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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그릇된 욕심(2) >
경수를 무대에 올려놓고 바로 대기실로 내려가 유니의 컨디션을 체크했다.
“오늘 스무 곡이나 불러야 해. 절대 중간에 무리하지 말고.”
“걱정 마세요. 전에 소극장 공연 해봐서 대충 느낌 알아요.”
표정이나 목소리를 봐도 다른 이야기를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오케이, 일단 의상 갈아입고 10분 뒤쯤에 드레스 리허설 하자.”
“쫌만 쉬면 안돼요?”
“그, 그럴래? 알았어, 수분 충분히 섭취하고. 세동아, 너는 나 좀 보자.”
괜히 쉬다가 핸드폰에서 이상한 기사를 보게 될까 염려돼 세동을 대기실 밖으로 불러냈다.
“너 오늘 무슨 기사 본 거 있냐?”
“기사요? 무슨 기사요?”
“아니다. 너 오늘 하루 종일 유니 옆에서 밀착마크해. 화장실 갈 때랑, 옷 갈아입을 때만 빼고 걔 옆에서 철저하게 마크하면서 절대 핸드폰 못 보게 해, 알았어?”
세동은 영문을 모르지만 일단 시키니까 한다는 듯 쳐진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나도 잘 몰라. 하여튼 내가 안 그래도 된다고 할 때 까지는 그렇게 해.”
세동의 대답도 듣지 않고 경기장 응원석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변에 인적이 없는 걸 확인 한 뒤 멀리서 무대 리허설을 바라보며 광고회사인 최고기획 최호선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 김 대표가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어?”
“지금 찌라시 돌고 있는 거 있어요?”
앞뒤 맥락도 없이 다짜고짜 물었지만 최호선 팀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흐음... 김 대표가 어떻게 알았지? 아직 기사화 된 게 없는 걸로 아는데?”
역시 최 팀장은 찌라시 정보를 알고 있을 줄 알았다.
“기자들이 알면서 기사화 시키지 않는 거예요? 아니면 아직 제대로 된 소스가 없는 거예요? 아니다. 도대체 그 내용은 뭡니까?”
“아이, 하나씩 하자. 하나씩... 일단 그 내용부터 말하자면... 이거 출처가 안 좋은 데서 나온 건데...”
안 그래도 걱정돼 죽겠는데 이 또 무슨 가슴 철렁할 소리인가?
“저 말려 죽이려고 하는 거 아니면 그냥 말해줘요. 쫄려 죽겠네, 진짜. 어디서 나온 소슨데요?”
“검찰 쪽에서 나온 이야기야.”
“예? 검찰이요?”
순간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어떤 내용인지 몰라도 조용히 넘어가기는 다 틀렸다.
“응, 유니 아버지가 다단계 사기에 휘말린 것 같아.”
“아...”
‘x됐다’라는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때가 있을까?
“아직 정확한 소스는 나오지 않았어. 그래서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검찰 쪽을 쑤시는 모양이야. 아마 오늘 내에 기사 터질 수도 있어. 아닐 수도 있고.”
“뭐예요, 조사를 받고 있는 거예요? 아니면 혐의를 받고 있는 거예요?”
“조사 받고 있으면 유니가 몰랐겠냐? 아니다, 모르게 할 수도 있겠네. 그런데 알려진 바로는 검찰 쪽에서 다단계 수사를 진행하다가 유니 아버지가 엮여있다는 걸 알아낸 것 같아.”
“진작 저한테 말씀 좀 해주지 그랬어요?”
“나도 오늘 아침 회의에서 알았어. 오늘 아침에 뜬 찌라시에 이 내용이 있었나 봐. 그런데 넌 어떻게 알았냐? 나도 오늘 아침에야 들었는데...”
“우리 매니저 하나가 인터넷 돌아다니다 봤나 봐요.”
“그 매니저 상 줘야겠다. 어쨌든 이번에는 김 대표가 고생 좀 할 것 같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 정도 폭탄은 3대 기획사도 제대로 못 막는 거 알지? 최대한 피해를 줄일 생각해.”
“맞습니다. 그게 맞겠죠. 그런데 그 다단계 회사 이름이 뭐라고 합니까?”
“아, 그거... 김 대표도 들어본 적 있을 걸? 요새 한창 시끄러웠잖아, ‘에이스인터내셔널’이라고...”
들어봤다. 요즘 다단계 사기로 대표가 수천억 원을 해먹었다는 기사가 연일 사회면에 오르내리고 있었으니까. 하필 그런 데에 유니 아버지가 발을 걸쳤다니...
“하아...”
“그래도 내가 김 대표네 회사 최대한 밀어줄 테니까 광고 쪽은 걱정하지 마.”
“네, 그럼 끊겠습니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일단 콘서트고 뭐고 사무실로 향했다. 무대 준비는 어느 정도 했고 세동이랑 경수도 있으니 알아서 잘 할 거라고 믿었다.
“지금 당장 회의 할 거니까, 모두 모이세요! 하던 일 멈추고, 당장!”
사무실에 올라가자마자 직원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직원들은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아채고는 가장 큰 회의실로 달리듯 모여들었다.
2분도 채 안 돼 커다란 회의실에 직원들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 우현은 그들을 찬찬히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유니 아버지가 ‘에이스인터내셔널’이라는 다단계 업체에 연류됐다는 찌라시가 돌고 있어요.”
“헐...”
“어떡해...”
직원들 역시 충격적이었는지 입을 가리거나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아직 기사화가 된 건 아니지만 언제 기사화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입조심 철저히 하면서 혹시나 나오게 되는 기사는 철저하게 막아주세요. 경고를 하든 빌든 최대한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콘서트 수익 중 회사 이익 분은 사회에 환원하는 쪽으로 기사 내세요. 아... 어디가 좋지?”
직원 한 명이 손을 들고 말했다.
“유니가 여자이기도 하고 요즘 미혼모 가정이 문제되고 있으니까 미혼모가정에게 기부하는 게 보기에도 좋고 스토리 만들어내기에 적당할 것 같습니다.”
“오케이. 그럼 그쪽으로 기부할 적당한 곳 파악해서 올려요. 수익금 정산되기 전에 회사 자금으로 바로 기부할 겁니다. 모든 언론사에 보도자료 뿌리세요. 스토리 누가 짤 거죠?”
아까 손을 들고 의견을 냈던 직원이 이번에도 말했다. 홍보팀 직원이라 그런지 이런 쪽에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짜보겠습니다.”
“좋아요. 평소에도 유니가 이런 쪽에 관심을 가졌고 앞으로도 많은 기부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식으로... 알죠?”
“넵!”
이번에는 회계팀의 직원이 손을 들고 끼어들었다.
“대표님, 그런데 기부하는 돈이 회사 수익에서 나가면 유니 씨가 받게 될 정산금에서 차감하는 형태인가요?”
“아니요, 일단 회사차원에서 지원하는 형태로 갑시다. 아직 유니랑 상의된 것도 아니고... 비용을 빼고 회사에 돌아올 수익부분에서 지출하는 거니까 손해는 아니잖아요? 다들 고생한 거 알지만 유니가 회사에 벌어준 돈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시다, 알겠죠?”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기사가 나가면 대응은 딱 한가지입니다. 유니와 유니 아버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거예요. 유니 아버지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유니가 그 불법에 개입한 게 아니니 철저하게 무시하는 겁니다.”
“대응기사를 내지 말라는 말입니까?”
“유니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요. 유니가 사과를 하는 순간 그 일은 유니가 잘못한 일이 되는 겁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유감스럽지만 특별한 사과문을 발표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일이 커질지도 모릅니다.”
직원들의 걱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대응해야 할 일이 있고 대응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유니가 그 불법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다면 당연히 빠른 사과와 자숙기간이 있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과하는 게 더 문제를 키울 겁니다. 사과는 없어요.
오히려 유니는 피해자입니다. 아직 어느 정도나 피해를 입은 건지 파악돼지 않고 있어서 그렇지 유니의 재산이 얼마나 날아갔을지 걱정스러우니까요.
그래, 그럽시다. 오히려 유니의 피해금액이 상당하다면 그걸 위주로 보도자료를 돌리는 것으로 대응기사를 내도록 합시다.”
“아... 동정심을 일으킨다는 거군요.”
“맞아요. 그럼 다들 움직입시다!”
우현은 사무실을 나와 서초동으로 향했다. ‘에이스인터내셔널’ 다단계 사기를 수사하는 검사를 만나고 싶어서였는데 도착해서 만남을 청하니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마음 같아서는 거기서 죽치고 앉아 만나고 싶었지만 행여 기자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일이 이상한 쪽으로 번지게 될까봐 그냥 돌아왔다.
결국 유니가 공연을 하는 고척돔으로 다시 향했다. 유니 아버지라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일단 유니의 공연을 순조롭게 마무리 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고척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공연이 진행 중이었다. 고척돔을 꽉 채운 관객들은 이벤트를 준비했는지 응원봉으로 일사분란하게 ‘유니야 사랑해’라는 글자를 만들어 응원해주고 있었다.
유니도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노래 중간에 울먹이는 순간도 있었다. 어째 그 장면을 멀리서 보면서 기분이 묘해졌다. 꼭 기사가 나간 후 팬들이 위로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밤 10시가 다 돼서야 긴 공연이 마무리 됐다. 유니는 녹초가 됐지만 공연을 잘 마무리했다는 것에 잔뜩 흥분해 있었고 그런 유니를 잘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내일도 공연이 잡혀 있기에 딱 내일까지만 기사가 안 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 유니야!”
그런데 유니가 옷을 갈아입을 때 친한 코디 하나가 핸드폰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왜요?”
“여기 이상한 기사가...”
대기실 안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음을 알고 우현이 황급히 문을 두드렸다. 1분 정도가 지나서야 문을 열고 들어선 우현은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음을 알았다.
핸드폰을 쥐고 있던 유니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도 발견했다.
“전부 나가, 어서!”
미리 코디에게 주지시켜주지 않은 세동을 혼낼 틈도 없이 다 내보내고 유니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들어 기사를 봤다.
[톱 아이돌 유니 아버지, 에이스인터내셔널 다단계 사기에 연류]
국가일보 단독으로 뜬 기사는 포털사이트 가장 상당에 올라 있었다. 실시간 검색어 역시 유니가 1위, 유니 아빠가 2위, 에이스 인터내셔널이 3위였다.
기자들은 국가일보 단독으로 뜬 기사를 베껴 추가 기사를 생산해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거야.”
“진짜 그럴까요?”
떨리는 눈동자를 보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렇겠지. 네가 당사자도 아니니까 금방 수그러들 거야.”
유니는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맞아요. 아... 정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사실 우리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사람은 좋거든요. 그런데 요즘 들어 아빠가 친구들한테 날 못 믿느냐는 식으로 많이 싸우길래 무슨 사업을 하나보나 하는 생각만 했었죠. 집에 이런저런 물건 사들고 들어올 때 느낌이 안 좋았었는데... 그게 다단계 물건일 줄은 몰랐어요.”
“어? 그래?”
사실 우현도 사건의 내막은 잘 모른다. 방금 뜬 단독 기사를 봐도 정확히 유니 아빠가 ‘에이스인터내셔널’에서 어느 위치에 있었고 어떤 일들을 했었는지 안 나와 있었다. 당연히 기자가 모르니까 기사에 안 내보냈을 거다.
유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단계의 윗선에 있었다기보다 딱 다단계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패턴 그대로다.
“네, 정말이에요. 우리 집에 가보시면 놀랄 걸요?”
원래는 유니를 세동의 차에 태워 보내야 하지만 오늘은 우현이 직접 유니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일단 아버지를 만나 자세한 정황을 들어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니의 집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못 들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와 그를 둘러싼 각종 전자제품과 건강식품 박스를 볼 수 있었다.
“나가 죽어! 이 웬수야!”
그리고 눈에서 불길을 토해내며 고성을 질러대는 그녀의 어머니까지...
[266]< 그릇된 욕심(2) > 끝
ⓒ 영완(映完)