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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이건 음모라니까?(4) >
“이런 짓 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밀크엔터 사장이 누군지 몰라?”
“기사에 잘 쓰여 있네. 조폭출신인 거... 그런데 설마 그 인간이 힘으로 우리를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협박이야?”
“하... 송유라 지금 당신네 강석호와 ‘비밀연애’ 출연 중인 거 알고도 이러는 거야?”
사실 이것 때문에 망설였다. 석호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피해를 볼 거라는 건 굳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 피해는 감수하기로 했다.
“알지, 그래서 고민을 좀 했어. 우리 석호가 어렵게 주조연급으로 들어갔는데 논란이 생기면 그렇잖아? 그런데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 내가 똥을 무서워서 피하는 줄 알잖아? 안 그래?”
“드라마 엎어지는 꼴 보려고 그래?”
“하하하! 그 무슨 아마추어 같은 소리야? 편성 확정 시켜 놓고 대본리딩까지 기사로 나갔어. ‘비밀연애’ 후속작은 캐스팅도 다 안 됐는데 방송국에서 이걸 엎을 거라고 생각해? 못 엎어, 주연배우를 바꾸면 몰라도...”
“야! 김우현!”
그녀의 고함소리가 귀를 얼얼하게 했다. 잠시 귀를 전화기에서 뗐다가 다시 붙이고 말을 이어갔다.
“성질 고약하네. 대신 선물 하나는 줄게. 민상욱을 그렇게 가지고 싶었지? 줄게. 내가 소송 취하해 줄 테니까 가져.”
“뭐?”
그녀는 우현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당황했다.
“왜? 준다니까 받기 싫어? 뭐, 받든 말든 알아서 하고, 난 끊는다. 회의 편안히 하셔, 응?”
전화를 끊고 나자 문 밖에서 똑똑 소리가 나더니 지여울 피디가 들어왔다.
“방금 기사 나간 거 확인하셨는지 물어보려고 왔다가...”
“어, 전화하는 거 들었어? DH 윤 대표랑 한바탕 했어.”
“그런데 민상욱에 대한 소송을 취하해준다는 건 무슨 뜻인 거예요?”
“말 그대로야. 변호사에게 이야기해서 취하해줘. 연예패치 때문에 민상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였잖아. 그러니 데리고 간다고 해도 별로 얻을 게 없을 거야. 대신 우리는 민상욱의 미래를 위해 선처하기로 했다고 보도자료 뿌리고.”
민상욱에 대한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소송을 진행할 때부터 회사로서는 얻을 이익이 없었다. 단지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소송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DH의 수작으로 커다란 불씨를 남기게 됐다.
그렇게 되니 다른 아티스트들에 대한 경각심의 용도보다 나중에 있을 재판에서의 결과에 따른 리스크가 더 크게 다가왔다. 결국 그 리스크를 떠안기보다는 소송을 취하해주고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한 민상욱을 보내는 결정을 한 거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할게요.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셨던 거예요?”
“아... 송유라? 그거 쪽지에 적어준 기자랑 작년에 술 마시다가 알게 됐던 거야. 그래서 그거 가지고 공수민 작가한테 압박을 넣기도 했었지, 우리 석호 써달라고 말이야.”
“그럼 공 작가도 지금 이 사태가 대표님 때문 인거 알겠네요?”
“알겠지.”
“그럼... 석호에게 안 좋은 일인데...”
이 일로 화가 난 공 작가가 석호의 분량을 일방적으로 줄여버릴 수도 있다.
“알아. 그래도 한 거야. 어차피 석호는 이 작품 이후에 더 좋은 작품을 하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하지만 지금 DH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되면 이후로도 계속 당하게 될 거야.
지금쯤 정신이 들었겠지. 내가 자기보다 덜 또라이라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말이야.”
“그렇긴 하지만... 석호가 걱정이네요.”
“그 정도는 이겨내야지. 그리고 원래 아무리 분량이 작아도 스타가 될 재목은 스스로 튀어나오게 돼있어. 피디랑 작가가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시청자는 알아보거든.”
지 피디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물었다.
“그럼 그 기자는 기사거리를 들고 있다가 대표님의 부탁을 받고 내줬다 그 말인 건데... 밀크엔터 대표가 무섭지 않을까요?”
보통 기자들은 연예인들의 열애사실을 알았을 때 바로 기사를 내지 않는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해당 연예인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때가 가장 많다. 그럴 때는 몇몇 기자들이 알고 있다며 조심하라는 식으로 넌지시 이야기해주고는 한다.
다른 이유로는 해당 소속사에서 기사화되는 걸 극렬하게 막는 경우도 있고 기자가 직접 해당 연예인과 협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에서 간을 보는 경우도 있다. 보도내용을 가지고만 있다가 적당한 시기에 터뜨리는 건데 이런 경우는 대게 정치적인 이유인 것이 크며 파장이 큰 톱스타일 경우에 해당된다.
“아, 그거 밀크엔터 대표가 무서워서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야. 그리고 아무리 조폭출신이라고 해도 기자를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해. 게다가 정상적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못하지.”
“네? 그럼요? 왜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응? 지 피디는 그 기사 제대로 못 봤나보네?”
“제가요? 아닌데요? 제대로 봤는데?”
그녀는 아예 기사를 출력까지 해서 우현에 앞에 내보였다. 뭐를 놓쳤냐는 뜻이지만 우현은 웃으며 가만히 기사의 가장 하단을 가리켰다.
“어? 뭐지? 왜 기자 이름이 바뀌었지?”
자신과 통화한 기자의 이름이 아닌 것을 본 지 피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 피디에게 적어준 기자는 연예부 기자가 아니야. 사회부 기자거든. 조폭관련해서 취재하다가 알게 된 걸 나한테 이야기해준 거야.”
“와... 그런데 대표님은 어떻게 사회부 기자를 알게 됐어요?”
“그 기자는 사실 내 고객이었어. 내가 이 바닥에 들어오기 전에 자동차 팔았다는 거 알지? 원래 기자들은 수입차 잘 안 타거든. 그래서 내 고객 중에 유일한 기자 고객인데 이 바닥에 들어오면서 같이 술 마시고 더 친해졌지.”
“아...”
“그래서 가끔 기사에 안 나오는 뒷이야기들을 많이 이야기해줘. 송유라 이야기도 그랬지. 이번에 도와줬으니 나중에 만나서 술 한번 사야겠네.”
“많이 친하셨나 봐요. 제가 대표님께서 부탁하셨다하니까 웃으면서 바로 알았다고 하시던데.”
“크크큭... 사실 내가 그 기자한테 내 고객을 소개시켜줬거든. 그리고 둘은 결혼했는데 지금도 엄청 고마워하고 있지.”
“왜요?”
“그 기자 처가가 꽤나 부잣집이거든. 그러니 이 정도 부탁은 당연히 들어주지.”
“그렇구나.”
“어쨌든 수고했고. 일단 석호가 놀랐을 거야. 상태보고 잘 달래줘. 안 될 것 같으면 아예 회사로 보내고. 내가 이야기해볼 테니까.”
“일단 제가 해볼게요. 사람 달래는 건 이력이 나서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리고 ‘비밀연애’ 공 작가 쪽 반응도 잘 지켜보고.”
“알겠습니다.”
이후 포털 연예면은 송유라 관련 기사들로 몸살이 날 정도였다. 그간 여배우들의 열애설이야 많이 났기에 그리 대단할 것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오히려 송유라에 대한 기사보다 밀크엔터테인먼트 사장에 대한 기사가 더 많이 나올 정도였는데 실시간 검색어 1위 역시 밀크엔터테인먼트였다. 2위가 송유라였으니 말 다 한 거다.
평소 송유라가 발랄하고 가벼운 모습을 보여줬다면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그간 그녀의 이미지는 차분하고 청순한 모습이었다. 그러니 그녀와 조폭출신 사장과의 열애설이 대중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겠는가?
결국 저녁을 먹기도 전에 ‘비밀연애’의 공수민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처음부터 이럴 거였어요? 아니, 이러려고 했었던 거죠?”
“믿을지 안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아니었습니다. 사실 관심도 없었다고 보는 게 맞죠.”
“그걸 지금 나한테 믿으라는 건가요?”
“믿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공 작가님께서 믿기 싫다는데야...”
너무도 쿨한 우현의 태도에 오히려 공 작가가 당황한 것 같았다. 작가에게 배우를 맡겨놓은 기획사 사장의 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머어머... 너무 무책임하신 거 아닌가요?”
“DH에서 민상욱을 걸고 넘어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벌일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쪽에서 대놓고 엿을 먹이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송유라 때문에 공 작가님이 곤란하게 된 건 알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아... 그럼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뭘 어떻게 합니까? 설마 내가 수습해주길 원하는 겁니까?”
“그럼 이 사태를 누가 수습해야 하나요? 제가 할까요? 아니면 방송국에서 해야 하나요?”
“이건 조폭출신 사업가와 열애설이 터진 송유라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송유라의 소속사는 우리가 아니고 DH죠. DH엔터와 방송국에서 해결할 문제입니다. 울고 싶고 화내고 싶으면 DH에 가서 하세요.”
“정말 너무하네요. 내가 석호를 어떻게 쓸지 걱정도 안 되나 보죠?”
“걱정 왜 합니까? 설마 우리 석호가 고작 주조연 한번 맡고 사라질 친구처럼 보입니까? 하하하! 작가님께서 저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보셨네요.
나는요, 일단 키우겠다고 마음먹으면 무조건 톱스타로 올려놓습니다. 작가님이 단역급으로 쓰신다고 해도 상관 안 해요.
어차피 다음 작품에 석호를 주연급으로 쓸 겁니다. 잘 생각하세요. 파인엔터는 이제 배우들 매니지먼트만 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
제작사 등지고 얼마나 잘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는 협박에 그녀가 침음성만을 흘렸다.
“그럼 이제 피아식별이 좀 되시나요? 잘 모르겠으면 곰곰이 생각해보시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한테 전화는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랑 전화하고 싶으면 절차 통해서 연락하세요. 내가 친구는 아니잖아요? 그쵸?”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나자 뭔지 모를 쾌감이 밀려왔다. 탄탄한 능력을 가진 제작사를 가진다는 게 이렇게 뒷받침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 석호의 대본리딩은 스케줄대로 이루어졌지만 사태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대본리딩 장면을 촬영한 기사가 제대로 나가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일단 우현이 터뜨린 기사에 둘이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장면이 너무 정확하게 찍혔기 때문이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도무지 반박할 수 없는 사진인데 그렇다고 인정해버리기에는 타격이 너무 컸다.
결국 DH엔터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시간을 끌었고 기사는 확대재생산되며 파장을 키워나갔다. 그러다 하루가 더 지났을 때, 지여울 피디로서는 기함할 수밖에 없는 기사가 떠버리고 말았다.
[MBS, 결국 ‘비밀연애’ 여주인공 송유라 교체 선언]
“대표님! 대표님!”
지여울 피디가 대표실로 뛰어 들어왔을 때는 우현이 웃으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봤어? 놀라기는...”
“저는 설마 했죠. 대표님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사실 나도 긴가민가하긴 했어. 요즘 MBS가 빡빡하잖아. 뭐 하나 성공하는 게 없으니 조바심이 날 수 있지. 그래도 생각보다 빠르게 결정했네? 최 국장이 웬일이래?”
“그것보다 이상하게도 방송국 쪽에서는 아무 말이 없던데요? 분명 회사로 항의를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모를걸? 그게 내가 한 일이라는 걸 걔네가 어떻게 알아? 공 작가야 내가 이야기 했으니까 알겠지만 말이야.”
“어? 그럼 공수민 작가가 방송국에다가 이야기하면...”
“과연 이야기할 수 있을까? 뭐... MBS에서 평생토록 충성하겠다면 할 수 있겠지. 하지만 프리랜서 생리 잘 알잖아? 오래 버티려면 절대 적을 만들면 안 되지.”
“그래도 혹시 방송국에서 알게 되면 어떡해요?”
“어쩌긴... 배우가 없으면 맞춰주면 되는 거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우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MBS의 최규식 국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 양반도 참... 양반은 못 되네.”
[276]< 이건 음모라니까?(4) > 끝
ⓒ 영완(映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