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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이건 음모라니까?(3) >
“아, 그래요? 모르셨구나. 오늘 올라온 기사의 A씨가 바로 ‘핫칙스’의 하늘 양이잖습니까?”
“크흠... 그런가요?”
그는 우현이 이렇게 다짜고짜 물어볼지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 전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네, 이걸 어쩝니까? 지금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 얻어맞게 생겼어요. 어물쩍 넘어갈 생각 말고 솔직하게 얘기해 봐요. 하늘이랑 재계약 하고 싶어요?”
“크흠...”
보통 기존의 매니지먼트사와 재계약 할 시점이 오면 회사와 아티스트 간에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회사 입장에서는 아티스트가 과연 자신의 회사와 재계약 할 생각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회사로 갈 마음인지, 그것도 아니면 재계약을 원하되 조건을 훨씬 더 좋게 하길 원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반대로 아티스트는 자신의 위치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는데 잘 나갈 때는 어떡해서든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과 대우를 해줄 회사를 찾는다. 물론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아티스트들도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은 게 현실이다.
반대로 자신의 위치가 낮다고 여기는 아티스트들은 회사를 떠나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자신이 없어 회사가 자신과 재계약을 해주길 원한다.
유제이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는 ‘핫칙스’가 키우다시피 했다고 하니 그룹 멤버 중 핵심인 하늘과 재계약이 안 될 때 그들이 받을 타격은 굳이 계산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기사를 낸 이유는 보나마나 하늘을 다른 회사, 곧 파인엔터로 보낼 수가 없기에 그녀에게 일종의 선빵을 날렸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문제는 그 선빵에 파인엔터도 같이 맞을 것 같다는 데 있다.
“얘기 안 해요? 좋습니다. 그럼 하늘이하고 계약하죠. 뭐, 문제없으시죠?”
그는 그제야 상황이 그냥 어영부영 넘어갈 수 있지 않음을 알았나보다.
“어? 김 대표님, 그렇게 급하게 결정하지 마시고... 크흠... 어쨌든 우리 때문에 괜한 분란에 휩싸이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인사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유제이엔터 대표 맡고 있는 한상준이라고 합니다.”
“됐고, 기사나 내려요. 이 사람이 지금 남의 회사 상대로 장난하나?”
“그게 아닙니다. 대표님도 아실 거 아닙니까? 무려 7년입니다. 연예인 되고 싶다고, 연예인만 되면 뭐든지 하겠다고 매달리던 하늘이 그년이 글쎄... 조금 떴다고 안면 싹 바꾸고 같이 동거동락하던 친구들 배신하고 간다고 하니 제가 눈이 안 돌겠습니까?”
“그럼 우리한테 까였을 때 조용히 다시 재계약 얘기 꺼내면 되지, 왜 엄한 우리 회사를 끌고 들어가요?”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대표님 이름을 빌려야 다른 회사들도 하늘이한테 관심을 끊을 것 같아서... 확실히 효과가 크긴 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없이 연락을 해오던 타 기획사들에게서 연락이 안 온다고 합니다. 정말 대표님께는 죄송합니다.”
하늘이에게 끄나풀을 제대로 붙였나보다. 저렇게 빠삭하게 아는 걸 보니 말이다.
“됐습니다. 일단 기사나 내리세요. 이후 일처리를 어떻게 하느냐를 보고 우리도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해보겠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기사는 전화를 끊고 5분도 안 돼 내려갔다. 네티즌들은 갑자기 사라진 기사에 의문을 표했고 이후 파인엔터에 대한 성토성 글들이 연이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파인엔터를 비난하는 이들 대부분은 바로 ‘핫칙스’와 하늘의 팬들이었는데 사실 팬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날 만한 일이긴 했다.
결국 파인엔터에서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기사는 파인엔터와 관계가 없음을 밝히고 유제이엔터에서도 해당 기사가 오보임을 알리고 나서야 진정되는 기미가 있었다.
이제 유제이엔터의 한상준 대표를 만나 단단히 혼내고 뭐라도 받아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유탄이 터졌다.
[파인엔터의 인재 영입, 이대로 괜찮은가?]
아예 회사 이름까지 까고 나온 그 기사는 놀랍게도 강소연의 영입과 민상욱의 소송문제를 짚고 나섰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연예계 상도의 상 충분히 문제가 있는 행태라는 것인데, 그냥 기자도 아니고 문화평론가라는 사람이 저렇게 분석기사를 올려버리니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래도 마이더스 쪽에서 올린 것 같지?”
지여울 피디는 난감한 얼굴로 동의했다.
“그런 것 같아요. 소연 씨가 옮긴 과정이 너무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내부 사정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내용이잖아요. 이렇게 빨리 나온 걸 보면 예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는데요?”
“그럴 수도 있겠네. 언제고 한 번은 내보내려고 하다가 타이밍 맞춰서 내보낸 느낌이긴 해. 일단 네티즌 반응은 어때?”
“어이없게도 민상욱에 대한 동정여론이 일고 있어요. 그리고 소연 씨 이미지도 계속 안 좋아지는 분위기구요.”
민상욱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 보면 기획사의 횡포처럼 보일 수 있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민상욱이 잘못 처신했다 생각할 것이지만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아티스트들과 수많은 소송을 해왔던 SN엔터 역시 근래에 들어서야 재평가를 받았지, 그간 네티즌들로부터 악덕기업이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다.
물론 그간의 소송들로 인해 표준계약서가 생기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처음 알려진 것처럼 악덕기업의 횡포에 소속 아티스트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 것만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 생길 때, 팬들은 무조건 회사가 아닌 아티스트 편을 든다. 회사의 입장문을 발표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팬들은 어떻게 해서든 회사의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거나 만들어 분쟁의 당사자인 아티스트 편을 든다.
우리 오빠, 혹은 우리 누나는 그럴 리 없다고, 회사로부터 강압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 그들의 밑바닥에 깔린 생각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소기획사에서 아티스트의 계약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수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돈을 투자해 키워놓고 허무하게 돈과 시간만 날리는 경우가 생긴다.
“백창준 이놈의 새끼가 귀찮게 하네.”
“일단 대응기사 내겠습니다. 민상욱에 관해서는 영입에서부터 어떻게 배신을 했는지 아주 자세하게 낼게요. 연예패치 쪽에 자료를 주면 자세히 다룰 거예요.”
“그건 그렇고... 백창준 이놈 엿 먹일 방법 없을까?”
“글쎄요. 그런 건 제 특기가 아니잖아요? 대표님이 그런 거 잘 하시지 않나?”
“그래, 일단 연예패치랑 이야기해서 오늘 저녁 안에 대응기사 나올 수 있도록 해줘. 민상욱 뿐만 아니라 강소연 관련해서도... 아! 하하하! 이거 미친 놈이네?”
심각한 상황에 갑자기 웃음을 보이며 흥분하는 우현을 보고 지 피디가 물었다.
“뭐예요? 누가 미친 놈이라는 거예요?”
“백창준이 말이야. 이 놈 무슨 생각으로 이 기사를 낸 거지?”
강소연이 파인엔터에 계약조건을 무시하고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백창준의 비밀을 우현이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왜요?”
“지 피디는 모르겠다. 사실 백창준의 중요한 비밀을 내가 알고 있거든. 그것 때문에 소연이 올 수 있었던 건데...”
백창준이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야쿠자 딸인 와이프를 무시하고 이렇게 도발을 걸 수 있을까? 우현이 마음만 먹으면 마이더스가 뒤집어질 기사를 내보낼 수 있는데?
“아... 어쩐지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무슨 사정인지는...”
지 피디와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이건 아는 사람이 적어야 한다.
“그건 안 돼, 엄청나게 예민한 문제거든. 그러고 보니까 마이더스에서 이 기사를 낸 것 같지가 않다. 그 놈이 미쳤다고 지 무덤을 지가 팠을라고. 이거 DH에서 낸 것 같은데?”
“그렇다면 혹시 민상욱을...?”
“그렇지, 거기에 강소연 이야기를 슬쩍 얹었던 거야. 그런데 강소연 이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었던 거지?”
“알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떡해서든 알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마이더스나 DH나 둘 다 파인엔터가 경쟁자나 다름없으니까 비슷한 마음을 먹었을 수도...”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그래. 마이더스로서는 슬쩍 이야기만 흘리는 거니까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 오케이. 일단 홍보팀 데리고 상황 정리해봐. 나는 저것들 한 방 먹여줄 방법 좀 생각해봐야겠다.”
“알겠습니다.”
강소연에 관한 건 마이더스와 서로 간에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서 더 좋은 곳으로 가기로 했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내면 될 일이지만 민상욱에 관한 건 처리하기가 조금 까다롭다.
회사차원에서 민상욱이 잘못한 것이라고 대응기사를 내고 분위기를 가라앉혀 놓은 이후에 혹시라도 재판에서 져버린다면 나중에 더 큰 역풍이 불거다.
그렇게 되면 회사에 소속된 아티스트들 전부가 피해를 볼 수도 있고 자칫하면 파인프로덕션에서 제작하는 작품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 시청거부의 움직임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언제고 터질 수 있는 불씨를 남기는 셈인데 DH엔터에서는 이걸 노리고 저런 기사를 낸 게 분명하다.
오후 6시가 지날 무렵 연예패치에서 대응기사를 냈다. 내용은 민상욱의 영입과 이적에 관련된 세부내용이었는데 그간 민상욱 측과 나눈 카톡대화와 서류내용까지 포함돼있어 기사 하나의 분량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내용이 방대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역시 네티즌들의 의견이 돌아서는 것이 댓글에서 느껴졌다.
[이래서 양쪽 말은 다 들어봐야 함]
[민상욱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 멍청한 거 아님?]
[헐... 이건 완전 빼박인데...]
연예패치의 대응기사 이후 타 언론사의 후속보도 역시 DH엔터보다 파인엔터에 더 우호적인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으로 한숨 돌렸지만 역시 불씨는 남아있다고 봐야 한다. 결국 재판에서 지기라도 하면 이 모든 게 역풍으로 불어올 테니까.
우현은 지 피디를 불러 쪽지 하나를 넘겼다.
“어? 이거...”
지 피디는 쪽지의 내용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우현을 바라보았다.
“거기 기자 연락처로 전화해서 최대한 빨리 터뜨리라고 해.”
“그래도 될까요? 이거 우리한테까지...”
“괜찮아. 솔직히 흥행 대박을 노리고 한 것도 아니니까. 어디 누가 죽는지 한 번 보자고.”
“알겠습니다.”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더는 가만히 당해줄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엄청난 파워를 지닌 사람도 아니니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루가 지나 점심나절에 우현은 DH엔터의 윤설아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김우현 대표님?”
“네, 잠시 통화 괜찮으시죠?”
“어머, 미안해서 어쩌죠? 제가 지금 회의에 들어가야 해서요. 다음에 전화하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허...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회의하세요, 편안하게...”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요. 그럼 이만.”
삐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그녀가 바로 전화를 걸어올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김우현 대표님!”
방금 전과는 사람이 달라진 것 같다. 무척이나 화가 났는지 낮은 음성으로 으르렁 거리는데 곁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것만 같은 기세다.
“아, 미안해요. 나도 회의에 들어가야 해서 전화 받기가 곤란하네요. 그럼 이만.”
너도 똑같이 당해보라는 마음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자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우현은 느긋하게 허리를 뒤로 젖히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부러 한참을 기다리다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 그녀가 앙칼진 목소리로 고성을 질렀다.
“야! 너 무슨 짓 한 거야!”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내가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했나보지? 아니면 내가 호구로 보였나?”
우현이 바라보고 있는 포털사이트 연예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는 제목의 기사가 메인으로 걸려 있었다.
[(단독)톱스타 송유라, 조폭출신 모 기획사 대표와 열애]
[275]< 이건 음모라니까?(3) > 끝
ⓒ 영완(映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