 고작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연락을 했어요? 설마 벌써 우리 마음에 쏙 드는 인재를 준비했나?”

“네, 그런데 제가 추천한 배우를 쓰긴 하실 건가요?”

“허허허, 내가 김 대표 곤란하게 할까봐 걱정 됩니까?”

아닌 말로 막판에 계약을 틀어버리면 중간에 낀 우현만 바보 된다. 특히 아직 속을 알 수 없는 최 국장이 진행하는 일 아닌가?

“이거 괜히 땜빵 해줬다가 바보취급 받을 까봐서요. 뭐, 제가 국장님을 못 믿는 건 아닌데,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잖습니까?”

“일단 들어나 봅시다. 내 입장에서도 영 아닌 사람을 여주로 받을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아이돌 출신 하늘이라고 아시죠?”

“음? 파인엔터 배우가 아니고?”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277]< 이건 음모라니까?(5)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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