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71화 (27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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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는데...(4) >

“내기요? 갑자기 무슨 내기를...”

지 피디는 가게 구석에 설치된 TV를 가리켰다. TV에서는 다음 주에 첫 방을 선보이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예고로 내보내고 있었다.

“지금 광고하는 저 드라마 첫 방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네? 지금 나오는 저 드라마 말인가요? 글쎄요.”

“지금 저 드라마 시놉시스 우리가 가지고 있거든요? 감독님께서 그거 다 읽고 시청률을 한번 맞춰보시겠어요?”

랜디 오 감독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고작 그걸 보고 어떻게 시청률을 맞추나요? 말도 안 됩니다.”

지 피디는 그런 그를 향해 피식 비웃어 보이며 우현을 향해 슬쩍 고개를 틀었다.

“우리 대표님은 맞출 수 있는데...”

그제야 지여울 피디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잘 될지, 안 될지는 알아도 시청률을 맞춘 적은 없다. 아니, 애초에 그런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입을 떡 벌리고 놀라는 랜디 오 감독 앞에서 ‘아닌데? 나 해본 적 없는데?’라고 할 순 없으니 그저 어색한 미소를 한 채 잠자코 있었다.

“진짜 맞출 수 있습니까?”

“맞춘다기 보다는 그냥 근접하게...”

아무리 대단한 투자자라고 해도 내일 주가가 정확히 얼마가 나올지는 신도 모르는 법이다. 지여울 피디가 우현을 경험하며 마치 신기가 내린 것처럼 맞추는 걸 보고 감명을 받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이건 좀...

“어때요? 만약 랜디 오 감독이 우리 대표님보다 첫 방 시청률을 더 근접하게 맞춘다면 감독님이 원하는 것 하나를 들어드릴게요. 대표님 생각은 어때요?”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해 먹는 법이다. 이미 지 피디가 질러버렸으니 여기서 그건 너무한 것 같다고 엎어버리면 지 피디는 바보 되고 우현은 병신 되는 거다. 게다가 사람을 얻는 도둑질은 충분히 손발을 맞춰줄 의향이 있다.

“나야 콜이지.”

랜디 오 감독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끼고는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이 내기가 제가 이 시나리오를 하지 않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거죠?”

“상업영화 지향하신다면서요? 그러면 상업적인 감각이 어느 정도나 있는지 한번 보자는 건데... 왜요? 자신 없어요?”

이런 이야기도 남자인 우현이 하면 반발심만 더하겠지만 미인인 지여울 피디가 하니 랜디 오 감독도 뺄 수만은 없었는지 불쑥 물어본다.

“그럼 내가 이기면 어떤 소원이든 한 가지는 들어주신다는 겁니까?”

이번에는 지 피디 대신에 우현이 답했다.

“투자를 원하신다면 파인프로덕션에서 정식으로 투자 검토를 하겠습니다. 제작비가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10% 이상의 제작비는 저희가 책임지죠.”

내기 한 번에 최소 10억 투자를 확정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랜디 오 감독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럼 제가 졌을 경우에는...”

“시나리오 작가가 쓴 작품은 하지 않겠다는 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죠. 무조건 우리 작품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솔직히 쫄렸지만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설마 지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아니, 계속 생각할수록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면 상당한 투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고, 지더라도 강제력이 없다는 거죠? 저에게는 조건이 너무 후한 것 아닌가요?”

“후훗. 그런가요? 전 아닌 것 같은데.”

흥행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별로 틀려본 적이 없었기에 시청률도 비슷하게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점점 간이 커졌다.

“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계시네요.”

“솔직히 랜디 오 감독님이 이 내기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우리야 깔끔하게 포기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알고 계시죠? 헐리우드에는 랜디 오 감독님처럼 수많은 감독들이 시나리오를 들고 부랑자처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진짜 제작에 성공하는 감독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고 그 열에 하나도 되지 않은 확률을 뚫고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 성공한 영화는 또 열에 하나도 되지 않죠.

과연 랜디 오 감독님이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데뷔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1년? 3년? 5년?”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존심이 상할 테지만 우현이 하는 말이 그의 가슴 한켠을 찌르고 있을 터였다.

“저 드라마의 시청률을 얼마나 가깝게 맞추느냐에 따라 감독님의 데뷔시기와 결과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겠죠.

나는 개인적으로 감독님이 나보다 더 근접한 수치를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못하다면 근소한 차이였으면 좋겠어요. 그게 아니면 이 시나리오를 줘도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고작 시놉시스 하나 주고 어떻게 첫 방 시청률을 근접하게 맞추겠는가?

우현도 시놉시스 하나만 가지고는 맞추지 못한다. 작가의 전작과 대본 스타일, 주연배우의 연기력, 감독의 연출력 등등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흥행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고작 한국에 몇 달 거주한 감독에게 시놉시스 하나만을 던져주고 시청률을 맞춰보라고 하는 건 처음 화살을 쏘는 사람에게 백 미터 밖에서 화살을 쏴서 10점을 맞추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야기가 길었지만 결론적으로 그냥 눈 감고 찍어서 우현보다 근사한 수치를 내야 한다는 건데 정작 랜디 오 감독은 자신이 극도로 불리한 내기라는 걸 알지 못했다.

“조, 좋습니다. 시놉시스는 제 메일로 보내주세요. 잘 먹었습니다. 저 먼저 일어나죠.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서요.”

“그럼 나중에 봅시다.”

랜디 오 감독이 자리를 뜨자 우현은 지 피디에게 고개를 돌렸다.

“원래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거야? 미리 얘기라도 하지 그랬어?”

“아니었어요. 생각도 못했단 말이에요.”

“그럼 어쩔 생각이었는데?”

지여울 피디는 막걸리를 털어 마시며 싱긋 웃었다.

“크하... 정 안 되면 미인계라도 쓸려고 했죠. 솔직히 잘 생겼잖아요?”

“아...”

도무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하핫! 그런데 고개를 돌리다가 딱 저게 보인 거예요. 그 때부터 바로 머리에 전기가 파바박! 튀었죠.”

“그러다 내가 지면 어쩌려고?”

“에이... 설마 대표님이 지겠어요? 그런데 자신 있는 거죠?”

어이가 없다. 그걸 지금에야 묻다니...

“그건 내기를 하기 전에 물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급박한 순간에 따로 물어볼 틈이 어디 있어요? 그냥 대표님만 믿고 질렀죠. 저 잘했죠? 우하핫!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힌 한 수였어. 거의 신의 한 수 수준 아니에요?”

“잘났다. 우리도 이만 일어나자. 그런데 저거 언제 방영한다고?”

“다음 주 월요일 첫 방이에요. 화요일 아침에 시청률 나올 테니 적어도 다음 주 화요일 점심 때는 결론이 나오겠네요?”

“그렇겠지.”

“그럼 대표님은 언제 저한테 시청률 알려주실 거예요? 토요일? 일요일? 적어도 월요일 저녁때까지는 알려주셔야 하는 거 아시죠?”

“저거? 뭘 월요일까지 기다려?”

“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지 피디의 어깨를 툭 치며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계산했다.

“난 7%에 걸게. 2차 가지 말고 바로 들어가. 나 간다.”

“어? 이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는 거예요? 조금 더 심사숙고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미 시놉시스를 검토할 때부터 대략적인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다. 거기에 예고편까지 본 이상 근사치는 나와 있었다. 과연 이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시놉시스 봤고 예고편까지 봤으면 됐지, 뭘 심사숙고 해. 그럼 내일 보자구”

“이러다 지면 제 얼굴 어떻게 보시려고 그래요?”

지면 무척이나 쪽팔리겠지. 한동안 지 피디를 피해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몰라. 하여튼 난 7%야.”

랜디 오 감독과 한 이 황당한 내기의 결과를 보기도 전에 이명준 감독의 차기작 제작사인 샤롯엔터테인먼트에서 미팅을 가졌다.

이미 서로 간에 캐스팅에 동의한 상황에서 가지는 미팅이었기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거라는 예상이었지만 도착해보니 뭔가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하하하,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우현 대표님.”

가장 먼저 우현과 지나를 반긴 이는 샤롯엔터테인먼트의 총괄제작팀장이라는 박유한 팀장이었다. 양 손으로 우현의 손을 잡고 흔드는 걸 보니 무척이나 반가운가 본데 뒤에 앉아 있는 이명준 감독은 고개만 까딱일 뿐이었다.

“반갑습니다.”

“아이고, 유지나 씨. 전에도 한 번 본 적 있죠? 그 때보다 더 예뻐지셨네.”

“안녕하셨어요? 염색하셨어요?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

지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샤롯에서 투자, 제작한 영화는 그 당시 100만 관객을 간신히 동원하며 손익분기점도 못 넘기고 막을 내렸다고 했다. 그러니 양쪽에게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을 터.

“으하하, 그런가? 얼마 전에 우리 딸아이가 염색을 해줬지 뭐야. 일단 앉자구. 대표님도 앉으시죠.”

우현이 단순 연예기획사 대표만이 아니라 프로덕션을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살갑게 대하는 것 역시 조금 이상하긴 했다.

“우리 지나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지나 말고 다른 친구가 캐스팅 될 줄 알고 반쯤은 포기한 상태였거든요.”

“하하하,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희로서는 오히려 함께 해준다는 말에 좋기만 했는데요. 오히려 지나 씨한테 배역이 작은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렇게 캐스팅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유한 팀장의 설레발과는 반대로 이명준 감독의 씁쓸한 얼굴을 보니 대충 상황은 알 것 같았다. 제작자 겸 투자자인 샤롯에서 이 영화의 여주에 유지나를 강력하게 민 것인데 이명준 감독은 그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다.

“일단 계약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여기 미리 준비해뒀습니다. 개런티는 아무래도 지나 씨의 배역이 작다 보니까 조금 적을 수도 있겠지만 러닝개런티 비율을 높였기 때문에 흥행만 된다면 오히려 다른 영화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계약서를 보니 출연료는 조금 부족하지만 러닝개런티는 주연배우에 해당하는 인당 150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좋네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조건이다. 세부계약사항을 조율하고 바로 계약을 하려는데 가만히 있던 이명준 감독이 입을 열었다.

“촬영시간에 늦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하루나 이틀간에 본인 촬영 몰아달라고 요구하시면 안 됩니다.

CF나 예능 촬영으로 빠질 거면 석 달 전에 미리 연락 줘야 할 겁니다. 또한 리허설은 대역 안 됩니다. 동선과 대사, 액션 모두 본인이 직접 해야 합니다.

회식도 작품의 연장선상이니 불참 안 됩니다. 뭐, 안 오겠다는 거 억지로 끌고 가지 않겠지만 모든 제작진들의 미움을 독차지 할 수도 있겠죠.

애드립 불가합니다. 꼭 해야 한다면 슛 들어가기 전에 나와 상의해야 합니다. 이걸 세부계약조항에 추가시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갈수록 가관이다. 우현 뿐만 아니라 박유한 팀장 역시 점점 얼굴이 굳어져갔다. 미리 상의한 내용이 아닌 것이다.

“이명준 감독님?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글쎄요. 난 누구와는 생각이 다릅니다. 촬영 기간에는 그 무엇보다 제작진들과 배우들이 똘똘 뭉쳐야 해요. 분위기 깨뜨리는 사람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허... 참 나...”

지금 이 자리에서 박유한 팀장보다 더 열 받는 사람은 우현이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한 마디 하려는데 지나가 우현의 손을 꽉 잡았다.

“좋아요. 저도 감독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 조건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지나의 눈빛은 차분하고 단단했다.

[271]<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는데...(4)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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