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74화 (27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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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이건 음모라니까?(2) >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말씀하시는 대박의 기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천만은 돼야 대박이라는 말을 꺼낼 수 있지 않겠어요? 게다가 제작비가 최소 100억 이상은 들어갈 영환데 천만도 안 들면 뭐...”

“후우... 좋습니다. 만들어보겠습니다. 솔직히 이제 단편영화 하나 내놓은 감독이 천만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면 비웃기만 할 텐데 대표님은 그걸 만들어보라고 하시니 안 할 수가 없네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원래 똑똑한 사람들은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거든요. 일단 계약서부터 쓸까요?”

지여울 피디는 좁은 원형의 식탁에 어지럽게 놓인 채소와 쌈장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그 사이에 오늘 만들어 놓은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하하, 대단하네요. 곱창집에서 계약서를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 역사는 이렇게 허름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거거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연출료는 입봉작이기 때문에 그리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손익분기점 이후부터 러닝개런티가 추가 지급되는데 이 부분은 업계 최고 대우를 해드렸습니다.”

랜디 오 감독에게 제시한 연출료는 3천만 원이었다. 보통 순 제작비의 1%정도가 감독의 연출료로 할당되는데 이것만 보면 영화감독들이 그리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백억 짜리 영화로 1억을 벌었다고 하더라도 매년마다 영화를 한 편씩 찍어댈 수 있는 감독은 몇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고 재산을 늘린 감독들은 전부 영화 연출료로 벌었다기보다 러닝개런티로 벌었다고 하는 게 맞다. 결국 감독으로서도 영화가 흥행이 돼야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다.

“하하, 사실 헐리우드랑 비교하면 작긴 하네요. 하지만 만족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천만 영화를 달성하게 되면 러닝개런티로 수억을 벌 수 있을 테니까요.”

헐리우드의 영화 연출료는 감독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블록버스터 영화의 연출료로 10억, 20억은 기본이고 100억 정도 받는 건 그리 대단한 뉴스거리라고 할 수도 없다.

우습게도 헐리우드에 비견될 만큼 영화제작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붙는 중국도 잘 나가는 감독에 대한 연출료는 헉 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이안 감독의 영화 한편 연출료는 600억이 넘으며 오우삼 감독은 300억이 넘는 연출료를 받고 있다.

이러니 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이 한국보다는 헐리우드에서 성공하기를 원할 수밖에. 사이즈가 다르다고나 할까?

아마 말로는 괜찮다고는 해도 분명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난 이 정도로 랜디 오 감독을 계속 붙잡아둘 순 없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오 감독도, 우리도 처음이니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고 이게 성공하고 난 다음에는 이것보다 훨씬 좋은 대우로 계약하게 될 거예요. 이 계약서도 보면 알겠지만 이번 영화 한 편에 대한 계약이잖아요?”

“그럼 앞으로 영화 한 편을 찍을 때마다 새로 계약서를 쓰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지만 감독님께서 능력을 보여 주신다면 ‘년 단위 계약을 맺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최근 중국의 장이모 감독이 3년간 3000억에 계약을 맺었다죠?”

“삼천억...”

랜디 오 감독은 작게 신음성을 내뱉고는 소주 한 잔을 털어마셨다. 말이 삼천억이지 쉽게 체감할 수 없는 금액이지만 분명 랜디 오 감독에게 목표를 제시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리 함께 커 봅시다. 한국시장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커 보자구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프로덕션이 헐리우드 먹어봅시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러기 위해선 이 영화가 성공해야겠죠. 당장 내일부터 제작진 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이 동했는지 의욕을 불태운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하하! 좋습니다. 그거 마음에 드네요. 자, 거국적으로 건배 한 번 합시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연출 계약서를 써버린 셋은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다. 우현은 근처 사우나에서 랜디 오 감독과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9시쯤에 어깨동무를 한 채 출근하니 멀쩡한 얼굴을 한 지 피디가 민주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뭐야? 술은 우리 둘만 마신거야? 왜 이렇게 쌩쌩해?”

그 와중에 풀메이크업까지 한 걸 보니 어지간히 일찍 일어났나보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래요? 후훗, 일단 들어가시죠? 오 감독님은 파인프로덕션에 가시면 강상훈 피디님 계실 거예요. 미리 말해뒀으니까 강 피디님께서 프로덕션 식구들 소개시켜줄 거예요. 일단 얼굴 좀 익히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술이 덜 깬 랜디 오 감독이 배를 쓰다듬으며 내려가자 우현은 지여울 피디를 대표실 소파에 앉혀놓고 은근히 물었다.

“벌써 찍은 거야?”

“어머, 무슨 말씀? 저는 오로지 일만 해요, 일만.”

새침한 표정으로 딱 잡아떼지만 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나보다.

“아주 좋아 죽네, 죽어. 하긴 내가 봐도 잘 생기긴 했어.”

“그렇죠? 그런데 전 남자가 너무 잘 생기면 부담스럽더라. 그러니 오해하지 마세요.”

“꼭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잘생긴 남자만 찾더라. 그냥 나처럼 당당하게 말해. 난 예쁜 여자가 좋더라구.”

지 피디는 더 이야기하는 게 곤란한지 말을 돌렸다.

“정말 아니라니까요? 어쨌든 그 얘기는 그만하고 오늘 석호, MBS ‘비밀연애’ 대본리딩 있구요. 10시에 ‘변호사들’ 첫 방 나가는 거 아시죠?”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변호사들’ 첫 방이 나가는 날이다. 그것 때문에 벌써부터 회사 홍보팀은 예고편을 가지고 온갖 홍보기사를 뿌리는 중이다. 물론 그 기사에 댓글 작업은 필수였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금 ‘변호사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기대는 상당했다. 전문작가팀이 메인작가인 이주희 작가를 서브해주며 탄탄한 스토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지.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리고 오후 3시에 별 씨 600만 돌파 공약 이행식 있구요. 원래 ‘결혼시대’ 촬영 때문에 하루 더 미루려고 했는데 촬영팀에서 시간 빼줘서 그냥 오늘 진행하기로 했어요.”

600만 돌파 공약은 사실 별거 없었다. 동대문 메나박스에서 관객들에게 직접 튀긴 팝콘을 나눠주며 같이 관람하는 건데 이 아이디어는 별이가 직접 냈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시대’ 첫 촬영이 오늘이라 시간을 빼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잘 빼준 것 같다.

“오케이. 오늘 하루도 수고하고. 랜디 오 감독이 스태프 잘 꾸릴 수 있도록 지원 좀 해줘. 특히 한국 사정 잘 모르니까 장소 헌팅 매니저랑 조감독은 꼭 베테랑으로 붙여줘야 해. 힘들겠지만 잘 찾아 봐.”

조감독은 감독의 손발로, 촬영장의 제반 사정을 빠삭하게 알아야 하며 모든 촬영 스케줄과 배우, 현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힘들 거라고 한 이유는 랜디 오 감독이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다는데 있다.

“그럼요. 특히 조감독 고르는 게 힘들겠어요.”

일단 해외파 출신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이 있을 테고 경력이 상당한 조감독들은 랜디 오 감독보다 나이가 많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랜디 오 감독과 손발이 잘 맞을까에 대해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잘 고르면 분명 괜찮은 인재가 있을 거야. 미래에 우리 회사의 중추적인 감독이 될 수 있으니까 잘 골라보자고. 시간 여유 있으니까 오 감독이 조금 서두르는 것 같으면 지 피디가 조절 잘 해주고.”

“알겠어요.”

그렇게 지 피디와의 회의를 마치고 오전 업무를 처리했다. 점심은 랜디 오 감독을 비롯해 강상훈 피디, 지여울 피디와 함께 먹기로 해 회사 근처 맛집으로 소문난 김치찌개집을 섭외해 놓은 찰나 민주가 황급히 대표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인터넷 좀...”

민주가 저런 얼굴을 할 때는 꼭 뭔 일이 생긴 거다. 때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 뭔데?”

황급히 포털 메인화면을 살펴보니 연예면에 황당한 기사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다.

[탑 걸그룹 A씨, FA 영입 거절 당해]

무슨 이런 황당한 기사가... 회사 직원들이 떠벌리지 않은 이상 기자가 어떻게 알고 이런 기사를 썼단 말인가?

기사를 클릭해서 내용을 읽어보니 내용이 너무 적나라했다.

[A씨는 현재 탑 걸그룹 소속으로 연기에도 발을 넓혀 현재 미니시리즈 주연급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렇기에 걸그룹이 아닌 배우로서의 또 다른 배우인생을 꿈꾸는 그녀는 새로운 기획사를 찾아...

A씨로서는 상당히 굴욕적인 상황일 것이다. 모 기획사로부터 받은 대우는 문 밖에서 거절당하지 않았을 뿐, 그녀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평가당한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를 거절했던 모 기획사의 대표는 연예계에서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뭐야, 이거! 완전히 나잖아?”

누가 봐도 모 기획사는 파인엔터테인먼트를 말함이고 그 기획사의 대표는 김우현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홍보팀 직원들 전부 불러와 봐.”

1분도 안 돼 홍보팀 직원들이 우르르 대표실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이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는지 빠르게 답을 내놨다.

“일단 그 기사 올린 기자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현재 나온 기사의 기획사가 파인엔터가 아니라고 보도자료를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우현은 손을 휘저어 그들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댓글들 봤어? 이미 파인엔터라고 다들 알던데? 사실 그거야 우리가 아니라고 하면 대강 넘어갈 텐데, 문제는 저 A씨가 누군지 다들 알아챘다는 거야.

계약기간이 얼마 안 남았고 미니 여주급 애가 소속된 걸그룹이 몇 개나 돼? 이미 ‘핫칙스’의 하늘이라고 다들 확정해 놨잖아.”

“그건 저희가...”

홍보팀 직원들로서도 이건 어쩔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일단 하늘이라는 애가 수면 위로 올라가 버리면 당연히 파인엔터도 자연스럽게 딸려 올라갈 거다.

“지금 당장 ‘핫칙스’ 팬클럽이랑 갤러리 반응 확인하고 대응전략 짜보자. 우리 쪽으로 화살이 날아올 게 뻔하니까 일단 저 빌어먹을 기사를 쓴 기자부터 찾아내. 그리고 혹시 어제 하늘이 왔을 때 외부에 알린 사람 있어?”

“전혀 없습니다. 그 때 다들 지여울 피디가 회사 직원들에게 입조심해야 한다고 단단히 이야기해놨기 때문에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았을 텐데...”

일단 직원들을 믿어야 했다. 지금 누구를 잡겠다고 쥐 잡듯 뒤져봤자 답이 안 나온다.

“오케이, 일단 그쪽이랑 이야기 좀 해야겠다. ‘핫칙스’ 회사가 어디야?”

“유제이엔터테인먼트라고 거의 ‘핫칙스’가 키웠다고 봐야 할 겁니다.”

“거기 대표 전화번호 적어주고 다들 일 봐.”

그러자 대표실에서 직원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직원 하나가 들어와 쪽지를 주고 다시 나갔다.

“하... 이걸 해야 돼, 말아야 돼?”

어째 돌아가는 모양새가 딱 그려지는 것 같다.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뭐... 망설이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이는 있으되 뭔가 경박한 목소리다.

“안녕하세요. 저 파인엔터 김우현 대표라고 합니다.”

“아... 이런 이런... 김우현 대표님께서 전화를 다 주시고...”

“오늘 기사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요. 조금 놀라셨겠습니다.”

“제가요? 글쎄요. 오늘 무슨 기사를 보고 전화를 주셨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제가 놀랐다는 건 또 무슨 말입니까?”

전화를 걸기 전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이 인간, 분명 아는데 모르는 척하고 있다. 그리고 모르는 척 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기사를 낸 건 바로 이 녀석이다.

[274]< 이건 음모라니까?(2)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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